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의 해악(생명의 삶 9.1일/ 민수기 14:1~10/ 묵상 에세이)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한 여정 가운데 종종 불거져 나왔던 문제가 바로 불평이었다.
그들이 터뜨린 악한 것들,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자신들에게 고통을 자져다준 것들, 공동체의 뒷문을 열어주고 악이 들어오도록 했던 죄의 원인은 단 한가지 곧 원망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했던 것이다.
불평은 악한 것이다.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불평은 악하다. 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될지라도 우리의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순간에 더 이상 아름답지도, 총명하지도 않게 된다.
불평하지 않는 것과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분의 길을 보는 것 사이에는 상호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불평이 시작되는 순간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원망이 있으면 하나님의 길도 보이지 않는다. 불평과 원망이 그쳐야 하나님의 길이 보이고 구분의 임재도 느끼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불평이 멈춰지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길이 보여야 원망이 그치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길을 볼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길을 봐야 불평을 멈출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한 여정 가운데 종종 불거져 나왔던 문제가 바로 불평이었다.
그들이 터뜨린 악한 것들,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자신들에게 고통을 자져다준 것들, 공동체의 뒷문을 열어주고 악이 들어오도록 했던 죄의 원인은 단 한가지 곧 원망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했던 것이다.
불평은 악한 것이다.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불평은 악하다. 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될지라도 우리의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순간에 더 이상 아름답지도, 총명하지도 않게 된다.
불평하지 않는 것과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분의 길을 보는 것 사이에는 상호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불평이 시작되는 순간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원망이 있으면 하나님의 길도 보이지 않는다. 불평과 원망이 그쳐야 하나님의 길이 보이고 구분의 임재도 느끼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불평이 멈춰지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길이 보여야 원망이 그치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길을 볼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길을 봐야 불평을 멈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