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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정기산행 뒤풀이에선 여름 원정산행으로 동해시 삼척에 자리잡은 두타산(頭陀山)이 거론되었었지요. 두타산 무릉계곡하면 누구나 "아, 무릉계곡"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막상 무릉계곡을 찾은 사람 중에서도 두타산 정상을 오른 이는 흔치 않을 정도로 쉬운 산이 아닙니다. 두타산은 높이도 1353m 에 이를 정도로 만만찮을 뿐 아니라 동해를 끼고 휘어져 있는 태백산맥 줄기로써 범(虎)의 척추 중간쯤에 해당되는 고봉입니다. 산은 맥(脈)을 타고 이어지기에 두타산에서 두시간 남짓 능선을 타고 넘으면 이름만으로도 값을 하는 청옥산(靑玉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여 흔히 두타산 등반은 두타·청옥산 연등(連橙)을 하여야 능선 등반의 참 맛을 볼 수 있기에 등반 거리만 하여도 20km에 이르며, 등반 시간도 10시간 정도는 잡아야 하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산입니다. 그런 만큼 산행에 참여할 수 있는 교우들을 찾는 일부터 숙고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산행일로 잡은 8월 12-13일은 청년부의 '몽골선교' 일정과 찬양대의 수련회 중간에 끼어있어 산우회원 중 양 쪽 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이나 한 행사에라도 참여하시는 분은 시간이나 여건을 만들기가 쉽지 않으리라 여겨졌었지요. 몇 분들의 의견도 여쭈어보고 연락도 해 본 결과 최종적으로 참여하게 된 분들은 조동훈 대장님, 오도광 회장님, 김민홍 집사님, 김동형 집사님, 그리고 저까지 5인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오 회장님은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드님 가족이 12일 출국하기로 되어 있어 마음이 바쁘셨을텐데 참여하셨으며, 김동형 집사님은 몽골 여행의 여파로 감기 몸살기운이 있어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우리들의 간절한 청을 못 이기시고 무리한 몸으로 나서서 '극기(克己)'의 시범을 보여주게 되었답니다. 12일(화) 오전 10시, 만나기로 한 분당선 미금역 6번 출구로 나가보니 네 분 모두 저를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정차해둔 김동형 집사님의 테라칸 짚에 우선 올라 얘기하자는 김민홍 집사님의 말씀에 선결(先決)할 급무(急務)가 있나보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에 오르니 "감기 몸살로 내 생애 이렇게 아파 보긴 처음이다, 차를 내어 줄 테니 네 분이서 다녀오시라. 그래서 기름도 가득 채워 놓았다." 김동형 집사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상치 못한 김 집사님의 말씀에 잠시 얼떨떨 혼란이 일었지만, 김집사님의 당당한 풍채와 체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모두들 동행해 주시기길 강권했습니다. "감기 몸살은 원래 등산하며 땀 한 범 좍 내주면 절로 낫는다."는 오 회장님의 결정적 말씀에 김동형 집사님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셨고, 이인희 집사님께 전화를 걸어 '약을 챙겨 내려오라' 이른 후, 김 집사님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약 봉투만 전해 받고서는 허겁지겁 인사도 대충하고 드디어 두타산을 향해 재시동을 겁니다. 모두들 계속 운전석에 앉아 있는 김 집사님의 모습만 뵈었기에 김 집사님이 등산화 대신 캐주얼 신발차림인 것을 몰랐었고, 바로 이 신발로 인해 김 집사님이 하산 하시며 악전고투(惡戰苦鬪)를 겪게 되실 것을 아직은 아무도 몰랐었지요. 고속도로에 들어서서는 김민홍 집사님이 운전대를 맡았습니다. 호법 인터체인지에서는 오늘도 지체 서행을 하게 되고, 한바탕 바캉스 시즌이 지났음에도 휴게소마다 휴가차량이 가득합니다. 이윽고 시간은 한시가 되어가고 점심식사를 위해 소사휴게소에 들릅니다. 예까지 3시간 가까운 운행이었지만, 조 대장님과 오 회장님의 왕년 산행 경험담과 김민홍 집사님의 다당면을 넘나드는 다양한 얘깃거리에 전혀 지루함을 몰랐습니다. 