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 | 이전설교자료                     

2002.06.16 06:02

옛 것과 새 것

조회 수 144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2002년 6월 16일 성령강림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옛 것과 새 것

에 스 겔  36:22-27
 요한복음   2:13-22

     

    붉은 물결의 승리

    우리가 그렇게 원하던 월드컵 16강 진출이 달성된 지난 금요일 밤 온 국민이 모두 열광하며 기뻐하였습니다. 월드컵 축구가 그렇게 온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고 모두 함께 즐거워할 수 있게 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한 밤이었습니다. 특히 길거리나 운동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붉은 옷을 입어 온통 거리와 운동장 스탠드를 붉게 물들인 것은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이런 열광적 응원이 “기본적으로 축구에 대한 사랑보다 나라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며, 어려울 때마다 응집된 힘을 발휘해 온 “방어적 민족주의의 소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출전한 나라들이라면 어느 나라이건 이기기를 바라면서 응원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붉은 악마’의 응원이 남다른 것이 있긴 하였지만, 다른 나라보다 애국심이 더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분출되었지만, 전에 없이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길거리로 운동장으로 뛰쳐나와 붉은 물결을 이루면서 열심히 응원하고 승리를 축하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변화의 조짐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월드컵이 끝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6월의 도심을 붉게 물들이고 그 하늘에 메아리쳤던 함성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경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보다 진보된 역사의 장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과거에 이 비슷한 모임과 함성은 주로 정치적 억압과 불의에 항거하면서 일어난 것들이었습니다. 1960년 4월 이 땅을 뒤흔들었던 젊은이들의 함성은 마침내 독재정권을 물러가게 하면서 새로운 역사의 물꼬를 터놓았습니다. 그 때 우리는 분노한 민중의 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면서 비극적인 역사로 기록되었지만, 그들의 항쟁과 흘린 피는 헛되지 않아 그로부터 7년 뒤인 1987년 6월 10일 또 다시 울려 퍼진 학생들과 민중들의 함성으로 민주화의 물꼬를 터놓았습니다. 정통성을 갖지 못한 정권의 억압과 불의에 항거하여 일어난 젊은이들과 민중의 봉기(蜂起)는 확실히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보면 이번 월드컵의 응원 열기는 분명 정치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운동경기를 통하여 애국심을 들어낸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붉은 악마’의 물결이 급속하게 퍼져나간 데는 기업의 도움과 언론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어떤 대기업이 3억원을 지원하고 붉은 악마를 이용한 광고를 하였고, TV와 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붉은 티셔츠와 ‘대~한민국’이나 ‘오 필승 코리아’라는 응원가가 전국적으로 전파된 것이 사실입니다. 또 축구협회는 경기가 있는 운동장의 티켓을 50% 할인해 주므로 사실상 ‘붉은 악마’를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나서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붉은 악마’의 광과 효과가 보이기 시작한 때부터였습니다. 1997년 PC 통신의 동호회로 시작된 200명 안팎의 ‘붉은 악마’가 본격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은 작년부터일 것입니다. 아무리 힘있는 기업이나 정부기관이 지원한다 하더라도 ‘붉은 악마’라는 명칭이나 붉은 티셔츠가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렇게 급속하게 전파되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붉은 물결이 전국으로 퍼져나간 데는 어떤 사회적 요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에 동호회로 시작한 ‘붉은 악마’의 회원들은 이 이름에 어떤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색채를 전적으로 배제하면서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며 참여하자는 의도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들은 이런 원칙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한국 축구팀의 유니폼 색깔이 붉은 것이었고,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우리 팀이 4강에 오르면서 외국 언론들이 ‘Red Furies’라고 한데서부터 그 기원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붉은 악령’으로 신문들이 번역을 하면서 ‘붉은 악마’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붉은 티셔츠를 입게 하자는 ‘Be the Reds' 프로젝트를 세우고 추진하였는데 이것이 먹혀 들어간 것입니다.

