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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장례를 치른지 1주일이 지났습니다. 장례를 전후해 이런저런 일로 분주하다 이제 대강의 일을 마무리하고 보니 어머님의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직장에 나서고 들어올 때, 가족예배를 드릴 때, 잠자리에 들 때 마치 어머니가 옆에 계신 듯 합니다. 어머님이 정녕 저희를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사실을 몸으로 인정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어머님 이신영 권사는 기도와 예배가 삶 자체이셨던 분입니다. 매일 4시면 일어나 2시간에 걸쳐 성경보기와 기도를 거르지 않으셨고, 저녁에 가족예배를 마친 뒤에도 1시간씩 성경을 보시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 평생에 가장 뚜렷이 남아있을 어머님의 모습은 새벽에 기도하시던 당신의 그 모습일 겁니다. 어머님은 그 시간 동안 가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머님은 뭐 그렇게 간구하실게 많으시냐?"고 농담조로 여쭈었더니 당신은 그 기도시간도 간구하기에는 너무 짧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의 새벽 기도와 성경보기는 돌아가시기 3~4일 전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폐암으로 몸이 힘들고 호흡이 가쁘셔서 부축 없이는 거동하기가 힘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이면 일어나 당신이 기도하시던 그 책상으로 가셨습니다. 오죽하면 목사님도 몸이 불편할 땐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마시고 누워서 기도해도 괜찮다고 권면해 주셨는데, 그 점에선 목사님의 말씀도 어머님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님은 소천하시기 1달 전부터 집밖 출입이 어려워지셨기 때문에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숨이 차서 그 몇주 전부터 교회를 나가시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머님께 예배 참석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무리해서 예배를 나가신 것이었지요. 예배 참석 후에는 며칠을 끙끙 앓으시기도 했습니다.1달 가량 예배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동안 저희는 인터넷을 통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니터에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 기뻐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선연합니다. 
 
어머님과 함께 드리던 가정예배의 모습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님은 7년전부터 시작된 저희 집 가정예배를 이끄셨습니다. 매일 가정예배 교재에 맞춰 온 가족---가족이래야 어머님, 저, 최소영 집사, 그리고 아들 정한이 이렇게 네 사림이 드리는 것이었지만---이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꾀가 나거나 피곤하면 가정예배를 하루쯤 건너뛰면 어떨까 싶은 때가 적지 않았지만 어머님은 언제나 가정예배를 지키셨지요.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어머님의 저녁일과가 끝나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소천하시기 얼마 전부턴 숨이 차 가족예배에서 찬송을 부르시기 어려워지셨습니다. 저는 그냥 눈으로만 찬송을 부르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님은 알았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찬송이 시작되면 다시 힘껏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힘들하시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 제가 심지어 화를 내기도 했지만 어머님에게 그 터져나오는 찬송은 당신 자신도 어떻게 하실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 가정예배 역시 어머님의 거동이 이미 몹시 불편해지셨던 3일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머님의 십일조를 발견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할 수 없어 드리지 못했지만 어김 없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놓으신 십일조였습니다. 어머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 그리고 교회에 드린 마지막 십일조였습니다. 당신이 남기신 마지막 십일조, 그것이 어머님의 삶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어머님은 경제적으로 그렇게 풍족하셨던 적은 없었지만 언제나 먼저 선교와 나눔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예전에 어려울 때도 선교를 위한 헌금에는 늘 더하기 위해 애쓰셨고, 주변에 어려운 교회나 선교사들을 위한 지원에 힘쓰셨습니다. 먼저 선교와 나눔을 위해 바치고 다음에 생활을 해 나가는 선후의 원칙이 분명한 분이셨지요.
 
목사(이건 목사)의 딸로 태어나 평생을 기도와 찬양으로 사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당신이 그토록 소망하셨던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님이 분명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일꾼"으로 칭찬받으며 아버님과 함께 주님 나라에서 안식과 기쁨을 누릴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 땅에서의 어머님의 눈물을 씻어주시며 두 팔로 환하게 어머니를 안아주실 줄 믿습니다. 어머님은 아마 그 곳에서도 저희 가족과 교회, 이땅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멈추시지 않으시겠죠. 어머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 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편히 쉬세요.
 
상중에 위로와 격려를 주셨던 교회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모든 분들께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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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석 2007.10.05 23:01
    우리 모두 이 권사님을 기억하며 소천하신노 권사님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토록 원하셨던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고 고통으로 힘들어 하신다는 것을 심방을한 아내에게 몇차례 듣고서도 다음에 다음에 라는 마음으로 한번도 찾아뵙지도 못한 것이 장로로서 더욱 죄송하고 아픔을 갖게 됩니다.
    더욱 이 권사님은 몇년전 소천하신 조화순 권사의 모습을 간직한 분이셨습니다. 장로 딸로 태어나신 어머님께서도 본향으로 돌아가실때 까지 성경을 놓치 않으시고 매일 몇 시간씩 교회, 교역자, 여전도회, 가족 등을 위하여 기도를 하시면서 아버지의 노종임을 고백하시던 모습들이 기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권사님과 생존하고 계신 이화자, 이순학 권사님 등 같은 년대의 권사님들과 같이 교회 온 마음을 다하여 교회 사랑을 하셨던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여야 할것입니다.

