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6 00:19

유럽에서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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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모임에서 약속드린 대로,

1988년도 1월 판 스위스에어의 Gazette에 실린 커피 관련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1편 카페 아라비카, 라이베리카, 로부스타 / Coffea Arabica/Liberica/Robusta 

2편 유럽에서의 커피

 

이후 몇 편이 더 올려질 것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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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커피/Coffee in Europe - An age goes sober/한 시대가 맑은 정신이 되다

By Wolfgang Schivelbusch – 커피, 철도, 조명, 지적 능력과 같은 주제로 여러 가지 책들을 발행했다. 그 중에는 1980년 뮌헨과 빈에서 발행된 “Das Paradies, der Geschmack und die Vernunft” 라는 흥분성 음료의 역사책이 있다.  벨지움에 있는 루베인 도서관의 몰락과 부흥에 대한 그의  이야기 책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베를린과 뉴욕에서 살고 있다. (1988년 당시)

1697년에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마르세유 대학의 의사가 쓴 “최근 동방으로부터 소개된 새로운 음료”에 대한 의학보고서를 읽고 정말로 매우 걱정을 해야만 했다. 그 보고서는 “그것을 많이 함유한 탄 알갱이가 있는데, 피 속에 들어가면, 모든 림프를 쓸어버리고 신장을 말리는 광적인 힘을 갖고 있다. 더욱이 그 알갱이는 뇌를 위협한다. 완전히 건조된 그 열매와 잎 받침을 먹은 후, 몸의 모든 기공이 열려, 결국에는 잠을 자게 하는 동물적인 힘이 뇌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커피에 함유된 회분(Ash)은, 신경 수액을 말리는 이런 성분 때문에, 지속적인 불면 상태를 야기한다. 이 성분을 없애지 못하면, 활력저하, 무기력, 성기능 저하가 생긴다. 한여름 강바닥처럼 쉽게 약해지는 혈액의 산성화는 몸의 부분 부분에서 체액을 빼앗고, 그래서 모든 뼈대는 극심하게 쇠약해져 고통을 받는다”고 했다.

여성의 경우에는 커피가 좋지 않다는 청원 형태의 찌라시가 런던에 나돌기 수년 전, 대중의 관심은 이 “무기력해지고 약화시키는 음료”의 남용이 (여성의) 더 약해진 성적능력이란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그녀들) 남편들은 결론지었다.

커피가 선풍적인 이국적 마약이 아닌 서구의 가장 대중적인 일상음료가 되어 가던 때인 17세기 말까지도, 이 끔찍한 설명이 여러 가지 다른 버전으로 나 돌았다. 오래 유지된 습관은 획기적인 변화에 의해 항상 도전 받았듯이, 결과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생겨났다. 하나는 커피가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독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가 모든 질병의 치료제라는 것이었다. 마르세유에 있는 동료들과는 정 반대된 의견을 주장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았고, 또한 그들의 주장에 리듬과 박자를 줘, 영원히 기억되도록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But you, much valued drink, henceforth alone shall be

그대 홀로, 매우 값진 음료이고,

My spirit’s strengthener’ gainst toil and misery;

고통과 비참함에 대적하는 내 정신의 강화자여;

Your wondrous powers conspire to make my senses glow,

네 경이로운 힘은 내 오감을 반짝이게 하네

Till blood and nervous juice with double fervour flow.

피와 신경수가 배가된 열정의 흐름에 이를 때까지.

And if my mind at times on loftier errands seeks

 이따금 내 마음이 더 높은 사명을 찾아

To scale the final slope of wisdom’s highest peaks,

지혜의 최고봉의 경사를 측정코자 했다면,

By weight of sullen flesh it will not be restrained

암울한 육체적 쾌락의 중압감으로 못하게 되진 않았을 것을

If I a few of your inspiring cups have drained.

