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우먼’과 잉카리의 신화 (Sacseaman and Inca Rey) |
삭사 우아만 Sacsayhuaman 사진Yunice |
사다리꼴 문, Trapezoidal doorway |
태양의 나라답게 둥근 꼬스코 광장에서 사방으로 뻗은 땅, 타완틴 수유의 동북쪽을 지키는 잉카인의 요새 겸 농사와 천문현상에 따라 김 매기, 첫 비, 추수감사, 춘분과 하지 등의 제례의식 터였던 엄청나게 높은 이 요새가 꼬스코 시내를 굽어보며 우뚝 서 있다. 마치 서울의 삼청동 산에 올라 남산까지 펼쳐진 장안 일대를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요새를 삼층으로 쌓아 올린 구들장 모양의 바위와 바위 틈새엔 면도날도 안 들어갈 만큼 정교했고, 마추피추에서 신전으로 들어가는 사다리꼴 돌문과 똑같이 생긴 통로가 한 켠에 버티고 서 있다. 12모퉁잇돌로 받치고 있는 한 개의 큰 돌 ‘Sacswain’은 사람들의 힘이 아닌 이 나라의 수많은 요정들이 손을 모아 만든 작품 같아 아직도 불가사의한 석축구조이다.
이 바위 앞에서 태양신에게 산 제물로 받쳐질 운명의 ‘섹시우먼’도 마추피추의 아크야로 봉사하려고 이 바위 앞에서 기다렸으리라.
잉카의 중심, 우주의 배꼽이라 자칭하며 퓨마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꼬스코에서 리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걸려있는 황금 빛나는 잉카황제의 면직물 그림을 보면서, 안데스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잉카리(Inca Rey)의 신화가 생각났다.
잉카리는 잉카제국의 왕을 말한다. 이 제국은 신화의 나라이다. 안데스 역사 자체가 잉카리 신화라고 보는 터너 같은 학자도 있다. 신화가 형성되는 배경의 역사는 간단치 않다. 그들에게 문자가 없었으므로 구전하는 신화가 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고, 면직물 타피스리 위에 남긴 그림으로 짐작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겐 티티카카 호수 위로 떠오른 첫 잉카왕 망코 까빡과 그의 누이며 부인인 마마오꾜와의 근친혼인으로 탄생하는 창조신화, 성스런 혼인신화가 있다. 뿐만 아니라 1565년 전후로 히스파냐 정부의 손에 참수된 잉카리, 뚜빡 아마루의 충격적인 죽음이 정치·사회적인 운동으로 이어지고 원주민 저항운동으로 거듭나는 영웅신화 등을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 히스파니아 시대 이래로 가톨릭교회와 그들의 신화를 역사적 현실로 받아 들여 뚜빡 아마루 등의 잉카리가 구원자로 재림하는 부활사상의 염원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현상으로 발전했다.
다시 말해, 안데스 전통종교로 돌아가려는 염원, 즉 안데스인들이 신령하게 생각하고 숭배한 와까(huaca)에의 복귀운동이 토착종교로 굳어지면서 잉카제국 창건 1천 년 이후엔 잉카의 재림이 성취되리란 사조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성체절엔 검은 그리스도상 밑에 그들의 조상을 상징하는 미라 조각상을 모시고 사흘 동안 교회종소리 들으며 행진한 다음, 먹고 마시며 노래와 춤을 즐긴다. 부활절엔 무거운 십자가를 여러 장정이 지고 그 위에 검은 예수조각상을 앉히고, 기독교전통 제례로 바치는 어린양 대신에 돼지를 잡아끌고 가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장 절실하게 역사의 뒤안길에서 기다리는 민족은 바로 이 옛 잉카제국이 아닐까 여기면서, 잉카의 옛 수도 꼬스코에서 페루의 새 도읍인 리마로 날아갔다. 다음에 또 한 번 페루의 하늘을 나른다면, 페루 남부해안의 나스카 계곡에 그려진 신비한 지상화(-동물, 사다리꼴,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물의 흐름을 알리는 듯한 원숭이 등의 동물형태로 누가 언제 그렸는지 모르는 신비한 그림들)를 내려다 보리라.
‘천 년을 하루같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기독교의 시공사상처럼, 잉티의 재림을 기다리는 삭사사우아만의 모습에서 그들과 나의 영혼이 흔들림 없이 설 요새가 보이는 듯했다.
발행일 : 2009.11.02 기사발췌 : http://www.koreatimes.net/?mid=kt_opinion&category=44964&document_srl=48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