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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註 : 물줄기를 따라 한강의 남과 북 강변산책로를 답파한 것은 정확히 1년전인 2006년3월이었고 그 사실을 안 친구들이 곰바위같은 끈기라고 놀라워 하면서 록으로 남겨 보라고 권유해서 고교동기들의 홈페이지에 글을 써올렸었는데  1년이 지난 이제와서 지난해 일을 떠올리면서 안동사랑방에 올립니다. 추영일 장로가 한문을 너무 많이 써서 읽기가 불편하다고 지적하여 한문을 고유명사와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어휘에만 제한하고 한글을 되도록 많이 쓰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한가람 물줄기따라 발가는대로 ①
 
                                    炭川을 散策하다가 漢江本流로



漢陽定都이후 6백여년간 淸溪川은 옛漢陽城(4大門안)의 한복판을 꿰뚫고 흐르며 漢陽을 南北으로 區劃지었다. 定都당시엔 漢陽城 南쪽을 크게 휘돌아 흐르던 漢江(순우리말로는 한가람)은 漢陽이 世界10大都市의 하나라 크게 성장한 오늘의 서울 한복판을 꿰뜷고 흐르며 淸溪川이 그랬듯이 서울을 南北으로 구획짓고 있다. 옛漢陽과 서울의 한복판을 꿰뚫고 흐른다는 점에서 淸溪川과 漢江은 기능과 역할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淸溪川은 西에서 東으로 흘러 가고 漢江은 정반대로 東에서 西로 흘러 내린다는 것이다.

韓半島의 등뼈로 불리는 白頭大幹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계곡의 물들을 모아 도도히 흐르는 한가람이 千萬人口의 巨大都市 서울과 가장 처음 민니는 곳은 江北쪽으로는 九里市와 맛닿은 廣津區 廣藏洞이고  江南쪽으로는 河南市와 이어진 江東區 高德洞이며 서울과 작별하는 자리는 江南쪽으로는 金浦市와 맛닿은 江西區 開花洞이고 江北쪽으로는 高陽市와 연해있는 麻浦區 上岩洞이다. 서울의 東쪽끝에서  西쪽끝까지 흘러내리는 한가람물길은 40km에 조금 못쳐 37~38km남짓하여 대충 百里물길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한가람 물길따라 발가는 대로 이리저리 쏘다니다 보니 漢江아 서울로 접어드는 東쪽끝에서 서울과 헤어지는 西쪽끝까지 한가람百里물길을 걸어서 踏破했다. 물론 그 百里물길을 하루동안 단숨에 내친 걸음으로 끝낸 것은 아니고 하루에 두세시간씩 산책하는 기분으로 발가는 대로 릴레이하듯 이어걷기를 하여 東쪽끝에서 西쪽끝에 닿은 것이다. 흐르는 물길을 그대로만 따라 걸은 것은 아니고 대체로 上流에서 下流쪽으로 내려왔지만 물길을 거슬러 下流에서 上流쪽으로 올라가기도 했으나 바통터치만은 정확하게 했  한가람百里물길을 踏破하는 데에는 엿새쯤 걸렸다. 이렇게 털어 놓으면 백수건달로 오죽이나 할 일이 없고 답답했으면 그랬겠느냐고 딱하게 여기며 혀를 찰 찬구도 있을 게다. 그러나 내나름대로는 의미도 있고 유익한 시도였다고 자부하고 싶다. 도중에 약간 지루하기도 했고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고 발이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서울과 한강에 관해서 잘못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서울의 한동네서만 거의 平生을 살아와 初代 民選 서울市長을 역임한 趙淳선배로부터 서울토박이認證書까지 받았지만(조순시장 재임시절 서울시는 정도6백년을 맞았고 서울토박이지정은 한양정도6백년기념사업으로 진행되었다)  한가람물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제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생소한 곳을 난생처음 가보기도 했고  전혀 모르고 지내온 한가람 물줄기의 이구비, 저구비를 뒤늦게나마 비로서 내눈으로 직접 보고 익힐수 있었다.

