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그레코
2007.10.11 02:20

엘그레코 -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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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Greco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1579년 / 캔버스에 유채/ 285×173cm / 톨레도 대성당, 스페인

톨레도에서 엘 그레코에게 처음으로 작품을 주문한 사람은 로마의 파르네제 그룹에서 사귀게 된 친구와 인연이 있던 톨레도 대성당의 사제장이었다. 대성당에서 사제가 의식용 옷을 입는 장소에 걸릴 예정이었던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The Disrobing of Christ (El Espolio)]은 톨레도에서의 첫 작품이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돌며 오랜 수업을 거쳐 만든 엘 그레코만의 양식이 처음으로 나타난 걸작이다.

그림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려는 장면이다. 이는 복음서에 특별히 기록된 순간은 아니고, 비잔틴 미술에 선례는 있지만 서유럽 기독교 미술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주제이다. 전경 오른쪽에는 십자가에서 못이 박힐 부분에 구멍을 뚫는 사람이 보이고, 이를 보는 세 명의 마리아가 전경 왼쪽에 보인다. 화면 중앙의 예수는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조롱을 당하고 있으며, 이들의 모습은 예수의 옷을 갖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는 복음서의 기록을 연상시킨다. 중앙 왼쪽 갑옷을 입은 병사는 관람자를 바라보며 관심을 예수 쪽으로 돌리게 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죽음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한 로마군의 백부장, 혹은 [황금 전설]에서 예수의 피로 잘 안보이던 눈을 치료받고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군인 롱기누스, 혹은 본디오 빌라도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예수 손의 밧줄은, 처형장으로 가던 예수가 지쳐 십자가를 다른 사람이 지자 군인들이 예수를 밧줄에 묶어 끌고 갔다고 한 성 보나벤투라의 글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그림 중에서는 가장 자연주의적으로 그려져 고전적 드로잉 수업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많은 인물들로 화면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고, 순차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한 화면에 모아놓고, 공간 묘사가 명확하지 않은 점 등은 피렌체의 폰토르모나 로마의 로소 피오렌티노가 개발한 매너리즘 회화의 특징이다. 눈물이 어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표정은 엘 그레코가 창안한 것으로 이후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예수와 하늘의 소통은 수직의 구름 기둥으로 표시되고, 그의 희생은 화면의 시각적 중심인 붉은 의상에서 강조된다. 주요 인물 의상의 선명한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은 화면 왼쪽 군인의 갑옷에 반사되어 색채의 화음을 들려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교회의 만족을 얻지 못했다. 성직자들은 군중의 머리가 예수보다 높은 곳에 있는 점, 복음서에 없는 세 명의 마리아가 등장하는 점 등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작품 완성 후 화가와 주문자가 합의해서 가격을 결정했는데, 이 작품의 경우 양자가 생각한 금액의 차이가 4배 정도나 되었다. 결국 둘 사이에 분쟁이 났다. 그 결과 화가는 원하는 가격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을 받았고, 교회와는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이후에도 엘 그레코는 그림 값 문제로 분쟁을 자주 일으켰다.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화가가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물건을 제작하는 장인이 아니라, 인문적 지식과 독창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라는 신념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래서 주문자의 수정 요구에도 대부분 응하지 않았고, 가끔은 소송 비용이 그림 값보다 더 들더라도 작품 가격을 낮게 매기려는 주문자에 대항해, 예술적 자유와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

김진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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