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음악
2005.06.25 16:28

아-, 55년전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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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참했던 민족사의 비극이자 수난은 
바로 55년전인 1950년6월25일 
새벽의 정적을 깨트린 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날을 어찌 잊을수가 있으며 
同族相殘의 大慘變을 일으킨 
民族史의 悖倫을 어찌 용서할수 있을까. 

그러나 그悲劇과 受難을 까맣게 잊은 듯이, 
어쩌면 잊지 않았으면서도 모르는채 하며 
망녕되히 處身하고 行動하는 자가 너무도 많아서 
다시한번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다.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들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서 남아 참고되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시고 애독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께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NARA에 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권중희 선생님, 그리고 사진 자료를 입수하는데 도와주신 재미동포 자원봉사자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곁에서 원문을 번역해 주신 박유종 선생님, 길잡이가 되신 이도영 박사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캐너를 빌려준 동포 주태상씨 그리고 이선옥씨, 권헌열씨, 정희수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에 이 자료를 독자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


필자 소개: 박도 기자는 서울에서 33년간의 교단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강원도 산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 회원으로 작품집에는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와 산문집 <샘물 같은 사람> <아버지의 목소리> <일본기행> 항일유적답사기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한국전쟁 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이 있다.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 1950. 12. 18. 흥남에서 묵호(동해)로 후퇴한 후 수송선에서 내리는 병사들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



▲ 1951. 1. 5. 1.4 후퇴 피난민 행렬



▲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1.4. 한강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부대 여군들



▲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미제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필자도 이런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 1950. 8. 24. 모정 무한, 피난 길에서 젖을 먹이는 어머니



▲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



▲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



▲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 1950. 9. 15. 인천 월미도로 상륙하는 함정들



▲ 1950. 9. 16. 인천에 상륙한 후 시가지를 활보하는 유엔군들



▲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 1950. 9. 17. 서울 진격 작전



▲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



▲ 1950. 9. 29.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



▲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


▲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



▲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



▲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 1950. 9. 29. 유엔 깃발로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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