조, 오 베테랑 두 분들은 산행경력이 3, 4십 년에 이르니만치 수많은 에피소드와 얘깃거리가 있거니와, 김집사님께서는 컴퓨터학 교수님이시면서도 자동차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관심이 많으셨다 하시는데 과연 자동차학 강의를 맡으셔도 충분할만큼 폭넓은 지식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운전 매너에 대한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자동차 내부구조와 기능에 대해서도 수준이 대단하시더군요. 갈비탕 설렁탕 이름에 못미치는 부실한 휴게소 음식으로 점심을 마치고 야외 파라솔 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남은 행로에 대해 얘기를 나눕니다. 조 대장님은 관광안내소에 들러 그래도 고속도로가 낫다는 안내를 받아오십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이 곳부터는 아마도 크게 막힐 일은 없을 듯도 합니다. 강릉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고가에 오른 후 크게 우회전하여 65번 동해 고속도로에 오릅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는 237km의 여정이지만 동해까지는 불과 40여 km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라 이름은 붙여 놓았지만 일차 선 국도 같은 길을 남으로 달립니다. 양심이 있어서인지 통행료도 500원에 불과합니다. 잠시 동해 시내로 차를 꺾어 장을 봅니다. 농협에 들러 몇 가지 찬거리를 고릅니다. 저녁을 위해 호박, 감자, 양파를 담고 두부도 한 모 넣었습니다. 여기에 돼지고기 몇 점 넣으면 맛있는 된장찌개를 만들 수 있겠지요. 삼화동에서 차를 꺾어 잠시 달리자 이윽고 무릉계곡 주차장에 다다릅니다. 몇 군데 민박을 알아보니 거의가 일층은 상가와 식당을 겸하고 이층을 쪼개어 방을 나누었는데 어차피 조용함을 기대하긴 어렵겠더군요. 오면서 전화로 알아 본 무릉프라자는 일박에 7만원이라는 정보를 갖고 바로 옆 청옥장을 알아보니 숙박료도 5만원인데다가 모텔 앞 나무로 만들어놓은 베란다가 맘에 듭니다. 야외에서 산 정취를 느끼며 취사 및 담소를 나누기에 맞춤하다 싶어 짐을 풀었습니다. 베란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코펠 후라이팬을 버너에 얹고 농협에서 구입한 삼겹살을 굽습니다. 상추도 씻어 놓았겠다, 마늘도 쪼개 놓았겠다, 된장 쌈 맛이 꿀맛입니다. 김민홍 집사님이 준비해오신 C.R 한 잔을 건배로 입산 신고를 하였습니다. 산 어둠이 내려앉아 사위는 더욱 고즈넉하고 산 바람이 시원하여 계절을 잊게 합니다. 달아오르는 기분을 담기엔 등산용 후라이팬이 너무 작습니다. 모텔 여주인에게 큰 후라이팬을 부탁하니 후식으로 드시라고 커피와 컵까지 주십니다. 후더분한 주인 내외의 심성이 자연을 닮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를 자리에 모셔 같이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산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오 회장님이 준비해오신 밑반찬과 더불어 바글바글 끓인 된장찌개로 무릉계의 만찬을 즐깁니다. 몸이 만족하자 마음도 한껏 부풉니다. 윤명렬 집사님께 전화를 걸어 우리들의 행복감을 중계하며 슬쩍 약을 올립니다. 윤 집사님은 성가대 수련회 땜에 못오셨기에 우리의 시간이 무척 부러웠을 것입니다. 내일을 위해 즐거운 자리를 정리할 시간, 모텔 바깥에는 야외 씽크대까지 마련해 놓아 설거지도 여반장(如反掌)입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샤워를 합니다. 이 곳 밤은 벌써 서늘한 기온이 느껴져 찬물로 샤워를 할 수 없습니다. 온수에 머리를 감고, 바쁠 내일을 예상하여 면도까지 미리 합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거울을 보니 마치 신혼 여행 온 새 신랑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각 댁의 부인들은 지금 뭐하고 계실까요? 모처럼 남편들이 없으니 편한 마음이 들까요, 옆자리가 비어 서운한 마음이 들까요? 모두들 부인들께 보고하시느라 핸드폰이 바쁩니다. 창가에서부터 조 대장님, 김동형 집사님, 김민홍 집사님, 저, 그리고 오도광 회장님 순으로 이부자리를 깝니다. 가운데 자리의 김민홍 집사님은 무릎을 꿇고 잠자리 기도를 올립니다. 