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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22일 성령강림절 셋째주일>
   육성설교

되돌아갈 수 없는 역사

민  수  기  14: 1-10
빌립보서    3:10-16

  

    성경에는 '역사'란 단어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만, "역사는 기억된 사건의 총화"라는 폴 틸릭의 정의를 따른다면, 구약성경은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기억된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히브리적 사고는 역사적인 사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역사의 하느님으로 소개되며, 그 하느님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구약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히브리인들의 사고는 고대 근동의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각입니다.

    고대의 다신교(多神敎)의 관심은 역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숭배하는 신들은 바로 자연의 무서운 힘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의 문제를 이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해결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자연의 주기적인 순환 즉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역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대 희랍(希臘)에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역사는 시계추(時計錘)의 움직임 같이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어떤 목표를 향하여 진행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순환적(循環的)인 역사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반해 히브리인의 역사 이해는 자연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 역사의 주인이 되셔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며, 그 역사를 미래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여 이끌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미래의 궁극적 목표를 향하여 역사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에, 역사는 시계추처럼 되풀이되거나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목표를 향하여 계속 진행하며 발전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그들 앞에 분명한 역사의 목표를 제시하시고, 그 목표를 향하여 나가도록 독려하셨습니다. 이런 역사 이해에 따르면 역사의 발전은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미 제시하신 목표를 향해 나가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 역사가들의 이해와 다른 것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책을 쓴 E. H. Carr는 그의 책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라고 정의를 하였습니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역사의 진보는 과거와 부단하게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어떤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대화 속에서 미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역사관에 따르면 미래는 항상 불확실할 수밖에 없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기보다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어합니다. 특별히 그 시대가 불안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복음은 바로 이런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 때문에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교회의 사명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미래를 제시하여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하면서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 과거를 다시 오늘에 실현하고자 하는 망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 때에 교회는 분명하게 미래를 제시하며 과감하게 그 미래를 향하여 전진해 가면서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던 이스라엘

    오늘 읽어 드린 민수기 14장 말씀은, 출애급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 가까이 와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다가 그들이 돌아와 한 보고를 듣고,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소란을 피웠다는 이야기입니다. 12명 중 10명은 돌아와서 절망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그러면서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절망에 빠져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왜 우리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사로잡히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우두머리를 세우자.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들이 돌아가자는 이집트가 어떤 땅입니까? 4백년 동안 노예로 있으면서 온갖 고초와 착취를 당한 땅이 아닙니까? 아들을 낳으면 갖다 버려야 하는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았던 땅이 아닙니까? 지금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면 바로의 더 극심한 착취와 모욕을 당할 것이 뻔한데, 그리로 돌아가겠다니 생각 없는 어리석은 충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물이 없을 때 그랬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투정하면서 이집트에서 먹던 생선이나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떠올리곤 하였습니다(민 11:4-6). 이들은 지금 그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며,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고기를 좀 못 먹는 것이 무에 대수이겠습니까? 그까짓 오이, 수박, 부추, 파, 마늘 없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합니까? 그것 때문에 참으로 어렵게 얻은 그들의 자유를 포기하겠다는 말입니까? 아니 노예였던 저들이 이제 거룩하신 하느님의 선민(選民)이 되어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는 놀라운 특권을 얻게 되었는데, 이제 다시 노예로 돌아가자니 정말로 생각 없는 백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하느님은 저들에게 그들의 자손이 번영을 누릴 땅을 약속하시고 그리로 인도하고 계신데, 그들은 미래에 주어질 자손들의 번영 같은 것은 안중에 없이 자기들의 일시적인 평안과 육체적 욕망만을 얻고자 한 어리석은 무리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저들에게 분명한 비전을 주셨는데도, 그리고 그 비전을 제시하신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확실한 것인가를 여러 기적을 통해 보여 주셨는데도 믿지 못하고, 그 비전을 포기하고 다시 노예의 땅으로 돌아가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백성이 아니겠습니까?

