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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29일 성령강림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가난한 마음으로 본 예수

이사야서  57:14-21
요한복음    3:31-36

  

    우리는 자기가 처한 입장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내가 가진 이념이나 사상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반갑고, 그를 좋게 평가하게 됩니다. 이념과 사상까지 갈 것 없이 우연히 만난 사람이 같은 고향이거나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생이면 그에 대하여 상당히 호의적인 감정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 반대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거나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선 경계하고 조심스럽게 그 사람을 탐색하게 되고, 대체로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지역감정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지역감정을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면서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뽑아야 할텐데, 거기까지는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닐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편견을 버릴 수 없고, 어떤 한 편을 택할 수밖에 없으며, 엄밀하게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자리에 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극히 제한된 정보에 접할 수 있을 뿐이고, 따라서 우리의 생각이나 경험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면 보다 넓게 멀리 바라보이지만, 낮은 곳에서는 지극히 제한된 거리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 땅의 것만을 볼 수밖에 없는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결국 이런 제약을 벗어나 하늘의 세계를 보려면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 멀리 보고, 보다 크게 생각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높이 올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 땅의 정보나 경험을 완전히 비우고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드릴 때,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경지에 서게 될 것이며,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른 하늘 나라의 정보에 접하면서 사람이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지극히 편파적이고 제한적이며 때로는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거듭날 때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의 눈을 밝히시며 우리를 영의 섹계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사울 왕의 다윗에 대한 편견

    우리는 먼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지를 성경에서 그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가진 적대적 감정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이 처음 다윗을 만났을 때에는 그에 대하여 호감을 가졌습니다. 골리앗 대장이 이끄는 블레셋군 앞에서 이스라엘 군이 두려워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이 나타나 뜻밖에 골리앗을 넘어뜨림으로 이스라엘군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울 왕은 다윗에 대하여 호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개선하여 돌아오는 길에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여인들의 노래를 듣는 순간, 사울 왕의 마음이 변하였습니다.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 하고 투덜거렸다. 삼상 18:8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왕의 자리를 다윗에게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이 들면서 다윗을 없애버려야 할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윗을 죽이려 했고, 다윗이 도망하자 그를 끝까지 추격하여 죽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사울 왕에게 아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는 다윗을 아들처럼 사랑하여 자기 후계자로 삼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왕권에 대한 집착으로 인하여 결국은 정신분열증세까지 보였고 불행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해서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은 오히려 다윗을 사랑하여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자기 아버지로부터 그를 보호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왕권에 대한 집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운 요나단은 자기 대신 왕이 될지도 모르는 다윗을 사랑하는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후에 왕이 되었고,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이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진정으로 슬퍼하며 애도하였습니다. 다윗은 훗날 "하느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상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런 다윗을 적으로 삼았던 사울 왕은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은 사울 왕을 떠나셨고 그와 함께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사울 왕은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이 내 마음이 가난하고 순수하면 사람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으며, 또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를 하느님이 사랑하시고, 그와 함께 하신다고 오늘의 본문인 이사야서 57장 1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비록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나, 겸손한 사람과도 함께 있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과도 함께 있다. 겸손한 사람과도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복 돋우어 주고, 회개하는 사람과도 같이 있으면서 그들의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하여 준다."

