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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옥중서간>(본회퍼 저- 대한기독교서회) 서평입니다


                           -그리스도 세상 왕되심의 새로운 선포-

                                                                -은성훈(틈, 창간호, 1996 pp.167∼172)

1

얼마전 신문에는 2차대전 중 사망한 독일의 한 목사가 처형된지 50여년이 지나서야 복권되
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회적 영향력으로 볼 때 일개 목사의 복권이 어떻게 이처럼 다른
나라의 신문에까지 게재될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지에 대해, 그것도 사망한지 5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어떻게 전 국가적으로 그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닐수 있는가에 대해 약간
의 의문을 넘어선 호기심이 들기까지 했다. 기사 내용을 통해 독일이란 나라에서 그리고 독
일인들의 가슴에서 이 목사의 이름은 결코 잊혀질 수 없을 만큼 큰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사람은 2차대전 중 반나치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히틀러 암살을 도모
하던 중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사람이었다.
<옥중서간>은 바로 본회퍼가 당국에 체포되어 처형되기까지의 투옥시절에 그가 쓴 신앙고
백적인 편지의 모음을 그의 친구이자 제자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엮은 책이다.

본회퍼는 목사이자 신학자였다. 신학자로서 그는 그의 '비종교적 해석', '성인(成人)된 세계'
등의 개념으로 유명하고, '세속주의 신학'이라 명명되는 독자적인 신학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들은 당시 신학계의 조류를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의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본래 예술을 가까이 하고 학문의 전통과 학구적 분위기를 가진 명문가문의 배경과 신앙적
으로 훌륭한 부모밑에서 자란 이유로 어려서부터 경건의 훈련을 쌓을 수 있었고, 이른 나이
에 탁월한 학자적 재능을 나타내며 약관 20세에 튀빙겐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의 저명한 사회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의 추천으로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수학하며
명성을 쌓는 등, 학자로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 책 <옥중서간>은 그의 학문적
성과와 학자적 소양에 중심이 두어진 내용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가슴을 지닌, 유난
히도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한 청년이 단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걸어야 할 그의 길을 조
용히 걸어간 발자국의 모음이다. 이 책에 나타난 신앙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결코 성경의
어느 인물들처럼 그렇게 확고하고 견고한 믿음의 바탕위에 선, 그런 위대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작은 크리스챤의 모습에 더 가깝다. 그러한 점에서 그
의 삶은 우리들에게 더욱 감동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평범한 모습이라는
것은 그의 가슴과 섬세한 감수성, 즉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평범해 보인다는
말이지 그의 삶의 역정은 분명 용기있고 힘있는 투사의 그것이었다. 바로 본회퍼는 두려움
을 모르는 용기의 소유자였다기 보다는 두려움을 직시하며 그것을 무겁게 극복해 나간 진정
한 용기의 소유자였다.

2

이 책의 순서를 보면 그의 옥중에서의 서간에 앞서 맨 처음 '10년 후'라는 제목으로 여러 가
지 신앙과 삶에 대한 단상이라든가, 당시 상황에서 그가 그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내
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신념들이 잘 소개되어 있다. 다음으로 '양친께 드리는 편지',
'옥중보고', '어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생명의 증좌'란 제목으로 옥중에서 띄운 서간들이
내용을 잇는다.
그의 학문적 업적의 단편들, 당시 교회와 크리스챤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그가 제시하
는 올바른 모습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인간 본회퍼의 고뇌,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고자했던 그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등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은 '어떤 친구
에게 보내는 편지'의 부분이다. 그는 이 부분의 편지에서 결코 자신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종교인'이 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여러차례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한 신
학자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너무 불경스러운 모습이라는 편견을 갖게한다. 더군다나 다음과
같은 부분은 그러한 편견을 더욱 강화시킨다.

