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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7 18:34

[김창제 글모음 25] 社會主義와 基督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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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生命

1923. 9.


 

社會主義와 基督敎

弦齋 金 昶 濟

×          ×          ×         ×

以上에 社會主義의 大畧을 述하였다. 그러나 그 學的原理를 知코자 하면 不可不 마르크스에 就하여 學할 것이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一八一八年 五月 五日(火曜)에 獨逸 라인州 트리브츠市에서 生하니 其父는 猶太人 法律家로서 또한 自由思想家러라. 其子의 才能을 愛하여 一面으로 絶好의 親友요, 一面으로 最良의 敎師이었다. 幼少時부터 宗敎上 歷史上의 諸 問題를 丁寧히 解說 敎示하였다. 後年 마르크스로 하여금 哲學을 學하는 要求를 起케 한 者는 全혀 其父의 力이라 하여도 過言이 아니로다.

마르크스는 伯林大學을 卒業한 后, 라인新聞의 主筆이 되니 時年이 겨우 二十四歲러라. 그러나 同 新聞은 여러 가지 迫害 壓制로 因하여 畢竟 그 發行을 禁止하게 되었다. 이 不世出의 天才를 가진 靑年 마르크스는 이에 不平 不滿의 人, 不遇의 人이 되었다.

이에 氏는 巴里로 가서 社會主義者와 無政府主義者와 交際하여 新思想을 품었다. 여기서도 또한 放逐을 當하였다. 이에 白耳義의 브루셀에 가서 經濟學의 硏究를 하다가 다시 런던으로 가서 讀書도 하며 한편으로 工業都市를 視察하였다. 其時 資本家의 橫暴야말로 非常하였다. 不平 不滿의 마르크스는 勞働者의 窮狀을 보고 견디지 못하였다. 其處에서 各 方面으로부터 材料를 募集하여 舊著 「經濟學 批判」을 增訂하여 「資本論」이라는 더 有名한 마르크스 學說――社會主義의 科學的 根據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 學說의 要点을 示컨데 一, 唯物史觀. 二, 階級鬪爭說. 三, 剩餘價値說이다.

一, 唯物史觀

마르크스 以前의 社會主義는 空想的 社會主義라고 稱하였다. 그 社會主義는 人의 經濟生活을 專혀 倫理的 立脚地에서 말한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出하여 進化論的으로 人의 經濟生活을 說明하였다. 마치 다윈이 生物 進化의 現象을 進化論으로써 說明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人의 經濟生活을 說明하대 進化論을 適用한 것이다. 氏는 人의 經濟生活의 進化 發展이라는 것을 매우 重要視하고, 此를 歷史的으로 考察하였다. 그래서 人의 經濟生活을 倫理的으로 보지 않고 經濟的으로 보았다. 此가 곧 마르크스를 經濟的 理論의 다윈이라고 稱하는 所以라. 此가 氏의 社會主義 發展史上의 占한 位置이다. 마르크스 學說을 一日社會主義라고 하는 것이다.

氏는 唯物論의 基礎에서 人의 經濟生活의 歷史的 發展을 見하였다. 저 資本論의 前身 「經濟學 批判」 序文에 物質的 生活의 生産方法은 生活의 社會的, 政治的 及 精神的 道程의 一般性을 規定한다. 人의 生存을 規定하는 者는 그 意識이 아니라 도리어 그 社會的 生存이 더 意識을 規定한다고 言한 것만 보아도 氏의 唯物史觀의 精神을 捕捉할 수가 있다. 詳言하면 人의 物質的 生活의 生産方法, 卽 衣食住에 必要한 物質을 作하는 方法은. 그 社會的 政治的 及 精神生活의 一般性을 左右한다. 人의 生存을 支配하는 者는 그 心이 아니라 도리어 人의 營하는 社會的 生存이 그 心을 支配한다 함이라. 다시 約言하면 人의 精神生活은 物質的 生活로써 支配되고, 또 그 社會生活이 人의 心을 支配한다 함이니 此가 唯物史觀의 眞髓라 할 것이다.

