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191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백만송이 천만송이 억만송이 눈꽃 아래 포근한 흰 눈에 파묻혀 보낸 치악산 산행은 한 마디로 행복에 도취한 동심의 하루였습니다. 같은 눈오는 모습의 그림이라도 서양식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풍경만 그려있어 춥습니다만 우리의 동양화에는 노승이나 동승 혹은 나그네라도 그림의 주인이 되고 아니면 한칸 초가라도 자리하고 있어 사람의 내음이 나기에 따스하지요. 우리의 오늘 산행은 한 폭 동양화 같아 포근함과 따스함 정겨움이 후드득 후드득 나무가지에서 떨어진 눈송이가 어깨에 얹히듯이 새록새록 정감이 피어오르는 등산이었습니다. 아침 7시 강남 고속터미날에는 오도광 회장님과 조동훈 대장님 이본 장로님 윤상구 장로님이 벌써 도착해 있었고 오늘 정도의 만만찮은 산행에는 더 이상 참여가 늘지 않으리라 보고 원주행 고속버스 티켓 5매를 끊고 나자 송재욱 장로님이 모습을 보이시어 장로님만 해도 세분이나 되고 보니 든든한 정예 멤버였습니다. 치악산은 강원도 원주에 자리잡은 만큼 고속버스는 줄곧 동으로 떠오르는 해를 향해 달려 나가고 새벽의 어두움은 서서히 꼬리를 감추고 맙니다. 9시에 도착한 원주 터미널은 분지 지형인데다 곳곳에 군부대가 자리한 군사 도시라서인지 구룡사 행 버스를 기다리는 30분 시간이 약간 을씨년스럽더군요. 41번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 10시에 구룡사 입구 종점에서 하차하였고 부지런한 아낙네가 열어놓은 이른 가게를 들어가 따끈한 오뎅 국물과 오 회장님이 준비하신 찰 콩떡으로 기운을 보탰지요. 눈 덮인 치악산 능선과 주능선 뒤편에 가려졌던 정상을 멀리 바라보며 기대감과 두려움이 겹친 흥분된 마음으로 출발한 지 10분 여. 구룡사에선 아침 예불이 한창인지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고즈녁한 산중에 청아하게 들리고 이윽고 구룡소를 향한 비탈길이 나서자 모두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게 됩니다. 마침 송년 청계산 등반에서 선물로 준비했던 4핀짜리 원터치 아이젠들이 있기에 간편하게 쓸 수 있었지요. 계속 이어지는 눈길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뽀득'소리가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귀를 즐겁게 합니다. 어릴 적 함박눈 노래에는 눈 밟는 소리가 '뽀드득'이라고 했는데 아이젠을 끼어서인지 '뽀득'소리로 들리더군요. 눈은 길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온산을 가득 메운 나무마다 가볍게 흰 눈을 쓰고 이고 지고 덮고 입고 온통 눈잔치입니다. 산죽은 산죽대로 푸르름 속에 흰 장갑을 낀 듯 잎을 펼쳐 보이고, 쭉쭉 뻗은 훤칠한 육송은 붉은 몸통 위에 흰 바늘잎으로 파란 하늘색을 사이사이 보이고, 무슨 미련인지 색바랜 이파리를 떨구지 못한 단풍나무들도 흰눈을 그득 머금고 있습니다. 등산로 옆 비탈에는 산짐승의 자그마한 발자국도 눈에 띠는데 어쩐 연유로 이 깊은 겨울에 나들이를 했을까요? 미처 겨울 식량을 갈무리하지 못한 게으름의 추운 수고일까요, 모처럼 풀린 겨울 날씨에 들떠서 옆 친구 나무구멍이라도 찾은 걸까요. 아마도 따스한 겨울 햇살이 즐거워 잠시 마실길이라도 나온 것 같습니다. 10여년 전 종주길에서 岳山의 명성답게 하루 종일 바위돌 디디며 씨름했던 고달픈 기억이 있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치악산. 구룡사에서 오르는 코스는 짧긴 하지만 가장 가파르고 힘든 등산로입니다. 그러기에 난코스 사다리 병창을 오르면서는 잠시 걱정도 들었습니다. 칼등처럼 좁은 병창길은 오른쪽은 깊은 낭떠러지요, 왼쪽으로난 우회 등산로도 몇길은 넘는 높이를 갖고 있기에 조심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려했던 두려움은 기우가 되었습니다. 마침 철계단과 쇠난간이 설치되어 병창을 지나면서도 위험이 거의 없더군요. 북한산에 설치한 계단은 등산의 즐거움을 반감시켜 맘에 들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설치한 수고의 손길에 고마움이 들더군요. 