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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3 21:28

다락방 표지 성화로 본 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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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의 바울 

그림 : 렘브란트 반 린
해설 : 에벨린 버틀러 매큘로

사도 바울은 세 가지 문화적 영향을 받고 자라난 사람이다. 그는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었고, 출생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행세하였다. 이 시민권을 가졌었기 때문에 바울이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화가 렘브란트는 옥중에 앉아 있는 바울을 그렸다. 이 그림을 보아서 렘브란트가 얼마나 여러 번 또한 자세히 다소 사람이며 장막 제조자였던 바울에 대한 성경 기사를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바울의 머리가 빛나는 것은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회개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또한 이 그림에서 대담 무쌍한 전도자 바울은 무거운 겉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겉옷은 아마 바울이 드로아 가보의 집에 맡겨 두었다가 나중에 디모데에게 '책과 무엇보다도 가죽종이에 쓴 것'과 함께 가져오라고 부탁한 겉옷일 것이다. 

책을 아끼는 이들은 바울이 이처럼 전에 애독하던 책들을 소중히 여기는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러한 가죽종이에 여러 친구들을 훈계하고 격려하며 자기의 체험을 증거하는 글을 써 보내서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충성스럽게 받들게 하였던 것이다. 옥중에 있는 죄수에게 무기를 가지는 것은 허락할 리가 없다. 그러나 화가 렘브란트는 에베소서에 있는 말씀을 우리에게 회상시키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바울이 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리었다. 곧 에베소서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의의 흉패를 붙이고...믿음의 방패를 가지고...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다. 

바울이 든든히 딛고 있는 바위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동시에 교회의 주춧돌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모양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바울이 갇혀 있는 옥은 거룩한 곳으로 하하고 이방인에 대한 바울의 선교는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었다. 그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은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친 생활의 감화는 지금도 온 세상에 미치고 있다. 

1999년 6월에 독일 Stuttgart에 갔다가 Staatgalerie(시립미술박물관)에 들려 렘브란트의 '옥중의 바울' 원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유경재>

 

 

롯이 아브라함과 갈라짐

그림 : 3세기경 모자이크
해설 : 에벌린 버쿨로 맥쿨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품 중의 몇 가지는 초기의 그리스도교 교회당의 내부를 장식한 모자이크들이다. 표지의 그림인 '롯이 아브라함과 갈라짐'이란 모자이크는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서 로마에 있는 성 마리아 성당에 있다. 

모자이크의 기원은 아마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대의 고적에서는 기원 5천 년 전의 사람들이 벌써 대리석과 돌을 써서 포도와 마루를 모양있게 꾸며 놓았던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옛날의 저술가들의 저서를 보면 솔로몬의 성전에도 이러한 장식품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장식품은 12개의 보석이 박힌 네모진 돌로 이루어진 것인데 각 조각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 있다.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모세가 흉패로서 이러한 장식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모자이크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스도 교회에서 이 모자이크 미술을 중요시한 것은 2세기부터 13세기 말까지의 약 1000년 동안이었다. 

그림에서 롯은 유난히도 긴 손을 쳐들어 풀이 우거진 요단 평원을 가리키며 있고 그 옆에는 롯의 가족과 목자들이 서 있다. 이들은 오른편 위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소돔으로 가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가족과 목자들을 거느리고 그림의 왼편 위쪽으로 상수리나무 가지로 표시된 작은 숲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살려고 한다. 

롯과 그의 가족과 목자의 얼굴에는 죄책감과 불안의 빛이 보이고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의 얼굴에는 실망과 체념하는 빛이 보인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보다 풍성한 복이 결국 주어졌더 것이다. 

