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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2 07:10

듣고 깨닫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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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1월 2일 감사절 아홉째 주일>
   [육성 설교] / [동영상]

듣고 깨닫는 신앙

이사야서   6: 1-13
마가복음   8:14-21

  

    오늘 읽어 드린 신약 본문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면서 일어난 조그만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무리들에게 시달리시고 또 적의에 찬 바리새인들의 집요한 공세에 시달리시다가 오랜만에 제자들과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된 예수님은 제지들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누룩은 예수께서 복음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원래 누룩은 악의 요소로 비유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바리새인의 누룩이란 그들의 독선과 위선을 가리키는 말이요, 헤롯의 누룩이란 세속주의를 지적한 것입니다. 원래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자들인데 지금은 예수를 반대하기 위하여 야합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빙자한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독선을 경계하셨는가 하면 그와는 정반대로 율법이나 신앙 없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헤롯당원들의 세속주의를 또한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훈을 들은 제자들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연상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누룩이란 말에서 정신적인 어떤 교훈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곧 바로 빵을 연상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의논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한 두 사람만 빵을 연상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가 일치하게 누룩을 빵과 연결시켜 생각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 배를 타고 가는 그 시간이 식사를 할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무리들 때문에 조용히 식사할 시간이 없는 이들에게 배에 탔을 때야말로 조용히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배에는 지금 떡이 한 덩이밖에 없습니다. 열 세명이 먹기에는 아주 부족한 분량이었습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제자들에게는 그 날의 끼니 해결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빵 몇 조각으로 요기를 하기도 하곤 했고, 때로는 제자들이 집집이 다니면서 구걸해다가 먹기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오죽 했으면 누룩 소리만 들어도 빵을 생각했겠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아시고는 한심하게 생각하셨던 같습니다. 그래서 호되게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그러시면서 예수께서 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이신 일과 또 떡 일곱 개로 사 천명을 먹이신 일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시고자 한다면 먹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을 보면,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행하시는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 기적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임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둔하고 진리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삼 년이나 따라 다녔으면서도 그가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그가 전해주신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진리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모두 도망가 숨고 말았습니다. 깨달음 없는 수행(修行)은 헛된 수고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 깨달음 없는 신앙은 수박 겉 핥기처럼 진리의 진수(眞髓)를 맛볼 수 없기에 그 신앙은 흔들리기 쉽고, 모래성과 같아서 곧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깨달음은 달고 오묘한 진리의 진수를 맛보는 것이기에 우리는 깨달음을 통해서 비로소 확고한 신앙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우리가 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욕망 때문에

    먼저 생각할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도 그가 전해 주시는 하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잘못된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이 빵을 연상하였다고 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관심이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있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야기하시는데 제자들은 세상 나라를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섬김을 이야기하셨는데, 제자들은 이 땅에서 섬김 받을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높은 권력의 자리를 다투었습니다. 제자들은 철저하게 이 땅을 중심으로 생각하였고, 거기서 많은 것을 얻고 이루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욕망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기적을 보면서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으며, 하느님의 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것이 진리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스승이라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욕망을 지닌 제자를 올바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짓고 하느님을 떠나면서 사실상 삶의 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두 자기 나름대로 멋진 인생을 꾸며보려고 잔뜩 욕망을 품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지만, 그 모든 욕망이 한결같이 귀결되는 곳은 죽음입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고 욕망의 길이 어리석은 것임을 깨닫고, 돌이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음성을 들어야 할 것인데, 여전히 욕망의 길로 내 달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도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품은 욕망을 펼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듣기도 하고 집에서 성경을 보기도 하지만, 이미 자기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욕망이나 선입견이 있어서 그것이 모든 말씀을 저울질하는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자기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설교가 감동적으로 들리는 때가 있는데, 그 말씀이 바로 자기의 욕망을 합리화시켜줄 때입니다. 설교가 못마땅하게 들리는 때는 바로 그 말씀이 자기 가치 판단과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자세로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성령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막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을 기도하는 것도 결국은 내 욕심을 충족시키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 정말 하느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자입니다. 자기가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는 자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서에 보면, 예언자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 하느님을 만나면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엎드릴 때 먼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과 죄악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달음의 출발은 바로 여기서부터입니다. 자기 자신의 죄와 욕망을 깨닫는 것― 거기서 울음 터지고 회개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루만져 깨끗하게 하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깨달음이 없는 것은 바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거듭나지 않은 채 그냥 교회에 나오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온 부자 청년처럼 자기가 가진 재물과 명예와 지위를 버리는 대신 그것에 더하여 영생을 얻고자 하였던 것처럼,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자기의 신념이나 욕망을 버리는 대신 거기에 더하여 하늘 나라의 복을 쌓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조로는 아무리해도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올바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하느님 나라를 자신 안에 끌어드리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 바로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행태(行態)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신앙 행태로는 끝내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이해하지 못하며, 거기로부터 오는 기쁨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생명에 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30여년 목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새로운 진리였습니다. 이 생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저의 삶 자체를 다시 보게 하였고,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도 제 설교를 듣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몇 군데 다른 교회나 모임에 가서 생명에 관한 강의나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끝난 후에 찾아와서 아주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노라고 감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몇 사람 만났습니다. 그 분들은 무엇인가 생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다가 말씀을 통해서 해결을 받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깨달은 사람들은 아마도 그 인생관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속에 있는 욕망을 하느님 앞에 그대로 들어내십시오. 여러분이 경험을 통해서 이룩한 자기 주장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비우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깨달음은 역사를 바꾼다

