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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1 01:32

돌아온 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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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tolome Esteban Murillo :

돌아온 탕자(1670/1674)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돌아온 탕자>
캔버스 유화, 236x262cm, 국립미술관, 워싱턴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7-1682)로서 17세기에 스페인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바로크 양식의 종교화가입니다. 그는 많은 작품에서 종교적인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무리요는 자연스러운 몸짓과 부드럽고 경건한 표정을 잘 묘사합니다. 그의 그림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친숙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이상적으로 묘사한 사실성에 있습니다. 무리요의 작품은 스페인과 당시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제국 전역에서 복제되어 모방되었습니다. 그는 전 유럽에 걸쳐 명성을 떨친 최초의 스페인 화가로, 지구상의 스페인 언어권 곳곳에서 19세기까지 널리 알려졌던 스페인의 예술가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무리요가 루가복음 15장의 '잃었던 아들의 비유'(루가 15,11-32)를 소재로 50세의 원숙한 나이에 그린 작품입니다.
이 그림에서 작은아들은 방탕한 생활로 자신의 몫으로 가지고 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돼지를 치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막다른 지경에 몰린 그는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즉 창피함을 무릅쓰고 고향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이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아들과 그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만남의 장면인 비유의 절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인자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림을 살펴봐요. 그림의 등장인물에는 어떠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봐요. 이 작품에서는 9명의 사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어린아이가 두 명, 여자가 한 명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은 두 마리가 보이는데 송아지와 강아지입니다.

장소를 한번 보세요. 배경으로 하늘이 보이고 강아지가 반가이 맞이하는 모습과 오른쪽의 기둥으로 미루어 보아 바로 집 현관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돌아온 아들을 맞으러 집 밖으로 달려 나온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자세를 살펴볼까요? 등장인물 중에서 가운데 붉은 색 외투를 입은 노인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은 조아리고 있는 젊은이를 감싸안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젊은이는 옷이 다 해어져 있고, 맨발에 발바닥은 지저분해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허리를 구부려서 아들을 감싸 안고 있으며 아버지의 등 뒤에 두 사람의 시선이 부자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바라보면 여러 가지 생각 거리를 제공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시선은 서로를 향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눈길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의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는 시선이 있습니다. 그 시선은 하인들의 시선은 아닙니다. 하인의 시선은 두 사람의 만남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옷과 샌들, 그리고 반지에 쏠려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지켜보는 두 시선은 아버지의 왼손에서 이어지는 사선의 위치에 있는 여인의 시선과 기둥의 그늘 뒤에 서 있는 큰아들의 시선입니다.

여인은 작은아들의 형수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형수는 시동생이 다시 돌아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자기 몫의 재산을 다 챙겨 떠난 시동생이 다시 돌아왔으니 그렇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이 비난의 시선을 아버지는 등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사랑이 이들의 비난을 막아주고 있는 듯한 인상을 느낄 수 있어요. 하느님의 사랑은 이처럼 비록 모든 사람들이 질책의 잣대로 우리를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좌우되지 않고 회개하고 용서를 청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사랑으로 감싸안아 주신다는 것을 그림은 이야기해 주고 있어요.

어린아이들의 시선을 살펴보면 그림의 결론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아이의 시선은 하인이 들고 있는 반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작가 무리요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하인으로라도 써주시기를 간청하는 작은아들을 본래의 신분, 아들의 위치로 되돌려 주는 성서의 내용을 충실하고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헐벗은 몸을 가려줄 화려한 의상과 맨발에 신길 샌들, 그리고 지위를 되돌려 주는 가락지를 가져오는 하인들의 모습과 표정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른 아이의 시선은 송아지를 끌고 가면서 송아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하는 주인(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송아지를 잡으러 가는 모습입니다.
그 아이의 곁에는 도끼를 짊어진 장정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잔치가 열리게 될 것임을 그 그림은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작가는 반기는 강아지를 통해서 기뻐하는 아버지의 내면을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황금분할의 위치(1/3의 위치로서 그림의 강조점)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아들의 두 손과 그를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 있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에서 일반적으로 왼쪽은 과거를, 그리고 오른쪽은 미래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잘못된 과거에서 돌아온 모습(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해 있음)이고, 아버지는 아들의 과거를 용서하며 감싸 안는 모습(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해 있음)입니다.

무릎을 꿇은 아들의 모습에서 참회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으며 감싸 안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무리요는 큰 인기를 누렸던 바로크 양식의 종교화가입니다. 그는 많은 작품에서 종교적인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무리요는 자연스러운 몸짓과 부드럽고 경건한 표정을 잘 묘사합니다. 그의 그림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친숙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이상적으로 묘사한 사실성에 있다고 합니다.

(김남철 바로톨로메오/알수록 재미있는 성화 이야기 pp16-23/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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