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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北洞비들기는 벌써 떠나버렸어도.... - 6월초하루 멋스러운 文化散策 싱그럽게 욱진 新綠이 푸르름을 한껏 더해가는 초여름의 토요일낮을 나는 澗松美術館을 찾아 마침 열리고 있는 山水畵와 人物畵의 名品展을 감상하고 불운의 작가 尙墟 李泰俊의 고택을 개조한 분위기있는 찻집 壽峴山房의 問香齊에서 미숫가루차를 들며 땀을 식혔다. 이만하면 신록의 6월을 제법 운치잇고 격조높게게 맞은 셈이다. 안동산우회홈페이지게시판에 朴정음집사가 澗松美術館서 볼만한 고화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니 놓치지 망라는 권고와 함께 澗松美術館에 들르면서 미리 전화연락을 하면 근처의 분위기있는 찻집에서 차한잔을 대접하겠다는 글을 올렸기에 그대로 지나칠수 없어 6월의 초하룻날인 토요일아침 일찌감치 위치를 물어 澗松美術館을 찾았다. 그러지 않아도 며칠전 澗松美術館의 학예실장이 TV에서 특별전을 소개하는 것을 귓전으로 흘려 들으면서 한번 둘러보아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하고 있던 터였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三仙橋驛에서 내려 다시 85번 시내버스를 타라는 설명을 들었으나 왕년의 고급별장지대가 그동안 어떨게 변모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생각으로 城北洞길을 느긋하게 걸어 갔다. 三仙橋驛에서 澗松美術館까지는 시내버스3정거장거리이니 족히 1km는 넘는 거리인데 그처럼 호젓했던 城北洞길은 너무도 번잡한 거리로 바뀌어 있었다. 세속적으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쓸어졌던 시인 金珖燮이 風光좋고 空氣맑은 城北洞자택에 칩거하여 투병하면서 쓴 再起의 名作詩가 <城北洞 비들기>였다. <城北洞 비들기>로 연상되는 城北洞길의 호젓했던 분위기는 이미 20여년전 城北川이 복개되면서 산산히 깨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城北川이 복개된 한참뒤에 까지도 城北洞길은 오가는 차가 드물어 구길을 차량전용도로로 쓰고 城北川복개로는 구길과는 떨어져 주차장으로 이용되었는데 이제는 구길과 복개로를 합쳐 6차선도로로 넓혔으며 길복판은 분리구역을 만들고 그위에 가로수까지 심었다. 길의 폭이 거의 3배나 넓어졌지만 성북동길은 오가는 차량으로 도심의 간선도로나 다름없이 붐볐고 길양옆은 낮게는 3∼4층, 높은 것은 7∼8층의 신축건물들이 늘어섰고 건물마다 상점들로 북적댔다. 한적했던 주택가는 번잡한 住商複合地域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경사진 언덕길에도 多世帶住宅들이 키자랑을 했으며 등성에는 아파트가 늘어섰다. 이제 城北洞비들기는 벌써 오래전에 어디론가로 떠나버려 둥지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城北洞은 몇년사이 크게 변화했다. 그래도 산자락에서 내려부는 바람은 싱그러웠고 여기저기 수림의 푸르름이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듯 했다. 澗松 全灐弼(1906∼1962)의 저택이었던 澗松美術館은 어렴풋이 위치만 짐작했을뿐 처음 찾았으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큰길서 얼마쯤 들어서서 비스듬한 언덕받이에 자리한 澗松美術館은 전시실과 살림채 정원 숲등을 합치면 수천평은 족히 넘어 보였다. 만석꾼 대지주의 상속자였던 澗松은 일찌기 전통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여 미술품과 골동품의 수집에 거금을 아낌없이 투척함으로 개화기에 물려받은 유산을 헛되히 낭비하지 않은 典範으로 꼽히는 한편 국내 굴지의 美術品蒐集家로 평가받았으며 日帝强占期와 光復後의 混亂期에 귀중한 文化遺産의 海外流出을 막은 공로자로 인정받고 있다. 