"종교적인 인간은 인간의 의식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힐 때라든가 모든 능력이 쓸데없게 될 때 신에 대해서 말하지만 본래 그러한 신은 언제나 '기계장치의 신'이며 그것을 종교적인 인간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피상적 해결을 위해서든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실패에 부딪혔을 때의 힘으로서 불러낸다. 따라서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서,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불러내는 것이다."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주가 아니라 세상의 주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기를
종교적으로 특별한 우대를 받고 있는 자로 생각하지 않고 차라리 온전히 세상에 속해 있는
자로서의 에클레시아, 곧 부름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생의 전 영역에 걸쳐서 그
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이 온전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 길
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의 비종교적(非宗敎的)해석은 기독교의 정통교리를 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기독교라는 틀 안에 가두어 버리려는 그릇된 신앙
인에 대한 경고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세상 왕되심'의 새로운 선포
라고도 말할 수 있
을 것이다.
또한 본회퍼는 지금의 세계를 '성인(成人)된 세계'로 규정하면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전파도
'성인된 세계'를 인정치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인된 세계란 인간의
제문제에 있어서 신이라는 존재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인간의 '자율성'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처리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종의 완성에 도달한 오늘날의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인데 지금의
휴머니즘에 바탕한 뉴에이지 운동이 여러분야에서 활발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인된 세계에 대항하여 신이라는 후견인이 있어야
만 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기독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리스도가 이 성인된
세계의 주인임을 선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전적으로 '세상'속
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세상의 생활속에서 고통받으며 사는
것만이 하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
아갈 수 있는 것임을 삶을 통하여 보여준 신학이라고 하겠다.

본회퍼는 세상에 대한 꿋꿋한 대결의식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크리스쳔이고자 했지만 자칫
빠지기 쉬운 낭만주의, 인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경계하는 입장
에 있었다.
(중략)

비성서적인 조류에 과감히 대응했고, 시대의 상황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조금도 비굴
함이 없었던 본회퍼도 한 인간으로서는 나약한 존재였음을 그의 편지 여러부분의 고백을 통
해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전쟁의 포화속에서 언제나 두려움에 떨었으며 옥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의 여린 인간적 면모를 감추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러한 위선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솔직했다. 그의 시 '나는 어떤 자일까?'는 이러한 그의 인간적인 내면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어떤 자일까?

나는 도대체 어떤 자일까?
...
나는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자일까?
그렇지 않으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새장속의 새와 같이 불안하게, 그리워하다 병들고,
목을 졸렸을 때와 같이 숨을 쉬려고 몸부림치고,
색채와 꽃과 새 소리를 갈구하고,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을 그리워하고
자의(恣意)와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하며 몸이 떨리고,
대사건에서의 기대에 사로잡히고,
저 멀리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다 낙심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창작하는데 지쳐서 허탈에 빠지고,
의기소침하여 모든 것에 이별을 고하려고 한다.
나는 도대체 어떤 자일까? 전자일까, 후자일까?
....
나는 도대체 어떤 자일까?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어떤 자이건,
아!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나를 아시옵니다.
나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중략)

3

본회퍼가 기독지성의 대변인으로서 그처럼 독일인들의 가슴에 깊게 각인되어 온 것은 총부
리의 위력보다도 강한 십자가 피의 능력을 그들도 여전히 부인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능력
을 역사의 눈으로 뚜렷이 목격했지만 결국 비굴할 수 밖에 없었던 그네 자신들 과거의 수치
스런 기억때문이 아닐까? 그의 사후 5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독일은 그의 양심의 구멍을
조금이나마 땜질했다고 자위할 권리를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치하 우리나라에도 순교의 삶을 살다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다. 오히려 본회퍼보
다도 더욱 치열하게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다간 인물들이 많다. 분명, 오늘날 우리들
의 존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분들의 삶이 있었
기에 가능했으리라.
본회퍼의 유언으로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한 문장만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여기 그리스도의 제자 디트리히 본회퍼 잠들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불확실하고 해체되어 버린 오늘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붙잡
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품는 우리들에게 본회퍼의 묘비문은 분명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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