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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時代 最適의 Digital Letter 한글 『나랏말쌈(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漢字)와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그런고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저 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일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여겨 스물여덟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이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저 함이라』 <訓民正音頒布文의 첫머리를 요즈음문체로 옮겼음> 9일은 世宗大王의 한글創制(訓民正音 頒布)를 기리는 한글날이다. 한글날이라면 한글이 이 세상에 태어난 생일날이라고 하겠는데 엄밀히 따지면 10월9일은 한글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 아니다. 그런데도 10월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데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다. 世宗大王이 訓民正音을 頒布한 날은 世宗28년(1446년)陰9월29일로 전해져 왔다. 이날을 陽曆으로 환산하면 현행의 그레고리曆으로는 10월29일이고 訓民正音이 頒布된 1446년에 서양에서 통용되던 율리우스曆으로 하면 10월28일이라고 한다. 실제 한글의 탄생일인 1446년 음9월29일을 10월28일로 보느냐 10월29일로 보느냐 하는 것도 미묘한 문제이지만 어느 날이 되든 현재의 한글날보다는 20일 가까운 차이가 난다. 記錄에 의하면 우리글을 살리고 가꾸기 위해 世宗大王의 訓民正音創制頒布를 처음으로 기념한 것은 訓民正音頒布 480주년이 되는 1926년이었다. 그 해 11월4일 朝鮮語學會(한글학회前身)가 鐘路에 자리한 이름있는 食堂인 食道園서 訓民正音頒布480주년을 기리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訓民正音頒布日로 알려진 陰曆9월29일을 記念行事日로 擇日하니 그 해의 陰曆9월29일은 陽曆11월4일이었다. 訓民正音頒布記念行事를 처음으로 주최한 朝鮮語學會는 訓民正音頒布記念行事가 뜻깊고 일반의 呼應도 좋으니 해마다 음 9월29일에 年例行事로 이어가기로 했으며 年例行事로 치르려면 行事日의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에 따라 이날을 「가갸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가갸날이라고 이름한 것은 한글이란 말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 한글을 처음 배울 때 『하늘 天, 따 地…』하는 천자문식으로 『가갸거겨....』하며 韻을 떼었기 때문이었다. 한글이란 말은 1913년 한글운동의 先驅者인 周時經이 처음 지어낸 말이나 1920년대까지 그리 널리 알려지거나 쓰이지 않았는데 한글이란 말이 차츰차츰 보급되면서 사용되면서 가갸날은 자연스럽게 한글날로 바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陰曆으로 하니 날자가 해마다 바뀌어 불편하다고 하여 1446년9월29일을 陽曆으로 환산하여 그 날을 한글날로 정하자는 안이 나왔다. 이에 따라 1446년9월29일을 陽曆으로 환산하니 10월29일이었으며 1932년부터 10월29일을 한글날로 하고 행사를 계속했다. 10월29일을 한글날로 기념한 것이 1931년부터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陽曆인 그레고리曆은 1589년부터 사용되었고 訓民正音이 頒布된 15세기의 陽曆은 유리우스曆이었으니 유리우스曆에 따르는 것이 정확하다는 異論이 제기되었으며 유리우스曆으로 다시 환산하여 보니 1446년陰9월29일은 10월28일이었다. 그러나 10월28로 하느냐 29일로 하느냐는 논의가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다. 韓國文化抹殺政策을 강압적으로 밀어부친 日帝(朝鮮總督府)는 內鮮一體라는 구호를 내걸고 創氏改名을 강요하고 各級學校서의 한글敎育과 使用을 전면 금지하였으며 1937년 朝鮮語學會사건을 조작하여 한글學者를 모조리 投獄했다. 한글날記念行事는 숨고 못쉬고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日帝의 韓國文化抹殺政策에 의해 소멸된 한글날은 1945년 광복과 함께 부활되었는데 이때 부활된 한글날은 10월9일로 새로히 택일되었다. 10월9일이 한글날로 擇日된 것은 1940년 발견된 訓民正音 解例本이라는 古書의 기술에 따른 것이다. 鄭麟趾가 기술한 이책의 序文에는 訓民正音 頒布時期를 를 1446년9월上瀚(상한)이라고 나왔는데 上瀚은 上旬이라는 뜻이며 上旬의 마지막날인 9월10일을 陽曆으로 환산하니 10월9일이 되어 10월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이다. 