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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8월 31일 성령강림절 열셋째 주일>
   [육성 설교] / [동영상]

영의 눈을 뜨게 하소서

이사야서    35: 5-10
마가복음     8:22-38

  

    마가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많은 병자를 고치신 기적 이야기와 더불어 능력 있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고, 후반부는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부분을 갈라놓는 분수령의 역할을 하는 것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확실히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마가복음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신앙고백이 나오기까지는 제자들을 깨우치시는 예수님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전에 벳새다의 눈먼 사람을 고치신 기적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가의 의도적인 편집에 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눈먼 사람을 고치신 기적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벳새다는 요한복음 1장 44절에 의하면, 베드로의 고향입니다. 벳새다의 눈먼 사람은 사실상 베드로였다는 암시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뜨게 하셨을 때 비로소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게 된 것이라는 편집의도가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이적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후에 예수께서 풍랑 이는 바다 위로 제자들에게 걸어오셔서 배에 타시자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이를 보고 제자들이 놀랐습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디어 있었다"(막 6:52)고 마가는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신 기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구조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후에 제자들과 배를 타시고 가시면서 빵이 없음으로 걱정하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책망하신 일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이 책망은 제자들이 완전히 눈멀고 귀먹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벳새다 맹인을 고치신 기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벳새다의 맹인을 눈뜨게 하신 예수님은 사실상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이오, 비로소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게 됩니다.

    마가복음의 이런 편집의도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첫째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조차 귀가 어둡고 눈이 멀어 메시아의 기적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귀먹은 자와 눈먼 자를 고쳐 주시므로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눈과 귀가 먼 사람들

    우리가 여기서 먼저 살피고자 하는 것은 메시아의 기적을 보고도 눈과 귀가 멀어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의 무지입니다.

    마가복음은 특히 제자들의 무지에 대해 좀 심할 정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깨닫지 못하는 자, 무지한 자(4:13, 6:52, 8:14-21, 9:22), 믿음이 없는 자(9:19, 4:40), 그리고 끝내는 예수를 부인하고 그를 버린 자들로 소개되고 있습니다(14:50, 66-72). 마가복음이 이렇게 제자들의 무지를 강조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건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시키고,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입니다. 동시에 고난 당하는 교회에 주신 경고와 격려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눈과 귀가 열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구속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배반하기 쉽다는 경고입니다. 동시에 그렇게 무지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던 자들이라도 낙심하지 말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사명으로 불러내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지혜나 능력이나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룩하시는 역사임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도 깨닫지 못하는 귀머거리요 눈먼 자들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은 제자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특히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광야의 만나를 기억케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저들의 양식이 되게 하셨던 일은, 바로 출애급의 구원사건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이룩하시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를 아는 제자들이라면 빈들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보는 순간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임하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먼저 가는 동안 풍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셨고 그가 배에 올라타시자 바다가 잠잠해지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또한 놀랐습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디어 있었다"고 마가는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만나를 먹으면서도 그리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와 그것을 마시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던 사실과 비교가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이 무디어 있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도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왜 그렇게 무디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 다른 데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려는 하느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독립국가가 되게 하여 자기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픈 욕심들이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의 하느님 나라보다는 오늘 여기에 실현되는 이상적인 국가를 바라는 욕망 때문에 저들의 눈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조차도 아니 신학을 공부한 목사들조차도 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그 기적들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교회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처럼 마음이 무디어서 하나님이 이룩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무지와 완악함을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비참하고 불쌍한 존재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 스스로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을 하지만, 실상은 눈과 귀가 멀어 천대받고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마음 문을 열며, 눈과 귀를 떠서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이루고 계신 구원의 역사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듣고 깨닫지 못하며, 보고도 행치 않던 과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 이제는 밝히 보고 깨달으며 그대로 실행해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이 그렇게 무지하고 둔하여도 예수님은 끝까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저들을 가르치시며 깨우치시고 눈을 뜨고 귀를 열게 하셨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바로 이런 우리의 무지를 깨우치시려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무지가 그대로 무지로 남아 있지 않고 마침내 눈을 뜨고, 마음이 열려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고 그의 십자가의 구원의 비밀을 깨달으며, 그 부활을 확신을 가지고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의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실 때에 다른 기적과는 달리 두 번에 걸쳐 고쳐 주셨습니다. 다른 기적의 경우는 말씀 하시자마자 즉시 고침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먼저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으시면서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고, 어렴풋이 보인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다시 한번 뚫어지듯이 바라 보셨을 때 완전히 그의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은 잘못하면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이 불완전한 것처럼 생각할 여지를 줍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일차 시도 때 눈이 약간 밝아지고 2차 시도 때 완전히 밝아진 것처럼, 제자들의 영적인 깨달음도 점진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러 차례의 기적을 보면서, 또 여러 말씀들을 들으면서 점차 눈이 밝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으로 완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실 것을 예고하시자 그들은 당황하여 이를 말렸습니다. 기적을 보면서 예수님을, 이사야서에 예언한대로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어 듣게 하고, 낙원을 이룩할 메시아로 이해하는데 까지는 도달하였으나, 그 메시아가 수난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자리까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점진적이며 굴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때는 눈이 떠져 무엇인가 보이고, 무엇인가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무지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리까지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가 승천하신 후 보내주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우리는 밝히 주님을 뵈오며, 그 구원의 모든 역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신앙의 눈은 점진적으로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의 무딘 마음이 하루아침에 예민하게 다듬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는 중에 마침내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 볼 수 있는 예민한 감각, 맑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믿고 따르는 데는 투명한 혜안을 갖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그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실패한 것으로, 고통의 상징으로만 생각합니다. 사실상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없이는 그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의 능력임을 깨닫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믿기는 하지만, 동시에 베드로처럼 수난의 종이 되시겠다는 예수님을 우리는 원치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수난의 종이신 예수님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한번 더 눈을 치료 받아야하고, 한번 더 우리의 귀를 치료받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한 제자들, 그가 붙잡혀 가실 때 함께 하지 못한 제자들, 그가 심문 당하시는 뜰에서 그를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뿔뿔이 다 도망가버린 제자들은 바로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도망가서 무서워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저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므로 저들의 무지와 두려움과 불안을 모두 몰아내시고 용기와 희망과 확신을 주시어 문을 박차고 나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제자들만도 못한 존재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 밝히 보고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우리 자신의 무지와 보지 못함과 듣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 우리를 고쳐 주십사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은 바로 하나님이 이룩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통찰할 수 있는 영안(靈眼)과 오늘 우리 속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십사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리고 이단 신앙, 사이비 교회, 무속화 되어버린 교회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세게 밀어닥치는 세파에 휩싸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눈을 떠서 고난 당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귀를 열어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의 이룩하시는 역사를 바르게 통찰하십시다.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제자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이 신랄한 책망이 우리를 향하신 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 "주여,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주소서.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하십시다.

    이 결실의 가을에 우리의 눈이 떠지는 기회가 되게 하십시다. 예민한 영적 감각을 갖추도록 기도하며, 명상하며, 훈련합시다. 머지 않은 종말을 바라보면서 준비하며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열심히 전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봉사하며 헌신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마땅히 정신을 차리고 똑똑히 이 역사를 보아야 할 때입니다. 적당히 세월 가는 대로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의식을 갖고 하나님이 세우신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입니다. 이제 분명한 역사 의식을 갖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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