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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산우회의 23차, 11월 월례 산행은 성극 '승리의 십자가' 공연이 당초 예정에서 1주일 연기됨에 따라 택일에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문화선교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성극 '승리의 십자가'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고, 교우들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해 주신대로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순수 아마추어로 구성된 교우들의 열정과 준비가 녹아든 배우들의 메시지 전달도 너무 좋았기에 많은 교우들이 한 번 공연으로는 너무 아깝다고도 말씀하시고, 덕분에 별로 도움을 드리지 못한 저같은 사람도 덩달아 칭찬을 받게 되니 얼굴이 뜨뜻해지기도 하였습니다. 10일 성극 공연일을 참작하여 정한 17일 산행일은 길일이었나 봅니다. 산우회의 핵심멤버요, 성극에서 '공장로'역을 훌륭하게 수행하신 강명준 집사님 댁 혼사일이 겹쳐 같은 교우이며 같은 산우회원들로서는 어느 곳을 우선으로 하느냐 문제로 참 난감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 써클 중에 'APORIA'라는 클럽이 있는데 그리스 말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란 뜻이라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산우회원들 입장에선 아포리아를 만난 셈이었지요. 하지만 고수해야할 전통도 있어야하며 연연히 이어지는 전통 속에는 그것을 지키려는 고집이란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산행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지요. 태동된지 2년도 안된 '안동산우회'로서는 끊겨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을 생각 아니할 수 없는 일이지요. 북촌 정기어린 터에 세워져 한 자리에 우뚝 잡은 안동교회 92년의 전통이 어찌 평탄한 대로만의 길이었겠습니까? 역사의 분수령을 여러 차례 겪으며 격랑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주님의 섭리를 이어가려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노고가 있었으며, 변화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도 대를 이어가는 교우들의 충성이 있음이니까요. 여기 저기 미안한 마음을 품고 집합장소인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엔 오도광 회장님과 조동훈 회장님, 권원중 선생님과 제가 시간 맞춰 모였고, 구파발 전철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최예순 집사님까지 다섯 분의 산행은 오붓하게 시작하게 됩니다. 회장님과 대장님은 저와 같은 전통수립의 의무감이 있으셨을 것이고, 권 선생님은 마음먹은 일에는 혼신의 힘을 경주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심 같이 좀처럼 빠지시지 않을 분으로 보입니다. 비교적 자유롭게 자기 생각대로 시간을 낼 수 있는 최 집사님이고 보면 역시 오실 분들은 제대로 모이셨다고 봐야지요. 북한산성 입구를 두어 정류장 지나 산행들머리 효자리골에 이릅니다. 병환 중인 아버지를 위해 매일 문안을 오는 효자 아들을 등에 태워 주었다는 호랑이 전설이 긷든 효자리 골에는 자그마한 시골 음식점 집이 풍경에 어울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담도 없는 그 집을 돌아 바로 산에 오르는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그 댁 식구들로 보이는 서너 분이 텃밭에서 큼지막하게 자란 배추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참 정겨운 모습입니다. 얼마 후 식구들이 모여 담글 김장김치는 할아버지께서 파 놓으실 뒤안 구덩이 독에서 맛깔나게 익을 것이고, 혹 하산 후 들른 산행인들에게 소담스럽게 담겨 집주인의 소박한 인심을 보여주기도 하겠지요. 오늘의 산 걸음은 조촐한 식구에 맞게 적당한 페이스입니다. 알프스 능선을 거쳐 인수봉 백운대 사이 턱을 넘어 우이동으로 하산 할 산행 계획임으로 서둘 필요가 없지요. 낙엽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서둔다면 가을을 모독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정하신 계절의 질서는 산에서 확실하게 보입니다. 불타는 단풍 색은 시간이 지났지만, 색 바랜 마른 단풍잎을 달고 있는 가녀린 나무들은 결코 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로서의 풍만한 임무를 마치고 인생을 달관하며 노후를 아름답게 보내는 老할머니의 여유로움을 보여줍니다. 마른 잎들은 오랜 삶에선 얻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들려주고 있으며, 겨울 눈에 희게 덮일 나뭇가지에는 새롭게 태어날 손주들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시는 사랑이 매달려 있습니다. 물 마른 계곡 길을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오히려 속보로 걸을 때보다 능선에 더 빨리 오른 것 같습니다. 중고등부와 청년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 정재환은 고향이 포항이라 중앙박물관 옆 통의동에 한옥집을 얻어 누나와 같이 살고 있었고, 부모님 눈치를 살펴야 할 젊은 시절 우리들에게 그 친구집은 밤새 놀기에 부담없는 집이었지요. 덩치는 우리보다 한참 크고, 말은 서울내기 우릴 따르지 못해 늘 말로써는 우리에게 눌려지냈던 그 친구. 