오늘날 교회 미술에 모자이크를 되살림으로써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해석하며 영원한 진리의 빛 속에서 장래를 계획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롯과 그 가족이 소돔을 떠남 

그림 : 피터 풀 루렉스
해설 : 윌터 엘 나단

피터 풀 루렉스(1577-1640)는 궁중 미술가로 일하다가 외국으로 외교사절로서 갔던 사람이다. 그의 가정 생활은 퍽 행복하였으며, 그의 그림은 계속적으로 날개가 돋힌 것처럼 잘 팔렸기 때문에 큰 부호가 되었다. 후랜더(벨기 화란 불란서 지부 일대)의 태생인 그는 권력과 풍족한 생활을 보고 자라고로 인생의 어두운 면을 별로 몰랐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종교, 신화, 풍경, 초상화 등 어느 그림의 제목도 기쁨과 정열에 찬 것들이다. 

표지의 힘찬 그림은 그의 걸작중의 하나이다. 롯과 그의 딸들과 두 천사의 배열은 경주하는 형식이며 그들의 빛나는 표정은 건강을 표시하고 있다. 그들의 옷은 부자임을 가리키고 전체가 찬란하게 나타난 그림이다. 다만 롯이 아내를 보는 슬픈 눈동자만이 집을 떠난 불안과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죄악의 성 소돔으로부터 천사의 인도로 끌려나오는 중이다. 이 성은 곧 멸망할 것이며 롯의 식구는 그의 삼촌 아브라함의 기도로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 구출된 것이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도중 천사의 말을 지키지 않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장자권을 판 에서 

그림 : 죠바니 안드레아 페라리
해설 : 에벌린 버쿨로 맥쿨로
 

 

죠바니 안드레아 페라리는 이탈리아의 게노아에서 그의 생을 대부분 보냈습니다. 그는 부요한 가정에서 자라나며 유럽의 몇 군데 유명한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가 그린 상당히 많은 종교화가 게노아에 있는 교회들과 화랑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페라리는 166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때는 유럽 전역에 큰 질병이 유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번호의 표지 그림은 이삭과 리브가 부부 사이에서 낳은 쌍둥이에 관한 구약 이야기에서 취재된 것인데 바로 후에 에돔 족속의 족장이 된 에서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라고 구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에서가 "조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는 "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이 때에 에서는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였었다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그가 쑤고 있는 죽을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에서가 재산과 토지와또한 축복 받는 일에 있어서 우선권이 있는 장자권을 가지고 있음을 늘 탐내고 있던 야곱은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괴로워 하고 있는 에서에게 죽을 줄터이니 장자권을 달라고 하여 결국은 장자권을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화가는 에서를 에돔족들이 흔히 입는 붉은 자케트를 입은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양 팔에는 틸어 많이 나 있고 손에는 검은 창을 쥐고 있으며 테이블 위에는 빈 물병이 놓여 있습니다. 그의 아우 야곱은 소매를 걷어올린 왼 손에 죽을 들고 있고 에서와 야곱은 맹서하는 뜻으로 오른 손들을 잡고 있습니다. 

 

이 조급하고 사려가 없는 부당한 행동은 결국 형제간의 관계가 아주 멀어져서 원수와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페라리는 구약의 이야기에서 취재하여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마는 인간 사회에 있어서 사려가 없는 기만적인 행동은 이러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야곱이 우물에서 라헬을 만남 

그림 : 얼윈 스펙터

얼윈 스펙터(1806-1835)는 착실하고 총명한 청년화가로 깊은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었다. 독일 함부르그에서 출생하여 교육을 받은 후 다시 무니히와 로마에 가서 연구하였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얼마 안되어 아깝게도 서른살 안쪽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차근차근히 일하였으며 주로 초상화나 성화를 남겼다. 표지의 그림은 그가 21세 때 그린 작품인데 화려한 색채와 청춘의 낭만적 정열이 기교의 결함을 충분히 메꾸고 있다. 

이 아름다운 경치는 다만 찬란할 따름이다. 여름 하늘 아래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서있고, 기름진 목장에는 나그네의 마음을 끄는 아담한 농가가 있으며 멀리 수평선으로 뻗어나간 푸른 바다를 아담스런 산줄기에다 병풍인양 에워싸고 있다. 여기는 평화로운 땅이다. 양떼는 순하게 풀을 뜯으며 샘물을 마신다. 목자들은 수염이 하얀 노족장의 옛날 이야기에 귀를 기우린다. 라반의 어여뿐 딸 라헬도 양떼를 몰고와서 이야기를 듣는다. 형 에서의 칼을 피하여 망명의 길을 떠난 야곱은 라헬을 보자 꿈에서 받은 하느님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을 믿는다. 

