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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3월 10일 사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탄생처럼 죽음도 은총이다

 전  도 서   3:10-15
 요한복음  12:24-26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피하려 하고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삶이기에 우리의 모든 삶은 사실상 죽음의 문화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일 사이 없으며, 각 나라 정치가 엎치락뒤치락하여 어지러우며, 개인의 삶이 평안하지 못한 모든 원인은 따지고 보면 죽음 때문입니다. 죽음 후에 더욱 아름답고 여유 있는 삶이 있음을 안다면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죽음 이후를 알지 못하기에 이 땅의 삶을 평화와 여유로 이끌지 못합니다.

    많은 종교와 사상가들이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결국은 세계는 죽음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꼴입니다. 빈소나 장례식장에 가보면 요즈음은 검은 옷을 입고 옛날에는 베로 만든 상복을 입었습니다. 웃음 대신 통곡이 있고 음울한 죽음의 냄새가 가득 차게 마련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기독교인의 장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것은 죽음의 문화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활의 소망을 이야기하여도 죽음은 모든 것을 좌절시키고 절망하게 하기에 사람들은 좀처럼 그 죽음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의 이야기를 잘 하려 하지 않습니다. 곧 숨이 넘어갈 것이 분명한 환자에게도 죽을 것이니 준비하라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목사도 임종이 가까운 환자나 노인들을 심방하여 예배를 드리면서도 평안히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여 달라고 기도하기를 꺼려합니다. 회생될 가능성이 없는 줄 알면서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죽음은 끝까지 회피하는 대상입니다. 이런 것이 과연 기독교의 부활신앙이며, 생명문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죽음의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부활이 있을 수 없으며, 참다운 생명 문화가 정착될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부활신앙이란 머리 속에 머물고 있을 뿐 실제로 죽음 앞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아무리 부활신앙을 이야기하여도 그것이 겉도는 까닭은 죽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절망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후에 소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음 자체가 절망이 아니며 좌절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죽음이 무엇인지를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므로 죽음의 공포와 절망을 극복하고 여기에 진정한 생명문화를 만들어 가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변화하여 성숙하도록 피조된 인간

    우리는 먼저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살피면서 그 과정에서 죽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창조하신 인간은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점차 발전하고 자라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탄생 과정을 보아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 씨앗이 떨어지고 그것이 10개월 자라면서 형태를 갖추었을 때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의 돌봄 속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갓난 아이 적에는 모든 것이 미숙하고 말도 못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점차 자라면서 말도 배우고 육체적인 기능도 발전하면서 성숙한 인간이 됩니다. 그 지능도 점점 더 발전하면서 똑똑한 인간이 되어 갑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어느 시기가 지나면 쇠퇴하다가 나이 들어 늙어지면서 모든 기능이 약화되었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모든 과정에서 어느 특정한 시기를 잘라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배태(胚胎)로부터 시작하여 늙어 죽을 때까지 변화하는 모든 과정을 가리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처음부터 어떤 완성된 제품처럼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자라고 변화하는 과정을 가진 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어디까지냐 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사람은 끝나는 것이라고 보통 생각을 하였습니다. 죽음이 변화의 끝, 혹은 성장의 끝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그 이상 변화하지 않고 그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사람'의 변화의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변화의 단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 자라난 아이가 그렇게 편안하고 아늑하던 자리에서 나와 이 땅에 탄생하는 것이 하나의 큰 변화이듯이 죽음도 또 다른 발전을 위한 변화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 12장 말씀에 보면,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알의 죽음은 그 밀알의 끝이 아니라 더 많은 열매를 위한 변화의 단계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도 죽음 후의 삶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는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고전 15:42-44

    사도 바울은 이 땅의 우리의 삶을 썩는 것, 비천한 것, 약한 것에 비유하면서, 미래의 썩지 않을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으로 변화된 삶을 위해 심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죽음은 완전한 변화의 과정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의 삶을 마치 태아가 이 땅에 태어나기 위해 어머니의 뱃속에서 10개월을 준비하듯 미래의 영광스러운 삶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이 다같이 죽음이 '사람'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단계로 보았고, 그 죽음을 거쳐서 인간은 비로소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인간의 변화의 과정입니다. 바울은 고전 14장 46절에서 "신령한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자연에 속한 것이 먼저요, 그 다음이 신령한 것"이라고 하므로 인간에게 성장 과정 혹은 변화의 과정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어 10개월을 자라고 이 땅에 태어나 일생을 살다가 죽으면 영의 몸으로 사는 새로운 삶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변화의 단계입니다. 따라서 죽음도 탄생처럼 은총이며 하느님의 섭리의 한 과정임을 알게 됩니다.

