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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45년을 맞이한 초파일날, 안동 산우회의 5월 정기 산행은 북한산 북서쪽 효자골에서 출발하여 알프스 능선을 넘어 만경대 측면을 휘돌아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만만찮은 코스였습니다. 진달래꽃 입에 물고 오르자는 오도광 산우회장님의 말씀대로 이번 등산은 진달래와의 만남으로 행복하였습니다. 산행 내내 연분홍 꽃 빛과 연초록 잎 색에 먼저 눈이 취하고, 영혼이 물들더니, 못내는 가슴까지 배어들어, 누르면 그대로 옷으로 스며들 것 같았습니다. 산에서 만난 진달래는 노란 개나리의 강렬함이나 빨간 영산홍의 화려함하고는 다른 우아함과 기품을 보여주었고 목련꽃잎의 흰색과 등나무 꽃 보라색이 절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색감에도 조예가 깊으신 분이시며, '튀지 말라, 겸손하라. 그것이 아름다움이니라' 색깔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오늘의 집합 장소는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이었습니다. 산행의 기대감을 고조하려면 아무래도 산이 바라보이는 들머리 입구가 적당할 텐데…. 약간의 의아함이 생겼었지요. 그러나 회장님의 깊은 뜻을 알게된 것은 출발하고서 얼마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간의 참여에 감사하는 뜻에서 준비한 예쁜 스카프를 하나씩 목에 걸고 널널한 좌석에 앉아 가벼운 마음으로 나누던 대화도 잠깐. 정류장 몇 개를 지나지 않아 버스는 만원을 넘어 급기야 기사 분의 그만 타시라는 애원과 호소가 있더니 길에는 차가 넘치고 흘러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급기야 북한산 입구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는 오히려 걸어가는 사람이 버스를 휙휙 지나쳐 갑니다. 내리지도 못하고 갑갑하고 지루한 가운데 효자 골에 내렸을 땐 심신은 파김치요, 시간은 어느 덧 11시 40분이 되고 말았답니다. 오늘 같은 날 만약 구파발 지하철역에서 만났더라면 버스에도 오르지 못할 뻔 했었을 테니, 회장님의 선경지명이 우릴 앉아 가게 해주셨던 거지요. 오늘 참여하신 분은 제일 먼저 모이신 회장님과 김동형 집사님, 김민홍-박정희 집사님을 비롯하여 시간에 맞추어 이본 장로님, 조동훈 대장님, 김용원 집사님과 강석인 집사님, 고문곤-김휴숙 집사님 부부, 이현식-오현숙 집사님 부부, 임중규 집사님과 김경호 권사님 부부와 저희 부부까지 합하니 어느덧 열여섯의 대가족이었습니다. 정규 멤버인 변창배 목사님과 송재욱 장로님, 조기현 장로님, 윤상구 장로님과 양은선 집사님 부부, 강명준 집사님과 최예순 집사님 등이 오셨더라면 스무 명이 훌쩍 넘을 뻔했습니다. 효자골 들머리에서의 산행은 곧바로 비탈길을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밟아보는 흙길의 감촉과 갓 물오른 초목의 싱그러움이 있기에 계속 발걸음을 옮기게 합니다. 만만찮은 비탈이 이어지는 길, 숨이 가빠지며 피부의 땀구멍이 활짝 열리고 노폐물이 농축된 진한 땀이 흐르게 됩니다. 苦盡甘來. 마냥 편함은 즐거움이 아니요, 적당한 수고가 있어야 오히려 즐거움이 커지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견디지 못할 시련은 주시지 않는 분임을 우리는 충분히 믿으니까요. 두어 차례 힘든 고비를 참아내고 나서, 달콤한 휴식을 위해 바윗돌이나 나무 그루터기에 대충 걸터앉으면 되지요. 숨도 돌리지 않아 여기 저기서 다양한 간식들이 소개됩니다. 김용원 집사님의 방울토마토가 친절한 아낙네 같다면, 강석인 집사님의 낑깡은 새침한 아가씨요, 이본 장로님의 초콜릿이 힘찬 에너지라면 김경호 권사님의 캔디는 산뜻한 에피타이저입니다. 