네 영감의 잔을 몇 잔 비웠더라면

커피 신봉자들에게 커피 한잔은 오늘날의 아스피린 정에 필적하는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17세기에 커피는 복부팽만을 상쇄하고, 간과 담낭을 강하게 하고, 부종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구원하고, 위장을 평안케 하고, 소화를 촉진하거나 억제하고, 역정적 성깔을 완화하고, 차가운 기질에 온기를 더하고, 불면증 환자에게 잠을 가져다 주면서도 나른 함을 깨우는 등등을 한다고 말해졌다. 커피를 지지하는 자들의 시각에서 검고, 뜨겁고 쓴 커피가 치료제나 개선제가 아님에도 불만은 없었다. 그 효능에 대한 긴 목록에 있어서 커피 옹호자들이 특별히 중요성을 준 두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뇌에 영양을 공급한다는 것과 마음을 각성 상태로 유지시킨다는 것이었다. 17세기에 커피를 찬양하기 위해, 혹은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례의 읽을거리는 이들 두 가지 특징이 양쪽 모두에게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것들은 단지 다르게 해석 되었다. 체액의 완전 고갈, 몸의 탈진, 신경 기능의 죽어감, 다시 말해 기억력과 이해력을 높이고 신체 기능을 다르게 하는 커피의 효능은 어떤 이에게는 최고로 큰 죄악이고, 다른 이에게는 인간다움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되돌아 보면, 커피는, 사실, 이미 새로운 시대에 불을 붙였다. 중세는 커피의 출현과 함께 끝났다. 커피가 일상의 음료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는 생리학적 사실(의 시대가)이 되었다.

커피가 첫 성공을 기록하던 시기, 베르사유에 있는 루이 14세의 궁정에 살았었고, 독일 귀족이었던, Elisabeth Charlotte d’Orleans 공작부인은 다작의 서간문 필자로써, 문화사에 그녀의 자리를 갖고 있다. 그녀는 한때 “여기 많은 사람들이 차와 커피와 초콜릿 음료를 마신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결코 만지지 안았고 … 나는 내 인생에서 차, 커피, 초콜릿 음료를 전혀 마신 적이 없다. 이 외래음식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 차는 내게 건초와 거름 같아 보인다. 커피는 숯 검댕과 루핀 콩나무 씨 같고, 초콜릿은 내게 너무 달다. 그래서 난 어느 것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 위를 탈나지 않게 하는 좋은 시원한 과일 혹은 비어 스프(Beer Soup)이다.” 라고 썼다. 공작부인은, 요즘도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극적인 것을 먹을 때 괴로움에 얼굴을 찡그리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가 더 나이가 들지 않은 때라면, 그들은 그것 없이는 거의 살 수 없다. 각각의 시대는, 비유적으로 또 생리학적으로 이해되는, 그 시대만의 취향을 갖는다. 독일 공작부인이 성장한 시대는 이미 베르사유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따뜻한 비 알코올성 음료를 좋아하는 새 시대와 겹쳐진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샤롯은 그녀의 편지 마지막 탄식에서 밝혔듯이 여전히 맥주 신봉자였다.

맥주가 300년전 유럽 요리와 문화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다는 것을 오늘날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 시대에는 영양의 기본인 빵과 같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모든 가정이 그들의 빵을 굽듯이 그들만의 맥주를 담갔다. 한 사람이 하루 3 리터는 정상적인 음주량이었다. 작가이며 문화사가인 Heinrich Eduard Jacob이 지적했듯이, 맥주는 남성들의 간 속에, 목소리에 그리고 심장 속에 있었다. 그들은 맥주에 취해서 생각했고, 계산했고, 느꼈다. (적어도 포도가 자랄 수 없는 유럽의 지역들, 특히 북부와 서부 지역에서는)

