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6월6일 노르만디 상륙작전
원수 프리츠 에리히 폰 만슈타인
상급대장 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
67년 전 오늘(6/6) 프랑스 북서부 노르만디 해안의 다섯 해변에서는 문자 그대로 '지상 최대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연합군은 이날 하루에만 항공기 1만3천대, 함정 6000척을 동원해 7개 사단 병력을 상륙시켰다. 미군이 담당했던 오마하 해변 전투에서, 상륙 당일에만 24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장면은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상륙 후 첫 3주 동안 연합군의 손실은 사망자 8975 명, 부상자 5만 명에 이르렀고, 상륙 후 76일간 이어진 노르만디 전투에서 연합군은 21만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이 중 3만7천 명은 전사했다. (동아일보 김희경기자의 '책갈피 속의 오늘'에서 요약)
제2차세계대전의 향방을 갈라 놓은 이 작전에서 독일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사상자가 얼마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역사학자나 매스컴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일반인도 관심 조차 갖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행/불행에 대해, ‘운’이라고 말을 한다. 마음에 드는 부모를 골라 세상에 나올 수 없듯이,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 역시 군통수권자와 조국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노릇이다. 미래의 패전국이자 전범국의 국민으로 태어나 직업 군인으로 성장했다면, 이 보다 더 불운한 일은 없을 것이다.
밀리터리 매니아 아들을 둔 덕분에, 읽고 싶다는 책을 선물로 사 갖고 있다가 먼저 읽어 보는 기회가 있었다. 주로 군사/전사물을 내는 플래닛미디어에서 출간한 ‘히틀러의 장군들’이란 책이다. 저자는 현역 군인도 전직 군인도 아닌 무역학을 전공한 평범한 회사원 출신의 戰史 평론가이다. 군사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없는 약력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꽤 알차고 재미있어 소개해 본다.
20세기 인류의 최대 비극이었던 양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그 진행 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승전국의 입장과 관점에 근거한 서술이고, 특히 2차대전사는 승전국 지휘관의 일방적 서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틀러의 장군들’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일반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서 벨사이유조약으로 철저하게 약화된 독일 국방군의 재건 과정, 2차대전 당시 독일군수뇌부 그리고 주요한 야전지휘관들의 활약상과 히틀러와의 갈등 그리고 파멸 과정을 장군들의 열전 형식을 빌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당시 독일 장군이라면 롬멜 밖에 모르는 필자 같은 문외한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동시에 저자의 매끈한 글솜씨는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유능하면서 히틀러에게 충실했던 장군들, 유능하지만 히틀러에게 충실하지 않았던 장군들, 무능하지만 히틀러에 충실했던 장군들 – 저자 덕분에 우리는 갖가지 모습의 장군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과연 전장이라는 역사의 무대에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리고 독일은 어떻게 유럽 제패의 야망에서 패자로 전락했는지. 히틀러와 스탈린은 똑 같은 악마적 인물이지만, 저자는 전쟁 초기와 후기에서 보인 이 둘의 차이점을 거듭 강조한다. 시간이 갈수록 군수뇌부에 대한 간섭이 점점 심해지고 히스테리컬해지는 히틀러와, 이와는 반대로 개전 초기에 독선적이다가 차츰 군수뇌부에 모든 걸 일임하는 스탈린. 그리고 전쟁을 긴 안목과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대신, 동료와 비협조적이고 이기적인 작전으로 국지적인 전투에 열중하는 지휘관과 이와 달리 지휘계통을 지키면서 동료에 대한 이해심과 부하에 대한 포용력을 갖춘 지휘관 등. 특히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당시 파울루스가 지휘하는 30만에 달하는 제6군을 구하러 근처까지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달려간 만슈타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사수 명령만 맹목적으로 따르고 탈출을 거부하다가 20 여만 명의 부하를 잃은 뒤 9만 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항복한 파울루스 - 이 책에서 독립된 챕터로 소개되지는 않지만,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로 독소전의 향방을 소련 쪽으로 돌려놓은 그의 실책은 만슈타인, 클라이스트, 구데리안, 호트 등 유능한 지휘관들의 능력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총동원 능력의 칠팔십 퍼센트에 달하는 인적/물적 자원을 동부전선에 쏟아 부은 독일의 패전 원인이 꼭 이런 데 있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성공과 실패를 가져온 이들의 리더쉽은 오늘의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교훈으로 받아 들일만한 대목이다. 또한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초강대국에 둘러 싸여 있고,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집단의 위협을 항상 경계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역사에서 ‘만약’이란 단어는 전혀 쓸데 없는 무의미한 말이라고 하지만, 만약 당시 상황이 다음과 같았다면 1차 대전 이후의 유럽 역사는 과연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1. 이 책에서 소개한 유능한 지휘관들이 독일에 없었다면,