그래서 古今의 歷史에 事例를 求하여 그 理論을 證明하였다. 먼저 古代 希臘을 見하면 國民은 自由民과 奴隸의 二種으로 成立되었다. 此 奴隸가 그 主人, 卽 自由民의 衣食住의 事를 擔任한 故로 自由民은 政治․學問․藝術․法律 等의 側에 專心 注意하기 때문에 燦然한 希臘의 文化가 生한 것이다. 이 希臘의 文化가 後의 歐羅巴의 文化의 源이 된 것이다. 이 希臘의 文化는 何者가 主動力이 되었는가 하면 奴隸이다. 其次에 中世의 人民은 三種이 있으니 其一은 封建時代의 諸侯, 其二는 基督敎가 羅馬의 國敎된 後의 僧侶(敎職), 其三은 農奴라. (農奴라는 것은 希臘의 奴隸보다는 조금 自由를 얻어 農業에 從事하는 奴隸라) 諸侯가 俗界를 支配하고 僧侶가 靈界를 支配할 수 있음은 農奴가 있어서 彼等의 衣食住의 事를 擔任한 까닭이라 한다. 卽 農奴가 있기 때문에 中世의 上流階級은 政治界에 心靈界에 各各 任務를 盡하여 中世의 文化가 興起하였다 함이다. 第三 近世의 人民은 資本家와 勞働者로 成立되었다. 卽 資本家는 工場을 차지하고 勞働者를 使役하여 生産을 한다. 資本家의 抱한 資本은 대개 勞働者의 作한 것이라 함이니 此가 唯物史觀의 大畧이다.

二, 階級鬪爭說

이렇게 人生은 物質生活의 歷史라, 卽 勢力競爭――階級鬪爭의 歷史라. 自由民과 奴隸. 貴族과 平民, 地主와 農夫, 資本主義와 勞働者, 約言하면 壓制者와 被壓制者――是等은 古來 서로 反目하여 或은 隱然, 或은 公然 不斷의 鬪爭을 繼續하여 왔다. 그래서 何時든지 全 社會의 革命的 變革으로써 하든지 或은 相爭하는 兩 階級의 共倒로써 其局을 結하였다…… 今日까지의 政治나 宗敎는 資本家 階級이 勞働者 階級을 壓迫하고 統禦하려는 手段이라. 多數 民衆은 少數 資本家로 말미암아 全然 束縛되고 抑壓되었다.

三, 剩餘價値說

저 有名한 「資本論」은 「價値」라는 議論으로부터 始作하였다.……物의 價値에 二가 있으니, 卽 使用價値와 交換價値라. 使用價値라는 것은 人이 生活에 使用함으로부터 意味가 生來하는 效用을 云함이니, 人이 使用치 아니하면 價値가 없는 것이다. 例컨대 空氣․日光․熱․水의 價値 같은 것이오. 交換價値라는 것은 甲과 乙이 物을 交換하여 비로소 意味가 生來하는 效用이다. 가령 我의 有한 貨幣는 저 店頭에 陳列한 物品과 交換하고야 비로소 生하는 것이다. 交換이라는 節次의 下에 此를 所有할 意義를 生하는 效用이 交換價値다. 그런데 交換價値의 源은 何오 하면 勞働이다. 元來 勞働은 近世産業 中에 너무 緊切한 職務를 가지고 있다. 何故오 하면 資本을 만드는 것은 一曰 勞働임이다. 이제 勞働이 資本을 만드는 道程을 見하건대, 企業主가 幾許의 財를 가지고 機械와 原料를 求하여 勞働者로 하여금 此에 加工케 하여 貨物이 된다. 此 貨物의 價値를 定함에 賃金(勞働者에게 與하는 金額)과 生産費(原料나 機械를 買하는 金額)에 χ를 加한 것이다. 此 χ를 剩餘價値라고 云한다. 貨物의 價値에서 賃金 生産費 等을 除去한 殘餘라. 其次에 最初의 財物에 此 剩餘價値를 加하여 以前과 같은 生産을 한즉, 또 一定한 剩餘價値가 生한다.

幾度든지 이렇게 곱나든즉, 이에 多額의 財貨가 生하나니 이것이 곧 資本이다. 資本은 剩餘價値를 蓄積한 者라. 이런 故로 近世의 生産에 勞働이란 것은 非常히 重要한 者라. 古代에는 奴隸, 中世에는 農奴가 大要緊하였던 것처럼 近世에는 勞働者가 緊切하다. 마르크스의 同志에 엥겔스라는 人이 有하니 同是 社會主義者라. 마르크스의 唯物史觀과 資本論을 讀하고 크게 感服하여 社會主義는 마르크스에 至하여 科學的이 되었다고 嘆賞하였다. 그래서 마르크스學은 一曰 科學的 社會主義라고 하는 것이다.

