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제글모음
2009.04.13 13:10

[김창제 글모음 49] 東遊雜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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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年> 1927년 7월
 

나는 今春 꼭 十週年만에 玄海灘을 건너 視察旅行으로 二十二日 동안 十數處를 歷訪하였다. 眞所謂 走馬看山으로 社會 內面을 觀察할 暇隙이 없었음은 一大 遺憾이다. 南으로 福崗을 爲始하여 北에 仙臺까지 大小都會와 名所古蹟이라는 것은 대강 보았다. 紀行文이나 印象記 같은 것을 좀 써보려고도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리 할 必要도 없고 時間도 不許하였다. 그러함으로 畢竟 「雜感」이라는 題目 下에서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를 쓰고자 한다. 이것이 도리어 自由스러운 때문이다. 우선 大阪에서 본 것을 말하면 十年 前보다 自動車와 朝鮮人이 增加한 것이다. 이 自動車와 朝鮮人이 무슨 關係가 있으며 因緣이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自動車와 朝鮮人은 거진 같은 數字로 늘어가는 것이다. 自動車는 五萬臺를 突破하고 朝鮮人도 五萬名 以上이라 한다. 여기에서도 現代社會相을 볼 수가 있다. 資本主義 下의 都市 發展, 卽 一面으로 富力이 集中하는 同時에 他面에는 勞働者의 來集이다. 大阪의 人口가 지금 二百萬을 突破하여 日本의 第一 都市―東洋一의 都會가 된 것은 勿論 商工業의 發展이다. 다시 말하면 資本과 勞働의 集中이다. 一方으로 金錢萬能의 驕奢를 자랑하는 同時에, 反面에는 無産大衆의 慘狀을 日增한다. 分刻을 쉬지 않고 쌩쌩 거리고 달아나는 자동차! 그리고 저 朝鮮人의 宿泊所, 그 慘憺한 生活! 아, 이것이 무슨 對照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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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에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바락크式의 新建家屋들이다. 市民들의 言語 動作은 데카당(퇴폐적)의 氣味가 濃厚하게 보인다. 倦怠와 疲勞의 氣色이 現出한 듯하다. 外觀上으로는 벌써 復興이 된 듯하나, 有心히 보면 處處에서 大震災의 慘狀을 想像할 수 있다. 物質로 뿐 아니라 精神的으로도 그러한 듯하다. 東京人의 言動에는 重厚 眞率의 味를 찾을 수가 없는 듯하다. 이는 나의 色眼鏡인지 不知하나― 아래 日誌 中의 一部를 抄錄한다.

四月 三日(日曜), 晴, 五時 起床, 七時 半 出發하여 東京 市內를 觀覽하기로 한다. 宮城 周圍를 돌아서 二重橋를 通過하여 丸之內 빌딩 前으로 日比谷 公園을 暫見하고 明治神宮을 參觀한 後, 이에 獎學部(前 日留學生 監督部) 主事 服部暢氏의 請待로 團員 一同이 午餐會에 參하다. 主賓이 相對하여 種種의 談話가 있었다. 氏는 朝鮮에도 多年 來留하여 朝鮮 事情에 慣熟한 모양이다. 氏는 말하되, 󰡔朝鮮人 學生으로 苦學하려고 東京에 來하는 者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만 두기를 바란다. 生活의 資料를 얻기도 到底히 될 수 없는데, 奚暇에 勉學할 수가 있는가. 此等 靑年은 空然히 苦學生이라는 이름 아래서 若干의 所持金을 浪費하고 苦生만 할뿐이오, 아무 所得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惡化 墜落生이 되기가 十常八九이라 한다. 그런즉 東京에 와서는 到底히 苦學은 할 수 없는 形便을 잘 알도록 傳佈하여 달라󰡕고 하였다. 話頭는 다시 震災에 들어갔다. 大震災 以後 不數年에 거진 復興이 된 것처럼 보이지마는 이것은 다만 外觀 뿐이라. 五日 京兆로 만들어놓은 市街는 얼마 되지 못하여 그 醜惡한 眞狀이 暴露된다. 이것도 日本 國民性을 나타낸다. 二十年 以內에는 到底히 復舊할 수 없을 듯하다고 忠直하게 赤裸裸하게 말하여 주는 氏의 人格에 對하여 가만히 敬意를 가지었다. 이에 上野公園에 往하여 帝室博物館을 觀覽하고 公園 前에서 自動車를 驅하여 深川區 被服廠跡을 往訪하니 此處는 震災 當時에 五萬餘名이 燒死한 地이다. 此地에는 大正十二年 九月 一日 大震災의 死亡者를 爲하여 大記念堂을 建築하기로 豫定하였다 하는데 그 悽慘한 光景이 眼前에 彷彿하다. 여기서 芝公園을 通過하여 麵町區―우리 旅舍에 歸來하니 今日은 處處에 震災의 慘狀을 發見하였다. 市上에 往來하는 人에도 活氣를 가지고 도리어 失神의 色이 보이는 듯하다. 飯을 催食한 後 七時 頃에 出門하여 市外 柏木 919番地 內村鑑三氏를 訪問하였다. 그 門前에 到하니 最初로 나의 視線을 引하는 것은 「演說, 論文, 政治, 社會活動 等을 一切 謝絶함. 內村鑑三」이라고 쓴 紙片이 門楣에부터 있는 것이다. 刺를 通하니 居無何에 先生의 壯大한 體軀가 出現한다. 一見에 白髮紅顔은 벌써 十年 前의 先生은 아니다. 钁鑠은 少壯을 凌駕할 듯하나, 人間公道에는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寒喧을 略叙한 後, 基督敎와 現代問題에 對하여 談話가 漸漸 佳境에 入하였다. 先生은 말하데 「우리 日本人(先生은 늘 잇본진이라고 發音한다) 中에는 참 크리스천이 없다. 朝鮮人 中에는 참 크리스천이 많이 있는 줄 안다고 稱讚하였다. 그리고 漢學者 中에 도리어 篤信者가 많다. 그러나 現代 西洋學을 배운 者는 거의 不信者 僞基督人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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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愛國心을 力說하고 增年 市內 某處에서 日曜마다 說敎講演을 行하였는데, 一日은 「保羅의 愛國心」이라는 題로 講演하는데 多數한 靑年은 다 睡魔에 잡혀 끄덕거리고 앉았는데 前面 聽衆 中에 拳을 固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始終 謹聽하는 五六人의 靑年이 있었다. 其後에 알아본 즉 이들은 다 朝鮮學生이 였다고. 참 크리스천은 愛國者요, 참 愛國者는 自然히 크리스천이 될 것이다.