야곱은 라헬과 입을 맞추며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라헬을 아내로 삼으려면 여러 해를 지내야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에게는 며칠밖에 안되어 보인 것은 그가 라헬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이야기는 히브리 역사 초기의 원시사회 풍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야곱이 일생을 통하여 라헬에게 헌신한 그 사랑은 후세에 와서 모세의 율법과 예수의 교훈에 나타난 교훈과 가족제도에 드높은 도덕적 관념을 심어 놓았다. 

스펙터의 그림에서 야곱과 라헬이 만나는 장면에 옛날의 풍채가 있다면 그것은 두 젊은이가 서로 부드럽고 점잖게 존경하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예절이란 것이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에 대한 내적 신념을 밖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기 쉽다. 진정한 기독교 사회는 이러한 토대 위에만 설 수 있다.

 

모세를 찾아 냄 

그림 : 에드워드 이힐리
해설 : 알벌이 베일리

 

에드워드 이힐리(1813-1885)는 독일인으로 역사적 사실을 묘사하는 화가요 카셀 미술학교 교수였다. 

 

그는 유쾌한 장면을 그려냈다. 그때의 이집트 풍경은 아니지만 경치가 좋고 인물이 모두 곱다. 왕녀가 목욕터에까지 면류관을 쓰고 나왔을지는 의문이고, 뒤에 웃통 벗은 소녀가 모세의 누이 미리암으로 무슨 기민한 생각이 든 표정이다. 아기 모세는 귀여울 뿐. 

 

이 아름다운 그림이 우리에게 연상시키는 것은 모세의 일생과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으로 이집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망명객이 되어 미디안 땅에서 살다가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대면하게 되었다. 동족을 구원할 큰 사명을 띠고 이집트에 돌아가 동포들을 단결시켜가지고 이집트의 멍에를 벗어나 새나라를 세우고 세상에 정신적 유산을 끼쳐주었다. 

 

그러나 팔레스틴에 건설한 유대왕국은 바벨론에게, 로마에게 멸망을 당하고 민족은 온세상에 유리하여 퍼져 살게 되었다. 근년에 독일의 히틀러는 수 백만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그래도 모세의 율법과 더불어 유대민족은 살아 있더니 전쟁 끝에 이스라엘은 재건되었다.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이 주신 율법을 나라법으로 삼은 이 나라는 바야흐로 싹트고 있다. 저들이 각처로 유리하여 헤매고 있었을 때에 저들의 정신은 모세를 찾아냈을 것이다.

 

재건된 이스라엘 나라에는 유대인이건 아랍인이건 그외 다른 나라 사람이건,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위하여 얻어놓은 모든 자유와 기회를 다같이 누리게 되어있다.

 

이 정신이 모세가 지녔던 정신이었으리라. 화가 이힐리가 아기 모세를 찾아냄에서 위대한 역사적 사실을 보았다는 것은 이상할 것 없다.

 

불붙는 숲 앞의 모세 

그림 : 도메니코 페티
해설 : 에벌린 버틀러 맥큘로
 

 

이탈리아의 화가 도메니코 페티(1589-1624)는 로마에서 나서 만투아에서 자기의 주요한 그림들을 창작하고 35세에 베니스에서 별세했다. 그의 그림 <불붙는 숲 앞의 모세>는 하느님이 미디안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목동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하고 말씀하신 그 장면을 그려낸 것이다. 모세는 놀란다. 그러나 바로 순종하여 신발을 벗는다.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양아들로 이집트에서 자라 어른이 되었으나 그는 자기 히브리 형제 위에 지워진 멍에와 굴욕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모세가 미디안 땅 호렙 산에서 자기 장인의 양떼를 치다가, 이집트 땅에서 목격한 불공평과 압박을 상기하고 불붙는 숲을 보았다. 역사적 그 순간에 그는 그에게 향하신 하느님을 뜻을 알고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렇게 숲은 극적 통찰력의 근원도 되고 봉사에로의 부르심도 된다. 큰 사명에 두려워 모세는 극구 사양하였으나 하느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하고 격려하시었다.

