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곳곳에서 일어나는 성폭행, 아동학대, 살인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인간성의 파멸이 수위를 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사회는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으며, 범죄자들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오늘의 본문은 예수께서 죄인을 용서하신 말씀인데, 오늘의 현실과 맞지 않는 말씀 같아 나는 이 본
문을 선택하기를 주저했다. 흉악한 범죄자들은 엄히 벌하여 도덕적 기강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용서하고 풀어 주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나 헤프지 않으신가? 은혜를 남용하시는 것 아닌가? 하지만 본문을 연구하는 동안 주님은 내게 뜻밖의 깨달음을 주셨다.
1. 멈춤(Pause): 예수께서는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신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께로 끌어 와서 말했다.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를 고발할 조건을 얻으려는 그들 앞에서 주님은 잠시 멈추시고 여인도 그들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2. 환기(Refresh): 예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신다. 그들이 다그쳐 묻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며 그들을 환기 시키셨다. 그들은 사회를 죄로 물들인 여인에게 분노하며 책임을 그에게 돌리려 했지만, 용서하신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환기 시키셨다.
3. 놓음(Release):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신다.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돌을 버리고 돌아갔을 때, 주님은 여인에게 물으셨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주여 없나이다” 주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며 놓아 주셨다.
율법적인 도덕은 비인간적이고 선택적이고 처벌 지향적이다. 그러나 은혜의 도덕은 사람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자신을 도덕적 우월자로 여기지 않고 겸손히 죄인과 함께 서며, 남을 정죄하려 하지 않고 의로운 삶으로 이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분노하며 돌을 들어 치려할 때, 주님은 우리를 멈추시며 용서의 바람으로 우리 속사람을 환기시키시고, 우리와 세상을 자유케 하신다. “내가 너를 용서했다. 내가 너를 구원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으리라” 주님은 우리와 세상의 소망이 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