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36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02년 壬午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달포가 지났지만, 임오년 말 띠 해는 설날부터 시작한다고 봐야지요. 우리 민족의 피 속에 연연히 흐르는 정서를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일. 올 설에도 어김없이 민족 대이동이 있었고, 그 수가 무려 3천 3백 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차례 상을 올리며 祖上의 음덕을 기리고, 一家를 찾아뵈며 歲拜를 올리고 어르신네들의 德談을 들으며 한 해의 새 소망을 가져보는 최대의 名節. 반가움과 즐거움이 가득 찰 명절이면서도 해마다 수많은 교통사고로 불행한 가족도 생기고, 음식 장만과 손님맞이에 바쁜 집에서는 주부들의 수고가 크고 쌓인 疲勞로 인해 명절 후유증을 앓게도 되지요. 명절 연휴 피로로 말하자면 연일 상차림과 뒷설거지에 지친 주부들이 크겠지만, 남자들이라고 萬古江山 遊覽같은 나날은 아니지요. 이럴 때 서로 도우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 작은 인사말이 좋은 회복제라 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일 교회 식당 봉사에서 설거지 도우미로 나서신 권원중 선생님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이요, 신선한 충격일 것입니다. "역시 외국 생활을 오래 하신 분답게 멋있는 분이셔!" 황재금 집사가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지만 그 말 속에 섞인 부러움과 은근한 勸勉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둔한 저도 아니지요.아마 여러 가정에서 화제 거리가 됐음직한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오늘은 피로에 대해 얘기가 시작되었군요. 요즘 인기있는 개그 프로처럼 '우리 련변에선 설날 연휴 사나흘 피로는 피로 축에도 못듭네다. 500년 묵은 피로 보셨습네까? 거저 피로가 500년 묵을라 치면 이건 떡국 가지고서는 풀리지도 않습네다. 그 정도 피로를 풀라치면 거저 산우회원들과 登山을 가야됨다. 거저 등산이 왔담다.' 아닌게 아니라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인 13일 수요일 관악산 등반은 산우회원 모두 異口同聲으로 연휴 피로가 확 풀렸다고 말씀하셨고, 부인을 위한답시고 산행에 동참시키지 않은 저와 같은 男便들은 후회감이 들 정도였답니다. 오전 10시. 2호선 낙성대역 만남의 장소에는 산우회원들께서 일찌감치 모여 계셨고, 지하철 환승에 익숙하지 않은 윤상구 장로님이 몇 분 후 당도하셔 어느 새 열 분을 채웠답니다. 얼추 오실 분은 다 오셨나보다고 생각하는 순간 캐쥬얼한 검은 색 중절모에 감색 싱글 차림의 신사 분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가까이 오시는 겁니다. 워낙 등산과는 생경한 차림이라 의아해 하는 순간 "안녕하세요?" 윤기있는 톤의 목소리 강명준 집사님입니다. 어리둥절한 우리들에게 喪家에서 問喪을 마치고 바로 오시는 길이랍니다. 걱정하지 말라면서 검은색 넥타이를 벗고 자켓을 여미시더니 출발하자는 겁니다. 정열적인 참여 의식, 敢鬪的인 도전입니다. 오늘은 조동훈 대장님께서 집안 일이 있으시다며 못 오셨습니다. 모두들 아쉬움 속에서도 '오늘 산행은 한결 수월하겠다' 안도감과 기대감을 숨기지 못합니다. 지역 주민들의 산책로로 애용되는 산길로 접어들어서도 교우 분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집니다. 설 얘기, 정치 얘기, 못 오신 분들의 안부, 두 세분 씩 짝을 이루며 우리들의 和氣는 겨울 따스하게 비치는 햇살보다 더욱 환합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 지당한 말이지요. 하지만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 또한 옳습니다. 