 

모세는 미디안을 떠나 이집트에 돌아왔다. 자기로서는 불가능한 것 같은 중대한 사명을 띠고 지혜와 힘을 주시는 하느님을 의지하고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순종할 때 하느님은 당신의 사업을 성취하기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공급하신다. 

 

<불붙는 숲의 모세> 그림에 화가는 형제가 고난 당하는 것 때문에 마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매일 일터에 나가는 억센 몸둥이와 야무진 얼굴을 가진 사람을 그리었다. 모세가 바로 이 사람이다.모세는 불붙는 숲을 지나 하느님이 허락하신 빈들의 시련 너머에 이르는 환상을 지닌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다. 

 

오늘 시련을 겪는 많은 사람이 시련 너머에 환상이 오라 부르기 때문에 승리를 거두며 살고 있다. 모세라는 인간 속에서 우리는 아득한 골짜기를 떠나 산에 올라 하느님의 목장의 양떼를 먹이고 다른 양들을 하느님의 목장 우리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힘과 헌신적인 사랑을 본다.

 

반석 앞에 선 모세 

그림 : 바톨로매 에스테반 무리요

무리요(1618-1682)는 스페인 화가로 고향 세빌미술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1654-1657년 사이에 11개 대작을 그렸다. 그 중 하나의 작품으로 모세가 백성들의 물을 달라는 원성에 화가 나서 반석을 두 번 친 후 모세와 아론이 하느님의 책망을 듣는 장면이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느님과 다투었으므로, 므리바 샘이라 이름을 지었다.

 

아기 사무엘 

그림 : 조수아 레이놀드(1723-1792)
해설 : 에벨린 버틀러 매큘로

이 귀여운 '아기 사무엘'이란 그림에서 화가 레이놀드는 인간의 고독성을 묘사하려고 하였다. 이 고독성이란 대개는 큰 지도능력을 동반하는 것이다. 사실 이 속세에서 하나님의 뜻에 충성스럽게 순종하려고 힘쓴 사람들은 대개 고독을 느끼는 것이다.

조수아 레이놀드는 영국 디본사이어 플림톤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그를 제약사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런던에서 창작 생활을 하면서 사무엘 존슨, 올리버 골드스미드, 에드먼드 벌케, 데빗 개릭크 같은 정명한 인사들과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사교계와 미술계에서 큰 영향을 끼치었다. 그는 미술에 대한 논설에서 있어서도 그의 그림에 못지 않은 칭송을 받았다. 조오지 3세는 1769년에 그에게 작위를 주었다.

테이트 화랑의 부지배인인 레슬리 파리스는 조수아 레이놀드가 어린 사무엘의 그림을 두 장 그렸다고 말한다. 하나는 1776년에 왕립 아카데미에 진열되었다가 1816년에 벨보이어 성이 불타는 바람에 타 버렸고, 또 한 장은 1838년에 판보로우 경이 국립화랑에 기증하여 진열되어 있다가 1919년에 테이트 화랑으로 옮기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무엘을 낳게 된 것은 자기가 실로에 있는 성전에서 드린 정성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기가 젖을 떼자마자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제사장 엘리에게 맡기고 해마다 가족들이 성전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 때에는 새 옷을 가지고 와서 입혀 주었다. 레이놀드는 이런 새 옷입은 사무엘을 그렸다. 사무엘은 엘리의 교훈을 받고 자라는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였다.