    가난한 마음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객관적으로 하느님의 역사와 사람을 볼 수 있게 하므로 하느님과 사람 모두에게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 못하고 욕망이나 편견이 내 마음을 지배할 때 우리는 올바로 상대를 평가하는 대신 나의 이해관계를 따라 평가하며, 순수한 인간관계를 이룰 수 없게 됩니다. 욕망으로 흐려진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역사를 볼 수 없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으며, 하느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그의 삶은 영생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배척한 종교지도자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더더구나 영적 세계를 볼 줄 아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두가 죄로 그 마음의 눈이 어두워졌고, 율법종교의 형식주의에 치우쳐 있어서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를 메시야로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누구보다도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랜 율법의 연구로 그 방면에 전문가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지식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교훈들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그것이 메시야의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일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 반대로 '귀신들린 자'이거나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지랭이'(요 7:49) 정도로 예수님을 평가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율법을 파괴하는 자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로 판단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빌라도 총독에게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잘못된 지식과 욕망으로 가득한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아들을 올바로 알아볼 수 없고, 결국 하느님의 아들을 귀신들린 자 혹은 신성모독자(神聖冒瀆者)로 간주하여 죽음에 내어준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보시면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할 때,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지 못할 때 하느님의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며,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음을 깨우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라 다니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통하여 무엇인가 이루겠다는 욕망 때문에 예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3년 동안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며 기적을 보고 교훈을 들었지만,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로 믿지는 못했습니다. 헛된 정치적 욕망 때문에 그들의 마음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오순절에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의 눈이 떠지면서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순절 성령 체험을 통해서 저들이 마음을 비웠을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깨달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겸손한 자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예수님 인식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 3장 31절 이하 말씀은 세례자 요한의 말이라고도 하고 혹은 복음서 기자인 요한의 해설이라고도 합니다. 오늘 저는 이 부분이 세례자 요한의 말이거나 혹은 그의 인식내용으로 보고 싶습니다. 3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을 "위에서 오시는 이"요, "만물 위에 계신 분"으로 보았습니다. 그에 반해서 세례자 요한 자신은 "땅에서 난 사람"이요, "땅의 것을 말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위에서 오시는 이" "만물 위에 계신 분" 즉 하느님의 아들로 이해하였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깨달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나온 새파란 청년 예수를 영생을 가져오시는 하느님의 아들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은 비범한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인식이 세례자 요한의 것이라면, 요한은 그 누구보다도 일찍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깨달아 안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런 놀라운 인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그가 마음을 비웠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욕망도 없었고, 오로지 자기에게 주어진 뒤에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올바로 증언하는 사명만을 감당하기 위하여 전력을 투구하다가 순교를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요한에 나아와서 툴툴거리며 보고를 하였습니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가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요 3:26

    그러자 요한은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이 요한의 대답은 참으로 멋진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혹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닐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요한의 제자들도 은근히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한 자신은 단호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멋진 유언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어떤 야망도 없었고, 무엇인가 인정받으려는 명예욕도 없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자신을 비웠습니다. 그의 마음은 투명한 유리와 같이 맑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텅 비었고 가난하였습니다. 이렇게 맑고 투명한 마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에게서 빛나는 하늘의 빛을 보았으며,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와 같이 가난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빈들에서 자라면서 가난을 몸에 익혔고, 텅 빈 광야에서 오로지 하늘만을 바라보면서 그 영의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길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런 요한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영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가 이런 훈련을 거치면서 결국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 볼 수 있었고, 그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빈들의 경험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도시문명에 찌들어서 우리의 마음이 어둡고 욕망으로 더럽혀져 있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지 못하며, 그가 이루시는 구원과 영생에 대하여 분명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도시문명의 시끄러움 속에 살면서 그 소리에 세뇌(洗腦)되어 우리의 마음을 비우지 못하며,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이루시는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영적 능력은 그야말로 미미하기 짝이 없고, 세상의 경험과 지식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두르고 있으므로 해서 더더욱 영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그저 나의 욕망과 소원을 이루어주는 능력 있는 분 정도로 믿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이 이루시는 역사에 대하여 올바로 인식하지 못할 때 결국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욕망과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3년 동안이나 예수를 따르면서도 그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여 엉뚱한 길로 나갔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예수와 상관없이 세상의 길로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세례자 요한처럼 빈들의 경험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쏟아내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거쳐서 우리가 주님께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그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주(救主)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또 끝없는 욕망을 따르느라 정신 없이 살아왔기에 가난한 마음을 가질 사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우리의 욕망을 따른 환상만이 우리 앞에 어른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욕망을 쏟아내고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진정으로 거듭난 자가 될 것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이 은총이며, 그 부활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믿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거듭남으로 영의 세계에 대하여 눈을 뜨고 하느님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따르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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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4일 부활절 셋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부활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이사야서 65:17-25 요한복음 11:17-27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남의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의 부활주일 설교를 ...
    Date2003.05.04 Views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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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4월 27일 부활주일> 육성설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 편 51:10-19 요한복음 21:15-17 요한복음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
    Date2003.04.26 Views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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