勞働者는 一日 六時間 勞働을 하면 自己와 家族을 扶支할 수 있다. 꼭 六時間은 勞働을 하여야 된다. 故로 此 時間의 勞働을 必要勞働이라 하였다. 그런데 當時 勞働者는 事實 十二時間을 勞働하였다. 그러면 十二時間의 勞働이 다 報酬를 받은 것이냐 하면 不然하다. 其實 報酬를 받는 것은 겨우 六時間分이다. 其餘 六時間의 勞働은 報酬 받지 못하는가의 것이다. 이 勞働을 不拂勞働이라고 稱한다. 前述의 剩餘價値를 生하는 勞働은 卽 此 不拂勞働이다. 이런 故로 資本은 企業主가 勞働者에게 掠奪한 者라고 云하는 것이다. (或은 搾取라고도 함) 이러한 關係로부터 資本家와 勞働者 間에 爭鬪가 起한다.
此를 圖로써 示하면 次와 如하다.

⑴ 貨物의 價値=賃金+生産費+χ    


12時間의 勞働

AC의 直線은 十二時間 勞働을 表함이오, 此를 折半한 AB는 必要勞働(此는 아니할 수 없는 勞働), BC는 不拂勞働(資本家가 勞働者에게 搾取하는 것)이다. 故로 此線을 勞働者는 될 수 있는 대로 短케 하려 하고, 資本家는 될 수 있는 대로 延長하려 한다. 此가 勞資의 爭――勞働時間의 短縮이란 問題이다.

以上은 마르크스學說의 大畧을 述한 것이다. 그런데 다만 學說만으로 두고 말았으면 마르크스氏의 影響이 그다지 宏壯하지 아니하였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 有名한 一八四八年 二月 二十四日 共産黨宣言書의 最初의 一部가 發行된 日이야말로 佛國 二月革命과 함께 마르크스와 엥겔스(마르크스와 함께 宣言書를 起草한 者이니 實로 同心一軆의 人이라)의 名을 不朽케 하였다. 此는 一八四七年 夏에 런던의 共産主義者大會에서 右 兩人에게 此 宣言書의 起草로 請托함이라. 此 宣言書의 內容은 詳述할 暇隙이 없어 畧하거나와 其 要領은 亦是 前述한 마르크스學說을 基礎로 한 것이니, 卽 一에 唯物觀, 二에 階級鬪爭說이라. 此書 內의 十箇條의 規定이 있으니,

⑴ 土地所有의 禁止, 地代의 公的 目的을 爲하여 消費할 事
⑵ 重한 累進率에 依하는 所得稅. (累進率이라는 것은 가령 千五百圓의 年收의 人에게 或率의 所得稅를 課한다 하면 三千圓의 年收의 人에게 課하는 時는 前者보다 高케 하는 것이라)
⑶ 相續權의 廢止
⑷ 移民(移去한 者) 及 叛逆者(勿論 共産主義에 對한 叛逆)의 財産은 沒收할 事
⑸ 大資本 及 絶對權을 有한 國立銀行의 設立
⑹ 運輸 及 交通機關의 國有
⑺ 工場의 國有, 共同計劃 下에 荒地의 耕作 及 土地의 改良.
⑻ 勞働의 平等責任, 特히 農業에 關한 産業軍隊의 設立할 事.
⑼ 農工業의 聯絡, 鄕村에도 人民을 分布하여 都市․鄕村의 區別을 廢止할 事
⑽ 兒童의 公的敎育, 敎育과 産業의 聯絡. (이는 幾分間 今日 勞農露國에서 實行하는 바이다)

그리고 此 宣言書에는 저 有名한 文句 󰡔萬國의 勞働者여, 團結하라. 團結에 依하여 汝等의 失하는 바는 鐵鑕뿐이오, 그 得하는 바는 全世界라󰡕 하는 緊張의 數語로써 結尾하였다. (此語는 勞農露國의 徽章 中에 立刻하였다) 그래서 저 共産主義는 國境을 撤廢한 故로 國際社會主義라고도 稱한다.


×          ×           ×           ×

余는 以上에서 마르크스學의 大綱을 述하였다. 時間과 紙面의 關係로 不充分의 歎은 不無하나, 될 수 있는 대로 忠實히.