정부수립이후 한글날은 公休日로 지정되어 지켜오다가 公休日축소방침에 따라 1991년부터 공휴일이 아닌 평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한글날을 國慶日로 하지는 운동이 펼쳐져 國會에 法案이 제출되었다고 한다. 訓民正音탄생의 정확한 날을 찾아 이날을 한글날로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지 않는 것은 한글의 탄생일이 이날이라고 딱 부러지게 단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訓民正音은 1446년 頒布되었지만 그보다 3년전인 世宗25년(1443년)에 이미 完成(創制)되었으나 崔萬理를 비롯한 集賢殿의 守舊派重臣들의 강력한 반발로 頒布가 3년이나 미뤄졌다. 崔萬理를 비롯한 元老重臣들은 訓民正音頒布에 반대하는 上疏를 올리며 강하게 반발했으며 世宗大王은 成三問 鄭麟趾 申叔舟등 소장학자를 독려하여 訓民正音을 創制하고도 重臣들의 反撥을 무마하느라고 완성된 한글의 頒布를 3년이나 미루면서 王世子직속으로 諺文廳이라는 이름으로 새기구를 설치하여 완성된 訓民正音의 實用化硏究를 계속케 하고 解說書編纂, 使用實驗, 未備點補完作業을 3년이나 계속한 끝에 頒布했던 것이다. 訓民正音반포 4년 뒤인 1450년 세종대왕이 崩御했으니 시기적으로 좀더 늦었더라면 世宗大王이 기력이 쇠하여 重臣들의 反對를 꺾지 못한 채 訓民正音이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군주가 심혈을 기울여 창제했는데도 訓民正音은 그 뒤 수백년간 우리의 자랑스러운 文字로 어엿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兒女子들을 위한 閨房文字내지는 常民들이나 사용하는 諺文으로 괄시와 천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한글은 그 眞價를 널리 과시하고 있다. 한글이 地球上의 文字중 가장 科學的이고 優秀한 文字라는 표현은 너무나 많이 강조되어 왔기 때문에 다소 陳腐하다고 할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國粹主義的이고 我田引水格이 아니냐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글이 IT時代에 가장 잘 맞고 똑 떨어지는 最適의 Digital文字인 것은 분명하다. 韓國이 불과 수년사이에 急速한 PC의 普及으로 世界의 IT强國으로 놀랍게 부상한 것은 한글의 Digital機能과 特性에 힘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이 IT時代 最適의 Digital文字로 評價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表音文字이며 글자수가 적기 때문이다. 訓民正音은 28字로 창제되었으나 그중 4字가 時代의 흐름속에서 退化되고 현재 24字가 사용되고 있는데 IT의 基本記號(文字)인 Alphabet가 26字여서 한글이 두자 적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English Alphabet를 기본형으로 하여 各國別로 소수의 固有特異字形과 補助記號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은 아무런 補助記號나 特殊字形없이 變換Key만으로 Alphabet와 동일한 字板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IT世界의 競爭은 정보의 입력으로 판가름나며 입수한 정보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Input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신속하고 정확한 Input경쟁은 English Alphabet기본형에 몇 개의 固有字形과 補助記號를 추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English Alpabet基本字板을 그대로 사용하며 文字의 配列만 한글의 特性에 맞춘 한글은 Input速度서는 英語와 동일하고 프랑스語, 도이치語, 스페인語, 이탈리아語, 러시아語등 유럽 여러 나라를 앞찌르며 東洋의 日本語나 中國語를 완전 압도한다.. 意文字인 中國語는 글자수가 3만을 넘는다. 國內서 常用漢字라고 하여 추리고 고르고 해도 1500字니 2000字니 하는 수자가 나오지 않는가. 그많은 漢字를 어떻게 좁은 자판에 넣고 치나? 中國語字板은 엉뚱하게도 Alphabet으로만 되어있다. 漢字를 字板에 나열하는 게 불가능해 中國語發音을 Alphabet表記로 입력한 후 일일이 變換Key를 눌러 漢字로 바꾸어 畵面에 나오게 한다. 같은 發音의 글자가 많음으로 變換Key를 누르면 같은 發音의 漢字가 영상에 나오고 그중 하나를 選擇하여야 한다. 한글打字서 漢字變換과 같은 방법이다. 같은 發音의 글자가 20개 정도는 보통이고 30개가 넘는 것도 있다. 그 중에서 맞는 漢字를 정확하게 선택해야 한다. 열의가 없는 사람은 컴퓨터에서 멀어지기 십상이다. 韓國의 인터넷文化가 中國을 앞선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다. 