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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9월 7일 감사절 첫째 주일>
   [육성 설교] / [동영상]

내 편이 되어주신 주님

시   편   118: 1-14
로마서     8:31-34

  

    오늘 읽은 시편말씀과 로마서 말씀에 보면, 하느님이 내 편 혹은 우리편이 되어주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내 편이시므로, 나는 두렵지 않다. 사람이 나에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으랴?  주께서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도와주시니 시 118:6-7

      하느님이 우리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롬 8:31

    전능하신 야훼 하느님께서 내 편이 되어주신다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편이 되어 주신다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느님께서 내 편이 되셔서 나와 함께 계신다면 나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찾아서 위로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편이 되어주신다면 세상이 모두 우리를 버려도 우리는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홀로'일 수밖에 없는 인간

    우리 인간들은 죄를 지으면서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외로우며 공포를 항상 느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우리 인간은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시인은 "홀로 홀로 모두가 다 홀로, 이 넓고 넓은 바다 위에서 모두가 홀로"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세계에 사는 현대인들은 더욱 소외되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조정되는 공장에서 사람들은 몰려나고, 일터를 잃은 사람들은 가정에서도 몰려나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극도의 경쟁을 촉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경쟁자로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가 어렵기에 현대인들은 모두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숫자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계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볼소디(Ralph Borsodi)는 현대 어머니는 자주 모성애의 표시로 8484번을 적고, 그들의 자녀는 지문과 족적을 등록한 뒤에 8003번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큰 도시에서의 장례식은 14번 목사가 집행을 하고, 84번 음악가가 174번 곡을 부르고, B형의 방에서 B급의 꽃으로 장식하는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거대한 목록 가운데 있는 하나의 카드로 전락시키려는 이러한 경향에 당황하여 인간은 필사적으로 사랑의 양식을 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즈음은 좀 뜸하지만 '왕따'란 말이 유행어처럼 널리 퍼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왕따 문제를 상담해 주는 홈페이지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왕따'란 또래들로부터 따돌림당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어느 '왕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동안 왕따 당한 학생입니다. 지금은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데, 직장에서도 왕따지요. 이제는 웃음밖엔 안나옵니다. 하지만, 전 내가 언젠가 친구들도 많고 리더의 자리에 그리고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고,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근데 내가 학교에 다닌 시절을 생각해보니 정말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암흑의 기억이었습니다.

      전 사생대회 때 혼자 그림 그리고 밥 먹는 게 너무 싫어서, 정말 새벽3시까지 울다가, 펄펄 끓는 물을 제 발에 부었습니다.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가고, 결국은 2도 화상을 입고, 그 다음날 사생대회를 안 갔지요. 전 너무 기뻤습니다. 1년 동안은 점심에 빵만 먹었습니다. 그래야만 혼자 먹는걸 정당화할 수 있었으니까요.

      자살? 너무 많이 시도해봐서 이제는 포기한 대목이지요.

      육체의 아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남들이 힘들다고 할 때 그게 왜 힘들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신적으로 왕따인 것이 몇 배는 더 힘드니까요. 밥을 혼자 먹는 것도 지겹고, 애들의 무관심도 지겹고, 외로움도 이제는 지겹군요.

      사실 집에서 나 왕따라고 절대 이야기 못합니다. 자존심이 상해서고, 부모님한테 그런 쪽팔린 얘기 누가 하고 싶어하겠습니까? 저의 부모님도 나 학교에서, 지금 직장에서 되게 잘 지내는 거로 알고 있지요.

      정말로 교육부 장관이나 대통령에게 빌고 싶습니다. 제발 나같이 괴로운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낼 학생들 중 1명이라도 구원해 주기를요.

    따돌림 받아 홀로 남게 된다는 것은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고통임을 이 글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외는 단절이며, 자기 파괴입니다. 소외는 곧 죽음입니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노인의 고독을 '빗살이 다 빠진 머리빗'으로 비유하였습니다. 늙어가면서 친구, 친지, 일, 돈, 성욕, 지위, 미래, 희망 등등이 낡은 머리빗의 빗살처럼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가 언젠가는 빗살 없는 빗으로 머리를 빗고 있는 허무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독과 허무를 견디지 못하여 노인들이 자살을 택하기도 합니다.