    ‘붉은 악마’ 현상의 의미

    ‘붉은 악마’를 이끈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들을 통해서 볼 때에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현상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붉은 색에 대한 것입니다. 붉은 색은 우리 사회에서는 터부시된 색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북쪽의 공산당을 상징하는 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터부시한 붉은 색을 거침없이 쓰면서 오히려 붉은 물결로 나라를 온통 뒤덮으려고 “Be the Reds” 즉 “붉은 자가 되라”는 구호를 가슴에 새겨달고 있습니다. 낡은 반공세대들에게는 기절초풍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한을 ‘붉은 악마’라고 선동했던 언론기관, 반공단체, 수사기관이 ‘붉은 악마’를 쳐다만 보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들도 그 붉은 물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고대부터 붉은 색을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생각해왔고 붉은 색이 부정과 사악함을 일소해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우리는 붉은 색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붉은 색은 더 이상 경원시해야 할 색깔이 아니라 정열과 즐거움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의 기존 관습이나 억눌림에서부터 자유하려는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재미없고 지루한 정치판의 싸움과 부정을 지켜보는데 지쳤고,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면서 당하였던 경제적인 박탈과 허리띠를 동여매는 일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대학입시에 시달리고,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들어가기 위해 시달려 왔습니다.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갈망하였던 이들이 이번 월드컵 응원을 통해 분출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정치적 억압은 아니지만, 이런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자유하고자 하는 바람이 거리와 운동장 응원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악마’라는 이름 때문에 기독교계가 크게 반발하였지만, 바로 그런 발상을 하는 기성 세대의 위선(僞善)에 대한 반발이 이 ‘악마’라는 명칭 속에 깃들여 있다고 하겠습니다. 악마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음에도 ‘붉은 악마’라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는 것은 기존의 도덕적 관습과 억압으로부터 자유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바람과 일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이 응원하는 붉은 물결 속에는 여학생들을 비롯한 여자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자는 얌전해야 하고 조신(操身)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억압을 정면으로 깨고 얼굴에 온통 울긋불긋 칠을 하고 껑충껑충 뛰는 여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큰 변화의 물결 속에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자발적인 대규모 모임이면서도 나름대로 질서를 지키고 끝난 뒤에는 청소까지 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들이 염려했던 것처럼 새로운 세대들이 천방지축(天方地軸)만이 아닌 나름대로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창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9 학생혁명이나 광주 민중항쟁 그리고 6?10 민주항쟁이 정치적으로 새로워진 역사를 이끌어냈다면, 오늘 ‘붉은 악마’의 물결은 사회적으로 좀더 향상된 자유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문화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옛 것을 허물고 새 것을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셔서 장사치들을 내쫓으시자 유대인들이 표적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유대교의 중심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그 성전을 허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전 중심의 신앙이 잘못되었고, 낡았기 때문에 허물어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사 중심의 종교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신앙의 역사가 전개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단번에 제사를 드리고 그 때까지 이어온 제사종교를 끝내시겠다는 예고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낡은 부대인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허물고 신선한 새 술과 같은 복음을 담기 위한 새로운 교회의 등장을 예고하셨습니다. 율법종교인 유대교가 오랜 세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중심이 되어왔으나 이제 그 역할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아주 짤막하게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폭탄과 같은 선언이었습니다. 역사의 분명한 분기점을 설정하신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안식일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문제로 충돌하시면서 저들을 비판하셨고, 저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율법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전통과 권위에 대한 도전자로 낙인찍어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고, 여전히 옛 시대 낡은 율법에 안주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하여 성령이 역사하시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교회가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울은 완전히 변화되어 사도 바울이 되었고, 그는 끊임없이 율법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복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를 것을 주장하고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라고 여러 교회에 써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엡 4:22-24

    이것은 개인적인 변화를 뜻할 뿐 아니라 사회적인 변화, 역사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내가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면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옛 것에 안주하는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역사를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율법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변화를 촉구하였습니다.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않고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을 강조하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인과 노예, 남자와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하나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개혁을 의미하였습니다. 기독교는 끊임없이 이 시대를 개혁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지향해 가야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지으시되 점점 자라도록 하여 마침내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그렇다면 그 인간들이 이룩하는 사회와 문화도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자라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역사의 발전을 지향하는 기관으로 항상 그 시대의 예언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기성의 권위와 전통에 매여 새로운 역사를 향해 자신을 개혁하지 못하면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 개혁교회(Reformed Church)는 끊임없이 사회를 개혁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지향해 가야합니다. 에스겔서 본문에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을 우리 속에 부어 주시면 우리는 결코 여기에 안주할 수 없고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면서 끊임없이 개혁하는 주체가 될 것입니다.