자세가 너무 경건하여 불쑥 자리에 누운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갑자기 오 회장님이 일어나시며 형광등을 켜십니다. 모두들 부스스 눈을 뜹니다. "아직 시간 안 되었어요." 김민홍 집사님이 말씀에 시간을 보니 새벽 1시 반입니다. 다시 눈을 부쳤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조 대장님이 정식으로 깨우십니다. 새벽 3시 30분.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번갈아 세수를 하는 사이 엊저녁 남은 밥에 물을 부어 데우고 찌개를 덥히니 바로 아침식사가 준비됩니다. 김민홍 집사님은 습관이 그러하시다 하며 식사를 뜨는 둥 마는 둥 하십니다. 하기야 신문지 위에 차려놓은 이런 방바닥 식사는 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산행 필수품만 배낭에 꾸리고 등산화를 졸라맵니다. 아직도 세상은 캄캄절벽, 모텔을 나서며 각자 후래쉬를 켭니다. 시간은 새벽 4시 40분. 조대장님의 계획대로라면 오후 1시 반이면 다시 여기에 도착할 것입니다. 앞서 나가는 불빛을 뒤따르며 들으니 우리들의 "저벅 저벅" 새벽 발걸음 소리가 당당합니다. 소리로만 계곡을 즐기면서 무릉계를 벗어나 산성 오르막길에 붙습니다(5시 10분). 가파른 급경사에 헉헉 숨소리가 커지며 새벽 찬 공기를 이긴 더운 땀이 흐릅니다. 5시 40분, 산성터에 오르니 어느 새 산이 부옇게 밝아지며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전망에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연륜을 가늠할 길 없는 바위에 올라 둘러보는 조망은 그야말로 한 폭 동양화입니다. 왼손 편으로 펼쳐 놓은 열두 폭 병풍처럼 각 폭마다 깎아지른 암벽과 수림(樹林), 그리고 구름이 얹혀있는 하늘…. 어떤 솜씨도 이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낼 수 없을 것입니다. 안내석에는 '두타산성은 신라 파사왕 23년(서기 102년)에 축조되었다 하며, 1592년 임진왜란 때 이 지역 주민들이 유격전을 벌이며 왜병을 전멸시킨 곳'이라 적혀있습니다. 과연 이 산성에 자리잡고 있으면 어떤 강군(强軍)이 올라붙는다 해도 족히 섬멸시킬 만한 천혜의 요충지 같습니다. 그냥 투석적만 벌이더라도 저 아래 적군들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사진을 찍는 여유도 갖었겠다, 또 떠나야지요. 그건 그렇고 겨우 열두 폭 병풍의 첫 번 째 폭 중턱도 못 오른 셈이니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고도 멀어 보입니다. 오솔길 양옆으로 열병하듯 자리한 산죽길을 50분 꾸준하게 올라 787고지에 이르렀습니다. 우거진 죽림 속에 한 그루 적송(赤松)이 우뚝 서 있습니다. 마치 민초(民草)들의 고단한 삶을 살피러 온 암행어사 같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나이 지긋한 등산객 두 분이 지납니다. 오이 한 쪽을 권하며 산 인사를 나눕니다. 다시 50분을 올라 7시 20분, 윗 산성터 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이 곳에는 아름드리 적송들이 조정(朝廷)을 가득 메운 당상관(堂上官)처럼 우뚝우뚝 서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궐 대들보 기둥감으로 손색이 없는 늠름한 모습들입니다. 이런 백관들로만 채워진 조정이라면 임금은 태평연대를 만들며 백성들은 요순시절을 구가할 수 있겠다 싶어지며 작금의 정치판과 '플러스 알파' 정치자금설 등의 현실이 대비되어 쓴웃음이 나옵니다. 김민홍 집사님이 조금 늦는군요. 산에서 초반 무리는 절대 금물, 세상 이치와 같지요. 그저 자기 페이스대로 꾸준함이 필수입니다. 길은 외길이니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여기서는 합류를 해야할 듯 싶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드디어 조 대장님의 끊임없이 나오는 광주리 마술을 즐깁니다. 토마토와 귤, 맥반석에 구운 계란, 매콤한 육포, 부드러운 치즈 빵과 훈제 꽁치 통조림… 모르긴 몰라도 점심 반찬거리는 아직 선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까 만났던 두 등산객을 다시 뵙습니다. 아는 척 하려는데 갑자기 오 회장님을 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오 위원님 아니세요? 