    죄 때문에 장벽이 된 죽음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죽음은 처음부터 인간의 삶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단계라는 사실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죽음이 우리의 삶 속에 삽입(揷入)된 것이 아니라 창조될 때부터 설계된 변화의 과정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인간은 본래 죽게끔 지음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태어났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죽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태어났다가 자연스럽게 죽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창 3:19

    당신께서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그들은 죽어 그들의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 104:29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자가 누구냐? 시 89:48

    이런 구절들은 인간이 죽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원래 죽도록 지음을 받았음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우리는 흔히 원래는 죽지 않는 것인데 아담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아담의 범죄 후에 찾아온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죄의 값이라 부르고, 또한 죄를 죽음의 쏘는 가시라고 부르는데 이 죄와 관계된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 죽음은 자연스러운 죽음과 어떻게 구별이 되는가? 그것은 하느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으로부터 돌이켜 멀어지신 것입니다. 죽음은 육체적 생명의 정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영적인 생명의 종말입니다.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이 인간을 버리심으로써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김광식)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죽음의 공포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자연스러운 죽음 후에 또 다른 변화의 단계를 준비하셨음을 알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이후 하느님이 그들을 떠나셨고 그들을 만나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인간에게는 죽음 이후의 변화가 차단(遮斷) 되었고, 그러면서 죽음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하였으며, 죽음의 공포와 불안이 인간을 좀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죽음이었는데 그것이 공포의 죽음, 절망의 죽음으로 변한 것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이 땅에 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 이후에 새롭게 변화된 삶이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하여서입니다. 자칫 죽음 이후의 변화를 잊어버리고 이 땅의 삶에만 매이기 쉬운 인간들에게 완성된 인간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임을 깨우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가로막고 있던 죄를 없이하므로 다시 죽음을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으로 돌려 놓으셨으며, 죽음 이후의 아름다운 변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죽음 속에서 완성된 인간

    이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고 보여주셨으며,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보증하시는 일을 믿지 않음은 자기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 가장 큰 선물}이란 책을 쓴 헨리 나웬은 자신의 책에서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대화하는 이란성 쌍둥이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여동생이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난 말이지, 태어난 후에도 삶이 있다고 믿어."
    오빠는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 여기가 전부라니까. 여긴 어두워도 따듯하지. 또 우리를 먹여주고 살려주는 탯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딴 일을 할 필요도 없다구."
    여동생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캄캄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거야. 어딘가 다른 곳 말이야. 마음껏 움직일 수 있고 환한 빛이 비치는 곳이 반드시 있을 거야."
    그렇지만 여동생은 쌍둥이 오빠를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여동생이 재빠르게 말했습니다.
    "말해줄 게 또 있어. 오빠는 안 믿겠지만 말이야, 난 엄마가 있다고 생각해."
    쌍둥이 오빠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엄마라구?"
    그는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난 엄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너도 그렇구. 어떤 놈이 그런 생각을 자꾸 불어넣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여기가 전부라니까. 왜 늘 그 이상을 바라는 거야? 이 곳도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야. 우리에게 필요한 게 다 있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만족하도록 해."

    그러나 이 쌍둥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캄캄한 자궁 속 10개월은 순전히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은 또 하나의 탄생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죽음은 가장 큰 변화의 단계입니다. 보로스란 신학자가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죽음 속에서 비로소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됩니다. …'죽음 속에서'라는 것은 인간이 지상적 현존 상태로부터 본래의 존재 상태로 넘어가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잠정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게 되면, 순간적으로 자기 본래의 모습에 눈뜨게 됩니다. 그 사람은 온전히 빛과 광명으로 채워집니다. 결국 죽음 속에서 인간은 궁극적인 성숙에 이릅니다. 죽음의 순간 인간은 모든 것을 알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가운데 궁극적인 결단을 자유로이 내릴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죽음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하느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 뜻하셨던 모습대로 완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탄생보다 더 귀하고 값진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좌절로 생각하는 것은 죽음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우리가 바라던 모든 것을 이루게 하는 가장 값진 순간이며, 은총의 시간임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향해 돌진할 때 죽음이 은총의 순간으로 변하면서 그의 삶은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이 은총의 순간이라고 하여 자살을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태아가 10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나오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이 허락하신 이 땅의 삶을 온전하게 채우지 못하면 그의 영생의 삶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변화의 단계를 두시고 그 단계를 거쳐서 비로소 완성된 인간이 되게 하셨기에 이 땅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이후의 삶의 단계를 더욱 충실하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은 탄생보다 더 큰 하느님의 은총이며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그 앞에서 절망하거나 애통해함은 잘못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며 절망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보여주셨는데도 여전히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지배를 받는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문화를 가꾸려면 무엇보다도 죽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믿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죽음을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의 공포 때문에 드리워졌던 모든 어둠이 걷히고 이 땅의 삶은 더욱 밝아지며 긍정적인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죽음을 터부시하던 사고 방식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맞이할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더 많은 열매를 맺는 새로운 변화의 세계가 있음을 확신하면서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적극적으로 준비하여 하느님 나라에 이르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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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2.03.24 Views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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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점점 완성되어 가는 삶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3월 17일 사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 점점 완성되어 가는 삶 시 편 103: 1- 5 로 마 서 8:26-30 지난주일 설교에 죽음도 은총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죽음은 결코 저주나 형벌의 ...
    Date2002.03.17 Views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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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탄생처럼 죽음도 은총이다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3월 10일 사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탄생처럼 죽음도 은총이다 전 도 서 3:10-15 요한복음 12:24-26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죽음을...
    Date2002.03.09 Views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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