남선교회의 '사랑합니다' 캠페인이 결실을 맺은 듯, 순발력이 떨어지는 분은 준비한 간식을 미쳐 꺼내놓지도 못한답니다. 드디어 조동훈 대장님이 알프스 능선이라 이름지은 명성에 걸맞은 수문벽 암릉에 올랐습니다. 뉘랄 것 없이 '아!' 감탄사와 더불어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넋을 잃습니다. 동창회 산우회 총무를 맡아 다양한 산행 경력을 갖고 계시는 임중규 집사님께서도 오늘 이 코스는 첨이라며 아름다운 조망에 경탄합니다. 모두 뿌듯한 마음을 환한 미소에 담아 카메라에 담습니다. 워낙 불끈 치솟은 바위이다 보니 촬영해 주시는 김동형 집사님을 걱정하게 됩니다. 두어 발짝만 벗어나도 수십 길 낭떠러지. 혹시나 경망스런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요. 수문벽 직벽을 거미처럼 붙어 오르는 전문 산악인들을 부러움과 위태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드디어 오늘의 최대 난코스 인수봉 뒤 계곡길을 내려갑니다. 이곳은 스틱보다 장갑이 필요한 곳입니다. 수백 권의 책을 세로로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듯한 바위 모서리를 밟고 직각으로 내려가야 하는 길,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조심조심 억지로 내려와서 보면 어이없어 웃음이 납니다. 내려온 것 이상 또 올라가야 하거든요. 맥이 풀리고 한숨이 절로 나올 만 하지만 시원한 샘터가 나타나 우리에게 힘을 주지요. 어떻게 이런 곳에? 놀라게 되지요. 물맛 또한 정수기 물이나 패트병 물하고는 상대가 안되지요. 어쩜 산삼이나 산 더덕 정기가 섞였을 듯도 싶고, 한 모금 주욱 들이키면 미네랄이 퀄퀄 넘어가는 것 같답니다. 이제 오늘의 최대 고비,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를 뚫고 넘어가는 깔딱 고개만 남았습니다. 올려다보면 훤히 뚫린 하늘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길은 짧아지지 않아 몇 번이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황재금 집사는 남편에게 배낭을 맡기는 걸 보면 꽤나 힘든가 봅니다. 등성이 하나를 넘어가는데 선두와 후미가 10여분 차이가 나더군요.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면서 이윽고 넘어온 고갯길. 스스로도 대견함을 느끼게 되지요. 고개를 조금 내려가, 아늑한 터에 점심자리를 잡았습니다. 깔판을 펴고 빙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치는데 어느덧 시간은 오후 2시 20분이니 쉴 참마다 五餠二魚의 기적 같았던 간식이 없었더라면 한참 허기가 들 늦은 점심이었지요. 이본 장로님의 기도말씀엔 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보살펴주신 사랑에 감사한 마음이 담뿍 담겼습니다. 박정희 집사님은 고추냉이 간장까지 준비해 오셔서 유부 초밥 맛에 쌈빡함을 더하시고, 김경호 권사님은 반찬마다 간이 딱 맞아서 입맛을 돋아줍니다. 저는 아예 김 권사님 자리로 옮겨 그 댁 점심을 축냈지요. 김휴숙 집사님은 찰밥에 도라지 무침으로 산뜻한 메뉴를 보이시고, 오도광회장님은 언제나 가정식으로 보온 도시락에 국까지 가져오시니 이주영 장로님의 새벽 수고가 짐작이 됩니다. 오렌지와 더불어 계절에 맞춰 참외가 디저트로 시원하고, 조동훈 대장님의 마술 바구니에선 각종 차가 등장합니다. 새것으로 바꾸셨다며 보여주신 바구니는 대나무로 만든 것과 달라 눌려도 본디대로 괜찮답니다. 모양이 예쁠 뿐 보통 바구니와 크게 다를 바 없는데 그 속에서 나오는 먹거리의 다양함이란! 아무래도 참 신기한 바구니입니다. 