    권위주의의 붕괴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정보사회가 되면서 기존의 권위가 도전 받으면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신문 가운데 가장 판매 부수가 많은 거대 신문들에 대한 비판이 인터넷을 통해 활성화되면서 과거에는 이런 신문에 의해 밉게 보이면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보도 형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비판이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전개되므로, 더 이상 거대 신문들의 횡포가 먹혀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문 발행인이 ‘밤의 황제’라는 권위주의가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인터넷 뉴스 사이트, 정치?사회 토론사이트에는 거대 종이신문과는 성격과 관점이 전혀 다른 기사와 논평이 매일 수천 건씩 올라옵니다. 권력화한 종이신문과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그들 보도의 진위를 검증하고 주장의 근거를 파헤쳐 무력화하는 이 뉴미디어의 기사와 논평을 보면서 네티즌은 열광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참여민주주의가 활성화됨으로 점점 더 과거 권위주의적인 정권이나 정당이나 정치지도자들은 점점 무대 뒤로 사라지고 디지털 시대를 이해하고 겸허하게 그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새로운 지도자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사실상 구조적으로 권위주의적 형태를 지녀왔습니다. 특성상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기에 못 마땅해도 들을 수밖에 없고 비판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설교를 하는 목사도 덩달아 권위를 내세우게 되면서 교회는 전반적으로 상의하달(上意下達)식의 구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언로(言路)는 막히고 의사상호 전달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교회마다 다투어 홈페이지를 만들고 게시판을 설치하므로 점진적으로 언로가 열리고 활발하게 평신도들이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작은 변화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결국 교회의 권위주의적 형태를 바꾸어 놓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구조의 변혁을 내다보면서 앞당겨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평신도의 참여를 확대하여 나가는 정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와 역사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뒤쳐져 가지말고 항상 앞서 나가시기 바랍니다. 경직된 사회 관습, 권위주의적인 정치, 융통성 없는 이념과 사상, 내가 혜택을 받으며 누려온 기존 질서에 집착하면 여러분은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던 프랑스나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등이 모두 탈락한 것은 세계 일류라는 자부심에 매어 거듭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이 시대의 변화를 읽으십시오. 그리고 나 자신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며 사회를 개혁하는데 항상 앞장 서 가시기 바랍니다. 내 신앙과 관념으로 자리잡은 옛 것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며 그것을 지키려는 수구적인 태도를 버리고, 날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자라고 변화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느님의 신호를 살피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7월 21일 성령강림절 열번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하느님의 신호를 살피라 아 모 스 3: 1- 8 누가복음 12:54-59 이태리 여행을 가게 되면 화산 폭발로 묻혀버렸다가 발굴된 폼페이를...
    Date2002.07.21 Views1627
    Read More
  2. 신앙과 삶의 나침반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7월 14일 성령강림절 아홉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신앙과 삶의 나침반 시 편 119:105-112 고린도전서 1:18-25 최근에 영화 '간디'를 다시 한 번 보면서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정치적...
    Date2002.07.14 Views1841
    Read More
  3. 마음을 은혜로 굳게 하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7월 7일 성령강림절 여덟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마음을 은혜로 굳게 하라 민 수 기 14: 1-10 히브리서 13: 8- 9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서 너무 즉흥적이고 생각 없는 판...
    Date2002.07.07 Views1710
    Read More
  4.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6월 30일 성령강림절 일곱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 시 편 119:33-40 고린도전서 9:24-27 한 달간 계속된 월드컵 축구가 오늘로 모두 끝나게 되었습니다. 폴란드...
    Date2002.06.30 Views1447
    Read More
  5. 관용과 평화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6월 23일 성령강림절 여섯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관용과 평화 창 세 기 50:15-21 로 마 서 12:14-21 <한겨레>신문 '월드컵 창'에 보니까, 우리와 8강전에서 맞붙은 스페인은 축구 ...
    Date2002.06.23 Views1549
    Read More
  6. 옛 것과 새 것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6월 16일 성령강림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옛 것과 새 것 에 스 겔 36:22-27 요한복음 2:13-22 붉은 물결의 승리 우리가 그렇게 원하던 월드컵 16강 진출이 달성된 지난 금요...
