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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3월 24일 종려주일>
   육성설교

계속되는 십자가의 고통

이사야서  53:10-12
마가복음  15: 1-20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마지막 만찬을 행하신 세족목요일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금요일이 있는 주간입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되신 부활주일을 맞게 됩니다.

    오늘 택한 본문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처형되는 이야기입니다. 성금요일에 읽어야 할 본문인데 종려주일인 오늘 이 본문을 택한 것은 주일 설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설교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가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를 드리셨는데,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무리들에 의해 체포되어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 불법재판을 받으신 후 금요일 새벽 빌라도의 법정에 넘겨지셨습니다. 빌라도는 느닷없는 종교지도자들의 고발이 못마땅했기에 적당히 심문하고 거기 모인 군중들의 함성을 따라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겨주었습니다. 내용은 종교재판이었고, 형식은 정치적 반역죄를 다루는 정치재판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데 그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총독 빌라도가 들러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오전 9시에 시작하여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란 사람이 자기가 준비한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안장하였고, 로마 군인들이 그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사흘이 되는 일요일 새벽에 예수님은 부활되셨습니다. 새로운 역사의 아침이 동튼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간 머무시다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시어 하느님 우편에 올라가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예수라는 한 청년의 십자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 세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단순하게 한 청년이 아니라 만물을 지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떤 한 개인의 십자가가 아닌 만물이 함께 걸머진 십자가이기에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십자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그 예수님은 단순히 2천년 전 유대 땅에 오셔서 33년 간 살다가 가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오시기 이전에 하느님의 아들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현재는 하느님 우편에 계시며, 앞으로 다시 오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대표하시는 분이며, 그 만물을 대신하여 죽으신 분입니다. 만물을 구원하시며, 그 만물을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존경하는 어떤 인물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석가나 공자가 위대한 인물이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그들은 결국 우리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거나 하느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 안에 내가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을 수 있는 그런 신적 존재가 아니고 나와 똑같은 사람일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와 같은 성정(性情)을 가진 인간이 되셨지만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래서 그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그가 들어와 계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은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 되셨기에 하느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2천년 전 유대 땅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머물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살아있는 생생한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매년 반복해서 성탄절을 지키고 사순절과 성금요일과 부활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절기는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일어난 사건으로, 거기에 우리가 참여하면서 체험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잘 만들어진 예수의 일생을 그린 영화에서 십자가 장면을 보게 되면 흔히 눈물을 흘립니다. 그 끔직한 장면에 몸서리를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예수님이기 때문에만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까? 가령 내 아버지가 거기에 달렸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몸부림치고 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단순하게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감상적(感傷的)인 차원에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그 십자가에 바로 내가 달린 것이며, 혹은 내가 직접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자라는 경험을 갖지 못할 때 십자가는 감상에 그치고 맙니다.

    우리의 신앙은 너무 감상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감상(感傷)은 내가 당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고통을 볼 때 갖는 일종의 동정심입니다. 이런 감상은 상대방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는 정도에 머물지 그 고통에 동참하거나 그 고통을 나누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런 감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신앙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감상은 신앙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런 동정심, 그런 감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감상이 오늘에 일어난 어떤 불행을 보면서 갖는 것이 아니라 2천년 전 골고다에서 일어난 십자가 사건을 보면서 갖는 것이기에 그 감상의 정도가 지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장면이나 보아야 눈물이 나지, 그렇지 않으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 얄팍한 감상을 신앙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울기보다는 내 사랑하는 가족의 고통이나 슬픔 앞에서 더욱 눈물을 진하게 흘리는 것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내가 당한 작은 고통보다도 못한 것으로 생각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두가 예수님을 단순한 한 인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 죽음 안에 내가 있고, 그 고통 안에 내가 있다는 믿음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철저하게 역사적 사건으로 간주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오늘 나와 별로 상관이 없는 2천년 전 사건으로 끝나고 맙니다. 십자가 사건은 2천년 전 사건이 아닌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며, 우리가 직접 개입된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자기 것으로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빌 3:10-11

    바울은 항상 자신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 2:20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자기의 죽음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에 이르기를 원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어 달려 죽음으로 나의 모든 죄가 대속되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오늘까지 계속되는 십자가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 옛날에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가 당하는 고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지극하였던 것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이 아닙니다. 자기 속에 품으신 만물이 계속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이 큰 것입니다. 만물을 끌어안으신 그리스도, 만물과 자신을 일치시키신 하느님의 아들이시기에 만물이 당하는 고통이 바로 그의 고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만 신학자인 C. S. Song(宋泉盛)은 그의 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고난이 되어버린 우리의 고난, 하느님의 고통이 되어버린 우리의 고통, 하느님의 절망이 되어버린 우리의 죽음이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고난을 당하신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죽으신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 고난을 겪으시고 우리 죽음을 죽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 옛날 종교적 권력자들과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합세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오늘날에도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지배하며, 강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침략하고 경제적 수탈을 행하여 수많은 생명들을 죽이고,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고통 당하는 자들은 집 없고 힘없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파괴의 현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 현재의 고난에 기근과 홍수, 지진, 전쟁, 질병과 같은 일들이 더해져 더욱 절대적인 고통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1$도 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는 10억이 넘는 사람들입니다. 5사람 중 한 명 꼴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현재 세상에는 4분의 1의 사람들이 전 세계 자원의 85%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4분의 3이 남은 15%를 갖고 나누어 먹는 셈입니다. 이 자원이 다른 방식으로 분배된다면 세계인구를 먹여 살릴만한 충분한 식량이 있습니다. 오늘의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개발되면서 파괴되는 생태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자들입니다. 특히 미국은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을 배출하는 지구기후변화의 주범입니다. 그런데 조지 부시 대통령은 '교토기후협약' 파기를 선언하므로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겠다는 범지구적 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이런 미국의 행위는 폭거(暴擧)이자 하나뿐인 지구에 대한 선전 포고입니다. 세계 최다 오염물질 배출국인 미국은 이제 힘을 내세워 지구촌 환경까지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미국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지금 전 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다 터뜨리면 지구를 34번 파괴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지금 여러 나라들이 다투어 새로운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암 연구가인 로잘리 버텔(Rosalie Bertell)은 소름끼치는 불길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2000년에는 무기와 관계된 환경 방사선이 세계적으로 9만 종류의 암을 유발하고 2백만 명의 유산과 유아사망, 1천만명의 신체적 기형아  또는 정신적 지진아를 낳게 할 것이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는 핵무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계속 받고 계십니다. 만물을 그 안에 품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쩌면 그 옛날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통보다 몇 십배 더한 고통을 당하고 계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죄의 대가는 크고 중한 것임을 말해 줍니다.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은 그가 다시 오시는 역사의 종말에 끝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이 세계의 고통을 돌아보며 고통 당하는 자와 함께 하며, 고통을 끝내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세계 기아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아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환경오염의 주범임을 인식하면서 환경보전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전쟁을 반대하고 핵무기 실험과 확산을 막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2천년 전에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닙니다. 그 분은 하느님의 아들로 자기 안에 지으신 만물을 품고 그것들을 대표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의 고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감상적인 십자가가 아닌 구체적으로 내 삶으로 받아드리는 십자가를 우리가 함께 메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하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십자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 죽음을 너머 부활에 이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할 때 마침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의 역사의 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우리 세계 속에 전쟁과 살육이 끝이 날 때 십자가는 내려질 것입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다"고 한 사도 바울과 같이 오늘 이 땅의 고난을 함께 몸으로 감당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211.209.170.23 김성철: 십자가 [03/12-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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