맥주는 주식이었고 육체 노동에는 연료였다. (건축 현장과 힘든 육체 노동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아직도 상당량을 마신다.) 실제로 일이 과격하고, 정신노동이 필요하지 않고, 맑은 머리회전 보다 건장한 육체가 더욱 중요한 사회에 있어서, 맥주는 기본 식단이었다. 이런 사회에서의 행동 법칙과 의례는 요즘과 같은 현대 기술 문명이 어떤 역할을 하도록 허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이 술을 마실 때 정해진 대로 행동을 했는데, 이는 지금 우리 시대까지도 남아 있다. 서로 술을 마시면서, 건강을 빌거나, 내기 하거나, 엄숙히 잔을 들어 서로 부딛거나, “위하여” 같은 서로 격려하는 말을 교환하는 것들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오래된 음주 의식 중 일부이다. 그러나, 과거 이 습관들은 더욱 생생했고, 강압적이었다. 중세에 있어서 통상 음주의 최 정점이었던 만취는 단지 알코올 때문 만이 아니고 이 음주 의식 때문이었다. 술자리는 통상 대부분의 참석자가 (술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끝났다. (술자리에 앞서) 이 절차를 깨려는 어떠한 시도도 술친구에 대한 모독이거나 누군가의 의무 회피로 간주되었다. 후기 로마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인 Venantius Fortunatus에 의해 6세기 [독일의 축제]에서 관찰되는 광경인 “미친 놈들 같이 서로의 건강을 마셔버린 술고래”들이 있는 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도망쳐 나오는 것은 행운이었다.”라는 방식이 16세기 중부 유럽에서 반복되었다. 몽롱해져 쓰러질 때까지 마시는 도전의 형태로 행해지는 술 마시기는 – 오늘 날 뮌헨의 10월 축제와 독일의 몇몇 대학의 사교클럽에서 하고 있듯이 – 이미 예전에 받아들여진 사교의 한 방법이었다. 1599년부터 진탕 마시며 하는 데이트가 기록된 보고서는 이 특이한 관습이 16세기까지 살아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술고래들은 와인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들은 전에 창과 무기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싸우기 위하여 포트와 유리 잔을 쓰고 있다. 먼저, 그들 중 가장 지명도 있는 사람이 사방 모두에게 술 한잔을 마시게 함으로 공격한다. 그가 엇갈리게 잔을 들어 올리고 마신다. 곧 다른 사람이 시작한다. 유리 잔과 큰 포트를 모든 방향으로 휘두른다. 다음으로 손님과 술고래는 서로 일 대 일로 얼굴을 마주 본다, 유리 잔은 반쯤 비어 있어야 하고, 중간에 숨을 들이 쉰다거나 콧수염을 쓸지 않고 한번에 마셔버린다. 두 사람은 내기를 하기 위하여, 두 명의 영웅 같이 일어선다. 그리고, 이긴 자가 상을 갖고 간다. 종종 가장 잘 마시는 자에게 보상과 명예가 따른다.

16세기 종교 개혁의 시대에, 이러한 관습은 점증하는 비판에 직면했다. 오랫동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행동 양태가 반대 받고,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이 되었다. 위에 인용된 보고서는 튀빙겐에서 온 교수가 썼다. 새로운 팜플렛, 설교, 만화 등의 홍수 속에서 쉽게 유럽으로 퍼질 중용이라는 새로운 정신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이 변화의 정신은 종교개혁으로부터 왔다. 소책자의 많은 필진은 그들의 수장인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가였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꿔버린 종교개혁이 인간과 알코올과의 관계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에 누군가는 불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주요 목표가 이루어지는 동안, (금주와 관련된) 작은 캠페인은 계속 성공하지는 못했다. 폭주를 끝내려는 수 많은 금지법들은 효과가 적었다. 절제의 사도 자신들도 칼빈 교회가 17세기 이후, 처음에는 제노바에서 이후에는 영국과 네델란드에서 계속해 만들어 갔던 확고한 금욕주의는 아니었다. 중세의 인생의 기쁨(joie de vivre)과 개신교인의 윤리 두 가지가 루터 자신의 모습에서도 보이는데, 그는 한번도 술주정뱅이를 비난하면서 싫증을 내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와인, 여자 그리고 노래” 없이는 긴 인생에 바보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처음으로 지어냈다고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폭주)완화운동은 비난 받는 알코올 음료 대신에 주문할 매혹적인 대체물이 없어서 실패했다. 그 상황은 새로운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맥주와 브랜디는 적게, “워터 블라이트”는 많이 마시고 싶어 했던, 300년 후인 19세기의 상황과 유사했다. 전통적으로 강세인 음료를 비교적 쉽게 거부하게 만든, 코카콜라와 같은 소프트 드링크의 등장은 20세기의 일이다.