    Date2002.06.16 Views1443
    Read More
  7. 성장하는 능력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6월 9일 성령강림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성장하는 능력 레 위 기 22:31-33 누가복음 5: 1-11 지난 6월 4일 화요일 밤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1...
    Date2002.06.09 Views1508
    Read More
  8. 소박한 삶을 구하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6월 2일 성령강림절 셋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소박한 삶을 구하라 잠 언 30: 7- 9 마태복음 7: 7-14 예수님의 산상설교 가운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훌륭한 교훈들이 많이 있지만 그...
    Date2002.06.02 Views1587
    Read More
  9.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사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5월 26일 삼위일체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사 이사야서 11: 1- 5 로 마 서 8:31-39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일체를 이루어 역사하시는 분입...
    Date2002.05.26 Views1400
    Read More
  10. 생명을 온전케 하시는 성령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5월 19일 성령강림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생명을 온전케 하시는 성령 에스겔서 37:7-10 로 마 서 8: 1-11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그들...
    Date2002.05.19 Views1422
    Read More
  11. 하느님을 닮은 어머니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5월 12일 부활절 일곱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하느님을 닮은 어머니 이사야서 49:15-21 마태복음 15:21-28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원래는 미국에서 어머니 날로 시작되었는데, ...
    Date2002.05.11 Views1485
    Read More
  12. 지체됨을 가르치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5월 5일 부활절 여섯째주일> 육성설교 지체됨을 가르치라 전 도 서 4: 9-12 고린도전서 12:12-26 요즈음 우리 교회에 부쩍 아기들이 많아져서 흐뭇합니다. 아기들은 가정의 기쁨과 소망...
    Date2002.05.05 Views1355
    Read More
  13. 하느님의 동역자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4월 28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 하느님의 동역자 출 애 급 기 3: 7-12 고린도전서 3: 5- 9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 곳에 정착하여 목회를 한...
    Date2002.04.28 Views1553
    Read More
  14. 새로운 생명을 위한 산고(産苦)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4월 21일 부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새로운 생명을 위한 산고 이사야서 66: 7-14 요한복음 16:16-24 오늘 읽어 드린 두 말씀에 보면, 산고(産苦)와 새생명 탄생의 기쁨이 비유로 사용...
    Date2002.04.21 Views1432
    Read More
  15. 죽음보다 강한 것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4월 14일 부활절 셋째주일> 육성설교 죽음보다 강한 것 호 세 아 서 13: 9-14 고린도전서 15:53-58 오늘 읽어 드린 호세아서와 고린도전서 말씀에 보면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
    Date2002.04.14 Views1472
    Read More
  16. 죽음 후의 열매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4월 7일 부활절 둘째주일> 육성설교 죽음 후의 열매 이사야서 53:10-12 요한복음 15: 1- 8 어떤 노인이 정원에서 묘목을 심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Date2002.04.07 Views1455
    Read More
  17. 영생의 시작인 부활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3월 31일 부활주일> 육성설교 영생의 시작인 부활 이사야서 65:17-20 요한복음 11:17-27 부활의 은총과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절은 그리스도를...
    Date2002.03.31 Views1318
    Read More
  18. 계속되는 십자가의 고통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3월 24일 종려주일> 육성설교 계속되는 십자가의 고통 이사야서 53:10-12 마가복음 15: 1-20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마...
    Date2002.03.24 Views1583
    Read More
  19. 점점 완성되어 가는 삶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3월 17일 사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 점점 완성되어 가는 삶 시 편 103: 1- 5 로 마 서 8:26-30 지난주일 설교에 죽음도 은총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죽음은 결코 저주나 형벌의 ...
    Date2002.03.17 Views1500
    Read More
  20. 탄생처럼 죽음도 은총이다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2년 3월 10일 사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탄생처럼 죽음도 은총이다 전 도 서 3:10-15 요한복음 12:24-26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죽음을...
    Date2002.03.09 Views139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