저는 공단에 아무갭니다." 아마도 그 분은 오 회장님을 같은 계열의 상사로서 잘 아시나 본데 오 회장님은 별 기억이 없으신지 얼버무리며 인사를 받습니다. 오 회장님은 예서 제서 알아보는 분이 많거니와 유명세를 탐이 자랑스럽기도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불편한 점도 꽤 있을 것 같군요. 8시 20분 쉰움산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잡기 위해 멈춥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김동형 집사님이 오십니다. 김민홍 집사님과 동행한 김동형 집사님은 "나는 김 교수님이 힘들어서 처지는 줄 알았더니, 쓰레기 줍고 오시느라 늦는군요." 하시며 비닐 봉투를 보여 주십니다. 아닌게 아니라 봉투 속에는 산 쓰레기가 한 봉지 그들막하게 담겨있습니다. '안 오신 듯 다녀 가소서'란 리본도 보았었고, 등산로에 띄엄띄엄 널린 초콜릿 포장지나 음료수 팩 등이 눈에 거슬렸었지만 힘든 오르막길에서 언감생심 주울 생각은 못 했었는데 역시 두 분께서 모범을 보이시는군요. 9시 18분, 드디어 두타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해발 1353m. 다람쥐들이 요리 조리 폴짝거리며 우릴 반겨주는군요. 조 대장님의 치즈빵을 조각 내어 던져주니 앙증맞게 앉은 자세로 오물오물 잘도 먹습니다. 계속 정상은 구름에 쌓여 있습니다. 동서남북 가늠도 되지 않기에 기대했던 조망은 틀렸지만 주황색 나리꽃, 연보라 패랭이 꽃. 파란 초롱꽃, 그리고 노랗고 흰 들꽃이 운무(雲霧) 속 향연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곳의 꽃은 그림 엽서 같은데서 볼 수 있는 정밀 접사(接寫)한 명화(名花)의 정형과는 사뭇 다릅니다. 수줍은 듯 엷은 빛깔로 연약하게 서서 정상을 넘어가는 운무 속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모습은 천의무봉(天衣無縫) 선녀가 구름 속에서 선무(仙舞)를 추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우리 5인도 야생화의 선무를 즐기는 구름 속 선인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 계획은 두타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을 셈이었으나 조 대장님의 다양한 간식 덕에 아직 포만감이 남았을 뿐만 아니라 윈드 자킷이 그리울 정도로 바람도 서늘하고 보니 어서 움직이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등산 장갑까지 끼고 능선길로 접어듭니다. 이 곳 정상과 청옥산 정상과는 표고차가 51m에 불과하며 능선 줄기가 마치 옷을 걸던 횃대와 같다하여 의가등(衣袈嶝 옷걸이 고개)이란 별명도 있다 합니다. 두타산에서 박달령까지의 2.5km 거리는 온통 산죽 밭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 한 줄기 오솔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내리막길 박달령에 이르자 시간은 10시 50분, 다시 약간의 오르막길을 내달려 드디어 해발 1404m 청옥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정오를 넘어섰습니다. 구간별로 10여 분쯤 늦은 셈이지만 어차피 우리들로서야 기록 산행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새벽에 데워 온 햇반은 양념이 첨부되어 있어 맨밥보다 먹기가 쉽습니다. 게다가 조 대장님이 꺼내놓으신 반찬 그릇은 여섯 칸으로 구획이 되어있는데, 각 칸마다 오징어젓갈, 마늘 장아찌, 계란말이, 장조림, 또 두 가지 반찬이 얌전하게 담겨있어 한정식 집 정갈한 밥상을 마주한 기분입니다. 버너에 물을 끓여 컵라면까지 먹고 나니 그동안의 피로가 가십니다. 5인분 물에 커피 3봉을 타 드셔본 적이 있는지요? 그 맛 참 괜챦더군요. 커피가 부족하여 궁여지책으로 만든 엷은 커피였지만 부드러운 맛과 따스한 온기가 마치 산 야생화처럼 수수한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1시 17분, 정상에 남은 젊은 산꾼 다섯명에게 화이팅 인사를 하고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그들은 아마 정상에서 텐트를 칠 것 같습니다. 