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음악

어린 날의 추억 - 송편 이야기

by 김성훈 posted Sep 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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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닷새만 지나면, 추석입니다. 이맘 때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야, 이건 뭐냐?" "어, 또 밤이네." 네 살 위의 사촌형은 가족이 모두 잠든 밤, 마루에 둘이 앉아서 큰 쟁반에 쌓인 송편을 하나 하나 이빨 자국을 내고 있었습니다. 깨맛 송편을 좋아하는 저를 즐겁게 해주려고, 확인 작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쟁반에 담긴 송편은 이미 반 이상이 씹힌 상처를 흉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사촌형은 고모님께 혼쭐이 났죠.

실향민이신 부모님 덕분에, 시골이라는 단어는 외국어처럼 낯 설게 느껴졌습니다. 그저 방학 때나 추석 때면, 혜화동 고모님댁에 가서 며칠 자고 오는 정도였지요. 위의 사건은 국민학교 2학년 때인 걸로 기억합니다. 경복궁에서 혜화동 왕복의 짧은 여행에서 호송(?)은 매번 그 사촌형이 담당했습니다. 버스 문가에 서 있던 남자 차장이 기억나는데, 우리는 주로 운전석 옆에 자리를 잡았지요. 그 당시 버스는 요즈음 것과는 달리 운전석 옆의 엔진부가 불룩 솟아 있어 앉아 있기에 좋았습니다. 그 위에 앉으면, 엔진의 떨림이 고막까지 전달되어 귀를 간질이는 느낌을 즐기곤 했지요. 집에 올 때면, 사촌형은 동네 아이들한테서 딴 쇠다마(구슬)를 한 웅큼 집어 주곤 했습니다. 

사촌형이 저를 집에 데려다 놓고 대문을 나서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갑자기 저를 엄습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무척 감상적이었나 봅니다. 그 슬픔을 이겨 보려고 국어 교과서를 펼치고는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울음소리로 바뀌었고, 어머니는 놀라서 안방에서 뛰어 나오셨습니다. 저는 아무말 없이 그냥 울기만 했죠.

머리가 커진 후, 우리는 각각 제 갈 길을 바쁘게 갔고, 이젠 만나 본 지도 꽤 되는군요. 매년 추석날 송편을 보면 생각나는 얼굴입니다. 저는 아직도 밤맛 송편은 즐겨 먹지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