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제글모음
2009.04.22 17:04

[김창제 글모음 70] 大觀小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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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年> 1928년 9월

 

 


 

大觀小觀

 

 

病床側閑話

 

 

 

▸成功과 失敗 - 人은 自己의 計劃대로 - 豫定대로 일이 되면 此를 成功이라 하고 그대로 되지 아니하고 다른 方向으로 나아가게 되면 失敗라 한다. 그러나 時間을 좀 길게 잡고 보면 天下萬事가 다 塞翁馬得失이다. 何者가 果然 成功이며 何者가 果然 失敗인지

 

 

 

▸苦痛과 快樂 - 苦痛을 避하고 快樂을 求함은 人의 常情이다. 飢者가 食을 求하고 寒者가 煖을 求하고 署烈에 淸凉을 求하고 疾病에 快癒를 求하고 桎梏에 解放을 求함은 다 苦痛을 避하고 快樂을 求함이다. 그러나 飢渴의 苦를 不知하는 者는 飮食의 快樂을 不知하고 寒苦를 不知하는 者는 溫暖의 快味를 不知하고 暑苦를 不知하는 者는 淸凉를 不知하고 病苦를 不知하는 者는 健康의 快樂을 不知하고 桎梏의 苦를 不知하는 者는 自由의 快樂을 不知한다. 그런대 人은 엇지하야 前者를 避하고 後者를 取코자 하는가 이는 無他라 時間의 錯覺으로써이다. 苦痛의 時間은 항상 긴 줄로 알고 快樂의 時間은 항상 짧은 줄로 알음 이다. 人에 苦樂이 잇슴은 水에 波가 잇슴과 갓다. 波山이 잇스면 波谷이 잇다. 波山이 高하면 波谷이 반듯이 低한 것이다. 高에 處할 時에 低가 잇슴을 思하고 低에 處할 時에도 高가 잇슴을 思하라. 苦에서 樂을 求하고 樂에서 苦를 알어야 비로소 人生을 語할 것이다.

 

 

 

▸平凡과 偉大 - 사람은 平凡을 忌하고 偉大를 好한다. 그러나 偉大는 平凡에서 出하고 平凡은 偉大의 集合인줄을 不知하는가 自古로 偉大한 人物이란 者는 다平日에 凡事에 放過치 아니하고 積勤하고 勉勵한 人들이다. 그리고 또 無數한 平凡한 人들 中에서 一, 二箇의 偉人을 産出하는 것이다. 희말나야 山은 一 撮土 一巨石의 集合한 것인 줄 誰던지 皆知할 것이나 희말나야 山이라도 多數가 集合하면 도로척 平凡하여질 것이다. 草葺平家만 잇는 處에서는 二層瓦屋만이라도 偉大하다 하겟지마는 五六十層洋屋이 櫛比한 處에서는 二三層의 高廈巨樓라도 矮小를 不免할 것이다. 我地球에 對하야는 太陽처럼 偉大한 天體가 업지마는 人은 다 尋常視 하나니 이는 常見하는 까닭이오 極光이란 것은 何等의 力을 與치 못하는 것이지마는 人이 初見할 時에는 아주 偉大한 感을 가지게 됨은 亦是 罕見하는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슴하시기를 汝等은 人에게 보이랴고 人의 前에서 善을 行치말나 하섯다. 이와 同樣으로 억지로 人에게 보이지 아니하랴고 함도 또한 不可하다. 何故오하면 이 人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善을 行한다는 것이야말로 偉大한 것이니까. 다시 말하면 故意로 人에게 보이랴고 할 것도 아닌 同時에 固意로 人에게 보이지 아니하랴고 애쓸 것도 아니다. 거저 自然的으로 平凡하게 할 것이다. 억지로 平凡을 假裝치아니하는 平凡 억지로 偉大를 表現치 아니하는 偉大 이것이야 말로 自然的 平凡 곳 自然的 偉大이다.

 

 

 

