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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7월 7일 성령강림절 여덟째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마음을 은혜로 굳게 하라

 민 수 기  14: 1-10
 히브리서  13: 8- 9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서 너무 즉흥적이고 생각 없는 판단을 따라 비난하거나 칭찬하거나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래 우리 민족의 근성 속에 그런 경향이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근래에 이르러는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언론의 특성상 사건을 신속하게 보도해야 하기에 깊이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이 없이 즉흥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평가나 판단이 가볍고 깊이 없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그의 책 『자기 검열의 시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냄비 근성’을 이야기한다. …그게 우리의 민족성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론이 바로 ‘냄비 근성’을 부추기는 주범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언론은 우리 사회에 ‘한탕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개탄하지만, ‘한탕주의’가 가장 심한 게 바로 언론이다. …우리 언론에게 차가운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잇속을 챙기는 데엔 차가울는지 몰라도 보도와 논평에 있어선 ‘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는다. (91쪽)

    이런 언론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덩달아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거나 칭찬을 하거나 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그래서 무거운 담론(談論)을 기피하고 가볍고 잠시 즐길 수 있는 유머를 좋아하고 깊이 생각하며 토론하기를 싫어하게 됩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지적한 현대인의 존재의 가벼움은 갈수록 더욱 적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새털처럼 혹은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가벼워져서 바람 부는 대로 떠돌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적어도 영원을 지향하는 기독교인들만은 좀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미래를 내다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느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는 로마서의 말씀대로 오늘 나타난 일에 대한 즉흥적인 반응보다는 그 밑바닥에 흐르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떤 문제나 사람에 대해서 가볍고 즉흥적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좀더 시간을 갖고 정보를 수집하고 기도하면서 그 사건의 의미를 찾아내고,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이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조차 언론의 가벼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칼 바르트가 이야기 한 대로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성경을 보고 신문을 보며, 신문을 보고 성경을 보아야 할텐데, 현재 기독교인들은 한 손에는 신문을 한 손에는 TV의 리모콘을 들고 신문을 보고 TV를 보며, TV를 보고 신문을 보면서 마치 전문가인 것처럼 사건에 대한 해설을 하고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전문가다운 해석을 할 수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말씀과 그것이 지향하는 영원한 세계와 관련하여 판단하지 않은 것은, 결국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으며, 어느 한쪽의 주장에 불과한 것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의한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은, 오늘의 역사가 하느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말뿐이지 실제로는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믿음이나 영원한 세계에 대한 소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신중하지 못하였던 광야의 이스라엘 회중

    현대인들만 새털처럼 가벼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도 굴뚝의 연기처럼 가벼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민수기 말씀은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40일간 살펴보고 돌아와 보고를 듣고 난 뒤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 두 명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이 모두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땅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 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요즈음 언론을 그렇게 쏙 빼 닮았을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과장하거나 선동하는 방식이 너무 닮았습니다. 우리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족벌언론들처럼 수적인 우세로 그 여론을 몰아가는 방식도 너무 흡사합니다. 분명히 갈렙은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올라갑시다.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지만, 그 소리에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수 언론에 의해 여론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울면서 모세를 원망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두머리를 세우자.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믿음 없고 생각 없는 열 명의 정탐꾼들의 선동에 휩쓸려 너무나 어리석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와서 이집트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다시 전보다 더 박대 받는 노예가 됨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이들은 이런 저런 생각 없이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서둘렀습니다.

    보다 못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런 회중들 앞에 나서서 가나안 땅의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설득하였지만, 회중들은 오히려 돌을 들어 두 사람을 쳐죽이려 하였습니다. 오도된 여론 앞에 진실은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이 홍해를 건너면서 막강하였던 이집트 군대가 수장되고 그들이 구원을 받는 놀라운 경험에 감격하였던 것이 엊그제인데, 잘못된 정탐꾼들의 보고에 정신을 잃어 모세를 원망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섣부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들이 좀더 차분히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들어보고 모세의 판단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하였더라면 이스라엘의 광야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잘못된 보고와 선동 때문에 이스라엘 회중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여야만 했습니다. 40년 광야의 형벌은 믿음이 없고 신중하지 못한 열 명의 정탐꾼과 그 말을 생각 없이 받아드린 믿음 없는 회중들의 가벼운 판단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어떻게 구원해 내셨는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강력한 이집트의 지배와 권력을 혼 내주었고, 앞을 가로막았던 홍해를 건넜으며, 시내 산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겠노라고 계약까지 맺었는데, 이 모든 은혜와 기적의 역사를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 이스라엘 회중이야말로 바람에 나는 겨처럼 그 존재가 가벼웠습니다.

    결국 이것은 그들 속에 하느님을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의 약속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약속이나 그의 계명은 늘 현실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약속과 계명을 현실과 분리하여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반드시 그 말씀을 따라 판단하였어야 하는데, 그들은 현실은 현실로만 받아 드려 하느님께 물어볼 필요도 없이 자기들의 경험과 판단에 따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회중이 가벼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 속에 하느님의 약속이 자리잡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약속과 은혜로 말미암아 저들이 출애급하였고, 이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인데, 잘못된 선동 때문에 그 약속과 그에 따르는 하느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현실적 판단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예언자

    오늘날에도 현대인들의 존재가 가벼운 것은 그 속에 이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어떤 중심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만을 볼 뿐, 역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가치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판단이 어느 때는 우로 갔다가 어느 때는 좌로 가고, 어느 때는 희다고 하였다가 어느 때는 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물질문명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가치, 영적인 가치를 내던져 버렸기 때문에 그 문명의 화려함에 도취되고, 그 천박함에 몰입하면서 그 영혼을 사탄에게 팔아먹은 파우스트처럼 행동하게 마련입니다. 언론은 어쩌면 이런 현대인들의 심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의 가벼움을 부추기면서 선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장사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에 누군가가 여호수아와 갈렙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예언자들이 있어서 가볍게 떠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잡고 그 중심을 잃지 않도록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 중심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와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 누가 과연 예언자가 되며 누가 이 역사의 중심이 하느님께 있음을 일깨워 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그가 이 역사의 중심이며, 그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이 역사의 중심이 하느님의 통치가 완성되는 영원한 세계에 있다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물질문명의 발달을 통해서 이 땅을 지상낙원으로 만들려는 현대문명은 영원한 세계를 지향하는 하느님의 역사를 거스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인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믿지 않고 소망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로 떨어지고 맙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13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으신 분”이라고 하면서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은혜로 굳게 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문명이나 지식이나 이념을 따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그 마음에 담아 그것을 굳게 잡으며, 그 소망을 향해 나감을 뜻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가 보여주신 진리를 붙잡을 때, 흔들리던 우리의 삶이 안정이 되고 이 시대의 요동치는 변화의 물결을 따라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집을 반석 위에 지은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주님의 말씀을 나의 중심에 간직할 때 나의 삶은 이 땅의 어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굳하게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대 물질문명이 아무리 화려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바람에 날려가 버릴 겨와 같은 존재요, 안개처럼 사라져버릴 껍데기 문명임을 올바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 문명의 물결에 휩쓸리면 우리도 가벼운 존재가 되어 바람에 흩어져 그 중심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물질 문명 너머에 빛나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목표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가볍게 거기에 휩쓸리지 마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좀더 깊게, 좀더 멀리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풍조에 가볍게 휩쓸려 가지 않도록 매일매일 하느님의 은혜로 여러분 자신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가벼운 여론에 휩쓸려 공연히 흥분하지 말고 성령의 깨우치심과 인도하심을 좇아 하느님의 역사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역사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따르면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나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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