연칠성령에 1시 55분에 도착하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예서 직진하면 망군대 고적대에 이르게 되는 바, 두타산 쉰움산으로 이어지는 이 등산로가 바로 백두대간의 한 자락이 되는 구간이지요. 칠성폭포(2시 55분)까지의 한 시간 하산길은 그야말로 급경사 난코스입니다. 내려오는 길이니까 하산로이지 그야말로 양쪽 계곡 사이 능선의 칼등같은 길을 급하게 떨어져 내려가는 길입니다. 등산을 생각지 않고 따라 오시게된 김동형 집사님은 신발 바닥도 구두 스타일에 신발 안쪽도 신사화 깔창인지라 악전고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칠성폭포 위 찬 계곡물에 뜨거운 발을 담그며 고생한 발을 쉬게 합니다. 김동형 집사님께서는 "군대에서도 이런 고생은 해보지 않았다, 이건 극기 훈련을 넘어 고문입니다. 고문."이라며 힘드신 것을 토로하십니다. 가장 나쁜 컨디션에 거의 평상에 가까운 복장으로 나선 장거리 난코스 산행, 평소 철인 경기 선수같은 체력과 풍채를 가진 김 집사님이 아니고선 이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른골 골짜기 암반과 물줄기의 경치도 즐길 여유없이 그대로 치달아 신선봉 문간재에 도착하니 4시 16분입니다. 이젠 체력도 바닥나고 발바닥은 불이 날 정도입니다. 쌍폭과 용추폭포를 오르내리는 관광객들의 여유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지만 새삼 용추폭포 10분 거리도 일 없습니다. 거의 관성에 의지하여 발걸음은 절로 나아갑니다. 4시 45분 새벽에 붙었던 산성터 갈림길 표지판에 이르르니 이젠 다 왔다는 안도의 숨을 쉬게 됩니다. 예까지 돌아오는데 무려 열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5시 10분 무릉계곡을 지납니다. 두타 청옥산 계곡 계곡에서 모인 물이 넘쳐흐르는 무릉계(武陵溪)는 깨끗한 암반과 투명한 옥수(玉水)가 별천세계(別天世界)를 이루고 있어, 계곡을 좋아하는 이는 한 번쯤 가 보았을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삼화사 아래에는 수백 명이 족히 쉴 수 있는 넓은 반석이 나타나는데 이 이 반석은 무릉반석(武陵磐石)이라 부르며, 이 반석에는 조선 4대 명필인 양사언이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12자 친필로 예찬하고 각자해 놓았을 정도로 비경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그 빼어난 절경으로 인해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 여겨짐은 당연하겠거니와, 이 곳을 찾은 뭇 범인(凡人)들 조차도 한 수 시 구절이 나올 정도로 넋을 잃게 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계곡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두타산의 '두타(頭陀)'란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수행'을 말한다고 하는데 오늘 우리의 산행은 그야말로 자신의 체력과 의지를 닦는 수행에 결코 뒤지지 않을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김민홍 집사님은 '두 번 다시 오르지 않을 산'이기에 '두다산'이라 하시지만 그건 방금 산고(産苦)를 치러낸 산모(産母)가 '다시는 애기 낳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으면 되겠지요. 어제의 숙박지 청옥산 산장에 들러 샤워를 합니다. 김민홍 집사님께서 어제 미리 부탁해 놓았었지요. 산장 주인 부부는 쾌히 승낙하시며 "우리 집 손님에게 무슨 물값을 따로 받겠는가?"하시며 펄쩍 뛰시기까지 하실 정도로 인정이 풍부하신 분들입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늘 이런 따스함을 느끼게 되어 아직도 세상은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행의 보너스로 챙겨오게 됩니다. 샤워를 마치고 주인 내외분과 시원한 음료를 나누며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한결 가뿐해진 몸과 뿌듯한 마음에 찬 음료가 들어가니 12시간 반에 걸친 힘든 산행의 피로가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수고한 발바닥을 두드리며 허벅지도 주물러 줍니다. 