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금요일 십자상의 주님을 묵상하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집 앞 공원을 산책하였습니다.
비가 그친 후라 공기도 무척 맑고 신선했습니다. 목련은 벚꽃과 함께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노랗게 물들었던 개나리꽃도 아름다운 색갈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 파란 잎이 솟아나며 철쭉꽃도 시샘을 하듯 한참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잔디와 풀들도 새살을 드러내며, 나무 잎들도 파란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분주한 모습이 더 없이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이 신비를 하나님의 섭리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참으로 오랜 세월 고난주간을 맞이했지만 특별히 이번에 저에게 주시는 고난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 때에 떠오른 말씀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상에 달린 무명의 두 강도 중 하나님을 두려워(“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하고, 주님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을 고백함으로 온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을 받게 된 한 강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계절을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시고 때를 따라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감사하지도 못하고, 너무나 많은 이기적인 것만 요구하고 또 바라며, 주님의 섬세한 손길과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소명에는 무감각하고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흉악한 강도였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그 순간에 그의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서 저에게도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아니 이 순간순간마다 임마누엘로 함께하시고 목자가 되어 주셔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저의 걸음을 선히 인도해 주시는데, 나는 과연 ‘오늘’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한 날로 고백하며 맞이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진실되게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생명이 있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뿐일 것입니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고, 어제 죽은 자의 ‘오늘’은 그토록 맞고 싶어 하는 ‘오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오늘’이며, 한 걸음 한 걸음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며, 섬김과 봉사, 그리고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는 시간도 ‘오늘’뿐이리라! 그리고 '오늘'이 쌓여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리라!
주님께서 가장 귀한 선물로 주시는 ‘오늘’의 시간, 그 순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힘 입어 내적인 힘과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늘 깨어 있기를 소원합니다. 진정으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놀라운 은총과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바르게 응답해가기를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세기면서, 최요섭 목사님의 ‘오늘을 위한 기도’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 오늘을 보람 있게 살게 해 주소서
조금만 더 욕심을 억제하고
조금만 더 친절한 말을 하고
조금만 더 이름 없이 선행을 하고
조금만 더 유혹을 물리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큰 일이 필요 없습니다.
조금만 나를 죽이면 되겠습니다.
주님 많은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일할 수 있을 만큼의 건강과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만큼의 물질과
고통과 싸울만한 영적 능력과
허물을 고백할 수 있을 만한 용기와
수확 때까지의 인내심과
남에게 작은 도움이 될 만큼의 사랑과
아주 주저 않지 않을 만큼의 믿음을 주소서
오늘 이 하루를 보람 있게 살게 하소서.
아멘
낙원에 있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