20세기 대량 소비사회에서 코카콜라의 역할은 적은 수적 기반 위에 있었던 17 세기 커피의 역할이었다. 그것을 마시고 그것을 칭송하는 노래를 한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오르고 있던, 사실 그들 모두는 일을 위해 맑은 두뇌 회전과 준비된 지적 능력이 필요했던 상인, 법률가. 의사, 저널리스트, 과학자, 정치가 등, 전문가 집단의 일원이었다. 가장 훌륭한 커피 홍보물도 그들을 위해 그들이 만들었다. 이 인구분포상의 새로운 영역에 있는 사람들(현대의 여피 족과 거의 동일한)의 눈에는 커피는 윤활제나 마약의 역할을 한 반면 알코올 음료는 단지 일을 방해했다.

알코올 때문에 멍청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17세기에 (이해/득실이) 결판이 난 커피에 관하여 소책자, 소고, 시들 속에서, 오늘날 광고회사가 슬로건, 포스터, 티브이 광고물을 만드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끝없이 반복되었듯이 커피에 의해 시민의식과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총명한 사람으로 되돌려졌다. 이것은 1674년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시의 한 구절이다.

When the sweet poison of the Treacherous Grape

위험한 포도의 달콤한 독이

Had acted on the world a general rape;

세상을 능욕하고;

Drowning our Reason souls

분별 있는 영혼을 익사시키네

In such deep seas of large o’erflowing bowls….

큰 흘러 넘치는 그릇, 그 깊은 바닷 속으로

When foggy Ale, leavying up mighty trains

흐릿한 에일 맥주가,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Of muddy vapours, had besieged our brains,

혼탁한 증기의, 우리의 두뇌를 에워쌀 때

Then Heaven in Pity…..

연민 속의 천국

First sent us this All-healing berry…..

가장 먼저 우리에게 완전한 치유의 열매를 보내고

Coffee arrives, that grave and wholesome liquor,

위험하고 건강에 좋은 액체 커피가 도착한다

That heals the stomach, makes the genius quicker,

위를 쉬게 하고, 천재를 더 영리하게 만드는

Relieves the memory, revives the sad,

기억을 해방시켜라, 슬픔을 되살려라

And cheers the Spirits, without making mad…..

영혼을 격려하라, 미치지는 않게……

19세기 역사학자 중에 한 시인인, Jules Michelet은 17세기에 경험한 “맑은 정신의 시대(The sobering of the age)”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제 에일 맥주 집은 지위를 잃었네. 끔찍한 에일 맥주 집은 지위를 잃었네, 오십 년 전 만해도 젊은이들이 (맥주 보관용) 케그 상자와 창녀들 사이에서 나뒹굴던 곳이. 밤에는 알코올 냄새 나는 노래가 줄었고, 사회의 맨 밑 바닥에는 고상한 대갈통들이 줄었네….. 커피, 이 정신을 맑게 하는 음료, 뇌에 강력한 영양 공급원, 정신의 순수함과 명석함을 강화시키는 커피, 풍부한 상상력을 주고, 머리에서 매우 혼탁한 구름을 흩어버리는 것, 진실의 섬광이 물체의 실체를 갑자기 비추게 하는 것 …..”,