타이핑을 많이 하는 專門職中國人들은 漢字의 劃과 부수를 나열한 또 다른 字板을 이용하는데 이때에는 字板을 최대 다섯번 눌러 글자 하나가 구성되므로 五筆字型이라고 한다. 속도가 빠르지만 익히기 어려워 일반인은 못한다. 그러면 日本은 어떤가. 日本의 컴퓨터 字板도 中國과 다름없이 Alphabet로 되었다. 日本의 가나는 모두 102字여서 한字板에 모두 집어 넣기가 쉽지 않다. 102개의 가나를 字板에 올려 가나로 입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익숙해지기 어려워 이용도가 낮다. 그래서 할 수없이 English Alphabet자판에 日本語를 영문표기로 써넣고서는 變換Key를 눌러 畵面에 日本가나가 떠오르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文章마다 漢字가 섞여있어 쉼없이 漢字變換을 해줘야 하므로 속도가 더디다. 나아가 일본은 같은 漢字를 어러 가지로 發音하고 같은 發音의 다른 漢字가 무척 많아 이를 골라 내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러니 인터넷 親和度가 韓國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와 같은 동남아국가들은 公用語외에도 사용하는 언어가 많아 컴퓨터 입력방식의 개발부터 골칫덩어리다. 24개의 子音. 母音만으로 자판 내에서 모든 문자 입력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한글은 하늘의 祝福이자 과학이다. 携帶電話로 문자를 보낼 때 한글로 5초면 되는 문장을 中國. 日本 文字는 35초 걸린다는 비교가 있었다. 한글의 입력 速度가 7배 정도 빠르다는 얘기다. IT시대에 큰 경쟁력이다. 韓國人의 부지런하고 급한 性格과 勝負根性에, 한글이 Digital 文字로서 世界頂上의 競爭力이 있는 덕에 우리가 인터넷 强國이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글로 된 인터넷 文字情報의 양은 세계 몇번째는 된다. 정확히 558년전 世宗大王이 新進氣銳의 少壯學者들의 補佐로 한글을 창제할 때에 어떻게 600년앞을 내다보고 한글을 그처럼 글자수 28개만의 表音文字로 만들었을까. 먼 앞날을 꽤뚫어본 世宗大王의 慧眼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6개인 Alphabet은 한글과 같은 表音文字이고 組合도 쉽지만 A, E, O, U. Y등의 母音이 위치에 따라 발음이 다르고 나라별로 讀音이 다른 短點이 있다. 그러나 한글은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소리만 갖는다. 語彙 組合能力도 가장 다양하다. 소리 表現만도 8800여개여서 中國語의 400여개, 日本語의 300여개와 비교가 안 된다. 世界的 言語學者들은 한글이 가장 배우기 쉽고 과학적이어서 세계 문자 중 으뜸이라고 말한다. Alphabet의 꿈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거의 0%인 世界最低의 文盲률이 가능했고 이게 國家發展의 原動力이 되고있다. 發音器官의 모양까지 반영한 音聲工學的 文字여서 세계의 언어를 다 표현해낸다. 맥도널드를 中國은 「마이당로우」 日本은「마쿠도나르도」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네팔 등의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로 문자를 만들어 주는 운동이 추진되는 이유다. 외국인에게 5분만 설명하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게 할 수 있다. 한글은 기계적 친화력도 가장 좋아 정보통신 시대의 준비된 문자다. 세계화의 잠재력이 적지 않다. 世宗大王과 같은 慧眼의 君主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 이 民族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그는 人類史에 있어서 가장 偉大하고 唯一한 情報化大王이다. 211.243.209.109 한글사랑: 안동교회 홈페이지를 사랑하는 손님입니다. 평소에 님의 좋은 풍경과 음악에 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전부터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불필요한 한자가 너무 많더군요. 한글을 기리는 글에도 어김없이 말입니다. 굳이 한자를 쓰지 않아도 뜻이 통하는 것은 한글을 쓰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지금 한자를 하나도 안썼는데 혹시 뜻을 전달하는데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10/14-09:18] 211.243.209.109 한글사랑: 그래도 이번에는 평소에 비해 한자 사용을 많이 자제하셨군요.^^ [10/14-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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