今日 物質文明의 惡風潮를 防禦하려면 朝鮮의 眞 크리스천이 일어나서 東洋의 眞 基督敎를 세워야 하겠다. 그리고 朝鮮에 來訪할 意向을 問하니 先生은 이렇게 答한다. 「朝鮮에 나아가서 一二次 講演을 한다 할지라도 別로 效力이 없고, 도리어 誤解만 생길 것이다. 그리고 一時 感動은 준다 할지라도 永久的이 아니다. 차라리 「聖書之硏究」를 通하여 傳하는 것이 效益이 莫大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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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災에 關한 先生의 所感은 이러하다. 󰡔大震災로 因하여 生한 損失은 物質的 뿐 아니라 精神的 墮落도 多大하다. 사람들이 좀 警省할 듯도 하건마는 都是 一樣이다. 참 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이야󰡕 이렇게 談話하는 中에 時間은 벌써 一時間 餘를 過하였다. 나는 日本人을 많이 接觸치 못하여서 斷言할 수는 없으나, 저렇듯 澆薄한 中에도 如此한 眞人이 있음은 亦是 武士道의 遺風이라 할까 基督의 異蹟이라 할까? 昨日에 富士山을 보고 今日에 內村氏와 말함은 可謂 兩絶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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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舘에 歸來하여 李商在 先生의 訃音을 轉聞하였다. 아! 先生은 畢竟 가셨다. 東渡하기 直前에 先生을 그 病席으로 往拜하였더니 「이것도 慾心이지마는 우리 鴻稙이 卒業이나 하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네」 하면서 平生에 十數次 變喪을 當하고도 一滴의 淚를 보이지 아니하던 翁으로서 그 瘦瘠한 兩頰에 流淚가 滂沱하였다. 「가서 잘 보고 오게. 나는 아마 다시 못보겠네」 하시든 聲音과 顔色이 歷歷히 回想된다. 老人의 病患이란 意外에 長延하는 수도 있기에 歸國하여 다시 한번 拜顔할까 바랐더니, 아! 그 「잘 보고 오게」 하던 한 말씀이 永訣의 紀念이 될 줄을 누가 뜻하였으리요. 더구나 今日 그 葬儀에도 參會치 못하게 됨은 一生의 痛恨이로구나. 余는 先生에게 親炙한지 二十年間에 實로 받은 바 힘이 莫大하다. 師가 되실 뿐 아니라 友가 되셨다. 阿世를 不知하는 余로서는 더욱 先生을 敬愛하였다. 邊幅을 不飾하며 小節을 不拘하고 高潔하고 䟽脫하여 志士의 氣槪다. 平民的 風度가 兼備하였다. 高談峻論과 諧謔諷刺는 항상 人을 悅服케 하였다. 先生은 信仰은 基督敎이지마는 儒敎思想이 根柢이었고 어디까지 漢學式이오 西學式은 아니었다. 先生은 舊朝鮮 아니 東洋的 人物의 好典型이었다. 先生은 靑年의 友요, 民衆의 友이었다. 先生은 學者도 아니오, 宗敎家도 아니오, 政治家도 아니었다. 그러나 各 方面에 다 交涉이 있었다. 그러므로 或者는 先生을 春風生員님이라고 冷評하기도 하였지마는 其實 이 春風 속에 先生의 價値가 있었다. 今日 朝鮮人으로서 처음 되는 社會葬이라는 것도 亦是 이 春風 속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일찍 先生에게 拜聞한 語를 回憶한다. 「나는 今日 朝鮮社會에 對하여 三大 武器를 가지었다. 一은 大官을 曾經한 것. 二, 京城에 居住하는 것. 三, 年老한 것이다」 하였다. 이 말씀은 얼마쯤 諧謔도 있다 하겠지마는 이것이 어찌 朝鮮의 人情風俗을 描出함이 아니랴. 一, 官尊民卑, 二, 都鄙의 差別, 三, 重老輕少의 風이 是다. 先生은 家庭의 人으로서는 極히 多舛하다 하겠지마는 社會의 人으로서는 오히려 多幸하다 할 것이다. 今日 先生의 葬儀가 國葬 以上의 盛儀를 이루었다하니 勿論 先生의 德에도 있다 하겠지마는 上述한 三大 武器에도 歸因할 바 不無하도다. 그리고 社會 人心에 一種의 刺戟을 준 것도 否認치 못할 것이다. 昨年 因山 時 光景을 回想하지 아니치 못하겠다. 아! 갔도다. 舊 朝鮮의 人物 李相在翁은 갔도다. 社會를 爲하여 더욱 寂寞을 느끼겠다. 新 朝鮮의 新人物은 아직 나아오지 아니하는가? 嗚呼痛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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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다시 本題에 돌아간다. 나는 日本 都市의 發展과 山水의 美에 對하여 二大 歷史的 背景을 發見하였다. 一은 幕府時代―封建制度의 遺物, 一은 地震 噴火의 生成이다. 보라, 大阪 東京이 다 豊臣 德川時代의 遺物이 아니며, 福岡, 廣島, 神戶, 名古屋, 仙臺 等이 다 封建時代의 大藩主의 城이다. 卽 各各 一 國都를 形成한 것이다. 福岡은 黑田長政이 筑前 五十二萬石의 主로 築城한 舊基오, 廣島는 淺野長晟氏의 四十二萬六千石의 主로 築城한 舊基오, 神戶는 本多氏의 藩, 名古屋은 德川家康氏가 第九子 義直卿을 封하여 준 城이다. 저 有名한 天守閣上의 金鯱는 其 價格이 實로 一百五十萬圓에 上한다 한다. 當年의 豪雄을 말하는 것이다. 仙臺는 伊達正宗氏의 二十八萬石의 城이다. 明治維新 大政奉還의 當時, 封土 返上한 諸藩이 實로 二百七十六箇所의 多數이었다. 今日 日本의 大小都市는 다 藩主의 古城이다. 廢藩置縣하던 當時에 二三의 藩을 合하여 一縣을 作하고, 어떤 縣에는 從來의 藩主를 知事로 仍任케 하기로 하였다. 至今에 有名한 城樓 殿閣은 擧皆 幕府와 諸藩의 遺物이다. 二百七十餘藩 中의 藩主로서 尙今 生存한 者는 廣島 淺野長勳氏(淺野長晟氏의 十二代孫) 一人이니, 今年 八十三歲의 老侯爵으로 廣島의 本殿인 泉邸에 住한다 한다. 이리하여 大小의 都市는 形成되고 發展되어 온 것이다.