17세기에 커피가 받아들여졌음에도 – 인기 있는 과학적 정의로는 유럽 음식과 흥분제 그리고 마약의 세계에 있어서의 파라다임 쉬프트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 아직, 전통 취향을 갖고 있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마주하게 된 저항은, 엘리자베스 샤롯 공작부인이 아주 좋아한 비어 스프에 관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주 분명했다. 유럽사람들이 하루의 시작을 비어 스프 대신에 커피 잔을 들고 시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동종 요법(Homeopathy)의 창시자인 Samuel Hahnemann이 19세기 초에 모은 깨어난 직후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조건에 대한 설명 자료에 의해 19세기 초에 알려졌다. “처음 순간 혹은 일어나는 과정의 15분에 있어서, 만일 (일어나는 것이) 통상적인 것 보다 일찍 일어났다면, 험한 자연 상태에서 살지 않는 거의 모두는 의식이 불완전하게 깬 기분 나쁜 느낌을 가진다. 몽롱하거나, 팔 다리가 무기력하고 잘 안 움직여지고, 재빠른 움직임이 어렵고, 생각은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커피는 이 불유쾌한 느낌, 이 정신과 육체의 불편함을 거의 한번에 날려 버린다.” 우리는 갑자기 달라진다. “커피는 새로운 근무 일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 신호가 된다. 일어나며 마시는 한잔의 커피는 환각제, 두뇌를 작업 명령에 들어가게 하는 푸시 버튼과 같이 작용한다. 전통적인 비어 스프 시절에는 움직이는데 한 두 시간이 필요했다.

 

이 변화는 식이요법 혁명이라고 불려왔다. 정치에서와 같이 영양학에 혁명이란 부적절한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은 도움 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커피 콩(빈)은 유럽 문화의 일부가 되기 오랜 전에 서구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특질과 잠재적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아서, 그것은 약사의 약장 안에서 비밀스런 생활을 영위했다. 말과 그림의 홍수로 대중들에게 파고 들어 사회에서 자리 잡게 해 준 것은 17세기의 커피 선전이었다. 머지 않아 예술에서도 그의 길을 찾았다. 커피가 브르조아의 일상적인 음료로 인정된 18세기에 새로운 장르의 그림이 얼굴을 내밀었다. 예술사가들은 그것에 어떤 이름을 짓진 않았지만, 아주 단순하게 커피 초상화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나 온 가족들이 커피 탁자에 있는 모습, 혹은 손에 커피 잔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이전 세기의 유화에서는 중앙을 차지했던 마시는 장면과는 반대로, 그들의 태도와 그들이 자아내는 인상은 심각하고, 절제되고, 조각 같았다. 18세기의 커피 초상화는 우리 시대의 전화기 초상화와 유사한 기능을 했다. 오늘날 손에 전화 수신기를 들고 자신의 사진을 찍게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얼마나 바쁘고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200년전 커피잔을 들고 그림에 그려졌던 그들도 그들이 얼마나 현대적인가를 보는 이들에게 넌지시 암시한다. 그러나, 커피가 유럽에서 발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광고도, 시도, 유화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셔졌던 곳으로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곳으로 특별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현대의 보고서에 의하면 1,700년경에 런던에 얼추 3,000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당시 인구가 약 600,000명, 이것은 매 200명당 한 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는 의미다. 100년전의 약 1,000명 당 하나였던, 선술집의 수와 비교해보면 그 수는 놀라운 것이다. 그 숫자가 왜곡됐을지 모르지만, 커피하우스는 세계 무역의 중심이었던 도시에서 매우 눈에 잘 띄는 것이었다. 매콜리는 그의 잉글랜드 역사에서 그 현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당시 참말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시설이라 불렸어도 부당하지 않다. 공공 모임, 대중 앞에서 일장연설, 결의 그리고 그 외의 현대적 정치선동은 아직 유행하지 않았다. 요즘의 신문을 닮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한 환경 조건 하에서 커피하우스는 큰 도시의 여론을 배출시키는 최고의 기관이었다. 도시의 어느 지역에서나 약속을 잡을 수 있는 편리함, 아주 적은 비용으로 사회적 활동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편리함은 최고였고, 이 유행은 빠르게 퍼졌다. 상류층 혹은 중산층의 모든 남자들은 새 소식을 듣고, 토론하기 위하여 그들의 커피하우스에 매일 갔다. 모든 커피하우스에는 청중이 감탄하며 그들의 달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변사가 한 두 명 있었다.”

