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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산우회의 9월 월례 산행은 그간 19회에 걸친 산행 중에서 소수 정예의 진면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산행이었습니다. 주 5일 근무제 시행에 대하여 각계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시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고, 특히 기독교계에서는 6일 일하고 하루 안식일을 갖는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합니다만 근로자에게 휴일이란 생활의 기쁨이요, 힘써 일함에 대한 선물이지요. 주일 또한 일반인에겐 분명 휴일이지만 기독교인에겐 교회생활에 신심을 바치는 날이요, 예배와 봉사, 전도, 친교 활동으로 바쁜 날이지요. 주일 생활을 그리해야할 안동산우회이기에 주일 외에 공휴일이 없는 9월은 섭섭한 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례 산행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왔던 전통 또한 지켜야 할 가치이기에 10월 초 산행과의 인터벌을 고려하여 8일로 정한 것은 현명한 택일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생활이라는게 우리를 그냥 만만하게 놓아두지는 않지요. 평소 생활에서 두 발짝만 더 넓혀도 예서 걸리고 제서 얽히고… 제한 받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게 됩니다. 광교산(光橋山) 등반은 집합 장소부터 생소하였습니다. 그동안의 산행이 서울 시내 지하철 역이나 교회에 모여 출발하였던 터라 웬만한 교우들은 미금역 이름도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며, 분당선을 타보신 경험도 별로 없으셨을 것입니다. 안국역에서 1시간 2,3십분 걸린다는 오도광 회장님의 소개대로 꽤 멀 뿐만이 아니라 두 세 번은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합니다. 대개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한 도시 생활에 젖어든 반면, 처음 가본 지하철 역에서의 환승은 화살표를 따라 가면서도 괜히 불안하고 자칫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한참이나 늦게 미금역에 도착한 저를 마지막으로 하여 오늘의 멤버는 단출하게 네명이 되었습니다. 조동훈 대장님, 오도광 회장님, 그리고 윤명렬 집사님이 참여하셨습니다. 역사를 빠져 나와서도 다시 버스를 갈아탑니다. 수지에서도 가장자리 언덕에 높이선 지구촌 교회를 바라보며 난개발 현장으로 매스콤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을 지나게 됩니다. 권위주의 시대, 국민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었지만 그 덕분에 그린벨트(Green Belt)정책 만은 오염된 대기를 정화시키는 순기능을 발휘하여 왔는데 그마저도 이젠 차츰 위험해지는 것 같습니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먼저 가을을 알려주고 띄엄 띄엄 흰구름의 하늘 색은 윈도우 배경 화면 그대로입니다. 전형적인 대형 평수가 분명한 아파트 단지에서 내려 LG 아파트 뒷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길은 바로 숲으로 이어지고 숲은 마냥 흙길로 이어지며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더군요. 부드러운 흙길을 계속 밟아봄이 얼마 만일까요? 당연히 가져야할 이런 자그마한 행복까지도 잃게 되었으면서도, 그 상실조차도 평소 의식하지 못하다가 이런데 와서야 겨우 느끼게 되다니… 우리가 기억해야할 소중한 과거 조차도 서서히 문명에 의해 망각되어가나 봅니다. 지리산 파르티잔들의 보급투쟁 걸음걸이가 꼭 우리 같았을 것입니다. 편안한 흙길이라지만 한시간 10분 간의 빠른 행군은 지나칩니다. 형제봉 깔딱고개 밑에 이르러서야 겨우 걸음을 멈추고 첫 휴식을 갖습니다. 조 대장님은 방울 토마토와 크래커를 꺼내 권하시는데, 윤 집사님은 볼멘 소리로 받습니다. "스포츠 룰에도 45분 행군에 10분 휴식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 이론 상 옳은 얘기지요.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될 줄 이 땐 미쳐 짐작도 못하였답니다. 200미터만 올라가면 형제봉에 이른다는 꼬심에 부지런히 궁둥이를 털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200미터지 깔딱고개 200미터가 장난이겠습니까? 헉, 헉 거리며 오를 수 밖에요. 형제봉의 첫 봉우리를 지나 바로 이어진 또 하나의 봉우리, 참 의좋은 형제 같습니다. 여성적인 육산(肉山)에 갑자기 울퉁불퉁 암봉이라니? 장미꽃에 가시가 없다면 매력이 적어질텐데, 이 봉우리야말로 장미의 가시같은 느낌입니다. 섣불리 美에 홀려 추군대다간 깜짝 찔리고 말테니까요. 이 곳에서의 전망은 우리가 오른 곳의 숲을 제외하고 삼방이 탁 트였습니다. 경기대학교가 남서쪽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고, 동북쪽에는 청계산의 기지탑도 보입니다. 분지를 이룬 수서 지구를 보며 우리의 삶터가 바로 그런 곳이면서도 잠시 딴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한 우월감도 듭니다. 오랫동안 쉬어가도 좋을 만한 곳이지만 시간은 어느덧 12시 30분을 넘었군요. 그러고 보니 예까지 5천 7백 여 미터라는 팻말대로 시오리 길을 단숨에 오른 셈입니다. 점심을 어디서 펼치시려나 이제나저제나 고대하며 토끼봉을 지나치고 능선의 너른 숲길을 꽤 걸은 후에야 그늘진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자리를 펼치며 도시락을 꺼내놓고 오 회장님의 감사기도로 식사를 합니다. 이제는 코스모스 대신 산들바람이 가을을 알립니다. 반팔 반바지 차림에 노출된 팔은 벌써 선득 선득하여 조 대장님은 자켓을 걸칩니다. 네 식구 만의 점심은 나름대로 가족적입니다. 젓가락은 고민할 필요없이 서로 넘나듭니다. 