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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개선 귀국 신고를 했던 고 정득만 장군의 신앙(안드레명상84-2호) 1972년 당시 월남전을 통해서 세계 전략가들에게 큰 감동을 준 작전중의 하나가 한국 맹호부대의 안케패스작전을 들 수 있다. 월남의 안케패스를 지나는 19번 도로는 군수물자와 차량행렬이 매일 수 백대씩 통행하는 1급의 병참선이다. 문제의 고갯마루에 월맹군 최강의 전투부대인 3사단 12연대가 은밀하게 침투함으로써 19번 도로가 차단되고 말았다. 월남 중심부를 동서로 연결하는 대동맥인 이 19번 도로를 다시 개통시키지 못하면 월남이 동서로 두 조각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군과 한국군의 안전이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월남 해역에 있는 미 해군 함대의 작전까지도 제한을 받게 되는 등 월남전쟁의 운명이 판가름 나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중요한 안케령 19번 도로를 개통시키기 위해서는 윌맹군이 점령하고 있는 638고지를 탈환해야 하는데 이 탈환작전을 한국의 맹호부대 특공대가 담당했다. 대규모 정글로 뒤덮인 안케패스의 고갯마루 능선은 과거월남이 프랑스 식민지로 예속되었을 때 프랑스 1개 여단병력이 전멸 당했던 비극의 험산준령이다. 그만큼 월남전쟁에서 중요한 병참보급로의 심장이요 동맥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이 19번 도로를 빨리 개통시키라는 전통을 보낼 만큼 월남전역의 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러나 작전을 개시한지 10여 일이 지났지만 쌍방간의 전투만 치열했지 진퇴가 없었다. 한편 안케패스 첫날부터 각 연대교회는 작전이 승리할 매까지 기도회를 계속 가졌고 주일이면 정득만 사단장은 새벽5시, 오전 10시, 오후 7시 예배에 각각 참석했으며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전투장병들의 통성기도는 어느 포병부대의 포 사격보다 맹렬했고 그 기도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당시 본국의 정득만 사단장이 출석했던 영락교회 1만 5천명 성도들은 맹호부대 1만 5천명 장병들을 위하여 1대1의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필두로 한국의 전교회가 기도부대가 되어 주월 한국군 장병을 위한 기도운동이 일어났다. 정득만 사단장은 성경책이 눈물에 흠뻑 젖도록 기도를 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우리 맹호부대의 목자 되시는 여호와여 사망의 음침한 안케패스 골짜기에서 우리로 하여금 해 받음을 면케 하소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하시옵소서.' 1972년 4월 24일 새벽 4시 갑자기 짙은 안개가 적의 진지638고지를 뒤덮었다. 바로 이때 사단장의 공격명령이 성난 맹호특공부대에 내려졌다. 전광석화에 태풍이 몰아부친 것같이 또한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성난 표범들이 먹이를 발견하고 질풍처럼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것 같이‥‥‥‥. 이렇게 해서 난공불락의 안케령 638고지는 탈환이 되고 끝까지 저항하던 월맹군은 705구의 시체를 버려둔 채 퇴각함으로써 안케령 19번 도로는 드디어 개통되고 월남전의 숨통이 트여졌다. 뒤이어 오전 11시 안케패스작전의 승전보는 전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정득만 장군에게 격려의 친서를 보냈다. 1972년 대구 비행장에 개선 귀국한 정득만 사단장의 첫 인사말은 '오늘 우리 맹호부대가 개선하기까지 우리 부대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귀국 신고를 드립니다' 라고 했다. 조국과 민족 앞에 드리는 승전보의 첫 귀국 보고의 상대자는 대통령이나 국민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이었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전장에서 바로 하나님이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정장군은 개선 귀국 후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 것을 감사 드리며 둘째는 같이 싸워준 전사자들의 회생이 있었기 때문이며 셋째는 국민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박정희 대통령께서 격려를 해 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개선 귀국이 있었습니다”‥‥‥‥ 정장군의 모든 영광은 항상 하나님이 1순위였다. 그러나 다른 장군들은 당연히 제일 먼저 "대통령 각하의 하해(河海)와 같은 은택으로 무사히 귀국했음을 감사 드립니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정장군의 귀국 인사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자 불만이 많은 사람은 육영수 여사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개선 귀국한 10여명의 장군들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에 초청했는데 칵테일 파티장에서 육영수 여사는 정장군의 부인 김옥희 권사에게 다가와 "남편은 저렇게 말랐는데 남편 대접은 안하고 혼자만 먹느냐"고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 한참 후 이번에는 박대통령이 정장군에게 "내가 과거 육군대학에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당시 교관이었던 정장군 밑에서 내가 교육받았던 일 기억나시오”‥‥‥‥ 정장군 부부는 이날 농담도 진담도 아닌 이상한 말들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것을 보고 앞으로 있을 중장 진급은 물 건너간 것으로 판단했다. 정득만 장군이 월남전에서 탁월한 지휘력을 보인 것에 감동을 받은 대통령이 격려의 친서까지 보냈는데도 그 은혜에 대한 순서를 제일 뒤로 미루었으니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심기가 불편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 당시 어느 군종감이 정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제쳐놓고 어떻게 언론에다 그런 말을 함부로 했느냐고 걱정을 했다. 정장군은 월남에서 사단장으로서 그 흔한 훈장 하나도 못 받았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미국의 포드 대통령이 주한 미 8군 사령관을 통해 미국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을 전달했다. 이에 당황한 우리 정부는 한달 뒤 정장군에게 을지 무공훈장을 수여했는데 이러한 당시의 정황을 보아 정장군이 대통령으로부터 거리가 벌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셈이다. 흔히 개선 장군이 귀국하면 통치권자는 1차로 그 장군을 퇴역시키거나 또는 한직(關職)으로 보내는 것이 세계 전쟁사에 항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채명신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 온 국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귀국, 곧 참모총장이 될 것으로 군대에서는 널리 알려졌고 또 그렇게 믿었는데 결과는 2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날 국방부 회의실에서 문을 박차고 나온 채명신 장군은 매우 분노에 찬 얼굴로 기자회견을 일체 거절하고 차에 올랐다. 한편 정득만 장군은 자신이 예측한대로 소장에서 전역, 1982년 12월 6일 서울 영락교회 장로가 되어 영락교회 50주년 기념 사업회 회장으로 취임, 남은 여생을 교회 봉사에 매진했다. 한편 정장로의 부인 김옥희 권사는 4대째 장로 집안의 따님으로 정득만 청년 장교와 결혼을 했다. 이때 처가에서는 사위될 분이 신앙이 없다는 이유로 혼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정득만은 전방 군인교회에서 급히 학습 세례를 받고서야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에는 결혼을 위해서 교회를 다녔지만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전지 전능한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인간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그는 월남전정을 통해서 철저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정독만 장로와 부인 김옥희 권사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 정성훈 목사가 부산 동래 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특히 숭실대학교 명예교수인 안병욱 교수는 정득만 장로의 따님이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여 며느리가 된 것을 너무나 기쁜 일이라면서 친딸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다. 끝으로 정득만 장로는 1999년 6월 28일 73세로 세상을 떠나기 몇 일전 부인 김옥희 권사에게 유언을 남겼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자란 당신과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일찍 망했을 것이오. 신앙생활 잘 하다가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글 : 김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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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 하나님 말씀(퍼온 글) 김용원 2008.01.22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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