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먼저 허락도 없이 교회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저희 가정의 어려움을 좀 알리고 어떤식으로든지 도움을 받고 싶어서 게시판이라는 지면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충북 청주시에서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주부입니다. 저는 지금의 사랑하는 남편과 6년간의 교제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 후에 저희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자식을 낳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아들이나 딸의 구별없이 태어나는대로 잘 기르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첫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더군요. 외아들인 가정에서 첫아이로 아들이 태어나니까 부모님께서 더없이 기뻐하시더군요. 첫아이가 태어나는 날 남편은 작은 꽃다발을 준비하여 수고한 저를 격려하며 행복해 했습니다. 첫아이의 이름을 많은 궁리 끝에 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의진이라고 짓고 날마다 의진이를 보면서 신기하고 행복했습니다. 의진이가 처음 1개월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2개월되면서 조그만 소리에도 자주 놀라며 우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의원에 가서 상담하니 아이들이 어릴때는 자주 놀라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따주고 청심환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소아과에 가서 상담을 했어도 크면서 나아질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의진이의 놀라며 우는 증상은 더욱더 심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의진이의 우는 것이 얼마나 심했던지 저희는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뜬 눈으로 보내는 날이 많았고 의진이는 저희 배 위에서 재우면 그때만 잠깐 자는 정도였고 하루에도 한의원이며 소아과 등 여러군데의 병원을 다녀야 했고 저희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백일때까지 그렇게 지내다가 종합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기로 결심하고 충북대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피검사, 뇌파검사, MRI촬영 등 여러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며칠 후 검사결과가 좀 않좋게 나왔다고 결과를 보러오라고 하여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가는데 저는 얼마나 마음이 졸이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가 심각한 병에 걸렸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으로 병원에 가서 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 의진이는 태어날 때부터 뇌가 미성숙했고 뇌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지 못하여 자주 놀라게 됐고 또 자주 놀라고 경기를 하여 적게나마 있었던 뇌의 기능도 상실하여 앞으로 정신박약이나 뇌성장애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에게는 청천병력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저희 가정은 눈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의진이의 앞날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가 막막했습니다. 그때부터 의진이의 경기를 하지 않게 하는 약물치료가 시작되었고 어떻게든 의진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구해서 먹여보았고 이런저런 노력을 다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잦은 경기로 인해서 입원도 수시로 했고 면역성이 약해서 병에도 자주 결렸고 눈에 눈섭이 자주 찔려서 안성형 수술도 했고 재활치료도 하는 등 의진이는 다른 정상아이보다 키우는 것이 몇 곱절은 힘들었습니다. 재활치료도 열심히 해 보았지만 나아지는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돌보는 것이 너무 힘에 겨워 재활치료도 거의 하지 못하고 집에서 돌보는 수준입니다. 지금 의진이는 장애가 너무 심하여 혼자서 앉지도 못하고 자신의 의지로 손도 쓰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혼자 두면 무서워하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서 항상 옆에서 사람이 일일이 돌봐주어야 하고 먹는것도 일일이 씹어서 먹이고 있고 매일 항경련제 약을 먹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희에게는 의진이도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다음에는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둘째 아이를 갖는 것이 의진이와 저희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겠다고 권고하시어서 어려운 가운데서 결심을 하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의진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산부인과에서도 철저히 검사를 하며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만실에서 많은 고통 후에 아이가 나왔는데 남자의 성기를 달고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들로 알고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깐 약 1시간 후에 의사가 남편을 불러서 가 보았더니 아이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 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호르몬의 영향으로 성기가 모호하게 된 것 같다며 속히 검사를 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와 산모의 손목에 매어주는 아들을 의미하는 하늘색 띠를 다시 딸을 의미하는 핑크색 띠로 바꿀 때는 정말 마음이 착찹하더군요. 둘째 딸 아이의 이름을 다혜라 짓고 대사질환 검사를 해 보았더니 부신기능이 저하되어 있고 이것을 방치할 경우 쇼크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의 의뢰서를 받아서 다혜를 충남대 신상아실 인큐베이터에 입원시키고 검사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제대로 몸조리 할 겨를도 없이 그 큰 충격과 슬픔을 안고 인큐베이터안에서 온몸에 주사바늘로 꽂혀 있는 다혜를 면회하러 가서 모유를 병에 짜서 간호원에게 건네주곤 했습니다. 