2. 히틀러가 독일군수뇌부에 불필요한 간섭을 자제했다면,
3. 독일 국민이 히틀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4. 프랑스를 비롯한 승전국이 독일에게 굴욕스러운 무리한 배상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저자는 기갑부대와 기갑전, 전격전의 선구자였던 만슈타인과 구데리안의 열성팬인 듯싶다. 열 명의 장군들 중, 이들에게 할애한 페이지 수와 애정 어린 표현을 보아도 그렇고, 이와 대조적으로 서술한 롬멜에 대한 비판도 이를 증명한다. 아래는 이 책의 각 챕터 서두에서 간략하게 요약한 열 명의 독일 장군들에 대한 저자 남도현님의 500자 평이다.
인용
1장. 제국 육군의 마지막 참모총장 - 상급대장 한스 폰 젝트
1차대전 패전 후 그가 독일의 참모총장 자리에 올랐을 때 세계를 호령하던 강력한 제국의 군대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승전국들의 간섭에 갈가리 찢긴 잔해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수동적으로 아침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않고 스스로를 태워가며 불을 밝혔다. 그의 노력 덕에 제국의 군대는 어느덧 세계 최강의 군대로 다시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기초를 놓은 새로운 군대가 침략 전쟁의 선봉이 되리라고 그가 예상했는지,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의 노력은 새로운 전쟁을 잉태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그의 노력을 부정적으로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히 새로운 시대를 연 창조적인 인물이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물,
2장. 미워했던 히틀러의 영광을 이끈 참모총장 - 상급대장 프란츠 리터 할더
독일 군부가 서서히 정치에 예속되어가는 조짐을 보이던 혼란의 시기에 그가 독일 육군 참모총장이 된 것은 어쩌면 우연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그 자리를 간절히 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오를 수 없는 그 자리에 그는 올랐고, 바로 그때부터 사상 최대의 전쟁인 2차대전을 최고의 자리에서 조율했다. 그는 소신껏 계획하고 실천하려 했지만, 그를 참모총장으로 만든 권력은 결코 그를 내려두지 않았다. 그는 꼭두각시가 되려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는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싶어 했다. 참모총장이라는 가장 힘이 있는 자리에 있었으나 그 힘을 쓸 수 없었던 인물,
3장. 제3제국의 영원한 원수 - 원수 칼 루돌프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그는 이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히틀러에 의해 강제로 군복을 벗었지만, 즉시 일선 부대의 최고 수장으로 복귀하여 2차대전 내내 야전에서 보낸 인물이다. 그는 독일 군부의 최고 원로로 프로이센군의 전통과 가치를 숭상하여 부하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은 반면, 히틀러와 나치 정권과는 관계가 좋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야전을 누비고 다니며 놀라운 승리를 이끌어낸 주역인데도 툭하면 타의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리고 또 그때마다 얼마 가지 않아 현역으로 다시 복귀해 최고 지휘관으로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히틀러 정권 하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수 차례 등락을 거듭하며 최고 자리에서 2차대전을 지휘한 인물,
4장.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간 허수아비 - 원수 빌헬름 보데빈 구스타프 카이텔
새롭게 재건된 국방군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국방군최고사령부는 시간이 갈수록 행정, 정책, 지휘, 그 어떠한 기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문제는 국방군최고사령부라는 조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었고, 예외 없이 그 문제의 핵심에는 안하무인 히틀러와 히틀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국방군 총사령관이었던 그가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만 실권이 없었고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갔던 인물,
5장. 잃어버린 승자 - 원수 프리츠 에리히 폰 만슈타인
평시에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못한 군인은 전시에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는 명장이 되기 위한 준비가 완료된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할 만큼 뼛속까지 타고난 군인이었던 그는 인류의 최대 고통이었던 2차대전이 벌어지자 그를 알고 있던 모든 이들의 예상처럼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역사상 최고로 평가받는 기동전의 대가이자 뛰어난 전략가였던 인물, 2차대전 당시 연합국과 추축국 모두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이라고 손꼽히는 인물,
6장. 기갑부대의 영원한 맹장 - 원수 파울 루드비히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그는 히틀러와 나치를 좋아하지 않았고 자기 이름으로 창설된 세계 최초의 야전군급 기갑부대를 지휘하여 승리를 이끌어냈으면서도 롬멜처럼 선전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했을 만큼 겸손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사에 자주 등장하면서도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독일이 전 유럽을 석권하여 팽창하고 있을 때 그처럼 맹활약한 장군도 드물다. 야전군 규모의 기갑부대를 최초로 지휘하여 전격전의 신화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고 이후 기갑부대의 숨어 있는 명장 반열에 오른 인물.
