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들 주도로 설립 근현대사와 함께 호흡
100주년 기념사업도 소외계층 돕기에 주력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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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3월 서울 북촌(北村)의 재동 한옥에 몇몇 개신교 신자가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들은 그전 해인 1908년 현재의
중앙중·고교 전신인 기호학교를 설립한 김창제 박승봉 유성준 등이었다. '양반 교회'로 유명한 서울 안국동 안동교회가 3월 1일 창립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린다.
안동교회는 한국개신교사(史) 그리고 한국근현대사와 호흡을 함께한다. 박승봉 유성준 장로는 3·1운동 준비
장소로 집을 내주기도 했다. 서울 사대문 안 교회들이 대부분 외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데 비해 국내 신자 위주로 출발한 안동교회는 개혁적인 행보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급 관료들이 교인이었지만 마을에 장례가 생기면 목사와 장로들이 먼저 나서서 염습(殮襲)을
했으며 교인 좌석을 남녀로 구분하던 장막을 걷어치웠다. 초대 담임목사였던 한석진 목사는 한국인 최초의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은 일곱명 중
한명이었지만 상투를 틀지 않고 단발을 했다. 또 '여성 장로 1호 배출' '한국 교회 최초 오페라 공연' 등의 기록을 세웠다.
교회
바로 앞에 자택이 있었던 윤보선 전 대통령도 안동교회 신자였다. 지금도 본당의 제일 앞자리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앉던 자리'라는 푯말이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주일 예배에 참석해서는 뒤를 돌아보면서 아들과 손자들까지 모두 참석했는지 출석을 체크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안동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은 기념관을 짓는 등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국내외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것들 위주이다. 2006년 시작한 시각장애인 개안 수술은 당초 100주년을 기념해 100명 목표였지만 교인들의 호응이 뜨거워 이미 169명에
이르렀다. 또 2007~2008년 미얀마 양곤 외곽에 설립한 지상 2층의 문화센터는 '안동'이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다. 4월 16일에는
다문화 가정을 교회로 초청해 위로하기로 했다.
▲ 황영태 안동교회 담임목사는“안동교회 교인들은 선비정신이 남아서인지 봉사활동의 경우에도 1회성 이벤트보다는 장기적인 활동을 원한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
지난해 부임한 황영태 담임목사는
"교인들을 보면서 양반 정신과 선비 정신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황 목사는 지난해 노숙자·독거노인·장애인시설 등을 찾아
봉사하는 '1교인 1섬김 현장 찾기 운동'을 벌이면서 "어려움이 많겠지만 우선 한번 해보자"고 했다가 교인들에게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해야지,
왜 한번만 하려 하느냐"는 꾸중을 들었다. 안동교회는 교도소 재소자 방문은 20년, 주변지역 독거노인 반찬 배달은 12년째 하고 있으며
농촌목회자 초청세미나도 16년째다. 장묘문화 개선을 위해 올해 안으로 교회 내에 세상 떠난 교인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을 설치할 계획도
갖고 있다.
황영태 담임목사는 "교육과 신앙을 통해 나라와 민족혼을 바로 세우려 했던 신앙 선조들을 본받아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역할을 찾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입력 : 2009.02.26 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