충남대 병원에서는 유전자 검사 및 여러 호르몬 및 대사질환 검사를 했음에도 이런 아이들에 대한 임상경험이 제대로 없어서 열흘이 지났는데도 검사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남편이 인터넷으로 여러군데 알아보고 서울 강남성심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다시 검사를 하여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혜의 병명은 선천성 부신 과형성증으로 부신이라는 기관에서 코티솔이라는 호르몬과 염분을 축적해 두는 호르몬을 못만들어내는 대신에 비정상적인 남성호르몬의 과다분비로 여아인데도 남자의 성기를 달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는 세포기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에 약하고 평생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며 남자의 성기를 떼어내고 여자의 성을 제대로 갖게 해 주는 비뇨기과 수술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 다혜에게 계속해서 호르몬 치료를 해야 했고 호르몬과 영양의 불균형한 영향으로 많이 보채고 우는 것이 심해 몇번을 입원시켜가며 치료하기도 했고 지금은 이 병에 대한 더 권위 있는 분을 찾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다혜는 약의 정확한 투여를 위해서 수시로 피를 뽑아서 피속에 있는 약의 농도를 파악하여 조정을 하고 있고 이러한 치료를 평생동안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또한 다혜는 지금 정신지체 장애1급까지 겹쳐서 4살이 되었는데도 아직 혼자서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몇마디밖에 하지 못하고 있고 성장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많이 느리고 면역성도 약해서 자주 감기에 걸리고 그로인해 입원도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의진이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둘째 아이까지 이렇게 되니까 저희 부부는 많은 기간 눈물로 이불을 적셔야 했고 지금도 자주 삶에 대한 좌절과 인생에 대한 회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저의 자식들의 미래를 생각하니 소망이 없었고 저와 남편의 미래도 막연하고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편도 아이들들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치료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지금은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서 풀기 있을 동안에는 저의 자식들을 어떻게든 부양을 하겠지만 제가 노년에 늙고 죽으면 누가 이 자식들을 돌봐줄 것인지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희 아이들과 같은 또래 아이들을 보면 저희 자식과 비교가 되어서 괜지 서글퍼지곤 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예전처럼 밝지 않게 되더군요. 건강하고 성격좋고 활발했던 저는 지금 건강도 많이 약해졌고 우울증과 불면증까지 겹쳐서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잠을 청하고 있으며, 온전치 못한 자식을 낳아서 부모님께 마음고생 시켜드리는 것이 항상 마음 아플 따름입니다. 저는 이제껏 남의 도움없이 살아왔고 도움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니까 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더군요. 첫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뇌성마비아용 운반차와 플로어시트 등 여러 가지 장애용품과 재활용품도 필요한데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수입제품으로 고가다보니 저의 경제적 형편상 제대로 구입하지 못하고 손으로 돌보는 것에 의존하고 있고 둘째 아이도 수술을 해주어야 하고 재활치료,물리치료 및 언어치료를 해주어야 하는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형편에 있습니다. 저희의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고 저희의 어려움에 동참해 주시고 격려해주신다면 지금보다는 더 잘 저의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뜻있는 분들의 관심과 후원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좀더 자세한 사실에 대해 확인을 원하시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의진, 다혜 엄마 드림 이메일 : ujdhumma@hanmail.net 후원계좌 : 우체국 301168-02-109641(이의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한글에서 작업한 내용 복사해서 붙여넣기 file 관리자 2017.09.10 1386
1842 하나님의 위로가 고 이정숙 장로님 가정과 안동교회에 함께 하시기를 1 성명옥 2009.05.05 1583
184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퍼온 글) 김제자 2008.07.03 1699
1840 하나님의 눈물/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김용원 2004.11.30 596
»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며 구하는자 2004.03.11 662
1838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의 선택. 옮김 2002.11.10 962
1837 하나님의 계산법(5+2=5,000+@) J제자 2008.12.17 1338
1836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 물댄동산 2003.11.25 751
1835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장로 임 중 규 2015.06.27 597
1834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행의 자유를 주셨습니다.(1) 1 김영석 2007.04.06 1064
1833 하나님은 여섯째날 김영석 2012.08.30 316
1832 하나님은 사랑과고통을나누라하셨습니다-장갑차소녀. . 하나님을 사랑해요 2002.08.09 1100
1831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퍼온 글) 김용원 2007.03.08 1059
1830 하나님께 개선 귀국신고를 했던 고 정득만장군(안드레명상 84-2) 김용원 2004.02.04 1109
1829 하나님과의 인터뷰(1) 1 추영일 2007.01.26 966
1828 하나님과의 인터뷰 1 오도광 2003.07.09 762
1827 하나님과의 인터뷰 1 이종서 2011.07.06 621
1826 하나님과의 대화 오도광 2002.10.03 655
1825 하나님 사랑, 동포사랑(퍼온 글) 김용원 2008.05.22 1684
1824 하나님 말씀(퍼온 글) 김용원 2008.01.22 1785
1823 하나님 나라의 확장(펌) 김용원 2007.07.24 1284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 99 Next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