같은 상황이라도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간사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기에 함부로 남 얘기를 해선 안될 것이라는 교훈을 여기서도 배우게됩니다. 사다리 병창을 지나고 부터는 위험은 감소되지만 계속 치고 오르는 코스입니다. 포근한 눈으로 덮여있어 모르기 십상이지만 아마도 계속 이어지는 계단길일 겁니다. 그렇기에 산행이 두어 시간 넘고 부터는 평소 운동이 부족하거나 띄엄띄엄 다닌 등산 경험정도로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도 됩니다. 어깨 넓이만큼의 눈길을 헤치고 가야하는 오늘 등반의 선두는 오도광 회장님이 서시고 조동훈 대장님이 세컨드, 중간에 윤상구 장로님 이본 장로님 송재욱 장로님 그리고 후미에 제가 따르는 순서이기에 뒤에서 뵙는 일행의 발걸음은 생생한 동영상 화면이 됩니다. 정상에 거의 다다른 마지막 피치에서는 다섯 걸음가고 가쁜 숨 몰아 쉬고, 두어 발자국 옮겼다가는 가슴을 무릎까지 구부리게 되고 그야말로 히말라야 8000미터 14좌를 모두 정복한 산악인 엄홍길의 정상 공격 필름을 눈앞에서 보는 듯 합니다. 윤상구 장로님의 내쉰 숨은 고운 가루 흰눈섭을 만들어 수염만 잘 기른다면 닥터 지바고를 연상시킬 듯하고 송재욱 장로님의 뒷머리카락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선 듯 물기에 푹 젖어있고 이본 장로님의 등산화는 땀과 눈에 젖어 양말을 갈아야 할 것입니다. 엊그제 변목사님의 말씀 중에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다이하드(die hard)' 어휘의 유래 소개가 있었는데 내용인즉 1811년 영·불 전쟁 중에 영국의 57연대의 윌리엄 경이 전사하면서도 결사 항전을 명령한 바 고무된 장병들이 결국 막강 프랑스 병력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데서 나온 말이라 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정상 공격도 칭찬받을만한 노고일진대 그렇다면 마운트 하드(mount hard)의 주인공 감이 될 듯도 싶습니다. 그래도 몸이 힘들어질수록 마음에는 뿌듯함이 채워지는 것. 출발 시 아득하게 보였던 높은 봉우리들이 차츰 안하(眼下)로 슬하(膝下)로 키를 낮추더니 결국은 足下로 내려가고 드디어 우린 정상을 밟게 됩니다. 해발 1288미터. 치악산 정상 비로봉입니다. 시간은 오후 1시 30분. 산자락에 들어선지 3시간에 걸친 눈길을 헤치며 오른 것이지요. 정상에는 치악산의 명물 10여 미터 높이의 돌탑 세 개가 있습니다. 때 마침 南中에 이른 햇살이 너무나 따사로와 따로 점심 먹을 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배낭을 열고 점심 보따리를 꺼내어 지친 몸을 위로합니다. 이본 장로님께서 감사기도 하실 때 주위의 몇 몇 산행인도 조용히 예의를 지켜주었으며 장로님은 오늘도 김밥을 펼치며 송숙연 권사님의 새벽 정성을 보여주십니다. 나머지 분들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따스함으로 속을 달랬습니다. 오 회장님은 요플레를 많이 준비해오셔 디저트로 내어 주시고 윤장로님은 배고픈 군인 세명을 위해 바게트 빵 세개를 주시더군요. 그들의 젊은 무례에 대해 '인사부터 차리고 먹을 것을 요구해도 해야지' 제가 한마디 성급한 주의를 주었지요. 역시 교사는 어디서나 교사 티를 낸다니까요. 조 대장님의 바구니에선 어김없이 식후에 즐기라고 따스한 차가 나오고 여유를 되찾아 휘둘러보는 정상에서의 조망은 가히 일품입니다. 웅장한 산세와 깊은 골이 눈 닿는데까지 펼쳐지고 온통 흰 눈으로 치장한 설경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손길에 감탄하게 하며 인공 제설기의 사이비 눈의 조잡과는 차원이 다름을 압권으로 보여줍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치악산에서의 소리는 단연 '뽀득' 눈밟는 소리와 '아!' 감탄의 소리의 연발이었습니다. 우리 6인의 감탄만 해도 백번은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동참하지 못한 산우회원들이 안타까워지면서 막연히 힘들 것이라고 겁먹고 나서지 못한 우리집 황재금 집사같은 이가 안되보이더군요. 