한가람물길 이어걷기는 전혀 생각지도 않다가 우연하게 시도하게 되었다. 3월초의 어느날 낮에 두어시간쯤 짬이 나서 散策이나 할 생각으로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앞 炭川둔치로 나섰다. 漢江의 支流인 炭川은 龍仁에서 盆唐으로 흘러들어 盆唐을 포함한 城南市를 南에서 北으로 관류하고 蠶室의 올림픽競技場 옆에서 漢江本流에 합류한다. 盆唐의 아파트들은 炭川을 따라 옹기종기  들어서 있으며 炭川은 河川정비가 잘 되어 물줄기양편으로 자전거도로와 도보산책로가 깔끔하게 분리포장되어있고 여기저기 넓은 놀이터에 각종運動施設을 갖춘 근린공원이 조성되어있다. 분당주민은 탄천과 친숙하여 물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고 한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히곤 한다. 산책을  할 생각으로 탄천으로 발길을 옮긴 나는 炭川 둔치에 이를 때까지도 어느 방향으로 산책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사는 二梅洞은 盆唐의 초입동네지만 城南市전체를 놓고 보면 바로 중간지점에 있는데 南에서 北으로 흘러내리는 炭川의 물줄기를 따라 北으로 가면 漢江이고 물흐름을 거슬러 南으로 가면 龍仁하고도 개발이 한창인 水枝區 竹田에 이른다. 그동안 炭川길을 여러차례 산책했지만 南쪽방향이던 北쪽방향이던 집에서 30분쯤 되는 거리 그러니까 2km남짓한 길을 걸어보았을 뿐 더 멀리는 걸어보지 못했다.  

방향을 결정짓지 못하고  망설이던 나는 炭川산책로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漢江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간이 두시간쯤 남으니까 정확히 1시간동안 가는 데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기로 작정하고 북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炭川정비는 매우 양호한 상태여서 자전거통행로와 보도가 따로 구분되어 있고 자전거통행로는 아스팔트포장, 보도는 탄력이 부드러운 아스콘으로 포장되어 보행이 수월했다. 날씨도 푸근하고  낮시간인지라 산책로는 여름 한철처럼 붑비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바람쏘이러 나온 산책객들이 꽤 많았다. 도보산책객외에도 파이버헬멧에 검은 선글래스 그리고 울긋불긋한 복장을 한  자전거族, 인라인 스케이터, 그리고 양팔을 어깨높이까지 힘차게 휘저으며 빠르게 걷는 파워워커들도 눈에 띄었다. 그런가 하면 제대로 말을 듣지않는 다리를 끌다 싶이 절름거리며 힘들게 발을 옮겨 놓는 중풍환자도 있다. 나는 여러부류의 산책객들 틈에서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평소의 페이스대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炭川변 양쪽으로 쌓아올린 제방넘어로는 고층아파트단지가 서로 키라도 재려는 듯이 줄줄이 늘어섰고 城南제2종합운동장과 공공건물 상가빌딩들이 삐죽삐죽 솟아 세를 과시하고 있다. 파란색 보도에는 하얀 페인트로 7.5 km라는 거리표시가 선명하게 적혔다. 도대체 어디가 起點이길래 7.5km라는 것일까. 漢江本流부터일까? 7.5km라면 漢江은 생각보다 훨씬 가깝지 않은가. 炭川이 漢江의 支流라는 사실은 올림픽大路를 오가면서 이미 알고 있지만 炭川이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궁금하다. 보도를 따라 걸어가니 거리표시는 500m씩 줄어들었다. 二梅洞서 2km쯤 내려가 盆唐은 마침표를 찍고 城南의 끝머리 모란이 나왔고 건너편으로는 空軍基地를 겸한 서울空港이 자리했다.