사무엘이 장성하여 어른이 된 후에는 유명한 예언자로서 또한 백성의 지도자로서 크게 활동하였다. 그는 사울왕에게 기름을 부었으며 또한 다윗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그는 일생 동안 한 번도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선 적이 없었다. 그림에서 위로부터 빛이 비취고 있는 것은 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을 부르고 계시다. 사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어린이들에 대하여 어른들이 할 일은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기름붓는 사무엘

그림 : 얀 빅톨즈
해설 : 에벌린 버틀러 맥큘로
 

얀 빅톨즈(1620-1676)는 화란 사람인데 성경을 잘 알았으며 성경 내용 가운데서 남들이 흔히 취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사건들을 화제로 택하기를 좋아하였다. 작품에 대한 이런 경향은 종교화가로 걸작품을 많이 발표한 그의 대선배 렘브란트에게서 받은 영향이다. 짠 빅톨즈의 침침한 색각의 화법은 역시 렘브란트파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암스텔담에서 명성을 날렸으며 대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며 그의 작품도 사방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 지금 독일 부륵스윅 박물관에 있는 <다윗에게 기름붓는 사무엘>이 미와 영적인 깊이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사무엘상 16장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8형제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대를 이을 후보자를 물색하였다. 아들들이 그의 앞에 늘어섰을 때 사무엘은 유심히 보았으나 모두 신통치 않았다. 결국 들판에 있는 막동이 다윗을 데려왔다. 사무엘은 어린 다윗의 늠름한 모습을 보자 '이 어린이다'라고 일러주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다. 사무엘은 기름병을 들고 다윗의 아버지와 형들 앞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림의 색채의 조화는 성직을 받는 엄숙한 태도를 느끼게 한다. 철철 끌리는 긴옷을 입은 예언자 사무엘은 귀한 중책을 절실히 느끼면서 감격 중에 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다윗의 형들은 사무엘이 다윗의 어떤 면을 보고 택한 것일까 곰곰히 생각에 잠겨있다. 점잖은 가장인 이새는 노인의 의젓한 태도로 이 광경을 보고 있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 집에 복을 내려 주신 것을 생각하여 기쁨에 넘쳐있다. (여러 세대 후에 이새의 가지에서 싹이 났으니 곧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이다.) 

다윗은 소년다운 패기와 정열이 넘쳐흐른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복종하여 예언자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라든가 "어떤 상급이 있을까" 묻지도 않는다. 여호와는 그를 이미 택한자라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형편에 처해있는 사람이든지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일군이 되도록 지금도 부르신다

 

엘리사와 수넴 여인

그림 : 거브란드 반 덴 에크하우트
해설 : 에벨린 버틀러 매큘로
 

이 표지의 그림은 열왕기하 4:8-37에 기록된 엘리사와 수넴 여인의 이야기에 나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화가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실을 그린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에크하우트는 청년 시절부터 암스테르담에서 미술로 크게 활동하게 되었고 거기서 저 렘브란트의 제자요, 또 신실한 친구로 지냈다. 

그의 작품은 1655년에 일찍이 얼굴의 표현과 제스추어(몸짓, 손짓)에 특히 주의를 가지고 비단 재료의 결을 다루어서 초상화가의 수법을 쓴 바 있는 텔 보흐의 영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일상 생활과 주위의 풍속화적 장면을 배경으로 사용하였다.이런 종류의 처리는 엘리사와 수넴 여인의 그림에서 잘 나타났다. 

이 부요한 부인과 그의 남편은 이 예언자가 수넴 지방으로 여행할 때마다 그 소용을 위하여 자기 집의 한 방을 제공하였다. 하루 아침은 그의 외아들이 아비를 찾아 들에 나갔다가 병이 났다. 돌아온 후 오정이 되자 죽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엘리사의 침상에 누이고 급히 갈멜산으로 가서 엘리사에게 아이를 와서 보아 주기를 간청하였다. 

에크하우트는 그 어머니가 엘리사를 만나 자기 아이를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순간의 장면을 그렸다. 엘리사의 하인 게하시는 여인을 물리치려 하였으나 엘리사는 "그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고 하였다. 

