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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가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외롭고 쓸쓸했다. 지금까지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랐던 예수께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받아 붙들리고 로마 군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형으로 처형당했기 때문이다. 혹시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까지도 붙들어 욕을 보일까봐 두렵기도 했겠지만, 이 두 여인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들고 무덤을 보러 갔다. 아마도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만 돌아가자. 아무도 관심 없고, 돌 문을 열어줄 사람도 없는데...” “빌립이 지도자가 되어 일 할꺼야.” 하지만 만약 그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되돌아 갔다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기적은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들이 하는 주의 일에도 고비가 있다. 어려움이 가로 막히고, 힘이 빠지고, 이제 그만 둘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놀라게 할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는 정성된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신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러 거두게 될 것이다. 두 마리아가 무덤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천사들이 나타나 돌로 된 예수님의 무덤 문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눈부실 정도의 흰 옷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무덤 문을 왜 여셨을까? 문이 닫혀 있으면 예수께서 나올 수 없으시니까?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 돌을 굴릴 힘이 없으셨을까? 성경에는 천사가 예수님을 위해 돌을 굴렸다는 말씀이 없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 돌문이 열렸을까? 돌문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다. 그들이 들어가 보게 하기 위해 열려진 것이다. 5-6절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에 막힌 돌문을 열어 주신다. 의심의 돌이 굴러가게 하시고 확신의 문이 열리게 하신다. 한숨과 탄식의 돌이 굴려가고 기쁨의 새 문이 열리게 하신다. 죽음과 절망의 돌을 굴려 내시고 새 생명과 소망의 문을 열어 주신다. 주님이 부활하신 이 날, 부활의 기적이 성도들의 삶에도 다시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