윤 집사님이 가져오신 빠알간 사과엔 벌써 가을이 담뿍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햇빛 만 주신 것 같은데 무슨 섭리로 햇살은 단맛과 상큼함으로 바뀌게 되는 걸까요? 늘 느끼는 일이지만 안동 산우회원들은 참 부지런합니다. 식사 후 채 5∼10분도 되지 않아 자리를 뜰 차비를 하니까요. 오늘도 다름없이 뉘라 말할 것 없이 주위를 챙기고 남은 길을 재촉합니다. 오늘의 정상 시루봉에 이르는 길도 숲길은 이어집니다. '툭, 투드득…' 무슨 소릴까? 조용한 숲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 가을은 이제 우리 발 밑에 왔습니다. 자그마한 토종밤 하나가 구르다가 멈추고선 빤질한 밤색으로 쳐다봅니다. 반갑게 집어들고 보니 엄지 손가락 마디 만한 조그마한 몸짓에 씨눈 근처엔 벌레 구멍까지 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숲길 만나는 나무 잎마다 어느 것 하나 번질거리거나 야한 모습을 못 본 것 같습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이 수수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었고, 대부분 제 살을 구멍내어 뭇 벌레의 먹이가 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새는 배고픈 새끼를 위해 제 가슴살을 쪼아 먹인다는 동물적 모성도 있다지만 숲은 그저 조용히 티 안내면서도 모두 아우르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주는 모습으로 있었으니까요. 드디어 오른 정상 시루봉(582m)는 숱많은 머리의 가운데 가마처럼 하얀 햇살을 그냥 받고 있어 땀방울이 맺힙니다. 좁은 정상 터에 수원 북중학교 1학년 같은 반 어린 학생들이 교복 셔츠가 흠뻑 젖은 채 차례차례 뛰어 올라 펭귄들 마냥 까붑니다. 이랬니 저랬니 서로 떠드는 모습이 너무 밝아 한낮의 햇빛아래 튼실하게 자라는 알곡 같습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는 다는 것이 그대로 하산길로 이어지게 됩니다. 종주를 꺼내시는 조 대장님의 말씀에 아, 뜨거라 깜짝 놀라 짧을 길을 부르짖고 그 죄로 쉬자는 말도 못하고 뉘라도 쫓아 오는 듯이 내닫게 되었습니다. 고기리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에는 흐르는 물, 계곡 값을 매기듯 각종 음식점들이 빼곡하여 명화(名畵)에 슨 곰팡이 같습니다. 기껏 하산했다 싶었는데 버스를 타려면 200미터를 더 내려가야 한답니다. 저야 애초 200미터의 의미를 짐작하였지만 윤 집사님은 아직은 산에서는 순수할 수 밖에요. 한참을 내려와서야 부르짖는 말씀, "이게 200미터에요? 500m도 넘겠습니다." 우리 세사람의 박장대소를 윤집사님도 금새 눈치 채시곤 계면쩍어 하십니다. 이왕 고기리라기에 혹시 안홍택 목사님 시무하시는 고기 교회라도 보일까 했지만 서울 사람들 시골 알기를 우습게 보면 안되지요. 현미경같은 시각으로 매일 살아가는 사람은 망원경으로 보이는 세계를 짐작하기 어려울 수 밖에요. 어줍잖은 장어구이 집과 어울리지 않는 모텔 앞에서 지루하게 버스를 기다린 후에야 전철역으로 향합니다. 이십 여분 버스를 달리니 갑자기 번화한 도시 모습이 나옵니다. 이 번잡함이 반갑고 편안한 마음이 드니 이 무슨 아이러니 입니까? 기껏 자연을 찾아 산에 파묻혔다가 까짓 하산 길이 좀 생소하여 의아해 했다고 치더라도 이 번잡함이 반갑다니요? 이래 저래 오늘 산행은 윤 집사님을 위한 산행이었다고 봐야지요. 몇 차례 참여에 이렇게 강행군을 경험할 수 있다니… 군대 같으면 유격 훈련을 수료한 폭이요, 골프 같으면 인도어 연습에서 벗어나 첫 필드에 나간 감격일 겁니다. 그걸 머리 올린다고 하던가요? 축하합니다. 이젠 웬만한 산행은 펄펄 나르실 겁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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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한글에서 작업한 내용 복사해서 붙여넣기 file 관리자 2017.09.10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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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뉴욕타임즈에 기고(영문) 한기현 2001.09.19 1635
40 가시나무 정일문 2001.09.18 1571
39 9월의 유머ⓛ 오도광 2001.09.16 1870
38 10월산행은 秋夕다음날 冠岳山입니다 오도광 2001.09.15 1398
37 조화순 권사께서 병원에 입원 중이십니다. 김영석 2001.09.15 1470
36 Re..조화순 권사께서 병원에 입원 중이십니다. 김영석 2001.09.20 1563
35 박정음 집사 모친 상 목사 유경재 2001.09.11 1441
» 200 미터만 더가면 돼요?(9월 월례산행기) 김광엽 2001.09.10 1634
33 2002년을 위한 기획위원회를 마치고 김영석 2001.09.09 1479
32 여자의 눈물에 관한 글입니다. 정일문 2001.09.06 1823
31 로봇이 사랑을 느꼈을 때 - (A.I.) file 정일문 2001.09.06 1483
30 교회 각 부서, 기관의 계정 발급 안내 천영철 2001.09.05 1500
29 검은점과 하얀점의 갯수는? file 정일문 2001.09.04 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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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착시현상 1 file 정일문 2001.09.04 1352
26 사막의 놀라운 피조물 낙타 정일문 2001.09.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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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남선교회 연합 월례회가 9월부터 시작됩니다, 김영석 2001.09.02 1338
23 삶이란 정일문 2001.08.3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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