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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1 23:48

결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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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12일 감사절 여섯째 주일>
   [육성 설교] / [동영상]

결실을 위하여

전  도  서   5:10-17
마가복음    4:10-20

  

    오늘 읽어 드린 마가복음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이 비유는 천국 비유로서 씨를 뿌리는 자의 확신을 통해서 처음에는 여러 가지 장애로 천국 복음이 방해를 받지만, 마침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둘 때가, 즉 천국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교훈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은 네 가지 밭에 우리의 관심을 모으게 하셨습니다. 길가 밭, 돌밭, 가시밭, 그리고 옥토에 똑같이 씨가 떨어졌지만, 결국은 옥토에서만 수십 배의 수확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삶에서 욕망을 제거하므로 이루지는 나라임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결실의 계절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계절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가시밭과 같은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옥토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훼방하는 사탄

    우리는 먼저 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천국을 실현하는 일이 결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천국의 실현은 누구나 다 바라는 일입니다. 비유에서 네 가지 밭이 나왔지만, 근원적으로 씨를 거부하는 밭은 없습니다. 길가 밭에 떨어진 씨는 밭이 거부한 것이 아니라 새가 날아와 쪼아먹었기 때문에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서도 싹이 나서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도 마찬가지로 근원적으로는 복음의 씨앗을 받아드릴 뜻은 있었으나 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방해 요소 때문에 싹이 나 자라다 시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나 자연 모두가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음을 뜻합니다. 누구도 천국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그 천국 복음이 전파될 때에는 만만찮은 반대와 박해와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속으로는 다 천국이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실제로는 거부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비유에서 보면, 사탄이 바로 그 천국을 훼방하는 중심 세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활동하는 동안 그를 처음 찾아와 시험한 것도 사탄이며, 그의 생애 줄곧 그를 따라다니며 훼방한 것도 사탄이며,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사탄입니다. 물론 사탄은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 속에 들어가 활동하였기에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것은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천국의 실현을 철저하게 훼방한 주범은 바로 사탄이었습니다.

    사탄은 바로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하여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하였고, 계속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우리를 유혹하는 악의 존재입니다. 사탄은 오늘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 속에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떠나게 하고,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갈등을 부추기고, 전쟁을 하도록 충동을 합니다. 동서냉전의 시대에는 소련이 바로 평화를 깨트리는 주범이라고 생각했는데, 냉전의 시대가 끝난 오늘에 와서는 오히려 미국이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을 일으키면서 세계의 평화를 유린하므로 이 세계의 평화의 씨를 쪼아먹은 새가 되었습니다. 사탄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 땅에 평화가 정착되지 못하도록 휘젓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천국 복음을 전하시면서 가장 큰 적으로 생각한 상대는 로마도 아니요, 바리새인도 아니었습니다. 그 배후에 있는 사탄이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신 예수님은 악령인 사탄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싸움을 벌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영적 존재를 인식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여 악령인 사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채 나타난 현상만으로 이를 분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탄의 짓인지, 성령의 역사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고 판단의 혼돈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제가 미국을 평화의 씨앗을 쪼아먹은 새라고 말씀 드렸지만, 과거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나라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사회는 서로 의견들이 대립되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 사탄은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까지 들어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악령의 장난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열심히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서 영을 구별할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맹렬하게 하느님 나라를 훼방하는 악령의 활동을 똑똑히 보고 적극적으로 이 악령과 맞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악령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입니다. 교묘하게 천사로 가장한 악령을 구별하지 못하면 오히려 우리가 속아넘어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일단 영적 분별력을 갖추기만 하면 사탄이 우리를 두려워하여 피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 실현에 협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영적 분별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악령의 장난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을 때 그 밭에서 평화와 정의와 사랑의 씨앗이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망

    다음으로 하느님 나라 실현을 훼방하는 악의 요소는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욕망입니다. 씨앗이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때문에 말씀이 자라다가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가장 골치 아픈 일은 아무리 뽑아도 계속 돋아나는 잡초일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실현에 있어서 큰 걸림돌은 바로 잡초처럼 뽑아버려도 어느 사이 또다시 내 속에 돋아나는 욕망입니다. 나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바로 내 속에 꿈틀거리는 욕망 때문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향락'은 바로 내 안에 자리잡은 욕망의 표출(表出)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망은 육체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체로 사는 이 땅의 삶에 대하여 미련을 갖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 없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욕망을 따라서 산다는 것은 곧 이 세상만을 사랑한다는 뜻이며, 하느님 나라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하였는데,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는데 반해서 육체의 욕망은 하느님 나라 대신 이 땅의 삶에 집착합니다. 그 결과를 갈라디아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갈 6:8

    바로 이 욕망을 갈아엎기 위하여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도처에 이런 욕망을 버리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개역개정)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딤전 6:9 (표준새번역)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갈 5:24 (새번역)

