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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소백산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산행의 시작부터 모진 칼바람으로 우릴 맞으며, 발걸음 내딛는 끝까지 눈의 나라를 벗어날 수 없었던 소백산. 소백의 눈과 바람은 역시 虛名이 아니었으며 덕분에 안동산우회의 겨울 원정 산행은 겨울 산의 情趣를 마음껏 맛보며, 기대했던 소백산의 眞味를 느낀 뿌듯한 산행이었습니다. 구랍(舊臘) 19일 송년 산행을 마치고, 겨울 산행을 계획하면서, 그 후 '겨울 소백산, 純白으로의 초대'글을 사랑방에 올릴 때만 하여도, 한강이 꽁꽁 얼어붙는 이 강추위에 큰 겨울 산에 동참할 분이 너댓 분에 지나지 않을까? 조촐하게 조용히 다녀오면 되리라 예상했었지요. 하지만 신년 첫 주일 예배 후에 이 분 저 분 뜻을 표하시며 훌쩍 열 분이 넘더니, 급기야 출발 당일 날 청량리역에는 예상치 않았던 회원까지 참여하시어 무려 열 여섯 분이라는 大 부대가 되었답니다. 겨울 소백산에 16명이라… 웬만한 산악회의 산행 숫자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대식구의 참여에 기분은 한껏 고무되고 멋진 산행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날인 6일(월), 청량리역에서 풍기행 기차표 15매를 예매하였고, 백화점 식품부에 들러 구매할 음식물을 확인해보니 필요한 물품이 모두 구비되어 있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출발일인 7일(화)에는 1시 40분쯤 청량리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미리 물품을 구입해 놓은 황재금 집사를 지하 식품부에서 만나 간단히 냉면으로 점심을 들고 역 대합실에 들어가니 2시 30분, 벌써 여러분이 자리하고 계시더군요. 오도광 회장님, 이본 장로님, 추영일 장로님, 김동형-이인희 집사님 부부, 김민홍 집사님, 강석인 집사님이 모여 계신 자리에서는 멀리에서부터 즐겁고 화목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인천에서 오신 강석인 집사님은 전혀 가시리라고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부랴부랴 티켓을 한 장 더 구입하려는데 오 회장님께서 "몇 명은 경로 우대 할인이 되는데 …"라고 일러 주십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멤버 중엔 국가가 인정하는 경로증을 소지하신 분들이 세 분이나 계십니다. 어제 승차표를 예매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요. 그만큼 평소에 그 분들이 年歲드셨다는 느낌을 보이지 아니 하셨으니 제 잘못이 아니라고 봐야지요. 경로우대 세 분 덕분에 기차값 8,700원을 환불받았으니 총 회비가 두둑해진 느낌입니다. 잠시 후, 김경호 권사님, 조동훈 前 대장님, 박정음 집사님, 김광영 집사님, 임중규 집사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보태시는데 갑자기 웬 父子의 출현? 윤상구 장로님께서 당신보다 훌쩍 큰 아드님하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십니다. 마치 농구대잔치에서 가드와 센터가 한자리에 선 듯 키의 不協和音 중에서도 핏줄이 갖는 親近感이 참 보기 좋습니다. 반갑게 인사말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출발 5분 전, 각자의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에 오릅니다. 워낙 대식구다 보니 같은 5호 객차이지만 좌석은 세 그룹으로 나뉘게 됩니다. 기차에 오르니 초록색의 무리가 한눈에 가득합니다. 아하! 부대 배치를 위해 수송되는 군인들과 우연히 같은 객차로 여행을 하게 되었군요. 마침 홀로 떨어진 제 좌석 옆자리에도 이제 막 이등병(-) 작대기 하나를 빛나게 달고 있는 앳된 얼굴의 신병이 있습니다. 인사를 하고 말을 나누다 보니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위해 원주 보충대로 가는 중이랍니다. 어려운 훈련소 생활을 수료함에 격려를 하면서도 추운 날씨 전방에서 졸병생활을 시작할 이등병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 옵니다. 더구나 박격포 주특기, 그걸 들고 뛰고할 모습이라니… 우리가 승차한 열차는 안동행 무궁화호 열차입니다. 새로 출고된 듯 아주 훌륭합니다. 선반도 색깔있는 투명 아크릴로 되어 옛 파이프 선반보다 세련되었고, 천장의 조명아래에도 공간을 둔 칸막이가 이어져 특히 어두운 터널 속에서는 은은한 간접 조명으로 괜찮은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모두들 기차여행은 오랜만인 듯 감탄합니다. 