    평생을 일하던 직장에서 정년 퇴직한 사람의 가장 큰 고통은 아마도 소외(疎外)일 것입니다. 알고 지내던 동료들과의 헤어짐, 그 사회에서 그래도 아무개 하면 알아주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사회로부터 점점 잊혀져 가는데 대한 두려움 등이 가장 큰 고통일 것입니다. 목사들이 일찍 은퇴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5년 앞당겨 은퇴를 결심했지만, 제일 두려운 것은 바로 소외입니다.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내 이름이 차츰 사라져 가는데 대한 소외감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지런히 동창회에 참석하고, 시민단체에 나가 활동하며, 클럽을 만들어 동질감을 확인하며,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면서 교인들과의 사귐을 갖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결국 인간은 '홀로'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늙어가면서 깨닫고 죽음 앞에서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주께 부르짖습니다.
      콘크리트의 정글 같은 도시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음
      조용할 날 없는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 마음 몹시 어지럽고 암담하여
      지치고 기진 하였사옵니다.
      옆을 스치고 지나는 무명의 얼굴들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 이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걱정해 주는 사람도 없사옵니다.
      하느님, 당신께 하소연합니다.
      전에는 내 청을 들어주셨고
      내 울부짖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대도시의 공연한 분답(紛沓),
      그 혼잡한 거리의 인파 속에서도
      외로운 자의 애절한 부르짖음을
      당신은 들을 수 있으리이다.
      하느님, 이 몸을
      고독의 사슬에서 풀어 주소서.
      내 고뇌의 부르짖음이
      기쁨의 외침이 되게 하소서.
      당신을 흠모하며 섬기는 이들과
      친밀한 우애를 나누게 하소서.

    고립은 죄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소외되고 고립되는 까닭은 죄 때문입니다. 지으신 세계를 자기 안에 품으시어 하나 되게 하시는 하느님을 떠난 죄 때문에 우리는 모래알처럼 낱낱이 흩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모래알 같은 존재인 우리가 하나로 엮어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만 가능하였는데, 그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지면서 인간은 모두 사랑의 접착력을 잃어버려 뿔뿔이 흩어져 외로운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102편의 시인처럼 부르짖게 됩니다.

      아, 내 날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내 뼈는 화석처럼 새까맣게 타 버렸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내 마음은 풀처럼 시들어서, 말라 버렸습니다. 신음에 지쳐서, 나는 뼈와 살이 달라붙었습니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와도 같고, 메마른 땅의 부엉이와도 같이 되었습니다. 내가 누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마치, 지붕 위의 외로운 새 한 마리와도 같습니다. 3-7절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사막이나 황무지의 외로운 새 한 마리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물론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만 외로운 섬처럼 우리는 홀로 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담이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연결시켜 줄 사랑이 말라버렸기 때문에 가정도 깨어지고, 사회도 편을 갈라 갈등할 수밖에 없으며, 민족도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사랑 대신 자리잡은 욕망이 너와 나를 하나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자리잡은 교만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이기심과 편견이 민족을 하나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이 모래알처럼 알알이 흩어진 사람과 세계를 하나로 엮어 그 속에 하느님의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같은 우리를 찾으셔서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속에 자리잡은 죄와 욕망을 씻어내시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하시고자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알알이 흩어졌던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부르셔서 하나 되게 만드셨습니다. 메말라버린 사랑의 샘이 터지게 하셔서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내 편이 되신다는 것

    이와 같이 하느님이 내 편이 되어주셨다는 말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그 안에 불러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내 편이 되셨다는 것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회복시켜 주셨음을 뜻합니다. 죽음으로 막혀 있던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나를 불러주셨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면 내게서 모든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고 담대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허락되었기에 이제는 사탄이 쏘는 화살 즉 죽음의 화살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편이 되셨다는 것은 그 분 안에서 우리가 사랑으로 이웃을 만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 속에서 솟구치는 사랑 때문에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 편이 되신다는 것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하느님께서 내 뜻과 내 욕심에 동조하신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게 하시고 내 원수들을 모두 물리쳐 주시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좌우의 이념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 하느님이 우리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없다고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그들의 편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 특히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그들의 편이 되셔서 언젠가 공산주의자들을 모조리 몰아 내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원수를 사랑하고 하신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화해를 믿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하느님이 자기들 편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런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이념에 동조하셔서 어느 한쪽은 버리고 어느 한쪽만 택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런 갈등을 겪는 모든 인간을 자기 안에 부르셔서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내 편이 되신다는 것은, 하느님이 내 이념에 동조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이념 따위에 얽매인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런 모든 이념이 초월된 영원한 세계로 우리를 부르심을 뜻합니다.

