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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9 08:15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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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19일 주현절 둘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다 니 엘 서  1: 8-16
고린도전서  6:12-20

     

    이스라엘 왕 아합 시대에 엘리야라는 하느님의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예언자가 느닷없이 아합 왕 앞에 나타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비는 물론 이슬도 한 방울 이 땅에 내리지 않을 것이오."라는 저주를 선언하였습니다. 이런 저주를 내리게 된 까닭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야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느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왕상 16:30-33

    아합 왕은 지력으로는 솔로몬과 백중하고 그 군사력에서는 그를 능가할 정도로 상당한 군사 전문가요, 탁월한 정치 지도력을 지닌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22년 동안 왕노릇 하면서 그는 이스라엘을 상당히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아합 왕은 크게 평가받을 수 있는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런 왕의 통치 밑에서 별로 불만이 없었습니다. 저가 비록 이스라엘의 전통 신앙인 야훼 하느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바알 신앙을 끌어들여 바알 신당을 짓기는 하였지만, 백성들은 그것을 크게 문제삼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평화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합 왕의 정치적인 공적을 크게 평가한 백성들은 그의 종교적인 타락을 용인하였고, 이세벨의 횡포가 날로 극심해져도 민감하게 거기에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바알 신앙이 이스라엘 정신을 좀 먹고 마비시킴으로 저들은 도덕적으로 점점 더 타락하였고, 사회적 부정의가 판을 치게 되었으며, 모세의 율법으로 엄히 경계한 권력의 남용이 자행되어 왕권이 백성 위에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자기들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신앙과 양심을 모두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둔화된 양심의 온상 위에 이세벨의 횡포는 독버섯처럼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세벨은 야훼 신앙을 가진 예언자들을 잡아 가두고 박해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예언자들이 투옥되고 혹은 박해를 피하여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모든 비판 세력들은 다 제거되었습니다. 이럴 때 홀연히 나타난 사람이 예언자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본래적인 신앙인 야훼 신앙을 일깨우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양심을 흔들어 깨우기 위한 하느님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그 땅에 삼 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선포함으로 바알이 풍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저들에게 각성시켜 주었습니다.

    삼 년 반동안 비가 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바알 신앙에 대한 회의가 백성들 사이에 일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엘리야가 다시 아합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엘리야는 이들에게 분명한 증거로 야훼 하느님의 역사를 보여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바알 제사장 450명과 아세라 제사장 400명을 갈멜 산상으로 불렀습니다. 참 신과 거짓 신을 가리는 대결을 벌린 것입니다.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선명한 선택을 하도록 갈멜 산상으로 그들을 불러모았습니다. 하느님과 바알, 참과 거짓, 빛과 어두움, 선과 악, 그리스도와 마귀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이스라엘로 그 태도를 분명하게 하라고 그들을 초청하였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느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느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결국 갈멜 산상의 대결은 엘리야의 승리로 끝나고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은 그의 목전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엘리야의 갈멜 산의 대결은 야훼만이 이스라엘이 예배할 참 신이시며,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이집트에서부터 구원하신 야훼는 지금 가나안에서도 이들에게 밀과 보리, 포도와 올리브를 거두게 하시는 신이시며, 이스라엘의 흥망 성쇠는 물론이고 전 역사가 그의 섭리 하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 이스라엘 신앙의 부흥 운동이요, 개혁 운동이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어느 편에서야 할 것이지 분명하게 가르쳐 준 의식화 운동이었습니다.

    이 엘리야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암시합니다. 특별히 지상의 나라와 하느님의 나라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항상 두 갈래길 앞에 서 있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좇는 길과 마귀의 유혹에 따르는 길, 복 있는 자의 길과 악인의 길, 진리를 좇는 길과 불의와 타협하는 길, 이 두 길 사이에서 우리는 항상 선택하며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 지대란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어느 하나를 택하여 걸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선택의 길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상이요, 마귀의 유혹은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선택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현상을 좁은 길과 넓은 길로 표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 좋아 보이는 넓은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비록 멸망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 눈에 보기에 좋은 넓은 쪽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주장 앞에서 이상은 항상 무력하게 마련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현실보다는 이상을 택하셨지만,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보다는 떡을 택합니다. 오늘 공산주의 집단인 북한과 대결하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에게서 많은 이상을 박탈하여 갔습니다. 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이상을 버리고 현실을 선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시의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그들의 영원한 이상인 야훼 신앙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야훼 신앙을 바탕으로 하지 아니한 진정한 국가의 번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잠시 망각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느님의 편에 섰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좇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좁은 길을 선택하여 간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 적인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될 때 전혀 엉뚱한 소리를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봅니다.