余는 原來 社會主義를 科學的으로 硏究치도 아니하였을 뿐더러 또는 衒學的으로 批評코자 하는 野心도 없다. 다만 讀者에게 一件 注意를 與하는 바는 마르크스의 史觀이 東洋歷史까지 遺漏 없이 硏究하였다 할 수 없는 것과 氏의 資本論 中에 引用한 事實은 當時, 特히 英國 工業界의 缺陷을 偏取한 것과 (더욱 우리 朝鮮의 産業界를 指함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氏는 不平의 一亡命客으로 더 弱者인 勞働者에게 치우쳐 同情한 것 等이라. 卽 疏漏․感情은 氏의 學說에 在한 莫大한 遺(余는 缺陷이라 하지 아니하고 遺이라 하는 同情者의 一人이다)이라 할 것이다. 科學者는 何時든지 此에 注意치 아니하면 意外의 錯誤를 招할 것이다.

今에 余는 單히 一人의 基督信者의 資格으로써 自己의 信仰과 彼에 對한 態度를 率直히 告白하려 하노라.

「너의 있는 財産을 다 헤쳐서 貧者를 救濟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富者는 天國에 入하기가 駱駝가 針孔으로 出하기보다 難하니라」 하신 基督의 敎訓을 보면 勿論 富者를 排斥하고 貧者에게 同情하신 것이다. 그러나 基督의 最初 試惑을 打勝하신 一句의 言(基督敎의 精神은 此에 在하다),

「人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오직(But) 神의 言으로 살 것이다」 「너는 魚를 釣하는 漁夫가 되지 말고 人을 取하는 漁夫가 되라」 하시며, 兄弟 間에 分財를 公平케 하여 달라는 或者의 請求에 對하여, 「누가 我를 裁判官으로 세웠느냐」고 一言으로 斥退하셨다. 대개 基督은 人을 經濟的 方面으로 救코자 아니하시고 오직 心靈的으로 救코자 하신 것은 一点의 容疑할 餘地도 없다.

그런데 一般 社會主義――特히 마르크스의 唯物史觀은 到底히 基督敎主義와 相容할 수 없으며, 基督은 「…五里를 가자하면 十里까지 가거라… 惡을 敵치 말라」 하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無抵抗主義」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階級鬪爭說을 主張하고, 따라서 그 主義를 實現하는 手段方法으로 同盟, 結束, 暴力… 實로 「手段을 不擇한다」 할지라. 此点에서 또한 基督敎主義와 反對되는 바이다. 略言하면 理論의 基礎가 反對되고, 實行의 手段이 反對된다.

基督敎主義――心靈主義, 無抵抗主義
社會主義――物質主義, 鬪爭主義

그러면 余는 社會主義를 全然 反對하느냐 하면 無論 物質的 社會主義는 排斥하구 말구.

그러나 社會主義를 單히 文字대로 보아서 이러한 社會를 變하여 自由, 平等, 仁愛――理想的 社會, 永遠의 平和를 成코자 하는 点으로 보아서 크리스천은 가장 充實한 가장 理想인 社會主義者라 하노라. 今日 所謂 社會主義者가 反對하는 基督敎는 其實 基督敎가 아니라. 基督敎라는 假面을 쓴 或種의 宗敎團軆이다. 余도 無論 此点에 있어서는 深切히 同感하는 者이다. 그러나 再思하라. 諸君의 行動이 蚤蝎의 惡蟲을 憎惡하는 餘에 其 家屋까지 아니 그 木材, 石材까지 燒棄하려는 嫌이 없는가?

그러면 一般 社會主義者는 다 宗敎를 否認하느냐 하면 그러한 것이 아니다. 現代 英國文壇의 太陽이라 하며 兼하여 社會主義者의 泰斗라 할만한 러셀氏(Bertland Russell)의 「社會改造의 原理」라는 書 中의 一節을 取하여 其 思想의 眞髓를 示코자 하노라.

「經濟的 制度는 生活을 助長하며, 또는 破壞하는데 非常한 勢力을 有하였다. 現在 人의 幸福에 關하여 가장 一般的으로 信케 되는 바 人生哲學은 收入이다. 凡世界에는 生活을 助長하는 哲學, 宗敎가 必要하다. 그러나 生活을 助長하려면 單히 生活 그것이 아니라, 그 以外의 事物을 尊重치 아니하면 아니된다. 生活 때문에 生活하는 것뿐이오, 아무 '「참사람'의 價値가 없으면 그것은 動物이다. 모두가 倦怠와 空虛이다. 만일 生活을 全혀 '사람'답게 하려면 畢竟 人間生活 以外인 것처럼 보이는 곳의 어떤 目的에 奉事치 아니하면 아니된다. 가령 神이라든가 眞理라든가 或은 愛라든가……이러한 人 以上의 非人格的 어떤 目的에 奉事치 아니하면 아니된다……」