澗松美術館은 그의 사후 후손들이 遺志를 받들어 세운 美術館으로 국내최초의 民營美術館이며 수장품의 질과 가치로서는 國立博物館과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城北洞에 사는 巨富이자 美術品收藏家로서 澗松의 명성을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익히 들었고 아버님은 그의 귀중품수집에 있어 상당한 諮問役割을 맡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澗松美術館은 해마다 春秋로 收藏品을 순환전시하며 애호가들에게 무료로 공개하는데 이번 춘계전시는 澗松他界40周忌를 기념하는 人物ㆍ山水畵名品展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전시관은 정문을 들어서자 곧바로 오른편에 낮으먁한 2층건물이었으며 안채와 정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는데 토요일오전인 탓인지 견학온 남녀고교생으로 어귀부터 빼곡했고 전시실도 몹씨 북적거리고 어수선하여 차분히 명품을 감상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학생들은 미술교사인 듯 싶은 인솔자의 설명을 듣느라고 전시작품과 진열대에 주변을 에워싸다 싶이 하고 시끌벅쩍하게 떠들어 댔다. 어쩔 수없이 그 틈새를 헤치며 1∼2층의 전시실을 둘러 보아야 했는데 전시작품은 듣던대로 놀랍기만 했다. 謙齊 鄭敾의 眞景山水, 檀園 金弘道의 人物畵, 玄齊 沈師正의 풍속도 그 외 有春 李寅文, 栢谷 金得臣, 蕙園 申潤福, 崔北등 모두 韓國繪 史의 전통을 연면히 이어온 名匠들의 진품들이니... 한두점만 갖고 있어도 끔찍한 家寶라고 애지중지할 名品들이 이렇게 즐비하게 있는 것이 놀랍고 부럽기만 했다. 謙齊의 眞景山水는 金剛山의 풍광뛰어난 곳곳과 松坡 廣津등 漢水周邊沿岸과 漢陽의 옛모습을 실감나게 담고 있었다. 檀園의 人物畵와 風俗圖도 정교하고 세밀하고 화사하면서 높은 품격을 보여주었다. 전시장서 인기를 모은 것은 단연 蕙園 申潤福의 風俗畵였다. 시냇가서 빨래하는 주부를 겁탈하고 이웃노파의 몽둥이를 피해 달아나는 破戒僧의 모습이 담겨 있는가 하면 色酒街서 거나하게 취한 선비들과 妓女들이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도 있고 시원한 냇가서 妓女를 불러 風樂을 울리며 노니는 閑良들, 통행금지를 어기고 야심한밤에 주막을 찾는 건달패들의 행각등등 蕙園 申潤福의 화필은 종횡무진으로거침없고 익살스럽게 휘갈겨 나갔다. 蕙園의 風流趣味는 영화 醉畵仙의 주인공 吾園 張承業보다 한수위인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틈에 끼여 너무도 많은 名品을 대하니 그많은 명품을 하나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채로 조금은 얼떨떨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혼자서 전시실을 돌아보노라니 경신고에 재직중인 박정음집사가 틈을 내어 달려와서는 분위기있는 찻집에 가서 머리를 식히고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박집사가 안내한 찻집은 澗松美術館서 三淸터널쪽으로 200m쯤 떨어져 있는 壽峴山莊, 월북작가 尙墟 李泰俊이 월북전까지 살던 韓屋을 수리하여 찻집으로 쓰고 있다는데 바깥반쪽은 도시계획으로 잘려 나간 듯 하고 안마당일부와 안쪽의 반쪽만 남아 있는데 대청마루 건너방 서재를 겸했던 듯 싶은 사랑의 구조는 변함이 없었고 마루장 기둥 대들보등도 그대로였으며 마당한구석 에 파놓은 우물도 옛모습대로이며 우물가에는 우물물을 퍼 올리는 두레박이 한가로히 놓여 있었다. 집주인이 북으로 간뒤 주인을 잃은 집의 운명도 집주인만큼이나 기구하여 제대로 수리도 못한채 이사람 저사람들이 뜨내기처럼 들어 살림을 하다가 수년전에 구조를 그대로 두고 수리하여 수현장방이란 옥호를 붙이고 찻집을 열었다고 한다. 찻집어귀에는 작가 이태준의 문학과 함께 그의 주택이었음을 알려주는 안내문이 음각된 오석비가 성북구청에 의해 세워져 있고 집채앞에는 다시 問香齊라는 목판이 서있는데 問香齊는 아마도 尙墟가 지은 堂號인 모양이다. 건너방에 자리를 잡아 메뉴를 보니 유자차 생강차 모과차 커피에 여러가지 穀茶가 올라 있는데 나머지것은 대체로 4∼5천원이나 곡차만은 1만원이 넘었다. 이름은 穀茶라고 했지만 아마도 알콜도가 상당히 되고 고급스럽게 담근 酒類에 가까운 것인 모양이었다. 제일 아래쪽에는 미숫가루차가 쓰여 있지 않은가. 이런 雰圍氣있는 찻집에서 커피는 걸맛지 않은 것 같고 아직 그리 덥지는 않으나 여름의 초입이고 하니 미숫가루차도 괸찮아 보여 메뉴의 막내둥이를 선택했다. 尙墟 李泰俊은 우리보다는 앞선 세대를 살아간 문인으로 이름만 들었을뿐 만나보지 못한 신문학초기의 문인이다. 