    요즈음 북한의 핵문제와 여중생 압사 사건을 중심으로 한 촛불 시위를 놓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는 우리와 세계에 대한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하느님께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전쟁의 불안과 핵 위협을 제거해 주시고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는 주한 미군이 지켜주기에 그들이 철수해서는 안된다는 정치적인 기도로 변질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주한 미군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지키신다는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기에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이 땅의 평화를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이 필요하시면 미국을 불러 오실 수도 있고 영국을 불러 오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거나 혹은 철수를 반대하거나 하는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한 미군들이 저지른 잘못을 시정하도록 요구할 수는 있습니다. 촛불시위는 그런 잘못에 대한 항의요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개선하라는 요구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행위가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결국 미군 철수라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미군 철수가 한반도의 안보에 큰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에 불의가 있어도 그대로 눈감고 침묵하며 지나가자고 하는 것은 신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청 앞에 기독교인들을 동원하여 기도회를 갖는 것은 그 목적을 순수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주한 미군 철수 반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 수 만명의 교인들을 동원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목소리를 높이므로 스스로 신앙 없음을 들어내는 것이며, 한국 교회의 위상을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면 조용히 하느님께 기도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기뻐하실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입니까?' 물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여 머뭇거리게 됩니다. 언제나 좁은 길을 택하는 사람은 적고, 넓은 길을 택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아합 왕 때 엘리야는 하느님 앞에 호소하기를 자기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자기만 남았다고 느낄 정도로 그 사회는 다 바알에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 명을 남겨두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 인구에 비할 때 7천 명이란 지극히 적은 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느님과 마귀, 참과 거짓, 빛과 어두움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물을 때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 편에, 진리 편에 선다고 분명하게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그 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소수요, 고난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하느님 편에, 진리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참 삶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진리의 길을 담대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능히 이 좁은 길을 담대하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때 비겁하였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이 저들에게 임하시자 용기를 얻어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고, "하느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느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 4:19-20)는 담대한 증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진리의 길을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선택하고 그 길로만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자

    읽어 드린 로마서 6장 6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것이,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압니다.

    그리스도인을 정의할 때 '그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의 노예'였던 자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옛 사람'이나 '죄의 노예'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에베소서 4장 26절에 의하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삶을 옛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욕망을 따르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이기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하느님 중심의 가치관을 갖게 됨을 뜻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의 노예로 그 편에 섰던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느님 편에 서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였던 시절에 가졌던 모든 가치관과 생각을 십자가에 다 못박아 버리고, 이제는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드려 완전히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모든 사물, 모든 사건을 새로운 가치관을 따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가치관의 변화를 산상설교를 통해서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되로 받으면 말로 갚아 주는 것이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내 뺨을 한 대 때리면 열 배로 갚아주는 것이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김일성을 미워하고 김정일을 저주하지만, 예수님은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마 6:44-45)이라고 교훈 하셨습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엄청난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가치관을 따라야 할 줄 알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땅의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어찌 보면 이런 가치관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한 것은, 겉모양은 교회에 다니니까 그리스도인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 그 가치관은 전혀 하느님의 나라 가치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가 1천만을 헤아리지만 실제로 진정한 가치관을 변화를 이룩한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될까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 기독교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기독교적 가치관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 깊게 스며들 때 그 사회가 자연스럽게 건강한 사회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위해서 계속 투쟁하고 있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합 시대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이리로 쏠렸다가 저리로 몰려가는 중심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 가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향하여 '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물을 때 여러분은 확신을 가지고 '예,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과연 오늘의 역사를 하느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해석하며 받아드리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기독교적 가치관을 따라 판단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말과 생활과 온 몸으로 여러분이 하느님 편에 속했고 진리 편에 섰다는 것을 증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이라 할지라도 확신을 가지고 이 길을 걸어간다면 거기에 승리가 있고, 거기에 참 생명이 있으며, 거기에 참 평안이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여러분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하심으로 분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와 그 진리를 세워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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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12월 29일 성탄절 첫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낡은 것을 버리고 에스겔서 36:24-28 마태복음 9: 9-17 사회적으로 부각되었던 큰 문제들과 전에 없었던 수해에 의한 재난으로 그 어느 ...
    Date2002.12.29 Views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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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빛과 생명의 탄생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12월 25일 성탄절> 육성설교 / 동영상 빛과 생명의 탄생 시 편 36: 5-12 요한복음 1: 1-18 기쁜 성탄절 아침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Date2002.12.25 Views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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