其次 山水의 美로 말하면, 富士山이 一夜之間에 噴火로 生成한 것이며, 近江(琵琶湖)이 一夜에 陷沒 地震으로 生成한 것이다. 日本 三景 中에 第一이라 자랑하는 松島로 말하면 距今 略 千年 前에 生成한 것이다. 三代 實錄의 淸和天皇 貞觀 十一年 五月의 條에 「陸奧國地大震動, 流光如晝. 隱暎頃之, 人民呌號, 伏不能起. 或屋什壓死, 或地裂埋殪. 馬牛駭奔或相昇踏. 地郭倉庫, 門櫓墻壁, 不知其數. 海口哮吼, 聲似雷霆. 驚濤通湖沂洄. 漲長忽至城下去海數千百里, 浩浩不辨其涯涘. 原野道路, 忽爲滄溟, 乘船不遑, 登山難及, 溺死者千計, 資産苗稼, 殆無子遺焉」이라 云함을 보면 年前 關東大震災 以上의 慘禍이었던 것은 推知키 不難하다. 實로 今日 松島의 成因은 이러한 慘禍의 遺物이다. 저 有名한 日光의 中禪寺湖는 卽 火口原湖에 不過한 것이다. 由是觀之면 이야말로 惡因緣에 好結果라 할는지 何如튼 日本 山水의 美라는 것은 實로 地震 噴火의 遺物이다. 地理와 人文은 不可離할 關係가 있나니 日本의 國民性에까지 地震 噴火의 影響을 볼 수 있다. 乃至 科學에도 地震學이 가장 發達되었다. 이러므로 日本이라면 의례히 地震을 聯想하게된다. 地震 噴火 같은 災禍도 노상 咀呪할 것은 아닌 同時에 自然美니 國民性이니 하는 것도 그 原因을 생각하면 그다지 고마울 것 없는 것이다. 要컨대 日本의 自然과 人情은 다 急性的이다. 日本의 近代文化를 보아도 急性的이다. 그만큼 또한 永久性이 적다. 이와 反對로 朝鮮은 慢性的이다. 그러나 地震 噴火 없는 것만은 고마운 것이다.

(一九二七年 七月 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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