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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1 01:35

십자가에 달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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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ünewald

십자가에 달리심(1510-1515)

Oil on panel
Musée d'Unterlinden, Colmar, France

멀리 푸른 새벽이 밝아오는 골고다 언덕, 지금 막 숨진 예수의 끔찍한 육체를 둘러싸고 신약성서의 가장 중요한 한 장면이 진행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종교적 상상력을 통해 본 그 장소를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재현해 내고 있다. 온갖 고초에 이미 만신창이가 된 예수. 그 헐고 상처입은 육체는 잔인한 형벌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뒤틀려 있다. 몸무게로 인한 듯 길게 늘어진 팔은 몸통으로부터 비틀려 나오고 있으며 못 박힌 양 손은 아픔을 참지 못하여 뻣뻣하게 굳어있다. 또 고통으로 인해 입까지 반쯤 벌린 채 숙인 얼굴, 핏자국과 곪은 상처가 가득한 시체에 불과한 인간 예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동시대에 활약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성스럽고 우아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만신창이로 뒤틀려 있는 그리스도의 육체와 고통

물론 시골마을에서 화가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던 이 독일의 화가 역시 이탈리아 미술의 혁명적 성과를 몰랐을 리 없다. 북구 르네상스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육체에 대한 해부학적 관심이나 배경 풍경의 정확한 원근법은 새로운 사조를 수용하고 재해석하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건한 장인은 인간성을 재발견한 르네상스 정신은 그다지 탐탁치 않았던 듯 그 자신의 중세적인 종교적 신념 - “그림으로써 설교하고 교회가 가르친 종교적 진리를 선포하는 것” - 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 르네상스 미술의 새로운 기법을 받아들였다.

그림 속에 숨겨진 상징과 인체 비례에 나타난 특이성

이 그림은 우선 풍부한 상징과 은유라는 측면에서 중세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서 특유의 거친 망토를 걸친 채 맨발로 버티고 선 세례자 요한이 이 죽음의 책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려는 듯 예수를 가르키고 있다. 그의 입에서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요한복음 구절이 나오고 있다. 그의 발 아래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어린 양이 십자가를 진 채 자신의 희생으로 흘린 피를 성배에 쏟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의 무릎 언저리에 놓인 향유병은 그녀을 상징하는 물건이자 곧 예수의 시신이 내려지고 씻겨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그가 중세적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은 등장 인물들의 크기를 설정하는 방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중세 성상화의 전통에 따라 각 인물들은 중요성에 비례해 크기가 배분되고 있다. 왼편에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혼절하고 있는 성모와 이를 부축하는 성 요한의 모습, 그리고 극도의 슬픔에 절규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크기를 예수와 비교해 보라. 심지어 십자가의 높이는 너무 낮다. 어색한 십자가 높이는 우리 눈에는 분명 어색해 보이지만, 화가는 그것이 중세적 원칙에 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전혀 개의치 않고 그림 속에 표현해 놓았다. 분명 작가에게는 성서의 진리를 전달하는 데 있어  르네상스의 과학적 원근법이나 단축법 따위는 너무 무미건조한 방법에 불과했을 것이다.

최근까지 그 이름조차 그뤼네발트라고 잘못 전해져 왔을 정도로 신비에 쌓여있는 이 소박한 화가는 자신의 신앙의 눈으로 본 장면을 꼼꼼하게 재현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우리 모두가 얼마나 죄인이었던가를 깨우쳐 주고자 소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분명 실망스럽지 않았을 것 같다.

저명한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이 작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미술가는 ‘진보적’인 입장을 갖지 않더라도 진실로 위대해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미술의 위대성은 결코 새로운 발견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티스 고타르트 니타르트 (통칭 그뤼네발트) (1472  ~ 1528)
독일 뷔르츠부르크 출생으로 전해지지만 화가의 행적에 대해서 알려진 정확한 것은 거의 없다. 1508년 이후 마인츠 대주교였던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1528년 할레에서 죽었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남아있는 작품이 적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격렬한 감정표현에 있어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글 임대근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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