산행 속도가 빠르지 않겠다는 믿음 때문인지 30여 분을 쉼 없이 오르면서도 어느 누구 한 분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먼저 쉼터에 오른 이본 장로님께서 귤 봉지를 꺼내 상큼한 맛을 권합니다. 가만히 보니 각자 배낭 속에 귤 몇 개씩은 다 가져오신 것 같은데 이럴 땐 長幼有序, 어르신네 것을 먼저 덜어드려야겠지요. 어쩜 오현숙 집사님이 가져오신 귤은 하산길에서나 개봉이 되든지, 그도 못하면 도로 집까지 가져가야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오르막 길 피치를 더하다보면 주 등산로가 나옵니다. 오가는 등산객들이 꽤 많더군요. 목 좋은 터엔 사발면, 음료수, 초콜렛, 사발 잔 막걸리를 파는 아주머니가 계십니다. 사당동이나 남현동 쪽에서 연주대를 오르다보면 이런 좌판이 세 군데가 있는데 그 중 첫째 집이지요. 오가며 몇 번 들렀던 터라 아주머니와 반갑게 새해 인사를 나누고 제 귤을 덜어드렸지요. 제법 쉬었다 싶어 자리를 뜰까 하는데 뒤늦게 이현식 집사님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저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니, 남자 회원 중 제일 젊은 편인데 이 정도 코스에서 꼴찌로 당도하다니 참 멋쩍은 광경입니다. 덕분에 남자 교우 분들이 오현숙 집사님께 "잘 해 드려라,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는 둥 한참 농담을 걸었지요. 오현숙 집사님은 즐거운 표정으로 함께 남편에게 핀잔을 보내는데, 정작 이 집사님은 "내가 이렇게 헤매야 연세드신 장로님 등이 더욱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신다"고 합니다. 진정 敬老 의식의 발로로 그랬다면 참 대견한 생각입니다. 웃음으로 힘을 얻었겠다 두 번 째 막걸리 좌판에서 바로 계곡으로 떨어집니다. 이 길은 대부분 등산객들이 택하는 마당바위를 버리고 맞은 편 파이프 능선에 붙는 코스입니다. 파이프 능선은 冠岳山의 명성에 걸맞게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막상 암릉에 붙어보면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명 코스이지요. 여름철 하루밤 비라도 내린 후라면 목간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시원한 물이 가득할 계곡은 알몸을 다 보이며 세월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곡을 건너면 큼지막한 바위 위에 알맞은 점심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작년 추석 산행에서 조기현 장로님께서 세계 평화를 위해 장시간 식사기도를 해주셨던 터이지요. 시간은 11시 40분. 점심을 들기엔 약간 이르기도 하려니와 눈앞에 병풍같은 암릉이 버티고 있기에 그 곳을 오른 후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男石이 나타납니다. 작년에 황은영 집사님이 보자마자 깔깔깔 웃으면서 도망치던 바위입니다. 일부러 오현숙 집사님을 기다렸다가 보여주었는데도 시큰둥하더군요. 딸만 있는 집이라 그런가? 별로 감동이 없으니 멋쩍어졌습니다. 파이프 능선 바위벽에는 손으로 hold할 곳도 적당하고 몸을 올리면 그 곳이 바로 발 디디기에 알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짭짤한 스릴이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장로님들은 물론이고 김혜자 권사님까지 어렵잖게 오르십니다. 김 권사님은 몸도 날렵하시고 운동도 많이 하신 듯 산행 솜씨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젊은 여 집사님들께 한 수 지도하셔도 되겠더군요. 이윽고 9부 능선 쯤 되는 넓직한 암반 위에서 점심을 펼쳤습니다. 추영일 장로님께서 양식 주심과 산행 교제에 대한 감사, 교회와 교우들을 위한 기원으로 기도해 주셨습니다. 