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 | 이전설교자료                     

조회 수 140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2002년 5월 26일 삼위일체주일>
   육성설교 / 동영상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사

이사야서  11: 1- 5
로 마 서    8:31-39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일체를 이루어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까닭은 이것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이슬람교와 함께 이들을 일신론자(一神論者)라고 부릅니다. 기독교는 일신론이 아닙니다. 한 하느님이면서 세 인격을 가지고 상호 관계 속에서 역사하시는 삼위 하느님을 믿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이신 것은 성부가 성자가 되고 성자가 성령이 되고 성령이 성부가 되기 때문에 한 하느님이 아니고(이와 같은 이론은 양태론 이단이다), 성부가 성자 안에 거하시고 성자가 성부 안에 거하시고 성부와 성자가 성령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삼위 하느님께서 하나가 되십니다. 성부 하느님, 성자 하느님, 성령 하느님이라고 하지만 세 분 하느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세 인격이 서로가 서로 안에 계시므로 한 하느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 개의 홰에서 하나의 거대한 횃불이 타오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비록 3개의 홰이지만 하나의 불기둥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불기둥이지 3개의 불기둥일 수 없고, 그런 까닭에 한 하느님이라고 해야지 세 하느님들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일신론도 배격하고 삼신론(三神論)도 배격합니다. 우리가 한 분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인격으로 존재하시는 한 하느님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깐 여기서 우리말의 ‘하나님’이란 용어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 제목에도 ‘하느님’이라고 표기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진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공동번역성경을 빼고는 모든 성경이 다 ‘하나님’이라고 사용하고 있고 교회들이 그 성경 용어를 따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나오게 된 어원(語源)을 살펴보면 ‘하느님’이란 용어가 타당함을 알게 됩니다. 그 어원은 ‘하늘(ㄴ 밑에 아래 아)님’입니다. ‘하늘’을 인격화한 용어입니다. 현대어로 옮기면 ‘하늘님’입니다. 그런데 ‘님’ 앞에 붙은 ‘ㄹ’은 음운(音韻)법칙에 따라 떨어집니다. ‘아들님’이라고 하지 않고 ‘아드님’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님’은 ‘하느님’이 됩니다. 그런데 북쪽 지방에서는 ‘아래 아’를 ‘아’로 발음하여 ‘하나님’이 되었고, 거기다가 하느님은 한 분이라는 개념까지 첨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계속 사용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은 모두 표준어로 ‘하느님’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천주’를 사용하는 카톨릭교회와 ‘하나님’을 사용하는 개신교가 성경을 공동으로 번역하면서 ‘하느님’으로 통일을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준어를 사용함이 여러 가지 면에서 옳다고 생각하여 저는 얼마 전부터 ‘하느님’이라고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두 가지 용어가 계속 사용될 것입니다만, 언젠가 하나로 통일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세 인격적 존재이신 삼위 하느님이 서로가 서로 안에 계시는 상호통재(相互通在)를 통하여 하나로 역사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저는 로마서 8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삼위 하느님께서 어떻게 구원의 완성을 위해 역사(役事)하시는가를 살피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로 역사하시는 하느님

    하느님이 하시는 사역(使役)을 크게 보면 창조와 구원입니다. ‘창조와 구원’이라고 하였지만, 실상은 창조하시고 그 창조를 완성하시는 것이라고 보면 결국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창조’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창조의 과정에서 인간이 타락하므로 그들을 구원하여 마침내 완성에 이르게 하시는 구원의 사역이 추가되었지만 그것까지도 모두 창조의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창조의 과정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할이 분담되었습니다. 성부께서는 창조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주관하시면서 성자와 성령과 더불어 직접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성부가 창조하신 세계가 다르고 성자와 성령이 만드신 세계가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세 분이 협력하여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는 한 번에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이며 마지막 때에 그것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느님은 계속적으로 협력하여 창조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특히 성자께서는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성령께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재하시면서 계속하여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며 전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완성의 자리까지 이르도록 하시기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각기 맡은 역할이 다르지만 그 목표는 모든 창조를 완성하시어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삼위 하느님의 하나되심은 바로 이런 창조와 구원의 사역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면 좀더 상세하게 삼위 하느님의 사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부 하느님의 사역

    로마서 8장에는 삼위 하느님의 사역이 뚜렷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성부께서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하였습니다. 성자를 보내신 일이 바로 성부가 하신 가장 큰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하느님의 창조의 계획에 성자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이루시는 창조의 사역이 너무 광대하고 너무 섬세하기 때문에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은 인간이 이를 이해하고 관리하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인간이 타락하면서 하느님이 처음 의도하셨던 것과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이들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성자의 성육신은 불가피한 일이 되었습니다. 성육신 사건은 성부 하느님의 가장 큰 사랑의 사역이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총의 결과입니다.