새삼 온 몸을 지탱해준 발과 다리가 고맙고 허파와 심장이 고마우며 땀구멍 하나 모세혈관 하나 신체 모두가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장 주인 내외분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어차피 집에는 한 밤중에야 도착할 일, 동해시에 들어 저녁을 먹습니다. 깨끗한 한식집에 들어 정갈하고 따끈한 뚝배기 불고기로 고단한 몸을 위로합니다. 김민홍 집사님께서 1박 2일 동안의 긴 여정과 힘들었던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려주셨습니다. 모두들 공감하며 감사의 아멘으로 화답하였지요. 정갈하게 차려준 저녁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집으로 향합니다. 시간은 7시 17분입니다. 12시 전에 집에 갈 수 있으면 성공한 셈일텐데, 과연 길이 어떨지요? 장평 휴게소에서 김동형 집사님께서 대접해 주신 따끈한 꿀차 한 잔을 마시고는 내처 달렸음에도 분당에 도착하니 새벽 12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마침 서울 행 심야 좌석버스가 있어 저도 집에 가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분당 발 심야 좌석 버스가 서울 도심에 들어서니 벌써 마음 속에는 조 대장님께서 제안하신 겨울 설악산 원정 산행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올 겨울에도 설악은 한껏 흰 눈을 지고 있겠지요. 그 흰 품에 안겨 아이들처럼 한껏 뒹굴며 겨울산의 낭만을 함께 할 산우회원들을 그리며 그 겨울까지 또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요. 이번 두타 청옥 원정 산행을 제의하시며 다양한 먹거리와 리드로 도와주신 조동훈 전 대장님, 버너 코펠 등 무거운 장비를 지시고 앞장서 힘 돋우신 오도광 회장님, 남자들 다섯 명 만의 자칫 무료할 수도 있는 여정에 시종 의미있고 유익한 말씀으로 분위기를 이끌며 운전까지 도와주신 김민홍 집사님, 편치 않은 몸 상태에서 희생적으로 참여하시고 운전하시며 남아의 신의와 매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김동형 집사님, 너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을 거닐며 운선(雲仙)처럼 하루를 보내며 두타산과 청옥산 무릉계곡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하여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18.155.166.246 안동산우회: 12시간이상 악전고투하며 두타산을 오른 산행기를 고교동기 홈페이지에 올린뒤 동기회등산클럽의 월례산행에 나갔더니 동기산우들이 "너같은 친 구하고는 상종할수 없다"며 저마다 한마디씩 합디다. 이더위에 미쳤다고 12시간도 넘게 산중에서 헤매었느냐는 것이었읍니 다. 그러다가 일을 저질를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충고도 받았지요. 되돌 아보면 아찔한 산행이었읍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살펴 주셨기에 [08/21-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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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 5월의 유머<어머니와 아내의 차이> 2 오도광 2002.05.11 1396
» 5인의 선인, 구름 속 두타산을 오르다(45차 산행기, '03.8,12-13) 1 김광엽 2003.08.16 1011
1768 5차 기독교유적 탐방 (인천지역 2009.05.07) 1 김민수 집사 2009.05.09 2652
1767 6.25 60 주년에서 보는 한민족의 지혜와 희망 file 이 효종 장로 2010.06.14 1180
1766 60년 후배와 도봉산을 오르다(28차, '02.3.1.금) 1 김광엽 2002.03.02 1494
1765 60년도 교인 전광국 1 임중규장로 2014.09.03 402
1764 6백년앞을 꽤뚫고 내다 본 世宗大王의 慧眼 2 오도광 2004.10.10 635
1763 6월 18일 공동의회 결과입니다 최창해 2006.06.21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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