氏는 먼저 人의 生活을 支配하는 力은 衝動에 있다하고……凡 衝動은 所有的 衝動과 刱造的 衝動의 二種이 있다. 前者는 他와 公有치 못할 者를 獲得하며 持有하라 함이오, 後者는 獨占을 不許하는 어떤 價値있는 事物을 人生에게 賦與하려는 바 行動이다. 그런데 치우처 刱造的 衝動에 依하여 築한 生活은 가장 善한 生活이오, 치우처 所有慾에 依하여 動하는 生活은 가장 惡한 生活이다……卽 國家, 戰爭, 財産 等은 所有的 衝動의 主되는 軆現이오, 敎育, 宗敎, 藝術 等은 刱造的 衝動의 主되는 軆現이라……고.

論束하고 終에 「우리가 目前의 事만 思하는 때는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戰爭을 終熄케 하는 것이든지, 또 國家나 私有財産의 過度한 權力을 破壞하는 것이든지, 敎育에 新生命을 與하는 것이든지, 무릇 是等의 事는 普通 一般의 政治上의 手段에 依하여는 決코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全世界가 根柢로부터 잘못된 精神에 支配됨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精神은 決코 一朝一夕의 勞力에 依하여 變하여질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勇氣가, 忍耐가 있는 대로 何日에든지 반드시 人類가 此에 依gi여 改造될 것은 確信할 수가 있다. 이러한 見地로서 먼저 第一로 우리가 當爲할 事는 우리가 善이라고 思하는 生活의 種類와 우리가 世界에 望하는 變化의 種類를 自己 心中에 明白히 하여둘 것이다.……一言以蔽之하면 思想의 力은 其 最後에 其外 何力보다도 偉大하다.……그러나 思想力에 依하여 世界를 改造하려고 思하는 者는 現在에서는 世界의 援助를 失할 것을 覺悟치 아니하면 아니된다.……云云하였다.

余는 러셀氏의 思想이 基督敎主義와 合致하는 點에서 深切히 同感하노라.

吾人 信者는 決코 人의 力으로써 世界를 改造할 줄로 信치 아니한다. 吾人은 다만 絶對的 存在者의 命令에 依하여 使役하는 者이다. 最終의 目的은 神의 王國이다. 基督은 唯一의 統治者――오, 우리는 그 國民이다. 子女이다. 此点에서 基督敎는 資本主義도 아니오, 社會主義도 아닌 모든 近世的 何何主義를 超越한 神과 靈에 活하는 道이다.

「아아, 적게 믿는 者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믿는 者에게 能치 못할 것이 없나니라」

「너희는 먼저 그 國과 그 義를 求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께 주시리라」 하신 聖訓이 어찌 我等을 欺하시리오.

아아, 余는 此文을 草하는 中에 東京의 大火災의 慘報를 듣고 한번 戰慄하였다. 그리고 가장 敬畏하는 心으로 聖書를 펴서 馬太福音 二十四章을 읽었다.

果然 主의 日이 近한가 하노라. 아아, 世에 모든 잘난 체하는 者들아. 汝等의 經營造作하는 것이 果然 幾文의 價値가 있느냐? 모든 機械, 모든 建築, 모든 美術品, 모든 書籍, 그 모든 富가 다 무엇이냐? 一夜의 狂風에 그만 灰塵이 되고 말았다. 아아, 이것을 다만 自然이라고 看過할까? 그러면 自然을 征服한다고 자랑하는 汝等 所謂 文明人들아! 세베다여! 고라신아! 예루살렘아! 부르짖던 主의 音聲이 지금 完然히 鼓膜을 치는 듯하다.

余는 終에 一言코자 하노라. 부르주아든지 프롤레타리아든지 神의 前에 罪없다고 자랑할 者가 果然 누구뇨? 以蠻攻蠻과 以暴易暴의 世路에서 彷徨치 말고 아주 反省하라! 悔改하라! 汝等의 理想鄕은 다만 汝等의 罪를 痛悔하는 淚滴으로만 透視할 수 있다 하노라. 󰡔天國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할지니 다만 너희가 온데 있나니라󰡕 卽 新生한 者 中에.

(一九二三年 九月 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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