정상의 만족을 언제까지나 즐길 수는 없는 일. 겨울산은 일몰 전에 하산을 마쳐야 되지요. 황골로의 하산 길 남서면은 흘러가는 눈구름을 고개 마루가 막아서인지 한층 더 포근한 눈이 쌓여있어 발목은 물론 종아리까지 푹푹 빠집니다. 덕분에 윤장로님의 스패치가 진가를 발휘하였지요. 스패치는 등산화를 덮고 무릎 밑까지 눈을 막아주는 다리 토시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눈덮인 산에 필요한 장비로써 가격은 비싸지 않아도 효과는 끝내주지요. 따라서 이본 장로님과 똑같은 등산화를 신고 하루종일 눈산을 걸었음에도 윤장로님의 등산화는 뽀송뽀송하고 바지 속으로 눈 한주먹 들어가지 않은 완벽을 보였습니다. 이번 겨울 산행에서는 장비의 중요성을 몸으로 확인하고 느끼게 되었으므로 송 장로님은 당장 스틱(지팽이)부터 구입해야겠다고 하시고 이 장로님도 방수 등산화가 필요하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장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의 회장님과 대장님을 비교해 볼까요. 오도광 회장님의 복장은 골덴 바지에 빨간색 안감의 모자가 달린 두툼한 청색돕바에 관록이 풍기는 옛 배낭과 흔히 볼 수 있는 겨울 산모자를 쓰셨습니다. 배낭의 앞가슴 끈에는 부엌에서 쓰는 고리달린 큰 수건을 매달고 커다란 스텐컵도 달고 다닙니다. 등산화로 얘기하자면 뒷굽은 거의 달아서 앞창과 같이 평평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래뵈도 눈밭에 하나도 안 젖었다고 자랑스러워하시며 한참 땀날 때 흔히들 모자 정도는 벗어재끼지만 산행 내내 모자 한 번 벗지 않으시는 일관성을 보여주십니다. 조동훈 대장님은 새벽에 만났을 때는 방풍용 상하의 일습의 모습이었고 산행을 시작하실 때는 땀 배출용 폴라택 기능성 모자와 의상으로 바꾸시더니 정상에서는 다시 파카를 착용하시며 체온 손실을 막는 세 번의 완벽한 복장 교체를 보이시더군요. 수더분한 오 회장님의 복장만으로서는 그 분이 KS(경기고-서울대)출신이며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능력을 가진 대 일간지 논객을 맡아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연관짓기 어려운 일입니다. 시대를 넘어 옛 일을 맡으셨다면 황희 정승과 같은 청백리 재상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여 완전을 기하는 조 대장님의 복장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흔히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최종 마무리와 완벽성을 교육시켜 줍니다. 사실 산행 중에는 귀찮아서라도 누구나 그런 부지런과 준비를 보이기는 어렵거든요. 전쟁의 와중에서도 멋과 폼으로 '미주리 호' 함정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적장을 주눅들게 하고 파이프 담뱃대를 입에 물고 위엄과 여유를 보여주었던 영웅 맥아더 장군을 떠올리게 하는 분입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장군의 연설문에 두 분다 어울리시지요. 입석대 신선대 까지의 하산도 만만찮은 행로였지만 산사를 위해 닦아놓은 비탈진 콘크리트 길을 따라 황골 매표소까지의 길도 지친 다리에는 꽤나 지루한 길입니다. 황골에 도착한 시간이 4시 30분이니까 꼬박 6시간을 산에서 보낸 셈이지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던가요. 마침 터니널 행 버스가 막 떠나버렸고 다음 차편까지는 사 오십분 기다려야 되는지라 지친 몸을 달랠 겸 아담한 음식점에 들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손수 만들었다는 두부 전골은 고춧가루도 듬뿍 넣어 얼큰한 맛을 내고 바글바글 끓고 있는 국물을 한 술 뜨자 추위와 피로가 사라지게 되더군요. 윤 장로님은 조 대장님의 요술 바구니도 없으련만 또다시 간식거리로 맛있는 소시지와 치즈를 썰어 내놓습니다. 맛도 기막히지만 소비된 스태미너를 보충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음식 궁합이었습니다. 