    이 어리석음과 한심함이 어찌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 만이겠습니까? 오랜 일제 식민지 하에 있다가 뜻밖의 해방을 맞이한 땅에서 많은 혼란과 가난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지금보다 일제 시대가 좋았다'고.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일제에 주구(走狗) 노릇하던 자들이 해방정국에서도 활개를 치면서 일제 시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부를 이룰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아픔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 일제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는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4·19 학생 의거에 의해서 이런 역사의 멍에를 벗고 새로운 역사를 향해 기지개를 켜려할 때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 때 역시 사람들은 그 혼란을 지혜롭게 극복하여 새로운 역사를 여는 대신에 과거로 회귀하면서 결국 군사혁명을 불러왔고, 30년 동안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우리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1992년 문민정부 이후 민주화를 향한 새로운 시대가 열렸지만, 오랜 세월 억압을 당하였던 이 나라가 제대로 민주화를 이루기에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조금씩 발전하였고, 우리 속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급한 사람들은 오늘의 사회 혼란을 견딜 수 없어 하면서 다시 옛날 독재정권 시대가 지금보다 낫다는 향수에 젖어 있습니다.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거나 되돌아갈 수 없다는 진리를 잊어버린 채 옛날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함은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로 되돌아가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두 죽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게 만드셨습니다. 역사를 거슬려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큰 죄악이었기 때문에 무서운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정신을 차리고 모두가 함께 이 혼란을 극복하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이지, 결코 과거로 돌아가자는 향수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제시하시는 목표인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앞으로 전진해 가야 할 것입니다.

    비전과 변화를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그러면 왜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리석게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하였을까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저들에게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느님이 저들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역사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저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그 자손을 번성케 하고 그 민족을 위한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바로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일생을 살다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이 이집트에 살면서 그 화려한 문명에 눈이 어두워져 하느님의 약속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4백년을 지내면서 결국 저들은 약속을 기다리며 사는 민족이 아닌 오늘의 삶에 급급하며 살아가는 비전 없는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느님께서 모세를 보내셨고,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이 저들을 고난 가운데서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확실한 것임을 보증하시기 위하여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으며, 홍해를 갈라 건너게도 하셨고, 바위가 터져 샘물이 솟게도 하셨습니다. 이 모든 기적들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노예로만 오래 살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느님의 역사에 대한 비전을 분명하게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조그만 난관에만 부딪쳐도 곧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비전인 약속의 땅은 모세가 약속한 것도 아니며, 그들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야훼 하느님께서 친히 주신 약속이며,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전은 이루어질지 아닐지 모르는 막연한 꿈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확실한 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꿈을 믿지 못하였으며, 그래서 조그마한 난관 앞에서 쉽게 그 꿈을 포기하여 버렸습니다. 결국 출애급 제1세대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꿈을 믿지 못하여 따르지 않는 민족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현실에서의 꿈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경제 발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꿈은 자유와 평화와 정의의 실현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정신적 가치가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경제가 발전하며 문화가 꽃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목표가 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꿈을 포기하면 우리는 또다시 몇 십년 지체하게 되며, 고난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쉽게 그들의 꿈을 포기하고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역사의 변화를 읽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을 때와 출애급 후 거친 광야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거룩한 계약 백성이 되었을 때의 변화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노예이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화려한 문명 세계 속에 있는 것이 거친 모래 바람과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광야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노예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그들의 삶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노예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의 변화는 비약적인 발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젖어버린 노예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신을 노예로 생각하였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거지가 왕자가 되었는데 여전히 자신을 거지로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지의 생활과 왕자의 생활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엄청난 삶의 변화입니다. 자신들이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면, 거룩한 백성답게 큰 비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했어야 마땅할 텐데, 자신들을 아직도 배고픈 노예로 생각하였기에 약속의 땅을 향해 가기보다는 고기가 있는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산업사회에서 급격하게 정보사회로 변화되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대중은 무식하고 무기력하여 가진 자들 즉 정치권력이나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언론이 말하는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보사회로 넘어 오면서 이 대중들은 쌍방향통신매체로 무장한 지식노동자로 변신하였습니다. 스스로 정보를 수용하고 배급하고 생산할 수 있는 세력으로 등장하여 역사를 바꾸고 사회를 변혁시켜가고 있습니다.