중앙선 기차는 예정대로 팔당, 양수, 국수, 양평, 구둔을 지납니다. 통로 건너 김광영 집사님은 "야, 여기가 우리 고등학교 때 여름성경학교 봉사 왔던 무광교회 아니냐?"고 반가워합니다. 가끔 그 때 생각이 날 때마다 역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답답해했었는데 김 집사의 기억에 새삼 30년 전 무왕리로 몸과 마음이 달려가고 그 교회와 마을 모습이 아득히 그려집니다. 양동, 만종을 지나니 기차칸이 술렁입니다. 아, 다음이면 원주역, 군인들이 내릴 역이군요. 어디로 배치받을지 전혀 통보받지 못한 상태라니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까요? "전원, 하차 준비!, 하차 후 5열 종대로 집합!" 인솔자의 작은 구령에 비해 "예!, 알겠습니다!" 신병들의 대답은 턱없이 우렁찹니다. 대한 男兒로서 당당히 자부심을 가져야할까요, 분단국가 젊은이의 슬픈 현실을 안타까워해야 할까요? 진심으로 옆자리 군인에게 건강과 건투를 빌면서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신림, 제천을 지나 5시 18분 또아리굴을 통과하고 나니 차창 밖은 험한 줄기마다 흰눈을 품고 산맥이 이어집니다. 어느새 마음은 격동되기 시작하며 내일의 산행에 대한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단양, 희방사역을 지날 때, 오늘 숙박은 희방사역 모텔인데 왜 안 내릴까 의문이 들 만 합니다. 희방사역에 하차하면 숙소까지 오르막 차도를 따라 30분 정도 힘겹게 걸어야합니다. 재미도 없는 길, 미리 기운도 기분도 빼기는 아깝지요. 한 정거장을 더가서 풍기역에 내리면 우리 기차를 막차로 희방사까지 데려다줄 시내버스가 있답니다. 6시 46분, 풍기역에 내리자 강석인 집사님은 잠시 기다리라 이르고선 바삐 역사를 뛰어 나가십니다. 마침 강 집사님은 고향이 영주라 합니다. 풍기나 소백산하고는 지척이지요. 워낙 이곳에 대해 잘 아실 뿐만 아니라 기차에서도 여러차례 휴대폰 통화를 하시면서 일행을 위해 도움을 주시려고 많은 노력을 하시더군요. 궁금증이 점점 커져갈 무렵, 급히 뛰어 나타나신 강 집사님의 손에는 제법 큰 쇼핑백이 들려 있어 우리에게 기대감을 주었고, 희방사행 버스에 오르자 일일이 나누어주시며 이것이 바로 풍기 특산물 '인삼 절편'임을 알려 주십니다. 미처 씹어보기도 전에 기운이 샘솟는 것 같습니다. 자가용으로 온 것처럼 버스는 우리가 예약한 '모텔 2010' 바로 앞에 데려다 줍니다. 모텔에 들러 방을 둘러보니 여회원들이 쓰실 방도 따스하고, 남회원들이 사용할 큰방에는 예약한대로 주방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들 13명이 억지로 잠은 잔다하더라도 세수나 화장실 사용에는 너무 붐빌 듯, 방 한 개를 추가로 얻었습니다. 모텔 옆 '희망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려 했지만 오늘이 마침 그 집 忌日이라 8시에 영업을 마친다고 합니다. 친절한 모텔 女주인이 전화를 걸더니 인근 식당에서 봉고차가 오더군요. 12인승 봉고차에 16명이 꾸겨 타는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더구나 한 덩치하는 남자들 13명을 포함해서요. 그래도 웃으며 떠들며 식당으로 향합니다. 황재금 집사는 한쪽 히프는 분명 제 넓적다리에 있습니다만 아마도 다른 쪽은 이본 장로님 다리에 얹혀졌을 것입니다. 풍기읍 수철리에 위치한 '신대성식당'은 규모도 크거니와 이 시간에도 제법 손님들이 들고 납니다. 한 쪽 자리에는 우리 16명을 위한 저녁식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지방에는 한우가 유명하다 하더니 테이블에는 고기 주문을 예상한 듯 야채와 고기 소스가 세팅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서울에서부터 불고기를 무려 10근이나 준비해온 터. 주인 아주머니께 여차저차 사정을 설명하고 우리 고기를 대신 구워주기로 섭외를 했습니다. 다른 손님들의 이목도 있기에 주방에서 구워 갖다 주기로 하십니다. 아직까지도 시골의 인심은 참 따스합니다. 더구나 박정음 집사님은 봉고를 운전해 주신 기사님과 속닥속닥 말씀을 나누시더니 내일 아침 모텔에서 죽령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시기로 약속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십니다. 이번 산행을 계획하면서 사실 제일 걱정했던 것이 내일 새벽 죽령까지의 이동이었기에 너무 고마운 얘깁니다. 이로써 걱정도 사라지고 음식은 더욱 맛을 돋웁니다. 주문한 돌솔 비빔밥, 산채 비빔밥이 나오기도 전에 세팅해 놓은 야채들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지고 음식나르는 학생은 분주히 야채를 채워 놓기에 바쁩니다. 