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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2 23:05

이 사람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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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 13일 종려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이 사람은 누구냐?

이사야서   42: 1- 4
마태복음   21: 1-11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逾越節)이 가까워 온 이 날, 나귀새끼를 타시고 제자들과 무리들의 호산나 소리를 따라 예루살렘 성을 향해 행진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에 들어가시자 온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이 유월절에는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사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오는 때입니다. 각 지방에서 뿐 아니라 외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모두 모여오는 때입니다. 오랜만에 고국을 찾아온 유대인들이 이 이상하고도 요란스런 예수님의 행렬을 보고 놀라며 의아해 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냐?"

    이번 유월절에 참석한 많은 유대인들은 그 기간동안에 일어난 예수님을 둘러싼 여러 가지 사건을 목격하면서 "이 사람은 누구냐?"라는 질문을 계속하였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나온 대답은 자기가 선 입장에 따라 각기 달랐습니다. 갈릴리에서 온 사람들은 대답하기를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예언자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 지방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것을 보았고, 잘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말씀들은 무엇인가 힘있고 새로워 보였으며, 여러 차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그에게 남다른 권위가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예언자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언자가 자기들 지방 출신이라는 점을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이 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한 채 무엇인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며 호산나를 목청껏 외치며 따랐던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지켜 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자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성전에서 "호산나" 소리 높이 외칠 때 분이 나서 예수에게 따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라고 오히려 저들을 공박하셨습니다. 그 다음날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나와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몰아내신 사건을 두고 따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대답지 아니하셨으나 몇 가지 비유를 통하여 자기가 건축자들의 버린 머릿돌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죽여야 할 이단자로 단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질문한 사람들 가운데는 갈릴리 사람들의 말을 솔깃하게 들은 사람도 있겠고, 종교 지도자들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아직도 그 짧은 일주일 동안에 겪은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그 해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권세가 시퍼런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외쳐대는 저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그러면서도 무기력하게 유월절 축제 기간에 십자가에 달린 저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십자가에 달려서도 저를 욕하고 비난하는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놀랍게도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였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이 기이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것은 오늘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보잘 것 없는 나귀새끼를 타고 시골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의 호산나 소리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는 어느 전쟁터에서 대단한 전과를 거두고 승리한 개선장군일까요? 그가 개선장군이라기에는 그의 나귀 행렬은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분명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개선 장군이 아닙니다. 아니 그는 개선장군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어린 나귀 새끼를 탄 평화의 왕이셨습니다. 가난하고 눌린 자들의 친구이시며,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시며, 어린 아이들의 환호에 응답하시는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노예로 삼으면서 영토를 확장해 가는 로마와 같은 나라의 왕이 아니시라, 이 세상에 버림받은 자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그들을 끌어안으시며 그들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므로 이룩하는 평화의 나라의 왕이십니다. 로마의 평화 즉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군사력으로 성취한 것이지만, 예수의 평화는 긍휼과 자비와 희생으로 이룩하는 평화입니다. 로마의 개선장군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갔던 예루살렘에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어린 아이들의 환호 속에 행진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유린당한 이 땅에 나귀 새끼를 타고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고 계신 것입니다. 막강한 무기와 수십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순식간에 이라크를 점령하여 버린 미국은 지금 기세 등등하여 전 세계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테러를 감행한 나라를 징계하고, 독재자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던 나라를 해방시킨다는 '도덕적 의무'를 성스럽게 감행하였다고 큰소리치는 미국 앞에 '충격과 공포'에 쌓인 전 세계는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지우지 못하면서 또 다시 맞는 이 종려 주일에 예수님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조용히 나귀 새끼를 타고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실현된 이 땅에 입성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아직도 대결을 지양하지 못한 이 한반도에 예수님은 그 한복판으로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강대국들이 힘에 의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여 거기서 주도권을 장악해 보려는 아귀다툼에서 놀라운 힘을 과시한 미국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입성은 희극적으로 비취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평화적으로 온 세계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소리는 무시되고 힘의 논리만이 받아드려지는 세계가 되어버리고 말았고, 통일을 위해서는 무기와 군대를 감축하고 군사훈련을 중단하자는 소리는 반역자로 취급되고 막강한 힘으로 무장하여 적을 압도해야 한다는 소리만이 박수 갈채를 받는 오늘, 예수님의 입성은 더욱 희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마저 이 힘의 논리에 앞장 서 무력과 경제력에 있어 북한을 압도해야 한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 때에,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싱거운 소리나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저 예수는 도대체 누구냐고 기독교인들조차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아, 평화의 왕 예수여! 당신은 오늘 당신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조차 환영하지 않는 이 땅으로 입성하고 계십니다. 주여, 우리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일깨워 주소서."