아직도 命脈을 잇고 있는 재래식 시골場으로서는 首都圈서 가장 큰 규모이고 없는 것이 없다는 모란場터가 시작되면서 고층아파트단지의 구조물은 視野에서 살아지고 제방넘어로는 야산이 이어진다. 건너편 서울空港쪽은 滑走路와 게류중인 軍用機의 모습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제방위로 키를 넘는 블로크담장이 쳐졌다.  물길 양편으로 뚫려있던 산책로도 서울空港의 담장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자 건너편 西岸산책로는 슬그머니 없어지고 이쪽의 東岸산책로만 홀로 남는다. 담장으로 視野를 가로 막아 비행장안을 건너다 볼 수는 없으나  軍輸送機와 輕飛行機들이 제법 자주 離着陸하여 프로펠러엔진의 요란스러운 굉금이 정적을 깨트리곤 한다. 飛行場활주로서는 한낮인데도 이따금식 공중으로 신호탄이 발사되곤 한다. 아마도 엷은 봄안개와 아지랭이로 視界가 좋지않아 착륙하는 航空機조종사에게 방향을 알려주기 위한 것인 듯 했다. 서울空港의 긴 담장이 끝날 무렵 시간도 대충 출발서 한시간이 넘어섰음으로 대충 이쯤해서 되돌아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거리표시의 起點에 대한 궁금증이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출발때 7.5km이던 거리표시는 2.5km로 줄어 들었다. 출발해서  5km를 걸었다는 얘기다. 전체의  ⅔를 걸어왔고 ⅓이 남았으니 내친 걸음에 거리표시起點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발동하는 것이었다. 盆唐線電鐵은 炭川과 나란히 뚫린 지하로선을 달려 산책로출구의 안내표지판에는 地下鐵驛연결방향이 계속 표시되었다. 내가 상책을 시작한 자리는 二梅驛출구앞이였고 계속해서 野塔驛 모란驛 太平驛의 방향표시가 이어져 표시되었다. 地下鐵驛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굳이 地下鐵을 고집하지 않고 城南市內버스를 이용하더라도 제시간 歸家는 어렵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망설일 것 없이 거리표시起點까지 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1시간을 훨씬 넘게 걸어 발바닥이 굳어지는 듯 한 느낌이 들 무럽  마침내 거리표시起點이 나타났다. 서울과 城南의 경계지점이다. 行政區劃으로는 城南市 中原區 福井洞이다. 거리표시起點의 표지판에는 漢江 8.5km, 龍仁(竹田) 16.5km 로 적혔다. 아직도 漢江까지는 온 길보다 더 가야 한다. 생각보다 가깝다고 여겼던 漢江은 생각보다 훨씬 멀지 않은가. 漢江까지는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서울과 城南이 마주치는 거리표시起點은 조그마한둥계점이기도 했다. 城南市가 조성한 산책로는 바로 여기서 끝나고 서울 松坡區가 만든 散策路가 漢江까지 이어진다.  자전거도로도 여기부터 다시 시작되어 표지판 바로 옆 공터에 텐트를 쳐 놓고 簡易自轉車整備所가 차려져 자전거의 수리와 정비를 했고  包裝馬車음식점이 가 산책객과 사이클 레저族을 대상으로 대낮부터 영업중이다. 包裝馬車에는 10여명이 陣을 치고 둘러앉아 간식을 들며 왁자지껄 담소한다.

산책로를 벗어나 제방으로 올라 일반도로에 들어서니 서울特別市 松坡區 文井洞과 연했고 炭川건너는 城南市 水晶區 新村洞 그리고 서울쪽은 江南區 栗峴洞이란다. 서울의 江南區 松坡區와 城南의 中原區 水晶區등 4개구가 연해있는 4角點이다. 바로 그4角點에 福井驛이 자리했다. 始作이 半이라고 하는 속담이 있는데 시작을 하고서도 절반을 해치웠으니 절반도 훨씬 넘게 한 것이나 다름없고 다음 번에는 福井~漢江을 해치워 二梅~漢江까지를 完全 踏破해야겠다는 생각은 福井서 地下鐵타고 歸家하는 차중에서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랐다. 단단히 마음먹고 작심한 것이 아니라 그저 걸어볼 만 하니 한번 걸어보자고 혼자서 가볍게 마음속으로 새겨 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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