그림과 음악
2006.04.03 08:23

朴壽根 - 향토적인 서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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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여인2, 27.5 X 19.5 cm, 1956

지난 세기의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저는 朴壽根(1914-65) 선생님을 꼽겠습니다.

朴壽根 선생님은 밀레의 '만종'을 보고 감동을 받아 그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은 밀레의 그림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忍從하는 종교(기독교)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는 배경이 없습니다. 오로지 주제만이 있을 뿐이죠. 裸木, 머릿짐을 인 아낙네, 아기를 업은 아낙네와 소녀, 노인, 장터의 아낙네, 등 등. 철사를 구부린 듯한 완만한 직선의 윤곽선은 두터운 단색조의 질감과 어우러져 의외로 은근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디테일을 무시한 탓도 있지만, 그가 그린 인물은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의 그림은 肉眼이 아닌 心眼으로 느껴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특징의 하나는 같은 소재를 택해서 변주를 하듯 조금씩 다르게 그린 그림이 여럿 있는 점입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자신의 미술 세계를 이룬 걸 보면, 위대한 화가임에 틀림없습니다. 생전에 불운을 만회라도 하듯, 사후에 그것도 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3년과 2002년에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앉아있는 아낙과 항아리>와 <閑日>이 각각 한국 현대 미술품으로는 최고가인 123만9500달러와 112만7500달러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아래에는 그의 그림의 단골 소재인 '裸木'에 관해서 이주헌 선생님이 쓰신 글을 옮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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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그림에는 남자, 그 가운데서도 청장년층의 가장쯤 될법한 남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이라고는 아낙네와 어린이, 노인이 대부분이다. 박수근의 그림이 주로 민초들의 삶과 풍정을 피사체로 하고 있음에도 건장한 남정네들이 그의 앵글에서 비껴나 있다는 것은 사실 매우 이채로운 부분이다. 남정네의 부재, 거기에 '박수근 풍속화'의 남다른 특징이 있는 것이다.

남정네의 부재와 함께 눈여겨볼 박수근 회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裸木의 존재를 꼽을 수 있다. 裸木은 박수근 그림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매우 친숙한 소재다. 그것은 동네 어귀나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하릴없이 굽어보는 무심하고도 정적인 존재다.

裸木은 죽은 나무 아니면 겨울 나무다. 잎이 달려 있질 않으니 오로지 이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다. 박수근의 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나무가 裸木이라는 사실은 그의 그림 속 계절이 늘 겨울에 가깝다는 말과 같다. 그만큼 을씨년스럽다. 등장 인물들의 생활 풍정과 늘 함께 하는 이 친숙하면서도 추운 존재는 그러므로 다른 인물 못지 않게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표상하는 존재일까? 내가 보기에는 바로 사라진 남정네, 가장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내가 박수근의 裸木을 사라진 남정네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그들은 대부분 기둥처럼 주어진 공간 전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무심히 서 있는 듯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안위에 늘 신경 쓴다. 등장 인물과 조화하려 애쓰는 그들의 몸 동작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게다가 나무 주변에 모인 인물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아이를 보거나 행상을 나서는 여인들이 거기에 있다. 1962년 작 <나무와 두 여인>은 이 같은 소재의 대표작이다. 裸木 주위에 아낙네들이 모여 휴식을 취할 때면 삶의 의지처로서 나무의 특징은 더욱 명료히 살아 오른다. 裸木은 그 수동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안의 가장인 것이다.

그런데 가장들은 왜 이렇게 자신을 본 모습 그대로 드러내지 못 하고 삭막한 裸木이 됐을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실존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우리 근대사 속의 가장들은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해방, 한국전쟁, 뒤이은 분단과 경제개발 등 숨가쁜 격변의 최전선을 살아야만 했다.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음에도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집안 대문도 제대로 못 지켰을 뿐만 아니라 서로 피 흘리며 싸워야 했다. <나무와 두 여인>에서 보듯 자연히 가사와 집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 활동은 모두 여자들의 몫이 됐다. 20세기 한국 여인네들이 각 분야의 국제 경쟁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무너져 내리는 가부장제 사회를 끝까지 버티고 지켜온 그들만의 남다른 잠재력 덕이었다. 그에 반해 가장들은 더욱 참담하고 부끄러운 자신들의 모습을 그들의 빈 자리를 통해 확인해야했다. 사랑방이 없어진 뒤 가장을 위한 아무 대안도 없는 오늘날의 주거 구조가 생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아폴로에게 쫓기던 다프네가 월계수가 되듯 그저 그 자리에서 벌거벗은 나무가 되기를 원했다. 상처받고 가진 것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어떤 열매도 이파리도 달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박수근에게도 마찬가지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의 裸木 그림은 다시 그의 자화상이 된다. 굳이 박수근이 아니더라도 그 시절 그 자화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한국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됐을까? 내가 나의 아버지를 그의 그림에서 발견하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겨울 날 외투 가득히 추위를 담아오시던 아버지, 내 아이의 자장가로 나도 모르게 '겨울나무'를 부르게 되는 이유이다.
(이주헌의 '내 마음속의 그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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