    이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비록 이 시대의 바보가 되더라도 어린 아이들처럼 큰 소리로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 질서를 이룩하시는 예수

    다음으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몰아내신 이 예수가 누구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 성전 뜰에서 이루어지는 부정과 비리를 알면서도 누구도 감히 거기에 도전하지 못했던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여 장사꾼들을 몰아낸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면서 율법 종교의 중심인 성전을 허물어 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하는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라고 하면서 부동의 자리를 지켜온 이들을 향하여 독설을 퍼붓는 이 젊은이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는 단순한 독설가일까요? 아니면 정신병자일까요? 그가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한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귀신들린 자로 치부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어떻게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을 가리켜 율법을 온전하게 하려 온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형식화되고 생명력을 잃은 율법종교를 헐고 새롭게 세우시려고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는 건축자들이 버렸으나 나중에는 머릿돌이 된 분이요, 종교 지도자들의 비리와 위선을 속속 들이 들여다보신 분이며, 준비한 자에게는 상급을 주시고 게으른 자는 내치시는 심판자임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기존의 율법 종교와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새 질서를 가져오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도 이 예수님은 종려주일에 입성하시어 성전에 올라가 장사꾼들을 몰아내시고,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라고 책망하시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옛날 바리새인들이 지킨 율법만도 못한 지극히 형식화된 몇 가지 율례조차도 잘 지키지 않는 현대 크리스찬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게으르고 열정 없는 크리스찬들이여"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시지 않겠습니까? 천만을 헤아린다는 기독교인들이 있음에도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오늘의 교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이 무기력한 교회들을 헐어 버리라. 내가 새로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변화하는 역사의 미래를 바라보지 못한 채 당장의 자기 안락과 축복만을 추구하는 크리스찬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현대 크리스찬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슬기란 항상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입니다. 역사를 통찰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이 슬기를 가지고 불을 밝힐 기름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기름은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인 열정입니다. 사랑입니다. 자신과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적극성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쉬지 아니하고 장사하는 부지런함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이 역사를 보면서 이 기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을 좇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그 질서를 이룩하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들은 "이 성전을 허물라"고 하시는 주님을 향하여 "이 사람이 누구야?"라고 묻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라고 책망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이 정신병자 같은 사람이 도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큰 교회를 이룬 성공적인 목회자인 나를 향하여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인가?"라고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겸손히 주님의 책망 앞에 회개하므로 우리의 굳어진 의식을 개혁하고 현실에 매여 미래를 보지 못하던 눈을 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안일과 타성에 젖은 오늘의 교회를 개혁하여 이 땅에 하느님의 통치를 실현시키는 기관이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개인 구원과 개교회주의에 빠져 이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였던 교회들을 일깨워 사회를 개혁하고, 민족의 통일을 이루며, 창조 보전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주님 다시 오실 때 부끄러움 없이 영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

    끝으로, 사람들은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보면서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그렇게 죄를 찾지 못하였으면서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내어준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말만 잘 했으면 십자가를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도 그대로 묵묵히 십자가를 진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실 수 있었던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그대로 십자가의 고통을 감수하신 이 분은 누구입니까?  그 지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자기를 못박고 욕하는 무리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그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려다 실패한 패배자인가요? 그는 간교한 종교 지도자들의 모략에 말려 죽을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자인가요? 아닙니다. 결코 그는 패배자도 무기력한 자도 아닙니다. 그는 온 인류를 대표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구세주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버리고 성육신 하시어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죽으시므로 모든 인류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멸망이 구원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어둠이 빛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세계 한복판에 우뚝 서 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다. 내가 전쟁과 오염으로 죽어가고 있는 이 세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다. 그래서 이 세계를 구원하며, 새롭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심에도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고 그를 비웃으며 그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그 십자가를 지려하지 않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자기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우리는 본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나처럼 너희들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그런 힘들고 어리석은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 온 인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여, 당신은 당신이 구원한 그 백성들에게서조차 환영을 받고 계시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여, 이기심에 절은 저희의 심령을 새롭게 하소서."

    이제 우리는 돌이켜 십자가가 서 있는 그 골고다에 올라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 십자가를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혼란과 이기심으로 무질서하게 된 이 세상을 구원하는 길은 바로 그 십자가의 구속의 능력 밖에는 없음을 우리가 확신하면서 그 십자가의 복음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헌신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너무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뒤뚱거리는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비웃으며 "이 사람은 누구야?"라고 묻는 무리들을 향하여 "그는 평화의 왕이시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라고 책망하시는 예수님을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며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오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선포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만이 오늘의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저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냐?"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므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우물쭈물 적당히 살아온 잘못을 통회 자복하고, 이제는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향하여 분명하고 확실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력한 힘 앞에 모두가 숨죽이고 엎드려 있는 세계로 이를 비웃듯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는 평화의 왕 예수님을 영접하여, 호산나를 목청 높이 외치며 평화의 대열에 함께 참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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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1월 5일 성탄절 둘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사랑과 생명 요 나 서 4: 5-11 요한일서 3:11-18 새해 첫 주일 아침 영생의 소망을 주신 하느님의 무한하신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
    Date2003.01.05 Views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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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우리의 삶을 보장하시는 주님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3년 1월 1일 새해맞이예배> 육성설교 / 동영상 우리의 삶을 보장하시는 주님 이사야서 43: 1- 3 요한복음 6:32-40 2003년 새해 첫 아침,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는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여...
    Date2003.01.01 Views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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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낡은 것을 버리고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12월 29일 성탄절 첫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낡은 것을 버리고 에스겔서 36:24-28 마태복음 9: 9-17 사회적으로 부각되었던 큰 문제들과 전에 없었던 수해에 의한 재난으로 그 어느 ...
    Date2002.12.29 Views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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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빛과 생명의 탄생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12월 25일 성탄절> 육성설교 / 동영상 빛과 생명의 탄생 시 편 36: 5-12 요한복음 1: 1-18 기쁜 성탄절 아침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Date2002.12.25 Views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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