산행의 넘치는 보람과 아름다운 설경 얘기를 반찬삼아 재미있게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지나고 버스가 도착한다는 소리에 미처 신발 끈도 매지 못하고 뛰어 달려 버스에 올랐습니다. 나이가 들었으면 어떻습니까? 이 모습이 바로 재미에 팔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 문득 엄마의 야단이 떠올라 황급히 서두르는 동심의 풍경이 아니겠는지요? 6시 30분 고속버스 표를 끊고 기다리는 중, 조 대장님이 매표소로 가시더니 15분 빨리 출발하는 우등 고속으로 표를 바꾸시더군요. 15분을 벌기 위해 2300원 씩 더 비싼 티켓이었는데 우리들의 빠른 귀가를 위해 13800원을 사비로 내셨습니다. 청계산 등반 때는 300원을 절약하기 위해 마을버스를 고집하시던 절약정신을 보이시면서도 일 이십분이라도 일찍 집에 돌아가게 하려는 가정사랑의 마음을 겸비한 멋쟁이 가장이시기도 합니다. 버스 기사분은 출발하자마자 실내등도 꺼주었기에 어두워진 바깥과 더불어 눈을 붙이기 좋았습니다. 서울까지는 연말과 퇴근시간이 겹쳐 갈 때에 비해 한 시간여가 더 걸렸지만 안락하게 등받이에 기대어 피로를 풀기에 오히려 괜찮았습니다. 눈쌓인 장엄한 설경에 감탄했던 산행. 가지에 핀 설화의 아름다움에 취했던 오늘. 가끔 건드린 가지에서 뿌려지는 눈가루에 목덜미 시원함도 맛보았고 녹다가 다시 얼어붙은 상고대의 투명함이 보석보다 예뻐 보였던 모습. 초등학교 자연책에서 봤던 눈의 결정체까지 직접 보고 만져보았던 즐거움. 좋은 날씨를 허락하시고 창조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체험케 해주신 하나님께 모두 마음 속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7호선과 3호선으로 갈라지며 귀가하는 전철 안. 유리창에 비친 등산모 아래 저에게 얘기하였습니다. '다신 치악산을 찾지 않겠다'는 말은 취소한다고. '반드시 다시 오르자'고 말해주었지요. 차창 밖의 저도 좋다고 얘기했습니다. 눈덮인 겨울 치악산을 다녀와서. 김광엽 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한글에서 작업한 내용 복사해서 붙여넣기 file 관리자 2017.09.10 1386
1962 챝스워즈의 146회 가을잔치(CHATSWORTH FALL FAIR)(1) 1 윤경남 2006.10.14 46726
1961 홈피에서 CTM성경타자통독을 성경이야기로 변경 관리자 2008.01.15 3154
1960 자유게시판의 성격과 안동사랑방 6 안동교우 2003.07.02 2864
1959 5차 기독교유적 탐방 (인천지역 2009.05.07) 1 김민수 집사 2009.05.09 2652
1958 talk( ) 보드 생성완료! admin 2007.04.29 2608
1957 안동사랑방 재개설 관리자 2001.08.11 2529
1956 5월을 찬양하며~ 권혜순 2008.05.01 2461
1955 담임목사님 청빙 과정부터 은혜롭기를 1 이종서 2007.07.18 2420
1954 다일공동체진지기도문 비암 2008.02.05 2337
1953 에디뜨 삐아프 비암 2008.11.12 2319
1952 장미향기를 맡으며~ 권혜순 2008.05.22 2312
1951 [퍼온글] 좋은 글과 기도문 file 김성훈 2007.12.26 2223
1950 8월의 유머① 2 오도광 2001.08.12 2215
1949 고민하는 교우의 글을 참담한 심정으로 읽고. 1 이용식 2007.11.08 2206
» 억만송이 눈꽃 아래 겨울 치악산 1 김광엽 2001.08.13 2191
1947 8월산행은 光復節 北漢山元曉峰+藥水庵溪谷 의 濯足! 오도광 2001.08.12 2185
1946 알프스능선에서 진달래꽃 입에 물고 김광엽 2001.08.13 2163
1945 최창해 목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1 정학재 2008.03.29 2126
1944 김구 선생이 애송하던 글(퍼온 글) 1 김용원 2008.04.07 2121
1943 성탄과 네거티브(negative)? 이 본 2007.12.24 209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99 Next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