기다리던 비빔밥은 따로 나온 된장찌개와 더불어 훌륭한 맛입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데 하물며 이 분위기에서야 더할 나위가 없지요. 모두들 그릇 밑바닥을 보이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강 집사님의 고향 친구분이 부러 찾아 오셨습니다. 모텔까지 굳이 태워 주신다기에 봉고차 일행도 편할 겸 친구분 차에 올랐습니다. 고향 분답게 내일 우리 산행코스에 대해 찬 날씨와 칼바람을 걱정하시면서 희방사 연화봉 코스를 권해주십니다. 고맙다며 일행과 상의하겠다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려는데 트렁크에서 상자 하나를 내려놓습니다. 옛날에 보던 나무판자로 만든 큰 상자에는 사과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영주 지방은 사과로도 유명한 고장이지요. 역시 고향 친구는 언제 봐도 반갑고 따뜻한 사이. 강 집사님은 참 좋겠습니다. 이런 고향과 이런 친구분들을 오늘 만날 수 있으니까요. 사과상자를 들고 모텔 큰 방에 다 모였습니다. 내일 일정에 대해 강 집사님 친구분의 말씀과 더불어 조 대장님, 임중규 집사님의 과거 산행경험을 같이 소개하였더니 일행들 모두 원래 계획대로 죽령 코스로 강행하자 하십니다. 의견의 일치도 보았겠다, 여러분들이 깎아 내어놓으신 사과는 정말 아삭거립니다. 따뜻한 방바닥에 둘러앉아 상큼하고 시원하며 단 겨울 사과를 먹으며 나누는 삶의 진솔한 이야기, 이야기들. 겨울밤은 점점 깊어만 갑니다. 아, 이럴 때 밤하늘에 한껏 눈송이라도 퍼부었으면…. 찬 공기가 그리워 나와 본 밤하늘엔 눈송이 대신 美人의 눈썹 같은 초닷새 달이 중천에 박혀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다양하게 들리는 콧소리를 들으며 뒤척이던 것도 잠시, 어느새 잠이 들었나본데 "저, 들어가도 되요?" 귀에 익은 여자분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간밤에는 남자회원들이 여회원들에게 "걱정말고 주무세요, 모닝콜은 우리가 해드릴께요" 큰 소리 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이요, 호기에서 나온 말. 어느새 세수까지 마치신 김경호 권사님, 이인희 집사님, 황재금 집사가 아침꺼리를 안고 오셔서 식사준비를 하십니다. 부스스 일어난 남자 회원들은 이불을 개킨다, 양치를 한다, 버너를 켠다, 화장실을 다녀온다 한참 부산스럽습니다. 그 와중에도 여회원 세분은 금방 아침상을 차려 내십니다. 포장된 햇반은 끓는 물에 따스하게 데웠고, 즉석 미역국, 육개장국에 3분 카레도 두 개 덥혔으며 각 회원들이 준비해온 밑반찬을 더하니 웬만한 시골 백반상에 못하지 않습니다. 다른 건 다 슈퍼에서 산 것일지라도 김치만은 황집사가 자부심을 가지고 집의 것을 내어놓았는데 어째 맛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섭섭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한참 남아있는 사과로 디저트를 들고, 커피도 한 잔씩 마십니다. 산행을 위해 사과를 깎아 비닐 봉지에 넣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바람 산, 눈밭을 걸을 것. 모두들 단단히 중무장을 갖춥니다. 매서운 산 추위에선 장갑을 벗기도 쉽지 않은 일, 종아리에는 미리 스패츠를 두릅니다. 이 정도 복장이면 아무리 소백산 칼바람이라해도 견디리라 보입니다. 같이 참여하고 싶어했던 서우석 집사님이 생각납니다. 그간 회사일에 몰두하시느라 산행 경험이 많지 않으셨기에 겨울 산 장비가 우려되어 이번 산행에는 불참하시게 되었지요. 집사님도 무척 아쉬워하셨지만 저희들도 많이 섭섭합니다. 그러고 보니 윤명렬 집사님도 같이 오셨더라면 훨씬 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셨을 텐데 퍽 안타깝습니다. 14km 산행(실제로는 거의 20km)에 자신이 없다하셨지만 사실은 사무실 업무가 바쁘셔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무튼 다음 기회에는 꼭 동참하시기를 기대합니다. 6시 30분, 전날 맛있는 저녁을 주셨던 신대성 식당의 男사장님께서 봉고를 몰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죽령까지 태워 주시기로 한 약속을 지키시려 오신겁니다. 모텔에서 제공해 주시기로 하였던 타이탄 트럭은 대화 착오로 인해 준비가 안 된다니 갑자기 난감해 집니다. 배낭까지 싣고서는 도저히 16명이 봉고에 탈수 없는 일, 염치 불구하고 한 번 더 운행을 부탁해 봅니다. 밤늦게 주방 아주머니들을 댁에까지 모셔드리고 하다보면 매일 잠이 부족하다는 사장님의 말씀도 들은 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지만 애써 사정해 봅니다. 