▸豫想과 現實 - 凡事가 豫想과 現實이 꼭 一致하는 것은 假令 學生으로 試驗問題를 對할 時에 豫想 以上으로 難問題도 잇고 또는 容易한 수도 잇스며 探勝할 時에도 豫想 以上의 名勝도 잇고 豫期와 反하야 可觀할 바 업는 수도 잇다. 人을 對할 時에도 亦是 그러하다. 그런대 人生의 苦痛과 幸福이란 것은 흔히 豫想과 現實의 一致치 아니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豫想치 아니하던 災難이 時시에 더욱 苦痛을 感하고 豫想치 아니하던 好運이 이을 때에 더욱 幸福을 感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反對로 豫期하던 幸福이 오지 아니할 時에 苦痛을 豫想하던 不幸이 오지 아니할 時에 快樂을 感하는 것이다. 밋엇던 愛人을 失할 時의 苦痛과 豫想하던 仇敵이 거할 時의 快樂은 到底히 形言할 수 업는 것이다. 대테 未來事의 十中八九는 우리 豫想과 不合하는 것이니까 當初에 來頭事에 對하야 그처럼 幸福을 豫期치도 말고 그처럼 不幸을 豫想치도 말 것이다. 西洋에 이러한 笑話가 잇다한다. 一人이 三層 屋上에서 落下하는대 二層에서 보던 人이 大驚呌號한 즉 그 落下하던 人은 「여보 놀나지 마시오 나는 아직 二層에 잇소 」라고 말하였다. 엇던 哲人이 말하기를 「勇者는 한 번 밧게 죽지 아니하나 㥘者는 여러번 죽는다」고 함과 가티 吾人은 아직 오지 아니한 困難을 걱정하는 고통이 苦痛의 半數以上을 占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新郞이 잇슬 때에 깃버하라 新郞이 갈 때에 슯어할 것이라」 하셨다. 某友人에게 이러한 實話를 들엇다. 어느 座中에서 初面의 一老人을 맛낫는대 그이를 紹介하는 이가 말하기를 이 老人의 春秋가 얼마나 되여 보이느냐고 問하엿다. 그래서 某友人은 答하기를 한 七十歲쯤 되여 보인다고 하얏다. 그런대 其實은 三十五才? 인가 밧게 아니된 靑年이라 한다. 그러면 어찌 저러케 毛髮이 세고 容貌가 衰老하여 보이느냐고 反問하니 그이는 아홉 번 죽엇다 살엇다고 한다. 舊韓國時代 東學軍 捕殺하던 통에 그이는 東學軍으로 몰녀서 某邑에 獄囚을 當하고 死刑宣告를 밧엇다. 그런대 當時 郡守는 到任이 밧부게 같니는 판이엿다. 死刑宣告한 郡守 가 갈녀가고 新郡守가 到任한 즉 再次 死刑宣告를 한다. 이러케 하기를 九回를 거듭하야 執行은 하지 못하고 畢竟 大赦를 밧어서 살어나야 왓다 한다. 그래서 그이는 아홉 번이나 죽는 바람에 그러케 白髮老人이 되엿다 함니다. 이와 反對로 苦痛도 常習이 되면 도리혀 尋常히 되는 수도 잇다. 或者는 項鎖(큰칼 쓰는 것)을 하고 十年을 獄中生活하다가 解放된 后에는 項鎖가 업시는 坐臥起居를 任意로 하지 못하엿다. 이와 가티 豫期하는 苦痛보다 實際 當하고 보면 쉬옵은 것이오 快樂도 豫期하든 것보다 實地로는 別로 神奇한 맛이 업는 것이다.

 

 

 

▸아이쓰크림과 說敎 - 나는 暑中休暇를 病者 看護에 거의 보내고 잇다. 그러나 이것도 種種의 敎訓과 趣味가 잇다. 그 中의 하나를 말하면 卽 아이쓰크림과 說敎란 것이다. 病者에게 每日 三次式 鷄卵二個式과 牛乳一甁式을 준다. 그런대 이 病者는 都是 牛乳와 鷄卵은 嘔逆이 나서 먹을 수가 업다 한다. 그런대 病者를 爲하야 每日 一次式 아이쓰크림을 맨들어준다. 이것만은 잘 먹는다. 아이쓰크림은 무엇으로 맨든 것인가. 亦是 牛乳와 鷄卵이 主成分이다. 다만 氷과 香料의 淸凉味를 加하기 때문에 病者는 口味를 부치는 것이다. 그리하야 病者에게 滋養分이 되는 牛乳와 鷄卵을 그대로 먹이는 것보다 아이쓰크림을 맨들어주면 그 目的을 澾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病床 엽혜서 破寂으로 讀書를 좀 하엿다. 그 中에 어거스틴의 懺悔錄을 읽는대 氏의 小傳을 본 즉 氏는 學生時代에 雄辯術과 修辭學을 工夫하엿다. 그러나 氏는 後日 基督敎에 入하야 聖者가 되엿슬 時에는 靑年時代의 野心과 虛榮의 生活을 全部 拒否하엿다. 그러나 그 無用이라고 拒否한 雄辯術과 修辭學은 도리혀 基督敎傳道- 說敎에 效益이 잇섯다. 이곳 世上의 病者들이 自己의 靈의 滋養分이 될 基督敎의 眞理는 듯기 슬혀 하지마는 그 雄辯과 修辭의 美에 醉하야 그의 說하는 眞理를 納得한 것이다. 今日 우리 宗敎界에서도 牛乳와 鷄卵이 滋養分 잇다고 억지로 口味업는 病者에게 그대로 먹이랴는 醫師를 만히 본다. 아이쓰크림을 좀 맨들어 먹여라. 그러나 잘못 맨들면 牛乳와 鷄卵만 바리고 범벅도 못된다. 說敎뿐 아니다. 演劇, 小說, 詩歌. 音樂 등을 다 아이쓰크림으로 用하면 吾人에 有效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眞理의 營養物을 與호대 演劇이나 小說- 等의 옷을 입혀서 주면 잘밧을 것이다. 眞善美를 統合하야 供給하면 人에게 入하기 易하고 消化도 잘될 것이다. 政治에나 敎育에나 精神的 事業에다 아이쓰크림의 方式을 採用하면 各種難問題를 容易하게 解決 할 것이다. 먹기 실흔 牛乳와 鷄卵을 그대로 먹이랴니까 都是 먹지를 아니한다. 스트라익이나고 運動이 이러난다.

 

 

 

(一九二八, 九­ 十一 世富蘭偲病院 一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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