밤늦어 그 집에 서둘러 가다보면, 듣기 좋은 굵은 목소리로 "광엽아, 천천히 가야 빨리 간다" 한마디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떼처럼 야지를 놓으며 놀려댔었지요. 그래도 "허허" 웃으며 자기가 옳다고 우기던 그 친구 말이 이제 와서야 새삼스럽게 맞게 느껴지는군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 올라도 계절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으로 흘린 땀을 위로해주는 '알프스' 능선은 오늘도 당연히 우리에게 "야-!" 감탄사를 내게 합니다. 계곡을 타고 오른 바람은 벌써 찬 기운이 듬뿍 묻어있어 우릴 오래 서있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 이 코스가 처음이라는 아주머니 두 분과 함께 찬바람을 피해 바람막이 바위 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혹시 절에 다니세요?" 제 질문에 두 분은 교회를 다니신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합석이 이루어집니다. 산에서는 만나는 이 모두가 곧 한 식구가 되지요. 시댁이 가회동이라는 분과 남편이 선생님이시고 자기도 양호 선생님으로 명퇴하셨다는 두 여자분으로서는 회장님과 대장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지요. 초행길 갈 길이 걱정될텐데 베테랑 두 어르신이 인도해주신다면 마음 놓일 밖에요. 오 회장님의 식사 기도에는 두 분을 만난 감사함과 함께 나머지 산행의 안전에 대한 기원도 담겼습니다. 두 분들은 김밥과 사과를 꺼내 놓으시고 우리들은 권 선생님의 땅콩 버터 샌드위치와 제가 가져간 송편과 헤이즐넛 커피를 권해 드렸습니다. 조 대장님께서 삼양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히는 모습을 보시더니 몹시도 부러워하더군요. "그저 날이 추워지면 보온병이 필수적이다. 800cc 더운 물이면 컵라면 하나와 커피 한잔 물이 딱 맞는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앞으로는 자기들도 그리하자고 얘기 나눕니다. 워낙 날이 차다보니 빨리 움직이고 싶습니다. 가회동 시댁 아주머니께서 얇은 옷차림에 추워하시길래 제 자켓을 벗어드리고 저는 여름철 윈드 자켓을 꺼내 입고 장갑까지 착용하고 서둘러 점심자리를 정리합니다. 바로 옆 고래 등같은 거대한 숨은벽은 선등자가 암벽용 등산화로 바꾸고 자일을 감고 오른 후, 확보를 하고 나서야 후등자들이 오를 수 있는 전문 암벽 코스입니다. 더구나 오르면서 보니 구조용 헬기가 세 번이나 출동하였고, 능선 길에서 만난 구조대원들 얘기로는 숨은벽에서 추락 사고가 있었다 하니 만만한 코스가 아니지요. 당연히 우린 오늘의 최대 힘든 코스, 수직 하강 - 수직 등반 루트로 발걸음을 뗍니다. 긴장하며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조 대장님은 눈 덮인 겨울철에 이 코스를 다시 해보자 하십니다. 이런 코스는 "거저 턱주가리가 덜덜덜 떨리는 한 겨울에 와야 제 맛이 난다"고 주장하십니다. 듣는 저희들로서는 은근히 주눅들게 될 말씀입니다. 억지로 하강을 마치고 샘터에서 한 숨 쉬면 정상이 우릴 향해 손짓합니다. 빨리 오르지 않고 뭐하냐고요. 하지만 손에 잡힐 듯 하늘은 뚫려 있는데도 좀처럼 길이 줄지 않는 깔딱 코스지요. 이 코스가 처음인 아주머니들이나 최 집사님 모두 힘들겠지요. 등산길은 코스를 모르면 더 힘든답니다. 몇 번 가본 길은 저기쯤엔 호흡을 가다듬을 자리가 있고, 고 위엔 잠시 걸칠 데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한결 수월하게 느껴지지요. 인수봉 배후 계곡에서 앞으로 넘어가는 마루턱에 거의 올라서면 오른 쪽으로 백운대에 오를 지름길이 있습니다. 물론 호랑이굴을 통과하고 경사급한 암벽을 밧줄에 의지하여 올라서야 하지만요. 호랑이굴은 누가 발견했는지 정말 호랑이가 살았음직 하답니다. 거대한 바위덩이들이 깔리고 얹힌 사이로 사람하나 억지로 몸비틀어 나갈 정도의 틈이 신기하게 있습니다. 제법 북한산을 다녔다는 두 아주머니들은 호기심에 오르고 싶다 하여 제가 안내를 하였지요. 호랑이굴에서는 재미있다며 깔깔 웃으시더니 정작 칠팔십도 경사의 암벽을 오를 때에는 중간에서 발디딜 데가 없다며 매달려 오도 가도 못하는데 참 난감하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팔힘은 빠질 것이고 짐짓 사고라도 날까 이마에 진땀이 배어납니다. 오른 팔 뻗어라 왼발 올려라 욱박지르며 간신히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백운대(836m) 정상까지 안내해 드리고 잰걸음으로 백운산장으로 내려왔습니다. 힘든 코스를 마치시고 잠시 숨을 돌리신 우리 일행의 얼굴은 모두 여유를 되찾아 보입니다. 만경대 뒷벽을 생략하고 바로 도선사 우이동으로 하산하는 길은 수월하지요. 시간도 40여분은 단축될 겁니다. 도선사 밑 고향산천 음식점은 이제는 어느 교회의 수련장으로 탈바꿈되어 신선한 기쁨을 주는데 울타리 안에 서있는 큰 단풍나무는 이제야 새빨갛게 물들어 있습니다. 산소를 담뿍 가진 신선한 혈액처럼 너무도 빨갛습니다. 아마도 제 철에 오르지 못한 뒤늦은 등반객을 위한 홍보 차원에서 보여주는 서비스 같습니다. 넓은 아스팔트 길은 우릴 생활인으로 되돌려 놓아 귀가 시간을 체크하게 하지만, 가는 가을의 끄트머리일망정 그냥은 보낼 수 없어 지난 번에도 들렀던 4층 통유리 집에 자리를 잡습니다. 통유리 밖으로는 멀리 도봉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오봉이 다정스럽게 서 있는 모습하며, 오늘 우리가 지난 봉우리들 - 백운대, 인수봉(810m), 만경대(국망봉, 800m)가 삼각을 이루며 내려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산이 말하더군요. "아니다, 누 천년 전부터 우리들이 인간들을 보아 오고 있었다. 과연 너희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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