    우리의 원수는 사탄

    더 나아가 하느님이 우리편이 되신다는 것은 우리를 사탄의 지배에서 해방하여 자기의 자녀가 되게 하심을 뜻합니다. 로마서 8장 말씀에 보면 "하느님이 우리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세력은 인간이 아니라 사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우리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자가 사탄입니다. 우리를 죄의 사슬로 묶어놓고 있는 것도 사탄입니다. 결국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 것도 사탄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사탄을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 사탄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을 볼뿐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서로 다른 이념을 갖게 만들어서 서로 미워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며,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원수가 바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영의 세계를 알게 하시면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원수가 인간이 아닌 사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편이 되어주시는 것은 바로 이 사탄의 영을 대적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모두 자기 안에 품으셔서 서로 사랑하며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어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그의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과거에 보지 못하던 영의 세계를 알려주시면서 우리의 적이 사람이 아닌 악한 영인 사탄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의 눈을 떠서 악의 근원인 사탄의 존재를 보게 될 때 쓸데없는 이념 분쟁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공연히 분쟁하던 힘을 모아 사탄을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능히 사탄을 물리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지만, 나는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서 그들을 물리쳤다. 그들이 나를 겹겹이 에워쌌으나, 나는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서 그들을 물리쳤다. 그들이 나를 벌떼처럼 에워싸고, 가시덤불에 붙은 불처럼 나를 삼키려고 하였지만, 나는 주의 이름을 힘입어서 그들을 물리쳤다. 시 118:10-12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념과 사상,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넘어서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를 위해 우리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된 힘을 모아 악의 세력을 대항하여 굴복시키고 저의 항복을 받아 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이 우리편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사탄에게 맞설 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은 우리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외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므로 모든 사람이 내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편이 되시므로 이제 내가 하느님 안에 있게 되었고,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우리편이 되시므로 우리의 영의 눈을 뜨게 하셨고, 우리로 영원한 생명의 세계와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혀 온 악의 존재를 분명하게 보게 하셨습니다. 이제까지 원수로 알았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통하여 악의 세력인 사탄과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 편견과 고집과 이념을 붙들고 홀로 외로워하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말고,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으로 영의 눈을 떠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풍성한 은혜로 우리편이 되어주신 하느님을 만나며, 그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의 생명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9월부터 감사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편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 속에 깃들였던 모든 죄와 욕망과 미움이 사라지게 하시고, 악의 세력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홀로인 존재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 안에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하나가 된 존재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9월 첫 주부터 12주 동안 계속되는 감사절에, 우리 속에 주신 영성과 그로 말미암아 보게 된 영원한 세계에 깃들인 놀라운 풍성함에 기쁨의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제 왕따였던 삶이 변하여 풍성한 생명공동체 안에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면서 하느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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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6월 1일 부활절 일곱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 시 편 51: 1-10 요한복음 4: 1-14 오늘 오늘은 환경주일입니다. 점점 심각하게 파괴되어 가는 환경을 보전하고...
    Date2003.05.31 Views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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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하느님의 자녀 된 우리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25일 부활절 여섯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하느님의 자녀 된 우리 시 편 18:20-27 요한일서 3: 1- 8 오늘 읽어 드린 요한일서 3장 1절과 2절에 "하느님의 자녀"란 말이 두 번 반...
    Date2003.05.24 Views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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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구원사의 맥을 이어가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18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구원사의 맥을 이어가라 예레미야서 35: 1-11 디모데전서 4:12-16 오늘은 청년주일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자라나는 젊은이들...
    Date2003.05.18 Views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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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하느님을 모신 가정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11일 부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하느님을 모신 가정 시 편 16: 5-11 에베소서 6:10-18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만, 어버이 공경만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문제 즉 결혼, ...
    Date2003.05.10 Views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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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부활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4일 부활절 셋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부활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이사야서 65:17-25 요한복음 11:17-27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남의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의 부활주일 설교를 ...
    Date2003.05.04 Views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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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4월 27일 부활주일> 육성설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 편 51:10-19 요한복음 21:15-17 요한복음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
    Date2003.04.26 Views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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