文章講話라는 독본을 펴낼 정도로 모범적인 글을 썼고 그의 단편은 소재 구성 표현기법등 어느 면에서나 흠하나 잡을 데가 없어 현대문학사에서는 단편소설의 기법을 완성한 작가라는 평을 들으면서도 남에서 북으로 넘어간 越北作家라는 이유로 해서 상허는 냉전시대에는 문학사에서 제외되었던 불운의 문인이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간신히 解禁되어 이제는 尙墟의 옛집앞에 문학사에서 그의 위상을 알려주는 標石이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尙墟의 월북은 문학사가들에게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30년대에 문단을 시끄럽게 했던 이념논쟁의 와중서 尙墟는 어느편에도 기울지 않고 초연했으며 그의 작품은 이른바 프로문학의 경향파작품으로 분류되지 않고 대표적인 순수문학작품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던 尙墟가 광복후 돌연 左向左하여 좌파문인과 행동을 같이하더니 끝내는 6.25전에 自進越北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日帝時代부터 서울서 활동하여온 그의 越北은 그로서는 가장 극단적인 결단이어서 그와 교류했던 주변의 문인들이 한마디로 경악했다는 것이다. . 越北한 尙墟는 越北文人중 문학적 업적으로는 발군의 존재였으나 북에서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하다가 숙청당하여 말년에는 咸北地方의 벽지서 출판사인지 신문사인지 하는 데서 校正員으로 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문학업적이나 문학사적 위상으로 미루어 보면 그의 말년은 너무도 처참하고 굴욕적이었다고 판단된다. 尙墟가 분단상황서 예상을 뒤엎고 左向左를 하지 않은채 그대로 초연한 자세를 취하며 남에 남아 있었다면 원로문인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을 텐데 문슨 연유에선가 스스로의 결단으로 비운과 수난의 길을 걷고야 만것이다.. 尙墟가 의문투성이의 북행길을 택한지 반세기도 더 지나서 그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후인이 그의 옛 거처를 찾아 미숫가루차로 땀을 식히며 알길없는 옛일을 이리저리 유추하는 것도 어찌보면 分斷과 離散이 빚은 아픔이며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朴집사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면 수업시간을 빼먹을수도 있을 것 같아 韓果까지 곁들여 나온 미숫가루차를 서둘러 들고 壽峴山莊을 나왔는데 城北洞에는 또한분의 불운했던 문인 萬海 韓龍雲의 옛주택이 尙墟家에서 三淸터널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다 자리하고 있으나 萬海古宅探訪은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三仙橋電鐵驛까지는 한참 내려 가야 하니 시내버스로 이용하라는 朴집사의 권고를 받았지만 비들기가 모두 떠나버렸다고는 해도 왠지 城北洞길을 걸어보고싶어 휘적휘적 걸어 내려왔다.. 그래도 城北洞길은 都心幹線道路의 인도와는 달리 어딘가 情感이 있었고 6월을 맞는 초하룻날의 낮시간이 意味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집방향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澗松美術館의 山水 人物畵名品特別展의 관람을 권할 생각으,로 글을 구상했으나 名品特別展은 내가 관람한 다음날인 2일로 끝나 버려 비들기떠난 城北洞紀行文으로 끝나버렸읍니다다. 관람하지 못한 분에게는 못내 아쉽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尙墟古宅의 분위기있는 찻집은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위치는 城北洞 德壽敎會에서 길을 건너 삼청터널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골목어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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