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18 13:34

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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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 신문에서 인기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는 하덕규의 원곡(시인과 촌장)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글을 읽고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다시 읽고 싶어서 모 일간신문에서 검색어 '가시나무'를 입력했는데, 또 다른 좋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두 글 모두 소개합니다.

1. 좋은 아버지

네 명 아이들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는가? 종종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냥 제 기분이 좋지 않아 아이들을 혼내고, 자기 자존심을 세우려고 매를 드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돌 아가신 아버님의 절반만 했으면 하고 때로 바라게 된다. 바르고 엄하게 가르치면서도 언제나 응석부리고 안기고 싶게 만들었던 분, 한 무더기 지게짐 위에 아이를 태워가며 콧노래하시던 분…

집 하나 제대로 장만하지 못한다고 화를 내시던 어느날 아버님은 “너희가 조국과 교회를 위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 놓고도 이러는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 처럼 말이다”라고 미안해 하시며 용서를 구하셨다. 그 모습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욕심을 죽여가는 진지한 신앙인의 모범으로 내게 남아 있다.

탐욕과 죄로 자신을 찌르고 다른 사람까지 찌르는 가시나무 같은 인간을 예수님은 찾아오셨다. 자신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그는 훈계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예 죄의 대가를 짊어지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버림받은 절규를 통해 불효자식 인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된다.

그 분 앞에서 나는 먼저 아들이 된다. 영혼의 구석구석 절어 있는 죄와 반란, 폭력을 회개하며 아들이 된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동료 인간으로 마주 선다. “어제는 아빠가 큰소리로 화내서 미안하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아빠,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늘의 아버지 앞에 마주 서고, 땅의 아이들로부터 용서를 받으며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를 오늘도 연습한다.

( 유해신·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 )


2. 반복될 수 없는 것은 아름답다

하덕규 노래 ‘가시나무’을 처음 들었던 십수년 전 어느 밤을 전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노래 하나에 어쩌면 이렇게 깊은 감정의 골짜기를 파놓을 수 있을까. 그 순간의 전율을 제 피부는 영원히 간직하고픈 떨림으로 기억합니다. 내면 어둠을 응시하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자리 없네”를 신음하듯 토하는 목소리엔 고통의 심연을 헤매다 바닥을 쳐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절절한 고백이 담겨 있었으니까요.

지금 조성모는 그 노래를 다시 히트시키고 있지요. 그의 ‘가시나무’는 상당 부분 원곡분위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내지르지 않고 감은 채 띄워 읊조리는 창법은 하덕규 모창에 가깝고, 전주의 피아노와 바람소리는 샘플링처럼 삽입됐으니까요. 그러나 상당한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거기엔 구원을 배태한 고통과 영혼의 상처가 없습니다. 하덕규가 가슴으로 불렀다면, 그는 코로 노래했다고 할까요. 인기 절정 가수의 상품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작된 조성모 리메이크 음반엔 상처입은 새 한 마리 날아와 쉴 수 있는 작은 그루터기마저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거지요. 게다가 적당히 예쁜 눈 풍경에 야쿠자가 등장하는 감상적 스토리를 담은 뮤직 비디오의 상투성이 실존적 절규를 시시한 연애담으로 만드는 광경이라니요.

구스 반 산트는 98년 전대미문의 작업을 했지요. 히치콕의 걸작 ‘사이코’를 장면 장면 철저히 베끼는 것으로 재창조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실험’은 실패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원작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반증한 정도가 소득이라고나 할까요. 어떤 이는 빈스 본 연기가 원작 앤소니 퍼킨스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작품엔 아티스트의 경험과 주변 환경이 녹아있기 마련이지요. 발자크가 ‘고리오 영감’ 에서 사실적으로 인물들을 그리려다 자연스레 19세기 중반 프랑스 자본주의 융성기를 벽화로 기록하게 된 게 대표적이지요. 게리 올드먼의 자전적 감독 데뷔작 ‘텅빈 입(Nill by mouth)’에 그의 어두운 어린 시절이 생생히 들어가 있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경험이나 환경이 거세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번안하는 리메이크작에 원작 영기가 없는 건 당연합니다. 더구나 새로 덧칠 할 경험이나 창조적 아이디어 없이 원작 명성이나 현재의 상품성에 기댄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창작품에서 감동을 받는 이유는 테크닉이 아니라 거기 담긴 예술가의 진실과 경험, 독창성 때문입니다.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 치유하려는 자의 사투를 보며 우리도 상처를 직시할 힘을 얻는다고 할까요.

추억이 소중한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리메이크될 수 없는 일회적인 것이기에, 추억은 불완전하더라도 비로소 아스라한 느낌으로 마음에 남아 빛나는 게 아닐까요. 반복될 수 없는 모든것은 아름답습니다.

[이동진 시네마레터] 사이코의 '리메이크' (조선일보 200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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