7장. 기갑부대의 아버지 - 상급대장 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
아버지라는 의미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인물을 의미하는 은유적인 단어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듯 하다. 그 이전에도 철학이 있었고 음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 불린 탈레스나 바흐처럼 ‘기갑부대의 아버지'로 불린 그도 100여 년 전에 현대적 의미의 전차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 관여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기갑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 분야의 최고 인물로 꼽히는데 전혀 어색하지 낳을 만큼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새로운 사상을 개척한 선구자로서 아버지의 호칭을 뛰어넘어 기갑부대의 모든 것을 완성한 독보적인 인물.
8장. 병사들의 아버지로 불린 장군 - 상급대장 헤르만 호트
영화에 등장하는 조연 배우도 주연 배우 못지 않게 중요하다. 영화가 살아나도록 감칠 맛 나는 연기를 펼치는 뛰어난 조연 배우는 그야말로 영화 속의 숨은 진주다. 전쟁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주연과 조연이 있다. 제2차세계대전 같은 거대한 전쟁에서 일선의 병사들은 엑스트라에 해당했고, 장군들은 주연이나 조연을 맡았다. 그러나 주연을 맡은 장군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당대 최강을 자랑하던 제3기갑군과 제4기갑군을 연이어 맡아 전선을 누볐지만 전사에는 조역으로 주로 등장한다. 그 이유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겸손함 때문이었다. 동료 장군들로부터는 무한한 신뢰를 한 몸에 받았고, 병사들로부터는 아빠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부하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려 했다. 전쟁 내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지만, 누구나 신뢰하고 사랑한 인물.
9장. 총통의 소방수 - 원수 오토 모리츠 발터 모델
그 역시 결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최대 결점은 히틀러의 맹목적인 추종자였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장군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의든 타의든 간에 침략자의 수하였다는 점이다. 나치 독일은 분명히 침략자였고 부인할 수 없는 악이었기 때문에 설령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이런 멍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히틀러의 추종자였다면 아무리 뛰어난 장군이었더라도 일단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허지만 그런 흠결에도 불구하고 전쟁터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준 장군임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히틀러의 추종자였다는 이유로 무조건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
10장. 영웅이 되고자 했던 야심가 - 원수 에르빈 요하네스 오이겐 롬멜
미리터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들도 아는 유일한 독일 장군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그는 현재 많이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그 명성 만큼이나 위대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대에 그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 중에는 그를 미워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흔히 잘난 이에 대한 부족한 사람들의 질시로 보기도 하지만, 전사의 한두 페이지를 살펴보면 단지 그를 질시해서 미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를 미워했던 이유는 그가 위대한 명성을 얻는 과정에서 독일이 잃은 것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장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짐이 되어 독일군 전체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 사이에 발생한 약간의 시차 때문에 그의 단점이 그 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영웅이 되고자 했고, 나치에 의해 영웅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그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남과 융화하지 못하고 이단아로 행동했던 흥미로운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