알프스 능선의 비경도 보았겠다, 서로 권하며 맛보는 정감 넘치는 점심도 먹었겠다, 한결 기운찬 발걸음으로 하산을 합니다. 오른 경치에 걸맞게 하산 길도 만경대 뒤 8부 능선 바위벽에 붙었습니다. 곳곳에 철 난간과 와이어가 설치되어 있기에 위험을 줄여줍니다. 이젠 위험코스를 벗어났다 했는데 방심 탓일까요, 황재금 집사가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왼쪽 히프쪽이 부풀어 올랐다하며 얼굴도 땅에 닿아 멍들까 걱정을 합니다. 비상약품 상자를 꺼내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남은 얼음을 스카프에 싸서 계속 찜질도 하였지요. 그래도 내일 아침이면 짙은 보라색으로 멍이 들 듯 싶습니다. 이십여 년 전, 설악산 등반 길에서 태풍을 만나 불어난 계곡을 자일에 의지하며 간신히 건널 때, 구르던 바윗돌에 오현숙 집사님 허벅지가 보라색으로 멍든 모습을 봤었는데 여자 분들은 멍이 들어도 색깔까지 신경쓰나 봅니다. 워낙 오르는데 에너지가 소진되어서인지 꽤나 내려왔다 싶었는데도 임중규 집사님의 고도계는 좀처럼 수치가 떨어지지 않더군요. 인내심을 발휘하며 계속 길은 줄이다보니 용암문 암문을 지나게 되고 마지막 전망 터에서 서울의 동북쪽을 작별하고 오솔길에 접어들면서 우리만의 호젓한 시간을 갖습니다. 고향산천 음식점을 끼고 내려온 우이동 길은 하산하는 등반객들과 초파일을 맞은 신도들을 실어 나르는 관광 버스 열 몇 대가 계속 오르내려 번잡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종교별로 각각 케이블 TV 채널을 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하던데 절을 찾는 분도 전국적으로 무척 많을 것입니다. 그 많은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덕목으로 사랑이나 慈悲나 仁이나 모두 선의 이데아의 극치 일진데 사회가 이렇게 혼탁해짐은 넌센스입니다. 회장님께서 매기시는 성점(★)은 너무 짜다고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오늘만 하여도 적어도 성점(★) 3개 정도는 차지해야할 정도로 강행군이었으니까요. 이 코스가 별 둘 반이면 도대체 별 4개나 5개 짜리는 어떤 데냐고 볼멘 소리도 한답니다. 북한산을 북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종주한 셈이니만큼 하산을 완료하고 나자 벌써 배가 출출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뜻이 모아져 조그만 칼국수 집을 통째로 전세 내어 들어갔습니다. 김동형 집사님께서는 댁에 손님이 오신다 하시고, 멀리 인천에서 처음으로 참여해주신 강석인 집사님은 갈 길이 먼지라 먼저 가셔야겠다고 하셔서 김용원 집사님께서 동행길에 나서는 의리를 보이십니다. 두 분다 풍채도 당당하시며 복장부터 산에 많이 다니신 솜씨더군요. 삼 대째 이어왔다는 칼국수집은 손맛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밀대로 밀고 손으로 썰어준 진짜 손칼국수는 바지락 국물의 시원함과 더불어 환상적 맛이었지요. 게다가 경로우대증 소지자에게는 500원을 깎아준다 하니 아름다운 발상입니다. 김민홍 집사님께서 후원금까지 보태시어 회비도 절약하게 되었지요. 고맙습니다. 훌륭한 맛을 낸 칼국수 한 그릇씩을 가뿐히 비워내고 집으로 향할 시간, 뿌듯한 마음을 챙겨 버스에 오릅니다. 여섯 시간이 넘게 산 속에서 보낸 오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진달래꽃을 어느 누구도 함부로 꺾어 입에 물지는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서로의 눈동자에 피어난 진달래꽃의 연분홍 빛을 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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