사례를 하겠다며 2만원을 건네 보지만 막무가내로 거절합니다. 이 곳에 오신 손님에게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지, 절대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희로서도 염치가 있지요. 창문 안으로 던져놓고 일진을 먼저 타시게 했습니다. 이 어둔 새벽, 죽령까지 두 번씩이나 왕복 운전하시기가 썩 내키겠습니까만, 우리로서는 한시름 놓게 되었지요. 20 여분 정도 지나 돌아온 봉고차에 나머지 일행들이 타고 굽이굽이 죽령길을 오릅니다. 차로도 한참 걸리는 국도 포장길을 새벽 나절에 걸어 오른다면 참 기운 빠질 일일텐데 식당 사장님 덕분에 호사를 누립니다. 이윽고 죽령매표소 앞,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며 내립니다. 우리를 기다리던 일진 중 윤상구 장로님이 오시더니 사장님이 주셨다며 2만원을 저에게 전합니다. 아, 결국 사례비를 받지 않으셨구나. 정말 마음으로 우리를 도우려 하셨구나. 그분의 순수가 찡하게 가슴에 전해오고, 2만원을 회수하는 제 손이 부끄러워집니다. 진심으로 그 분께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서울에 돌아와 그 식당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안주인 되시는 분이 받으시며 "네, 다음에 오시면 들러주세요" 하십니다. 그 억양으로 보아 절대 장사 속이 아니요, 손님에 대한 친절과 방문객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습니다. 도시인은 왜 그리 하지 못하는 것인가? 도시에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자연을 등지고 산다는 것은 결국 자연의 순수를 잃어버리는 것인가? 잃어버린 순수를 벌충하기 위해 그리도 악착같이 베니스의 상인이 되고 수크루우지 영감이 되려하는가? 전화를 끊고 잠시 그 곳, 그 분들을 그려보았습니다. 7시 10분, 드디어 산행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제2연화봉(蓮花峰)까지는 4.3km. 9시정도에 도착하면 성공입니다. 서서히 발걸음에 시동이 걸릴 무렵, 동녘 하늘에 붉은 해가 돋습니다. 시간은 7시 36분. 癸未년 신년초에 소백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장엄한 일출. 붉은 불덩어리 중심에서부터 찬란한 햇살이 뻗쳐 나오고, 첩첩이 겹쳐진 산봉우리에는 희부연 연무(煙霧)가 깔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한낮의 태양은 눈이 부시어 바라볼 수 없건만 아침 저녁 해는 왜 붉을까? 산에서는 새삼 어릴 적 수준의 사소한 의문들이 생깁니다. 빗물은 투명한데 눈은 왜 흴까? 바라보는 저 봉우리는 아스라한데, 지나와 돌아보면 어느새 와 있지? 8시 08분, 전망대를 지나 중계소를 거처 제2연화봉에 이릅니다. 연화봉 밑 안내판 앞에서 윤상구 장로님이 희색이 만면하며 즐거워하십니다. 안내판 맞은편에 자리한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해결한 것이 무척 색다르고 대견한 모양입니다. 웬만한 남자분들 이라면 산에서는 길에서 조금 벗어나 뒤돌아서서 대충 일보기 마련인데 윤장로님은 참 매너가 좋습니다. 젠틀멘이지요. 윤장로님은 동그란 안경하며 온화하고 깨끗한 얼굴로 해서 간혹 마지막 皇帝 '부의'가 떠올려지곤 합니다. 글쎄요, Last Empire란 말 때문에 실례가 되지않을런지요. 안내판에서 직진하면 바로 제2 연화봉입니다. 9시 10분. 10분 정도 초과되었지만 이 정도면 계획대로 되어간다고 봐야지요. 연화봉에 오르자 유명한 소백산 칼바람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여름이라면 숨도 갈아 앉히고 제법 쉬어갈만한 곳이지만 잠시도 머무를 수 없게 매서운 바람이 몰아칩니다. 예서부터는 급경사 내리막 눈길을 가야하기에 아이젠을 착용해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 장갑을 벗고 우선 황재금 집사부터 아이젠을 끼워줍니다. 간단한 일이지만 맨손으로 하기에 부담스런 추위입니다. 오면서 누가 그랬던가, 남편보고 아이젠 채워달라니까 '당신이 혼자 해' 소리치던 그 남편이 잠시 후 모르는 여자에게 정성껏 끼워주는 모습을 보고 그 부부 싸웠대나 어쨌대나 우스개 소리를 했을 정도로 날은 찹니다. 조 대장님의 온도계는 영하 17도를 가리키는데 체감온도를 감안하면 20도는 훌쩍 넘을 듯 합니다. 임중규 집사님은 워낙 찬 바람에 맨 등산화로 내리막길을 디디다가 할 수 없이 발을 멈춥니다. 봉우리를 어느 정도 내려왔기에 바람이 사라져서 다행입니다. 새로 준비해온 임 집사님의 아이젠은 6핀 짜리에 세라믹 밑판을 댄 신제품으로 X자형으로 끈을 매야합니다. 일단 착용 후에는 벗겨질 염려가 없어 좋겠지만 이런 날씨에서는 한 번 착용하자면 큰맘 먹고 시작해야 합니다. 