    다음으로 깨달음이 중요한 까닭은,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되며 새로운 힘을 얻으며, 놀라운 기쁨을 맛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둔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였던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자기들이 가졌던 정치적 욕망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에 빠져 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저들도 거듭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깨달음이 그들 속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면서 확신을 가지고 거리로 뛰어나가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고, 거기에 따른 무서운 박해가 있었지만 그들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은 저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놀라운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깨달음에 의해서 놀랍게 변화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드리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늘에서 쏟아진 빛을 보았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는 진리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180도 변화되어 핍박하던 자에서 돌이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서신들을 통하여 그의 깨달음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그런 깨달음이 그로 하여금 사도들도 머뭇거리던 이방인 전도에 적극 나서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종이나 자유인, 남자나 여자가 다 하나라는 그의 놀라운 깨달음은 그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고 이방 선교에 나서게 하였으며, 온갖 고난과 박해를 극복하고 기독교를 세계 속에 전파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깨달음은 한 개인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역사를 바꿉니다.

    지난 10월 31일은 교회개혁 486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한 수도승이었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 교회 정문에 95개의 논제를 써 붙이므로 견고하였던 로마교황청 교권에 도전하면서 교회개혁의 불길이 점화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지금까지 교회가 지켜온 교리나 교회관습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로마서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그가 1511년 로마에 갔을 때 성 계단(Scala Sancta)교회의 계단을 하나씩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수행을 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런 수행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벌떡 일어나 그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 깨달음은 그의 모든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마침내 그가 1517년 교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고, 그가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그 파문장을 불살라 버리고 담대하게 교회개혁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 깨달음을 계기로 더 많은 공부를 하였고, 수많은 책들을 보았습니다. 그가 보름스 회의 앞에 불려 나가 그가 쓴 책에 대하여 심문을 받을 때 그는 명확하게 그의 주장의 근거를 대었고, 그 분명한 논거에 대하여 누구도 루터를 반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까지 하여 교회를 완전히 새롭게 하는 길을 닦아 놓았습니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 역사의 물길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주기에 그것은 능력이며 지혜이며 기쁨이 됩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깨달음은 죽음의 공포를 없애주기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동시에 우리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마침내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통합될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로 이웃을 사랑하며,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모든 갈등을 치료하시는 십자가의 화해의 능력을 깨달을 때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고 화해와 평화의 사도로 변신하게 됩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위대한 힘입니다. 놀라운 기쁨입니다. 역사를 새롭게 할 원동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듣고 깨달음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깨달음 없는 신앙생활은 위선일 뿐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폭풍우가 몰아칠 때 쉽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무엇을 바라며 기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경험과 주장을 모두 버리십시오. 하느님 앞에서 여러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신을 깨십시오. 여러분 자신 안으로 진리를 끌어 드리려 하지 마시고, 진리에게 여러분 자신을 내어 주십시오. 성령을 이용하려 하지 마시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십시오. 성경을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하려 하지말고, 그 말씀이 이끄는 대로 따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거듭나게 될 것이며, 진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깨달음은 우리를 활짝 열린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전에 보지 못하였고 알지 못하였던 무한한 영의 세계를 여행하게 할 것입니다. 깨달음은 우리가 집착하던 이 땅의 삶에 대해 초연(超然)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임을 깨닫기에 삶의 의미가 달라지며, 놀라운 믿음 가운데 확고하게 서므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어리석은 욕망과 아집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영의 세계를 탐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욕망으로 서로 다투고 경쟁하는 세계에 화해와 평화, 사랑과 기쁨의 복음을 전하여 이 역사를 바꾸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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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하느님을 모신 가정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11일 부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하느님을 모신 가정 시 편 16: 5-11 에베소서 6:10-18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만, 어버이 공경만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문제 즉 결혼, ...
    Date2003.05.10 Views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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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부활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5월 4일 부활절 셋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부활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이사야서 65:17-25 요한복음 11:17-27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남의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의 부활주일 설교를 ...
    Date2003.05.04 Views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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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4월 27일 부활주일> 육성설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 편 51:10-19 요한복음 21:15-17 요한복음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
    Date2003.04.26 Views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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