    전국 5대 도시 17세에서 39세까지의 남녀 1,600명을 심층면접조사방식으로 리서치한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들의 70%는 최근 사회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80%는 내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72%는 기존관습에 얽매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들의 쌍방향통신 이용지수를 보면, 92%는 인터넷을 이용하고, 80%는 매일 1회 이상 인터넷에 접속을 합니다. 70%는 매일 한 시간 이상씩 인터넷을 활용하고, 69%는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서 인터넷과 휴대폰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변화가 지금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산업사회 시대에 가졌던 사고를 가지고 이 역사를 바라보면, 결국 낙오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 하늘과 땅이 통합되었고, 영원한 생명의 문이 활짝 열렸으며, 하느님의 나라가 분명하게 우리 앞에 제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땅의 사고방식만 가지고 이 역사를 보려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지만, 이미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과학적 사고의 틀에 매여서 영적 세계를 부정해 버릴 때 우리는 여전히 육체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는 죄인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적 사고의 틀을 깨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받아드릴 때 우리는 영적 존재로 변화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땅의 경험적 사고를 벗어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무한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성령께서 우리 앞에 보여주시는 새로운 비전을 향하여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전하고 진보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의 진보는 단순한 과학적 진보나 발전이 아닙니다. 과학적 차원에서 영적인 차원으로의 진보이며,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발전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입체적으로 발전하는 역사를 따르기 위해서 단선적(單線的) 사고를 버리고 영적 사고를 갖도록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이 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가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 앞에 두신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과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과거에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던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뒤를 돌아다보지 마십시오.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십시오. 우리가 장성하였으면, 필연코 어린 아잇적 일을 버려야 합니다.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인형이 예쁘다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인형을 품에 안고 다닌다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육체에 속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된 어른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잇적 생각은 버리고 이제는 어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뒤를 보는 대신 앞에 있는 목표를 분명하게 보고 용기 있게 전진해 가야 할 것입니다. 가는 길에 비록 여러 가지 혼란과 장애와 어려움이 있다 하여도 결코 뒤돌아 서지 마십시오. 오로지 목표를 향해서만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하늘과 땅의 통일, 죽음이 철폐된 영생의 세계를 향하여 열린 생각과 확고한 믿음으로 전진하여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역사를 영적으로 발전하게 하면서 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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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시는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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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3.06.08 Views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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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6월 1일 부활절 일곱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 시 편 51: 1-10 요한복음 4: 1-14 오늘 오늘은 환경주일입니다. 점점 심각하게 파괴되어 가는 환경을 보전하고...
    Date2003.05.31 Views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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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하느님의 자녀 된 우리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25일 부활절 여섯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하느님의 자녀 된 우리 시 편 18:20-27 요한일서 3: 1- 8 오늘 읽어 드린 요한일서 3장 1절과 2절에 "하느님의 자녀"란 말이 두 번 반...
    Date2003.05.24 Views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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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구원사의 맥을 이어가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18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구원사의 맥을 이어가라 예레미야서 35: 1-11 디모데전서 4:12-16 오늘은 청년주일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자라나는 젊은이들...
    Date2003.05.18 Views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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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하느님을 모신 가정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11일 부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하느님을 모신 가정 시 편 16: 5-11 에베소서 6:10-18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만, 어버이 공경만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문제 즉 결혼, ...
    Date2003.05.10 Views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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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부활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4일 부활절 셋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부활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이사야서 65:17-25 요한복음 11:17-27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남의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의 부활주일 설교를 ...
    Date2003.05.04 Views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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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4월 27일 부활주일> 육성설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 편 51:10-19 요한복음 21:15-17 요한복음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
    Date2003.04.26 Views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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