김광영 집사님도 6핀 짜리 아이젠을 사용하는데 뒤꿈치 지지대를 걸친 후 발등 끈은 스키 부츠처럼 톱니 식으로 되어 있어 착탈이 편합니다. 아이디어가 돋보이더군요. 제 2연화봉에서 천체관측소(소백산천문대)까지는 2.7km. 40분 주파가 목표입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벗어나 좁은 산길을 헤치고 가야합니다. 다행히 앞선 많은 이들이 러셀을 해놓아 凹자 형태로 패인 길을 좇아가면 되지요. 천문대에 이르면 대개가 호기심에서라도 둘러보기 마련인데 역시 혹독한 날씨가 그냥 지나치게 만듭니다. 앞장서신 일행은 바람이 잦아든 아늑한 곳에 잠시 쉼터를 마련해도 좋으련만 동선이 길다보니 선두와 후미가 꽤 차이가 납니다. 평소 오 회장님은 '등산은 항상 후미 기준'임을 강조하시는 분인데 어째 오늘은 출발 때 뵙고는 끝입니다. 결국 하산 후 추영일 장로님께서 한 마디 하셨지요. "아니, 어떻게, 회장님은 종일토록 출발 때 한 번, 점심 먹을 때 한 번, 내려와서 한 번, 세 번 밖에 못 뵈었어요"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며 은근히 추 장로님 편을 들었지요. 오늘 코스에 지나는 봉우리는 각각 제 2연화봉 1357m, 제 1연화봉 1394m, 비로봉 1439.5m입니다. 따라서 제 2연화봉까지만 오르면 거의 평지 수준의 능선길을 수월하게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다른 계절도 아니고 이 한겨울에 이 능선길은 바닥의 눈길과 특히 왼쪽 뺨을 쉬임없이 때리는 서북 찬바람과의 싸움입니다. 손도 왼쪽 손이 더 시렵고, 모자를 썼어도 왼쪽 귀가 시립니다. 맑은 콧물이 계속 훌쩍거리게 만들지만 피차일반 다른 사람이 봐도 별 흉이 되지 않습니다. 능히 헬기가 내릴 만한 편평한 안부를 지나니 제 1연화봉에 오르는 마(磨)의 계단이 나타납니다. 거의 수직같이 보이는 수많은 계단에 미리 기가 질립니다. 수많은 발길에 토사 유출을 막고자 설치한 시설이지요. 하기야 식물이 자라려면 30cm 정도의 흙이 필요하고 토양 1cm가 형성되려면 수많은 시간의 풍화작용이 있어야 할진대 이리해서라도 보존이 된다면 다행이지요. 계단 끝 제 1연화봉까지 쉬지 않고 가리라는 생각은 순전히 희망사항일 뿐, 아무리 오기가 있다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3분의 1도 오르지 않아 모두들 넓직한 나무 층계판 쉼터에 엉덩이를 붙입니다. 잇대놓은 나무판 사이로는 올라온 높이 만큼 깊은 공간이 보입니다. 무심코 앉으려던 이인희 집사님은 틈새로 보인 공간에 "어머나" 깜짝 놀라며 주저 앉습니다. 부군 김동형 집사님은 "아니, 그 틈새로 빠질까봐 그래"하면서 놀리시는데, 황재금 집사 왈 "뭐, 이 집사님은 빠질 만도 하네요"하며 거듭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사님은 두터운 겨울 복장을 하셨으면서도 참 날씬하십니다. 저 몸매로 이따 비로봉 능선 바람에 비틀거리지 않으시려나 짐짓 걱정도 됩니다. 아무래도 산장에 먼저 가서 점심 준비를 해야 되겠기에 혼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직도 한참 남은 나무 계단길,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헤아리며 제 1 연화봉 밑에 다다랐습니다. 모두 342 계단. 행여 잊을세라 억지로 센 계단수입니다. 시간은 10시 50분. 눈을 멀리 들어보니 비로봉 정상이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산의 정상은 우람하게 서서 오야봉 기질을 보이는데 소백산의 정상은 온화한 기품입니다. 조 대장님 말씀대로 참 누나 같은 산입니다. 지리산도 여성적이라지만 아무래도 지리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봐야지요. 비로봉까지는 남은 거리 2.5km. 여기서부터는 오로지 바람을 가슴에 안고 가야합니다. 열난 몸을 식히려 조금 풀어놓은 자켓 안으로 바람이 헤집고 들어와 옷을 부풀게 합니다. 길도 이어지지 못하고 오로지 앞선 사람이 디뎌놓은 눈구덩이를 따라 함정에 빠지듯이 그대로 디디게 됩니다. 눈앞에 빤히 뵈는 비로봉은 좀처럼 다가서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른바 heart break 지점. 이런 경험을 해 보고나면 히말라야 정상을 200m 앞두고 포기해야 했던 산악인이나 finish line을 얼마 앞두고 주저앉은 마라톤 선수들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다행이라면 마지막 코스에 눈을 이고 의연하게 서있는 천년 주목나무들의 모습에서 마지막 힘을 얻게 되지요. 11시 55분. 주목 관리사무소 나무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섭니다. 문은 닫을 필요도 없습니다. "덜컹" 소리와 함께 문은 바람에 절로 닫힙니다. 