엘리사가 여인의 슬픈 사정 이야기를 듣고 게하시를 먼저 보내서 자기의 지팡이를 아이 위에 놓으라고 일렀다. 게하시가 그대로 하였으나 아이는 살아나는 것 같지 아니하였다. 마침내 엘리사가 여인과 같이 와서 그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아이 입에 자기 입을 대고 숨을 불어 넣음으로 아이가 살아나서 어미에게 내 주었다. 

화가로 하여금 이 그림을 그리도록 충동을 준 이야기는 우리가 반드시 하느님과 동행하는 이의 도움을 구하여야 되겠다는 것을 힘있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남을 도와 주는 어떤 증거물이나 혹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할 때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우리가 남을 도와 주려고 할 때는 몸소 그 일에 뛰어 들어가서 그들에게 나아가 우리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에스더와 왕 앞의 모르드개

그림 : 렘브란트 반 리진
해설 : 에벨린 버틀러 매큘로

 

이 달의 그림은 화가 렘브란트가 재정의 곤란을 당해서 '암스테르' 유대인 지구에 집을 옮겨 살 게 된 후에 그린 그림이다. 그의 그림은 자기가 살던 유대인들의 풍속을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에스더서에 관한 그림을 몇 개 그린 것이 있다. 

아하수에로(크세르세스 1세)가 페르시아왕으로 주전 486년으로부터 565년까지 통치하는 동안에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이 많이 그 땅에 살았다. 에스더는 일찍이 부모가 죽었기 때문에 모르드개란 사람이 자기 친딸처럼 길렀다. 그런데 후에 아하수에로왕의 총애를 입어서 왕후가 되었다. 

그런지 얼마 후에 총리대신 하만이 문지기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어 절하지 아니한다고 미워서 왕의 명령을 받아서 모르드개를 죽일 뿐 아니라 온 페르시아 땅에 있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기로 음모하였다. 

이 때에 모르드개가 에스더 왕후에게 글을 보내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간청해서 자기네 두 사람뿐 아니라 온 유대 백성을 구하도록 하기를 청하였다. 에스더가 회답하기를 "내가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라" 하였다. 에스더는 사흘을 금식한 후에 왕후의 정복을 입고 왕 앞에 나갔다. 왕이 에스더의 간청을 들어 주자 에스더는 반대로 하만을 죽이기로 하고 자기 백성을 구해 내었다. 

이 그림을 보면 그 당시의 왕권과 아하수에로의 위세를 느끼게 된다. 찬란한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에스더 왕후는 용기와 침착한 빛을 보인다. 또 하만은 에스더 앞에 굴복하고 있고 왕후의 가슴에 대고 있는 손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성공한 일에 대한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배경에 보이는 사람들은 그런 위기를 당해서 갑자기 반전되는 사태를 보고 어리둥절한 모양을 보인다. 왕이 하만의 조서를 철회시킬 뿐 아니라 모르드개를 그 후임 총리대신으로 임명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갑자기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났을 경우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한 말로 격려를 받을 것이다.

 

아기 사무엘 

그림 : 조수아 레이놀드(1723-1792)
해설 : 에벨린 버틀러 매큘로

이 귀여운 '아기 사무엘'이란 그림에서 화가 레이놀드는 인간의 고독성을 묘사하려고 하였다. 이 고독성이란 대개는 큰 지도능력을 동반하는 것이다. 사실 이 속세에서 하나님의 뜻에 충성스럽게 순종하려고 힘쓴 사람들은 대개 고독을 느끼는 것이다.

조수아 레이놀드는 영국 디본사이어 플림톤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그를 제약사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런던에서 창작 생활을 하면서 사무엘 존슨, 올리버 골드스미드, 에드먼드 벌케, 데빗 개릭크 같은 정명한 인사들과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사교계와 미술계에서 큰 영향을 끼치었다. 그는 미술에 대한 논설에서 있어서도 그의 그림에 못지 않은 칭송을 받았다. 조오지 3세는 1769년에 그에게 작위를 주었다.