권원중 선생님과 이현식 집사님 부부, 그리고 저는 컵라면을 준비하였는데 조 대장님의 주장대로 모두 삼양 컵라면이더군요. 말 잘듯는 범생들입니다. 김동형 집사님은 도시락을 여시더니 더운 물을 부어 따듯하게 드십니다. 윤상구 장로님은 여러 가지 곡식을 섞은 건강식을 선보이는데 절로 몸에 좋겠다 보여집니다. 반찬으로 싸오신 동그랑땡도 너무 모양이 이쁩니다. 진짜 양은선 집사님 솜씨라면 대단한 작품입니다. 권 선생님의 맛있는 샌드위치가 없어 섭섭했는데 오도광 회장님께서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든 녹두 빈대떡을 싸오셨더군요. 기회를 보다가 결국 제가 다 차지해 버렸지요. 사실 우리 집에선 구경을 못했거든요. 유부초밥과 충무식으로 만든 자그마한 김밥까지 싸오신 오 집사님은 후식으로 커피와 과일을 권합니다. "저렇게 많이 싸왔으니 배낭 멘 이 집사가 힘들었지" 칭찬 겸 또 약을 올렸습니다. 윤 장로님은 용정차를 권하면서 분위기를 높입니다. 중국 10대 名茶 중에서도 최고요, 그 중에서도 一等品이라고 소개하십니다. 皇帝가 마시던 차랍니다. 그래서인지 차 잎을 씹어보니 느낌이 좋더군요. 덕분에 잠시 황제 기분을 내보았습니다. 능선에 오르자 동쪽으론 청계산 줄기가 보이고 서쪽 계곡 건너엔 마당바위의 등산객들 모습이 반갑습니다. 가느다란 능선길을 잠시 구불구불 걷다보면 어느 새 관악산 주 등산로와 만나는 헬기장이 나타납니다. 연주대를 넘어 과천으로 관통할 수도 있지만 '내일부터 새 기분으로 삶에 충실해야지' 하는 共感帶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마당바위로 하산을 하였습니다. 명실공히 오늘의 산행은 가벼운 마음으로 연휴의 피로를 풀고, 심신이 날아갈 듯한 즐거운 나들이였습니다. 비록 흰 눈 덮인 겨울 산행은 아니었더라도, 우리들의 다정스런 대화가 관악산 전체를 따스하게 덮었답니다. 雪山 대신 話山으로 변한 관악산도 심히 보기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우리 안동산우회의 산행은 올해도 계속 이어집니다. 할렐루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한글에서 작업한 내용 복사해서 붙여넣기 file 관리자 2017.09.10 1386
1842 이단들의 이름......(알고있어야 하겠지요) 이 성 길 2002.02.02 2077
1841 Re..출전이 궁금하군요. 오도광 2002.02.02 1391
1840 Re.참.....이 리스트는 울간 현대종교 홈쥐에서 퍼왓읍니다... 이 성 길 2002.02.03 1735
1839 Re.제가 듣기론 지방교회는 성경적인 교회라고 .... 진영 2002.02.03 1371
1838 어느 43세 독신 남성의 기도 주동준 2002.02.05 1142
1837 2월월례산행은 설날연휴마지막날 冠岳山입니다 오도광 2002.02.05 1312
1836 나의 고백 최 은혜 2002.02.10 1135
1835 2월의 유머 오도광 2002.02.12 1483
1834 3月의 月例山行은 3ㆍ1節에 道峰山 望月寺임니다 오도광 2002.02.14 1279
» 話山으로 변한 冠岳山 등반(27차, '02. 2. 13) 김광엽 2002.02.15 1361
1832 너무 긴급한 기도제목이라 무례를 범합니다.기도좀해주세요 잔잔한물가 2002.02.20 1249
1831 박해웅 형제(고 오은숙씨 남편) 방문 유목사 2002.02.20 1327
1830 續 2월의 유머 월드컵16强 語錄 1 오도광 2002.02.20 1234
1829 故 오은숙 씨를 추모하며 남편을 만났습니다. 김광엽 2002.02.20 1418
1828 가족사진입니다. 1 file 이종서 2002.02.24 1206
1827 솔트레이크시티冬季올림픽의 審判判定問題에 관하여 오도광 2002.03.02 1419
1826 안동바둑클럽이 10일 발족할 예정입니다. 2 오도광 2002.03.02 1384
1825 60년 후배와 도봉산을 오르다(28차, '02.3.1.금) 1 김광엽 2002.03.02 1494
1824 3월의 유머 사투리의 다양성 오도광 2002.03.05 1459
1823 요르단 소식 진영준 목사 2002.03.07 1372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 99 Next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