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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스코, 페루의 한가운데
 
  페루의 북쪽 해안가 빠이타에 있는 한국공장에 가 있는 남편이 나를 그곳으로 불렀다. 멀고 먼 여름나라에 갈 생각을 하면 미리 피곤했지만 성탄과 새해를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남편과 함께 보내는 것도 괜찮고 무엇보다 그 나라에 대해선 깜깜한데 사진이라도 찍어와야지 생각하며 길을 떠났다.

서울에서 LA까지는 KAL을, 다음엔 란 칠레(Lan Chile)항공으로 갈아타고 무려 8시간을 더 가니 드디어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다. 빠이타는 그곳에서 비행기로 2시간 더 가야하지만, 우선 리마에서 남편이 임시 사무실 겸 숙소로 쓰고 있는 팔리스호텔에 들어갔다. 


 
 
   친절한 호텔의 매니저로부터 청소하는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순한 사슴의 눈매를 하고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방안에 들어서자 화장대 위에 장미와 카네이션, 수선화가 한 아름 가득 웃으며 나를 맞아주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 꽃?”하며 놀라자, 남편은 아침 꽃시장에서 사왔노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삼십여 년 전에 병원에서 세 번째 아기를 낳았을 때 받아보고는 처음이어서 눈물이 나게 감동했다.

우리는 성탄 전야엔 리마 한인교회에서, 성탄절 아침엔 현대식으로 설계된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특별한 은총을 감사하며 지냈다. 두어 시간 리마 해안을 산책했는데 팔과 얼굴이 까맣게 타는 듯 뜨거운 성탄절을 보냈다. 


 
  다음날 공장으로 날아가 남편의 숙소 꼴랑 비치에서 쉬었다. 파도소리와 이따금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말고는 전화소리 하나 울려오지 않아 참 평안을 맛보았다. 

남편의 연말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꼬스코(Quosco)로 날아갔다. 페루에서는 원주민어와 스페인어를 쓰는데 큰 도시나 관광지에선 영어가 일상화되어 두 언어를 몰라도 영어가 통해 편했다. 

페루인은 리마 사람, 고원지대 사람, 정글에 사는 사람으로 나뉜다. 안타까운 것은 페루의 원래 주인인 쎄라노(고원지대 사람)가 쓰는 퀘챠(Quechua)어가 말은 있으나 글이 없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보여주었던 잉카시대에 농업, 상업, 직물, 종교, 예술(미술, 조각, 도자기 등)이 극치에 이르면서도 문자가 없었다는 것은 문자 없이도 불편하지 않았던 무엇이 있었거나 아니면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지. 그런 불편함이 있었기에 스페인의 식민지로 300년 이상을 지냈을까. 점령된 세월은 온 국민이 스페인어를 쓰게 만들었다. 퀘챠어에 글이 없는 한 그들 문화의 생명을 되찾을 길은 요원하리라.

고지대인 꼬스코(잉카제국의 수도)엔 까만 머리를 땋아 늘이고 낮엔 치마로, 밤엔 편리하게 텐트가 되는 몽당치마를 입은 쎄라노 사람들이 있고, 평지의 꼬스코엔 리메노(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사는 사람) 같은 현대문명인들이 살고 있다. 페루의 역사가 시작된 이 고장엔 고대문명인과 현대문화인이 공존한다. 페루 역사의 재미있는 단면이다. 

평지의 꼬스코 광장은 유럽의 여느 도시들처럼 화려한 건물들, 상가, 식당들이 늘어섰다. 건물들 사이를 누빈 골목길은 아직도 잉카문화의 옛 돌담과 돌길들이 서글프게 가려져 있다. 스페인 문명의 그늘에서 잉카는 의붓자식인가. 

꼬스코의 도심에 우뚝 솟아 있는 옛 신전, "태양의 신 잉티가 건국한 장소"라는 꼬리칸짜(Qorikancha)는 1532년 스페인이 처음 침공할 때 제일 먼저 헐린 곳. 침입자들은 잉카의 심장인 이 신전을 헐어 '산타 도밍고'라는 성당으로 둔갑시켰다. 가장 큰 광장과 제일 높은 언덕에 세운 성당과 예수님의 조각상은 스페인의 정치적 선교의 앞잡이가 된 기독교의 슬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이 나라가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그 당시 약탈당한 신전의 황금 벽과 정원에 가득 차 있던 금은들이 모두 스페인으으로 옮겨진 것은 역사가 고증한다. 이때는 유럽의 금화 비율이 300% 급증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어두운 성당 오른쪽 벽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 마르코스 자파타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걸려있다. 재미있는 것은 성찬용 빵과 포도주 외에 원주민이 산 제물로 바치는 애저(새끼돼지)가 접시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의 얼굴이다. 성당 외벽엔 이러한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토착화를 상징하는 듯한 큰 십자가 위에 색동천들을 걸어놓고 축일에 바치는 노랑 들국화를 꽂아 놓아 산당인지 예배당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교회 문전에 앉아 천진난만한 얼굴로 오색 띠를 팔며 사진을 관광객과 같이 찍고는 모델료까지 받아내는 가족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발길을 돌렸다. (계속)
발행일 : 2009.10.13    기사발췌 : http://www.koreatimes.net/?mid=kt_opinion&category=44964&document_srl=4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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