테이트 화랑의 부지배인인 레슬리 파리스는 조수아 레이놀드가 어린 사무엘의 그림을 두 장 그렸다고 말한다. 하나는 1776년에 왕립 아카데미에 진열되었다가 1816년에 벨보이어 성이 불타는 바람에 타 버렸고, 또 한 장은 1838년에 판보로우 경이 국립화랑에 기증하여 진열되어 있다가 1919년에 테이트 화랑으로 옮기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무엘을 낳게 된 것은 자기가 실로에 있는 성전에서 드린 정성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기가 젖을 떼자마자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제사장 엘리에게 맡기고 해마다 가족들이 성전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 때에는 새 옷을 가지고 와서 입혀 주었다. 레이놀드는 이런 새 옷입은 사무엘을 그렸다. 사무엘은 엘리의 교훈을 받고 자라는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였다.

사무엘이 장성하여 어른이 된 후에는 유명한 예언자로서 또한 백성의 지도자로서 크게 활동하였다. 그는 사울왕에게 기름을 부었으며 또한 다윗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그는 일생 동안 한 번도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선 적이 없었다. 그림에서 위로부터 빛이 비취고 있는 것은 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을 부르고 계시다. 사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어린이들에 대하여 어른들이 할 일은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기름붓는 사무엘

그림 : 얀 빅톨즈
해설 : 에벌린 버틀러 맥큘로
 

얀 빅톨즈(1620-1676)는 화란 사람인데 성경을 잘 알았으며 성경 내용 가운데서 남들이 흔히 취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사건들을 화제로 택하기를 좋아하였다. 작품에 대한 이런 경향은 종교화가로 걸작품을 많이 발표한 그의 대선배 렘브란트에게서 받은 영향이다. 짠 빅톨즈의 침침한 색각의 화법은 역시 렘브란트파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암스텔담에서 명성을 날렸으며 대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며 그의 작품도 사방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 지금 독일 부륵스윅 박물관에 있는 <다윗에게 기름붓는 사무엘>이 미와 영적인 깊이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사무엘상 16장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8형제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대를 이을 후보자를 물색하였다. 아들들이 그의 앞에 늘어섰을 때 사무엘은 유심히 보았으나 모두 신통치 않았다. 결국 들판에 있는 막동이 다윗을 데려왔다. 사무엘은 어린 다윗의 늠름한 모습을 보자 '이 어린이다'라고 일러주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다. 사무엘은 기름병을 들고 다윗의 아버지와 형들 앞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림의 색채의 조화는 성직을 받는 엄숙한 태도를 느끼게 한다. 철철 끌리는 긴옷을 입은 예언자 사무엘은 귀한 중책을 절실히 느끼면서 감격 중에 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다윗의 형들은 사무엘이 다윗의 어떤 면을 보고 택한 것일까 곰곰히 생각에 잠겨있다. 점잖은 가장인 이새는 노인의 의젓한 태도로 이 광경을 보고 있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 집에 복을 내려 주신 것을 생각하여 기쁨에 넘쳐있다. (여러 세대 후에 이새의 가지에서 싹이 났으니 곧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이다.) 

다윗은 소년다운 패기와 정열이 넘쳐흐른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복종하여 예언자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라든가 "어떤 상급이 있을까" 묻지도 않는다. 여호와는 그를 이미 택한자라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형편에 처해있는 사람이든지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일군이 되도록 지금도 부르신다

 

엘리사와 수넴 여인

그림 : 거브란드 반 덴 에크하우트
해설 : 에벨린 버틀러 매큘로
 

이 표지의 그림은 열왕기하 4:8-37에 기록된 엘리사와 수넴 여인의 이야기에 나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화가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실을 그린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에크하우트는 청년 시절부터 암스테르담에서 미술로 크게 활동하게 되었고 거기서 저 렘브란트의 제자요, 또 신실한 친구로 지냈다. 

그의 작품은 1655년에 일찍이 얼굴의 표현과 제스추어(몸짓, 손짓)에 특히 주의를 가지고 비단 재료의 결을 다루어서 초상화가의 수법을 쓴 바 있는 텔 보흐의 영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일상 생활과 주위의 풍속화적 장면을 배경으로 사용하였다.이런 종류의 처리는 엘리사와 수넴 여인의 그림에서 잘 나타났다. 