    우리가 이 육체의 욕망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밝히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생을 보며, 그 영생의 풍성함과 은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육체의 욕망으로부터 조금씩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욕망은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을 얻고 이루고자 함이라면, 성령은 우리로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우리 앞에 마련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믿음이 부족하여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조금만 멀리 보는 믿음을 갖는다면, 육체의 욕망의 결과가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쿨'하기

    여러분 혹시 요즈음 우리 사회의 유행처럼 퍼지는 말 가운데 '쿨하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마도 젊은이들을 많이 접촉하지 않은 저와 같은 노인들이나 우리 사회의 유행을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는 분들은 잘 들어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지난 주 <한겨레21>(2003. 10. 9) 주간지에 "쿨에 죽고 쿨에 산다"는 특집이 실렸습니다. 그 기사 가운데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쿨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쿨'은 남녀관계뿐 아니라 가족·친구·동료·상사·선후배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현대인이 갈망하는 소통관계의 형식이다. 드라마도, 광고도,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의 옷차림새에서도 '쿨'은 최고의 찬사다. '쿨'에는 '다른 사람에게 적당히 친절하되 감정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에 대한 환상이 깃들어 있다.

    '쿨'은 영어단어입니다. 냉정한·서늘한·뻔뻔한·침착한·훌륭한·가벼운, 그러나 천박하지 않은·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등의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형용사입니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cool'의 정의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함과 자기 조절능력 잃지 않기' '너무 열렬하거나 친근한 모습 보이지 않기' '감정의 기복 절제하기' 등입니다. 만약 거리에서 "쿨하다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좋다, 멋있다, 세련됐다, 유행에 맞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가령 연애를 하는 두 남녀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 자기방어, 남에게 간섭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고도의 능력, 따라서 헤어질 때 울며불며 매달리지 않는 절제하는 능력이 바로 '쿨'입니다. 주기는 하되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 태도가 쿨이라고 합니다. '쿨'한 신입사원들은 40~50대의 상사들이 회식 자리에서 술 마시라고 강권하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는다며 분노하더라도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쿨하게 "평생 볼 사이도 아닌데"라고 말할 뿐이라고 합니다. 그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집단주의 속에서 개인성이 사장되었던 한국사회에서 '쿨'은 허례허식과 과장, 명분과 관계의 집착이 강한 '어른들'의 풍토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조한혜정 교수(연세대 사회학과)는 "이런 시대의 미덕은 선뜻 포기하는 것, 올 때 오고 갈 때 가는 것, 집착하지 않는 것, 상대의 의사와 감수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의 다양한 시민들이 존중되는 질서를 만들어가려면 그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 맺음의 원칙과 감수성이 필요한데, '쿨'이라는 간단한 표현 속에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물론 이런 쿨의 유행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면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지켜온 공동체성을 무너뜨리고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가는 문제점 또한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하여 '쿨'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조교수가 말한 대로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하여 "선뜻 포기하고, 올 때 오고 갈 때 가는, 그리고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가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나그네로 지나는 자임을 기억하고 집착과 미련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나그네로 갖추어야 할 인간관계를 갖되 집착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그분이야말로 가장 '쿨'하게 사신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분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사랑하셨지만, 그들에게 사랑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구름 떼처럼 몰려왔던 군중들이 썰물처럼 예수님을 떠나갈 때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들도 가려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이 떠나간다 하여도 그들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 숨었습니다. 의리 없는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그들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의리 없고 비겁한 제자들을 한 바탕 꾸짖으실 법 한데 오히려 저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선교의 사명을 주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정말 '쿨'하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 주셨지만, 세상으로부터 그 희생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대하여 갖는 삶의 자세는 바로 '쿨'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의 삶을 열심히 살되 결코 거기에 집착하거나 매이지 않으며, 사랑하되 사랑을 기대하지 않으며, 봉사하되 그 값을 여기서 되돌려 받기를 기대하지 않음이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속에 있는 욕망을 다스리며 그 뿌리를 뽑아 낼 때 우리 속에 천국이 실현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 밭에서 돌과 가시떨기를 걷어낼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속에 이미 뿌려진 믿음의 씨앗들이 막힘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육체의 욕망을 모두 걷어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세계에 뿌려진 평화와 정의의 씨앗들을 삼켜버리는 악의 세력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영적 분별력을 주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민족의 통일과 한반도의 평화를 저지하려는 악의 세력에 맞서 관용과 사랑을, 화해와 협력을 일구어 갈 지혜와 능력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풍성한 영원한 생명의 능력과 기쁨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고 초연한 신앙의 자세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훼방하는 모든 걸림돌들은 다 제거되고 마침내 그 나라가 온전하게 이루어질 그 날을 기다리며 낙심하지 않고 그 날을 준비하는 여러분의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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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4월 27일 부활주일> 육성설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 편 51:10-19 요한복음 21:15-17 요한복음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
    Date2003.04.26 Views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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