안에는 선두그룹인 조 대장님, 오 회장님, 강 집사님, 김광영 집사님이 버너에 불을 켜고 불고기를 조리하고 계십니다. 오붓하게 우리편만 있습니다. 버너 하나에 불을 더 피우고 후미그룹 마중을 갑니다. 김광영 집사와 능선길을 되집어 가보니 회원들의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같이 산장에 들어와 막 버너에 음식을 데우려니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명찰을 단 청년들이 버너 사용을 할 수 없다며 제지를 합니다. 할 수 없지요. 국립공원에서 지정 야영장을 제외하고는 화기를 이용한 취사를 할 수 없음을 모르지도 않았던 터라, 아무리 뭐라해도 할 말이 궁색해 집니다. 그 위세에도 박정음 집사님은 직원들에게 다가가 이왕 끓이던 것이니 마저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보아달라고 말해 보십니다. 박 집사님의 인상이 좋아서인지 "빨리 하고 치우세요" 억지 허락을 받습니다. 눈치가 보여 당황스러웠지만 덕분에 불고기에 떡국떡을 넣어 먹을 수 있었고, 누룽지 탕은 푹 끓지는 못했어도 대충 먹을 수 있었습니다. 뒷자리에 물러나 계신 김민홍 집사님과 강석인 집사님은 제대로 맛도 못보시고 컵라면을 드십니다. 워낙 분위기와 공간이 복잡하다보니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여 못내 죄송하였습니다. 이럴 때는 체면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덤비는 것도 필요할 텐데, 김 집사님은 옛 선비의 자세를 보이시며, 차마 예의를 잃을 수는 없지 않느냐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누룽지탕은 조 대장님께서 제안하신 메뉴로써 찬 날씨에 참 어울리는 점심이라고 동감했었지요. 며칠 전부터 집에서 프라이팬에 밥을 펴서 열심히 누룽지를 만들어 가져 왔지만, 감히 이 분위기에서는 푹 끓여 먹을 상황이 아니지요. 그래도 뜨뜻한 숭늉맛과 더불어 추웠던 몸이 많이 풀렸습니다. 다른 산행인들도 속속 도착하여 실내는 점점 복잡합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얼른 점심 자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모읍니다. 당연히 우리가 할 일임을 알고 있는데도 관리소 직원들이 쓰레기 가져가라 윽박지르니 은근히 부아도 오르고 짜증도 나려합니다. 하기야 그들도 공익관리 요원으로 자기 직분이 있기에 매일 이 곳에 올라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지요. 모든 등반객들이 제 것들을 모아 깨끗이 치운다면 이런 볼썽사나운 분위기는 없게 되겠지요. '산에서 가져가는 것은 추억 뿐, 남기는 건 발자국 뿐' 어느 산에선가 본 글귀가 떠오릅니다. 비로봉 정상까지는 불과 2,3백 미터. 조 대장님, 오 회장님, 저만 남고 모두들 맨몸으로 정상에 오릅니다. 예까지 왔으면 꼭 정상에 가봐야겠지요. 기념촬영을 마치고 내려오신 일행들과 하산길에 나섭니다. 시간은 1시 20분. 연화봉 행 삼거리에서 오른쪽 내리막 길로 접어들며 천동계곡 쪽으로 내려섭니다. 오 회장님은 아이젠도 없이 잰걸음으로 앞장서십니다. 한결 여유도 찾았겠다, 어느덧 하산길에는 회원들간에 대화가 이어집니다. 어느 수요산악회원 20여 명이 줄줄이 이 길을 오릅니다. "반갑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산인사를 나눕니다. 어느 아주머니는 "아저씨, 나랑 바꿔요, 내가 내려갈테니 아저씨가 대신 올라가세요" 하십니다. 이 정도 유머를 할 정도면 아직도 기운이 남아있는 분이지요. 2시. 대궐터 야영장에 이르니 간이 매점이 있습니다. 큰 양푼에선 어묵꼬치가 흰 김을 올리고 있지만 뱃속을 채운 뒤라 별로 입맛을 당기지는 못합니다. 주목 관리 사무소에서 점심을 못 드신 등산객들이 버너를 꺼내놓고 음식을 끓입니다. 떳떳하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모습에서 우리도 여기서 점심 먹을 걸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건 배부른 다음의 얘기죠. 새벽에 겨우 1인분 햇반을 두명씩 나누어 먹은터, 배고픔과 힘든 걸 생각하면 어찌 예까지 참을 수 있으리요. 그러고 보니 제 1 연화봉을 오르는 산비탈에서 김동형 집사님이 권해주신 '스니커즈 초콜릿' 맛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추운 날씨에 단단해져 잘라 먹을 수도 없었지만 배고픈 김에 한 입에 넣고 간신히 우물거리는데, 아! 그 달콤하고 향기로운 초콜릿의 맛이라니. 초콜릿 발명한 사람과 자장면 발명한 사람은 노벨상을 줘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2시 50분. 