이 부요한 부인과 그의 남편은 이 예언자가 수넴 지방으로 여행할 때마다 그 소용을 위하여 자기 집의 한 방을 제공하였다. 하루 아침은 그의 외아들이 아비를 찾아 들에 나갔다가 병이 났다. 돌아온 후 오정이 되자 죽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엘리사의 침상에 누이고 급히 갈멜산으로 가서 엘리사에게 아이를 와서 보아 주기를 간청하였다. 

에크하우트는 그 어머니가 엘리사를 만나 자기 아이를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순간의 장면을 그렸다. 엘리사의 하인 게하시는 여인을 물리치려 하였으나 엘리사는 "그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고 하였다. 

엘리사가 여인의 슬픈 사정 이야기를 듣고 게하시를 먼저 보내서 자기의 지팡이를 아이 위에 놓으라고 일렀다. 게하시가 그대로 하였으나 아이는 살아나는 것 같지 아니하였다. 마침내 엘리사가 여인과 같이 와서 그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아이 입에 자기 입을 대고 숨을 불어 넣음으로 아이가 살아나서 어미에게 내 주었다. 

화가로 하여금 이 그림을 그리도록 충동을 준 이야기는 우리가 반드시 하느님과 동행하는 이의 도움을 구하여야 되겠다는 것을 힘있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남을 도와 주는 어떤 증거물이나 혹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할 때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우리가 남을 도와 주려고 할 때는 몸소 그 일에 뛰어 들어가서 그들에게 나아가 우리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기도하는 무렵 

그림 : 니콜라스 메에스
해설 : 윌터 엘 나단

니콜라스 메에서(1632-1693)는 렘브란트 밑에서 공부한 젊은 화가들 중에서도 가장 재주 있는 사람이었다. 메에스는 화란 돌드레히트에서 탄생하여 열여섯살 때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이 위대한 화란의 대가 밑에서 사년을 보냈던 것이다. 메에스의 다스한 빛깔이며 그의 걸작 중에서 볼 수 있는 색채의 조화는 그의 스승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보여 준다. 

검소하고 조용한 방안에서 어떤 연로한 부인이 스프며 생선이며 빵이며 자기의 식사를 준비해놓고 지금 모든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고개를 숙였다.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에 넘쳐 부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빌고 있다. 일에 거칠어진 부인의 손은 합장을 하고 있다. 부인의 입술로부터는 기도의 말이 새어 흐른다. 긴 그의 생애에 겪은 고락의 모습이 그의 얼굴에 나타난다. 긴장된 이 여인의 표정은 그가 어떻게 진실하게 명상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장난을 즐기는 고양이 한 마리가 상보를 끌어 다니는 모습도 그의 감사의 시간에 지장을 주지 못한다. 

여인의 주위에서 우리는 그의 정리되고 깨끗하고 그 위에 검박한 가구 등을 볼 수 있어서 여인의 질서 있는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선반 위에 세워 펼쳐있는 두터운 책이 성경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성경으로 그는 하나님을 배우고 또 영원을 생각하였다. 성경 옆의 물시계로 시간을 보았으며 때로는 그의 생애의 짧음을 생각하게 하였다. 더욱이 그의 남은 날의 적음을 생각하였으리. 빛나게 닦은 기름 램프와 펼쳐있는 책은 저녁 시간임을 나타내며 그의 성경 읽는 일과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종류의 그림은 쉽사리 감상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세심하고도 견실한 사실로 사물의 실감을 나타냈다. 그는 또한 강렬한 빛 속에 이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을 쌓아 넣기도 하였다. 필경 이 여인의 영혼 속에 꾸준한 신앙의 빛을 상징하였을 것이다. 여인은 실로 예언자 이사야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말한 그 평강을 획득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 문을 열고 의뢰할 때에 주께서 가까이 해주시는 확고한 개인적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그는 진리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자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너희의 피난처시며 영원하신 팔 아래 두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을 부르고 계시다. 사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어린이들에 대하여 어른들이 할 일은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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