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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이 말을 무척 실감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먼저 떠나 보내는 친구들, 헐려버린 친숙했던 건물들, 이사 갈 때 마다 버리는 책과 잡지들. 얼마 전에 사진을 찍고 단골 현상점에 필름을 맡긴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사진을 찾았을 때 실망감이 무척 컸다. 오랫동안 필름 카메라를 취미로 해온 내게는 사진을 찾는 순간이 긴장감과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선물을 받아든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이 된다. 그러나 현상된 사진을 보고 실망감 아니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값을 치르면서 살펴보니 작년에 카운터 안 쪽에서 보았던 인화기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에게 물어 보니, 이젠 이 곳에서 현상/인화를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모아서 한단다. 소규모로 작업을 해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그러는구나하고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서운한 생각은 피할 수 없었다. 사진은 찍는 것 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후에 이루어지는 현상과 인화 작업도 무척 중요하다. 손발이 맞는 작업기술자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이 단골 가게도 벌써 세 번 째 바꾼 건데, 이젠 어쩐다? 이젠 필름 카메라와도 이별할 때가 온 것 같다.

위에 소개한 경험담은 일반적인 헤어짐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듯 우린 정든 것과 항상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또는 일이든 간에. 정든 것과의 헤어짐이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자주 보이는 주제지만, 고전 음악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를 주제로 한 음악이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 45번 f#단조, 일명 ‘고별’ 교향곡이다. 이번 구정 연휴 때 공중파TV에서 오랜만에 방영한 2009년 빈 신년콘서트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고별’ 교향곡을 시청했다.

이 교향곡은 음악적으로 뛰어난 곡은 아니지만, 연주에 앞서 해설가도 설명했듯이 다음과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로 유명해진 곡이다. 오스트리아의 에스테르하치공은 1792년 파파 하이든이 악장으로 있던 자신의 악단을 두 달 더 여름 휴양지에 자신과 함께 머물도록 했다. 이를 불평하는 악단원들을 보고, 하이든은 공작의 마음을 돌리려고, 기지를 발휘했다. 일반 교향곡의 4악장과는 달리, 제1주제만 뒤엉키고, 제2주제는 나오지 않다가 아다지오 주제가 조용히 간청하는 듯한 작곡을 했다. 그리고 제2혼 주자가 촛불을 끄고 퇴장하고, 조금 후에는 플루트 주자가, 이어서 제1혼, 오보에, 현악기군들이 차례 차례 촛불을 끄고 퇴장한다. 마지막에는 바이얼린 둘 만 남고, 또 바이얼린 하나가 퇴장하고 다른 하나만 남는다. 이 음악을 듣고 나서 공작은 마음을 바꾸고 악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빈 신년 음악회는 비너 필하모니커(빈 필) 특유의 유려한 현악기군이 리드하는 세련되고 격조 높은 연주뿐 아니라, 지휘자 또한 시청자를 의식하여 엔터테이너다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말 없는 연기라고 할까. BBC의 해설가는 ‘판토마임'이라고까지 칭한다. 파파 하이든의 작곡 의도와는 달리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빈 필의 연주는 헤어짐의 아쉬움과 무거운 느낌보다 신년 축하 컨서트 분위기의 익살스러운 흥겨움이 느껴지지만 바렌보임의 '판토마임 연기’는 색다른 흥취를 더해 준다.

서론이 쓸데없이 길었지만, 이제 유머러스한 바렌보임의 연기를 곁들여 빈 필의 ‘고별’ 교향곡 4악장을 들어 보자.
  http://www.youtube.com/watch?v=uICvLchS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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