다래넝쿨이란 예쁜 이름을 붙인 쉼터에 이르자 한 가족 무리가 평화롭게 쉬고 있습니다. 3대로 구성된 가족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입니다. 아이는 접시에 조각 낸 빵을 담아 바위 위에 올려놓습니다. 아까도 한 접시 가득 담아 놓았는데 산새가 깨끗이 먹어 치웠답니다. 그렇습니다 이 엄동설한에 배고픈 산짐승이 힘겹게 겨울을 이겨내고 있음을 잠시 잊었었군요. 모든 생명있는 것에 대한 보시(普施),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이겠지요. 아빠는 디지털 카메라에 연신 가족 모습을 담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라 인사를 올리니 할머니께서도 밝은 표정으로 덕담을 해주십니다. 모쪼록 이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산악인 '허영호' 이름이 새겨진 기명바위를 지나 폭포 다리를 지납니다. 이 폭포는 다리를 건너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해서 다리안 폭포라 부른다니 소박한 그 생각에 이름 또한 어울립니다. 북부 관리 사무소 앞 벤치에 이르러 드디어 아이젠을 벗습니다. 하루 종일 애쓰며 주인의 미끄러짐을 막아주었던 고마웠던 아이젠도 이젠 고생 끝입니다. 막상 아이젠을 벗고 보니 발이 날아갈 듯 편합니다. 이제 산행은 끝입니다. 죽령에서 비로봉까지 11.5km, 산행시간 4시간 35분. 비로봉에서 천동까지 6.8km, 산행시간 2시간 20분. 장장 18.3km 雪山을 7시간에 걸친 행군으로 마쳤다니 참 대견합니다. 더구나 우리 산우회의 평균연령이 60세에 리미트할텐데 참 대단한 산우회입니다. 지나가던 어떤 이는 "오늘 날씨는 소백산 날씨가 아니야" 볼멘 소리를 하십니다. 너무 좋은 날씨를 허락하시어 비록 雪花의 장관도 상고대의 영롱함도 맛보지 못했지만 100을 다 채우려 한다면 그것도 욕심입니다. 朝鮮 巨商 임상옥이 평생 곁에 두고 자신을 경계했다는 술잔-가득 채우면 쏟아지고 7부 정도를 채워야 마실 수 있다는 계영배(械影盃?)의 교훈을 새겨봐야 하겠지요. 한알 유스호스텔을 지나 버스 종점에 이르러(3시 59분) 가게 주인 아저씨께 차시간을 물어보니 5시 5분차가 있다합니다. 무려 한 시간이 남았군요. 간단히 요기를 하자는 의견에 이 집 저 집 물어보니 "수도가 얼었다", "지금부터 쌀을 앉히면 드실 시간이 모자르겠다" 상황이 아니군요. 친절하게 알려주신 가게로 돌아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계란을 삶아주실 수 있는가 물었더니 가능하답니다. 음료수와 따뜻한 삶은 계란을 들며 산행 뒤풀이를 합니다. 이본 장로님은 계란을 세 개 째 먹는 저를 보시더니, "김집사, 노른자는 빼고 먹어" 하십니다. 젊은 저의 건강까지 챙겨주시는 장로님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높은 연배에도 불구하고 산행에 나선 장로님의 용기와 건강에 내심 감탄하였었는데, 오늘 힘든 산행에서도 힘든 내색 아니 하시고 멋있는 산사나이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김동형 집사님은 등산화를 벗더니 발을 주무릅니다. 이인희 집사님께서 주인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시더니 쓰던 슬리퍼를 사더군요. 김 집사님 등산화가 겨울 산행에 무척 불편하셨던 모양입니다. 아예 등산화를 못 신겠다며 슬리퍼를 신고 서울 가시겠다 합니다. 불편한 신발은 한 발자국도 걷기 싫게 마련인데 하루 온종일 말 한마디 없으시다가 이제야 속내를 보이시니 참 대단한 인내의 사나이입니다. 두터운 겨울 복장에서도 운동선수 못지 않는 멋진 몸매와 꾹 눌러쓴 모자하며 특수부대 장교같은 너무 멋진 모습입니다. 이본 장로님의 힌트를 받고서 총무로서 발언권을 행사합니다. 여러 참고 말씀과 특산물 선물로 산행을 도와주신 강석인 집사님의 노고에 박수를 치며 감사를 표하고, 연배 높은 회원들의 감투(敢鬪)정신과 놀라운 산행실력에 함성과 함께 힘껏 박수를 쳐드렸습니다. 아울러 오늘의 모임이 세대를 뛰어 넘어20-70 모임이 될 수 있도록 참여한 젊은이 윤일영 군에 대해 큰 박수로 격려를 했습니다. 20대 젊은이가 아빠 윤상구 장로님과 함께 겨울 산의 추억과 父子之情을 나누는 同行.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1박 2일 동안 후배, 후배 부르며 심부름도 많이 시키고, 잠자리도 문간에서 떨며 재웠는데 불평 한마디 없는 참한 젊은이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아빠보다 훨씬 친근감이 가더군요. 이번 주일(12일) 미국으로 떠난다 합니다. 그의 건강과 목표함을 이루도록 기원하며 그의 장도(壯途)를 큰 박수로 격려했습니다. 5시 5분. 단양행 버스에 오릅니다. 버스비는 650원씩입니다. 650 X 16 명은? 계산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산우회에는 '걸어다니는 계산기' 김경호 권사님이 계시니까요. 