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4 08:14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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痕跡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만, 아버지는 내게 痕跡만 남겼을 뿐이다. 생전에는 당신의 친구분들이나 친구 아버지들에 비해,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성취를 이루지 못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이따금 서재에서 책을 찾다가, 책갈피 속에서 우연히 눈에 띄는 신문이나 잡지 스크랩과 당신의 肉筆 메모 조각들. 이런 흔적 속에서 12 년 전 작고하신 아버지의 體臭를 느끼곤 한다. 더불어 잘 보관되어 있는 어린 시절 즐겨 보던 그림책,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의 국어 교과서와 그림일기장 그리고 여러 가지 상장 등. 당신의 정성 덕분에 이제는 잃어 버린 樂園의 시절로 돌아 갈 수 있는 豪奢를 누리기도 한다.

 

이런 아버지를 닮아서 일까? 메모를 남기지는 않지만, 나 역시 아들 녀석의 어린 시절 일기장이나 즐겨 읽던 책들은 내자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보관하는 편이다. 책장을 정리하던 중,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쓴 일기가 눈에 띄었다. 삐뚤삐뚤한 글씨에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인 일기 한 페이지는 어린 아들 녀석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지나가 버린 격동기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1998년 1 15일 목요일, 맑음

오늘은 어머니의 차를 타고 외할머니 댁에 갔다. 서울에서 안양 할머니 댁까지는 약 2 시간 걸렸는데 어머니 말씀은 IMF 때문에 50분 정도만 걸렸다고 하셨다. 나는 자동차가 별로 없어서 참 좋았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지안는 나라이기 때문에 기름을 절약하지 않으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제부터 지하철을 이용할거다. 

 

아들 녀석의 일기장과 교과서를 다시 상자에 담아 포장하고, 겉에 유성펜으로 메모를 남겼다. 'XX이 초등학교 1, 4, 6학년 일기장과 국어 교과서 먼 훗날 이런 흔적들이 눈에 띄게 되면, 오래 전 할아버지 덕분에 제 아비가 맛보았던 追憶과 鄕愁를, 이 녀석도 느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서, 신경림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되뇌어 본다.

 

아버지의 그늘
                                           庚林(1935 - )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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