선술집의 규칙은 커피하우스에서 적용되지 않았다. 마시기 경쟁을 해야 할 의무도, 알코올도 없었다. 한 세기 전에 개혁가들이 부질없이 끼어들었던 (음주)완화가 지금은 현실이 되었고 어디서나 받아들여졌다. 만일, 유럽에서 괄목할만하게 시민화에 영향을 준 또 다른 사회기관(협회)이 있냐고 한다면 그것은 귀족 살롱이었다. 그곳은 만취는 금기시되고 교양 있는 행동거지가 입장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살롱은 초대받은 손님에게만 열려있었다.

그에 비하여, 커피하우스는 배타적이지 않았다. 커피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곳에 앉을 권리를 가졌다. 민주적 평등, 사교성과 논리적인 토론이 강조되는 혼합된 이미지가 유럽의 커피하우스를 원래 비즈니스맨의 회합장소에 더하여 지식층, 작가 그리고 혁명가들의 랑데뷰 장소로 만들었다. 러시아 혁명 전에 레온 트로스키가 비엔나 “Café Central”에서 보낸 시간과 오스트리아 장관들과 한 체스게임들이 지금은 전설이 되었고, 허무주의자인 월터 맨링이 세상의 모든 도서실에서 발견되는 것 보다 많고 위대한 책들이 유럽의 커피하우스에서 계획되었다는 취지의 언급과 세계사가 전에 저지른 잘못 보다 더 많은 일이 (커피하우스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아마도 과장됐을지는 모르지만 사실이다.

17세기의 커피하우스는 새로운 상품이었던 커피를 획기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커피하우스가 없었다면, 커피가 결코 오늘날의 커피와 같이 되지 못 했을 것이다. 커피를 어떻게 즐길지, 무슨 효과가 있는지, 사람들이 커피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등을 배우면서 유럽 사람들이 이 새로운 음료와 친해진 것은 바로 이 커피하우스에서였다. 이렇게 커피하우스는 새로운 커피 유행의 배움터였다. 이런 현상이 끝났을 때, 커피는 사회의 구석 구석, 그리고 특히 가정에 파고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른 아침 비어 스프가 커피로 대체된 것–유럽인들의 아침식사 문화의 대혁신–은 비어 스프를 떠먹는 것 보다 커피 마시기를 더 자연스러운 일상의 습관으로 커피 하우스가 만들어낸 후에 일어났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막스 웨버의 아이디어를 빌려보면, 17세기 커피하우스의 시기는 커피의 권위주의(카리스마적) 시대라고 불릴 수 있다. 삶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중간 멈춤은 이와 같이 강력하게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9세기에 속도의 시대를 발족시킨 철도나 영화를 생각하면 되는데, 그 덕분에 현대 미디어는 금세기 초창기에 괄목할만한 진보를 했다. 그 당시 철도와 영화는 대중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그 둘을 통해서 소비자들은 집단적으로 새로운 기술적 현실에 익숙해졌다. 이 기념비적인 대상이 작아져서 사람들의 사생활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아서 새로운 제도에 익숙해졌을 때였다. 이렇게 기념비적이었고 강력했던 것이, 막스 베버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일상적인 부분으로 작아 졌다. 19세기에 철도를 타고 다니던 것이 오늘 날에는 규모가 작아져서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예전의 영화는 휴게실에 있는 TV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축소 모형이 되어 17세기 커피 하우스에서 최초의 대단한 돌파를 했던 이 음료를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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