    성부께서는 성자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구속하셨으며, 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통하여 인간을 부활하게 하시고 완성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8장 28절에 이하에서 성부 하느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마침내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부 하느님의 사역은 체계적이며 물샐틈없이 완전하여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의 사역이 처음부터 사랑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그 창조를 완성하시는 것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게 하신 다음 마침내 영화롭게 하시므로 인간의 창조를 완성하시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의한 창조의 과정입니다. 이런 창조의 과정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예정대로 모든 창조를 완성하신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이런 창조의 사역을 훼방하는 세력이 중간에 생겨나기는 하였지만 하느님의 사역은 중단됨 없이 진행되어 마침내 완성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창조의 완성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성자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 모든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느님의 섭리(攝理)를 통하여 그의 변함 없는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어떤 세력도 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변함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는 항상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다음으로,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도 성자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과 하느님 우편에 계심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롬 8:34

    로마서 8장 1절서 3절까지에 성부께서 성자를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하였고,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기에 다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축도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하늘의 모든 부요를 비우고 이 땅에 종의 형체로 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성자의 성육신은 비하(卑下) 즉 낮아지심이며, 종 되심이며, 가난하게 되심이고, 고난 당하심과 죽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성부와 동등한 인격을 가지신 성자에게는 무거운 짐이며 큰 희생을 뜻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자께서는 성부의 뜻을 그대로 받아드려 스스로 낮아지셨고 고난을 자취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느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 2:6-8

    성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부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 바로 은혜입니다. 성자의 순종이 하느님의 모든 사역을 하나로 통일시켰고, 창조를 완성에 이를 수 있게 만드셨기에 그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자의 이런 놀라운 은혜가 없었다면 하느님의 창조는 차질(蹉跌)이 생겼을 것이며,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런 아들의 희생을 기쁘게 여기시면서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계신다는 사실은, 우리도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영원한 삶에 이를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 또한 우리를 자기 안에 품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자기 안에 품으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해서 이 땅의 위협적인 세력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므로 그가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게 되며, 그가 받으시는 영광의 자리에 우리도 함께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의 사역

    마지막으로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서는 지난 성령강림주일에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창조와 구원의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생명을 지탱시켜 주는 바람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살아 움직이는 것임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영 즉 성령은 우리의 생명을 근본적으로 받쳐주는 힘으로,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의 생명에 연결시키시는 역할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축도에서 ‘성령의 교통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활발한 코이노니아는 하느님과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영원한 생명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멈춤으로 해서 우리의 생명이 시들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성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막힌 담을 헐어 내셨고, 그 이후 다시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가운데 불면서 우리의 생명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나 개인 가운데 불어오실 때 내가 살게 되고, 교회 가운데 불어오실 때 교회가 부흥하게 되며, 이 민족 가운데 불어오실 때 이 민족이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 즉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부활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부활은 단순한 육체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삶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됨을 뜻합니다.

    특별히 성령께서는 때로는 하느님의 영으로, 때로는 그리스도의 영(8:9)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자기의 뜻을 따라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의 뜻을 따라 사역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바람과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며, 특히 성부의 영으로, 때로는 그리스도 안에 함께 하시는 영으로 역사하시기에 그가 나타내시는 분은 성부 하느님이시며, 성자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런 성령의 사역은 역시 삼위 하느님의 일체 되심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람처럼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그 능력과 지혜를 따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은 창조의 완벽한 완성 그 중에서도 인간의 구원과 완성을 위해 입체적으로 사역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이런 놀라운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 때문에 우리가 구원함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소망 가운데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입체적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 앞에 우리의 힘을 다하여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서로가 서로 안에 계셔서 완전한 합일을 이루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의 뜻에 순종하면서 이 땅의 하나됨을 위한 사역에 발벗고 나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인간의 헛된 욕망을 버리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마련하시고 허락하신 영광된 미래를 향해서 온 힘을 다하여 달려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No Image 21Jul
    by
    2002/07/21 Views 1627 

    하느님의 신호를 살피라

  2. No Image 14Jul
    by
    2002/07/14 Views 1841 

    신앙과 삶의 나침반

  3. No Image 07Jul
    by
    2002/07/07 Views 1710 

    마음을 은혜로 굳게 하라

  4. No Image 30Jun
    by
    2002/06/30 Views 1447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

  5. No Image 23Jun
    by
    2002/06/23 Views 1549 

    관용과 평화

  6. No Image 16Jun
    by
    2002/06/16 Views 1443 

    옛 것과 새 것

  7. No Image 09Jun
    by
    2002/06/09 Views 1508 

    성장하는 능력

  8. No Image 02Jun
    by
    2002/06/02 Views 1587 

    소박한 삶을 구하라

  9. No Image 26May
    by 유경재 목사
    2002/05/26 Views 1400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사

  10. No Image 19May
    by
    2002/05/19 Views 1422 

    생명을 온전케 하시는 성령

  11. No Image 11May
    by
    2002/05/11 Views 1485 

    하느님을 닮은 어머니

  12. No Image 05May
    by
    2002/05/05 Views 1355 

    지체됨을 가르치라

  13. No Image 28Apr
    by
    2002/04/28 Views 1553 

    하느님의 동역자

  14. No Image 21Apr
    by
    2002/04/21 Views 1432 

    새로운 생명을 위한 산고(産苦)

  15. No Image 14Apr
    by
    2002/04/14 Views 1472 

    죽음보다 강한 것

  16. No Image 07Apr
    by
    2002/04/07 Views 1455 

    죽음 후의 열매

  17. No Image 31Mar
    by
    2002/03/31 Views 1318 

    영생의 시작인 부활

  18. 계속되는 십자가의 고통

  19. No Image 17Mar
    by
    2002/03/17 Views 1500 

    점점 완성되어 가는 삶

  20. No Image 09Mar
    by
    2002/03/09 Views 1397 

    탄생처럼 죽음도 은총이다

Board Pagination Prev 1 ...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 41 Next
/ 41