물어보자 마자 10,400원 재깍 답이 나옵니다. "10,400원 맞지요?" 하며 요금통에 차비를 넣자 기사 아저씨도 놀란 듯 합니다. 단양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동서울터미널 행 버스가 이어집니다. 시간도 2시간 10분밖에 안걸린다니 금상첨화(錦上添花)입니다. 차에 오르자 집에 간다는 안도감에 긴장도 풀리고 나른한 몸에 절로 잠에 취합니다. 정말 온 힘을 다 쏟은 후 맛보는 달콤한 휴식이지요. 잠시 꿀맛같은 꿈나라를 다녀온 듯 한데 어느 새 7시 40분,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하여 우릴 내려줍니다. 같은 코펠에서 밥을 먹고, 한 방에서 같이 자며, 같은 길을 같은 걸음으로 3만 보가 넘도록 마음으로 입으로 대화를 나눈 사이들-안동의 16인과도 헤어짐의 시간입니다. 모두 모두 애쓰고 모두 모두 감사했습니다. 계미년의 신년 원정 산행, 아름다운 추억과 즐거운 산행이 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과 산우회원들 정말 감사합니다. 올 한 해도 멋진 산우회의 아름다운 산행이 되리라 굳게 믿습니다. 할렐루야! 61.99.32.35 추영일: 소백산등반기를 이렇게 정확하게 자세하게 쓰신 김집사님의 글쏨씨 참 놀랍습니다.한장면도 빠짐없이 기술하시다니~너무나 자상하고 세밀한 장문의 등반기를 길이 보존하고 싶어요 [01/13-09:51] 211.186.108.25 윤상구: 정말 멋진 추억거리가 된 산행이었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고 특별히 준비에서 기행문까지 무엇하나 최상이 아닌 것이 없는 우리 산악회 명총 무 김광엽집사님과 다재다능하신 그의 파트너 황재금집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01/13-09:59] 61.74.109.22 flyingrock: 7시간의 산행.김광엽집사의 생생한 등반기를 읽고 아쉬웠으나 아쉬움을 뒤로 하고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읍니다.정말 순간순간이 의미있는 산행임을 알 수 있어요.덕분에 3-4일엔 강원도 주문진에 가서 돌삼치회를 만끽했지요.동양화의 한폭을 보는 듯한 눈경치가 정말 환상이었답니다.다음기회엔 금토일에 갔으면 합니다.안동산우회 화이팅!영원하라! [01/14-09:42] 203.254.240.170 김 기중: 너무좋은 산행을 하신것같습니다. [01/21-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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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한글에서 작업한 내용 복사해서 붙여넣기 file 관리자 2017.09.10 1386
1642 늦가을 산에서 본 들은 비었습니다(36차 산행기, '02.11.16. 토) 5 김광엽 2002.11.19 1279
1641 인체의 신비(한국 순회전), 꼭 가보세요 김광엽 2002.11.25 1320
1640 大統領選擧日 일찌감치 投票마치고 忘年山行합니다. 3 안동산우회 2002.11.28 1056
1639 비바람이 불면 몸을 숙여라 ^^ 박미라 2002.11.30 1028
1638 이믿음 더욱 굳세라... 1 이성길 2002.12.13 920
1637 이스라엘 소식 정연호선교사 2002.12.14 978
1636 <뉴스앤조이>에 오른 안동교회 기사 안동교회 2002.12.19 813
1635 희망을 담뿍 담은 2002 송년 산행(37차 산행기, '02.12.19. 목) 2 김광엽 2002.12.22 1312
1634 크리스마스 사진 몇장 1 3 이종서집사 2002.12.25 981
1633 크리스마스 사진 몇장 2 4 이종서집사 2002.12.25 942
1632 3대tenor의 White Christmas 오도광 2002.12.26 1261
1631 겨울 소백산, 純白으로의 초대 1 김광엽 2002.12.26 1130
1630 이스라엘 소식 82 정연호목사 2002.12.31 1009
1629 謹賀新年 1 오도광 2003.01.01 885
1628 2003년. 羊들의 첫해맞이 1 오도광 2003.01.01 899
1627 새해인사 file 박영달 2003.01.01 882
1626 <Lemon Tree>에 소개된 안동교회 file 관리인 2003.01.08 904
1625 <중앙일보>에 소개된 유경재 목사 file 관리인 2003.01.10 1074
» 小白, 시작부터 바람, 끝까지 雪國(38차 산행기. '03.1.7-8. 화-수) 4 김광엽 2003.01.11 1357
1623 2003年의 첫月例山行은 1월25일 彿巖山으로 갑니다 1 안동산우회 2003.01.12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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