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견디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아픔과 고통도 다시 살게 하는 능력을 머금고 있는 생명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랑의 위대함 앞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 비우는 사랑, 한없이 낮추고 기다리는 사랑, 결국은 내 자아를 죽이기까지 하는 그 희생적 사랑으로 사랑하면, 감히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특별한 부름입니다.
그런데 이 특별한 부름은 나의 행위와 열심 속에서 열매 맺는 사건이 아니라 복음서에 나타난 ‘탕자의 비유’처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이미 그 자리에서 서서 계속해서 그 아들을 기다리고 계신 아버지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라는 말씀으로 전합니다.
하나님은 늘 그런 식입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먼저 찾아와 주셨고, 맨 나중까지 기다려 주셨습니다. 죄 가운데 빠져 불안에 떨며 나무 뒤에 숨은 아담에게도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며 먼저 다가오셨지요? 그리고 오늘 아담 된 우리에게까지, 지금도 하나님의 얼굴빛을 피해 내 욕망의 그늘 아래 거하고자 하는 나에게까지 오시어 “그쟈” 하시며 그 고통 속에 함께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이미 오셔서 먼저 시작하시고, 기다리는 그 분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 앞으로 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나로부터 해방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라는 감옥 안에서, 욕심과 욕망에 붙들려, 분노와 원망을 벗삼아 살던 그 자리에서 벗어나 친구 된 예수와 더불어, 다른 이를 향해 사랑의 문을 열수 있게 됩니다. 그 열림과 만남의 역사가 바로 성도가 걸어야 할 구원의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