    이 집사님 이제 이 권사님이 소천하심으로 한 세대가 끝이나고 이 집사님의 자녀들의 세대를 위하여 권사님이 이 집사님 내외분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그 마음으로 간구하는 그러한 신앙인의 생활이 이어질것입니다.

    가족의 슬픔을 같이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앞날을 충실하게 맞을 준비를 하는 시간들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00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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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바울 2007.10.05 23:02
    추모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 글을 쓰시면서 흘리셨을 집사님의 눈물 때문에 더욱 가슴이 메입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저희 아버지께서 권사님이 너희들(에녹, 바울)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셨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감사의 말 한 마디 못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200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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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암 2007.10.05 23:02
    진심으로 이신영권사님의 소천을 기원합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않으시고
    저의 장모님 병안을 걱정하여주시며 안부를 묻곤하시던 이신영권사님의 마음쓰심에 항상 감사 드렸읍니다.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가슴속 깊이
    기도드립니다.아멘. 200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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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주 2007.10.05 23:02
    권사님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우리가족 모두)
    참으로 형언할 수 없습니다. 집사님의 그 효심은(같이 슬퍼)하지 못한 죄
    송구함을 어떻게 표현할지 (마음이 虛 합니다)
    집사님 내외분 특히 최 집사님의 효심 역시 칭찬 할 만 합니다.
    저번에 제 글로써 사죄의 글과 그 허무함을 吐했지만은
    집사님의 글을보고 한 단어가 눈에 띄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전 어머니 소천(임종)을 뵙지 못하였지만 그 징후는 계속 느겼습니다
    비행기 탑승할때 뒤에서 잡아땡기는 느낌과 소천시 그 서광이
    비췰때 전 느꼈습니다. 어머님께서 지금 저를보고 소천을 하시구 있구나
    근데 저도 장례를 마취고 깜작 놀라지 않을수 없었읍니다.
    저를 위해 소형 흰색 유로 액센트를 계약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 저희 형편은 말이 아니였습니다. 간병비+치료비가
    천만원 이상 적게는 600만원 정도 였으니까요?
    그 차를 전 "마지막"선물이라 했지요 권사님의 십일조는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것입니다. 물론 꼭 집너서 말씀드린것이 아니라
    "영원한"그것 즉 권사님의 영원한 "십일조"라는것을 남겨 주신것입니다 200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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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경재 2007.10.29 14:06
    이신영 권사님, 장례를 집례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침 수술 후 퇴원한 뒤라 장례를 최창해 목사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지만, 못내 아쉬었습니다.
    아무쪼록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 이권사님의 믿음이 그 자손들에게 이어져 놀라운 신앙의 열매들이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위로와 평강이 유족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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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옥 2007.10.29 14:07
    생전에 아름다운 모습의 권사님
    그 모습 그 목소리 제게 주신 그 사랑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
    저를 만날때마다 단 한번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쓰다듬어 주시며
    주일 성수 할수 있는 직장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하시던 따뜻한 말씀 제게는 얼마나 부끄러웠던지요
    힘들때마다 기억하겠습니다.

    권사님 이젠 고통과 눈물도 없는 빛나는 그곳에서
    다시 만날때까지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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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란 2007.10.29 14:07
    얘, 영란아! 너를 보면, 엄마(김도신 권사) 생각이 난다. 내가 괜히 엄마더러 수술하라고 권했어---. 너 딸 다미 놓고 기도한다. 걱정마라---. 아버지(정공국 장로) 잘 모셔라---. 어이구, 또 수술했어---.
    생전의 모습과 육성이 생생합니다. 한참은 보고 싶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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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동휘 2007.10.29 14:08
    이호창집사님
    무척 마음이 씁쓸하시지요?
    잠시 권사님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세요.
    속히 마음이 진정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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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덕길 2007.10.29 14:09
    제가 권사님을 처음 뵙게된때는 그러니까 에녹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던해에 가회동집을 사면서였습니다.첫번째 교구장이셨지요.그때부터 지금까지 만나실때마다 제손을 잡아주시면서 에녹 바울 장로님을 꼭챙기시고 물어보셨습니다.사랑만 받고 드리지도못했는데 다시볼수없다 생각하니 너무 슬픔니다.권사님만날때까지 저희가 받은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며 열심히 신앙생활하겠습니다. 마지막 뵈면서도 마지막인것은 생각도 못하고... 몇주 안나오시면서 집사님이 올린 글 인터넷으로 예배드렸다는 글을 읽으면서도 다시 털고 나오시겠지...얼굴 다시 볼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 여러가지가 너무 아쉽고 ..뵙고싶어요....권사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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